옛날에 지나칠 정도로 바르고 고지식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그도 남들처럼 분명히 이름 석 자가 있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 모두에게 김 생원으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김 생원은 어려서부터의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과거시험에 나가 장원급제를 해야 하겠다는 것이 그가 가진 꿈의 모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나이 오십이 가깝도록 항상 책을 곁에 두고 공부를 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공부를 그토록 지독하게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공부 외에는 먹는 것, 입는 것은 물론 부자가 되어 잘사는 일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오직 한 가지 자나 깨나 오직 과거에 급제하는 일만이 그의 희망이요, 꿈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식사하는 것조차 잊고 이틀 사흘씩 밤낮을 꼬박 지새우며 머리를 싸매고 책과 씨름을 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늘 찬물을 옆에 준비해 놓고 졸음이 올 때마다 냉수로 몸을 씻으며 졸음을 쫓아낸 다음에 공부를 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상투를 끈으로 묶어 천장에 매달아 놓고 졸음을 쫓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재미있게 살아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오직 공부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김 생원이었지만 과거를 볼 때마다 보기 좋게 낙방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머리도 나쁜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공부를 게을리한 것도 아닌데 그런 걸 보면 운이 따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김 생원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 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저마다 수군거리며 흉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김 생원인지 김 선빈지 이제 폐인이 다 되고 말았더군.”
“아암, 내일모레면 오십이니데 아직까지 그 모양이니 볼 장은 다 본 셈이지 뭔가."
"쯧쯧쯧, 그렇구말구, 그동안 땅마지기깨나 있던 거 다 팔아넘기고 이젠 거지꼴이 되고 말았으니 정말 한심한 신세가 됐지 뭔가.”
“아암, 이젠 별 수 없이 농사라도 지어야 할 텐데 이젠 농사지을 땅이 있나, 그렇다고 농사를 지을 줄 아나, 정말 한심한 일이라니까.”
마을 사람들이 하도 불쌍하고 딱하게 여겨 이렇게 수군거리곤 했지만 김 생원은 조금도 걱정스러운 빛이 없었습니다. 걱정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전보다 더욱 과거 준비에만 미쳐 있었습니다.
이제 김 생원네 식구들은 밥을 먹는 날보다는 굶는 날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제법 남부럽지 않게 행세깨나 했던 집안이라 집은 덩그렇게 컸지만 잘 보살피지를 않아 지금은 그마저도 다 쓰러져 가는 페허가 되어 마치 도깨비라도 금방 나올 것 같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식구들의 옷차림이나 건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랜 세월 먹지를 못해 비쩍 마르고 영양실조에 걸린 채 모두가 거지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못한 부인이 지친 얼굴로 김 생원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그나마 순돌이네 집에서 얻어온 양식도 오늘 저녁만 먹으면 그만이니 어쩌면 좋죠?”
그러자 김 생원 역시 기운이 없는 표정으로 이번에도 귀찮다는 듯 낯을 찡그리며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습니다.
“그새 순돌이네 집에서 준 양식이 벌써 다 떨어졌다구?"
“그까짓 보리쌀 두 됫박을 가지고 열흘을 견디었으면 그만이지 얼마나 더 먹어야 되겠어요? 그나마 멀겋게 죽을 쑤어 먹었기 때문에 열흘이나 먹게 된 거라니까요.”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럼 별 수 없지. 당신이 또 어느 집에 가서 또 조금만 얻어 오구려.”
김 생원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이렇게 대꾸하고는 다시 책만 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그 꼴을 보자 부인이 답답하다는 듯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이 집 저 집 또 돌아다니면서 구걸을 해 오라고요? 우리가 뭐 거지예요? 난 이제 창피해서도 더 이상 그 짓은 못하겠어요.”
“허허, 이 사람 말하는 것 좀 보게나. 누군 거지가 되고 싶어서 하나? 가진 게 다떨어지면 누구나 거지가 되는 거지. 그리고 창피는 또 무슨 놈의 창피야. 창피가 어디 밥을 먹여 준답디까?”
김 생원의 대답은 너무나도 태연하면서도 답답했습니다. 그 바람에 부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발각 성이 난 목소리로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대꾸하였습니다.
"뭐라구요? 당신은 이제 창피도 모르시는군요. 그럼 이렇게 허구한 날 책만 보면 거기서 밥이 나온답디까? 아니면 돈이 나온답디까? 전 이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는 지긋지긋해서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아니, 그럼 못 참겠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사람이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어디다 쓰겠어? 이왕 참은 김에 조금만 더 기다리구려. 내년이나 후년에는 꼭 과거에 급제하게 되겠지.”
“만날 또 그 소리, 해마다 내년이나 후년 하고 미루어 온 것이 이제 당신 나이도 내일 모레면 오십이라는 걸 아셔야죠.”
“아니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날 보고 지금까지 해온 공부를 그만두란 말이야?”
“그래요. 그만두라니까요.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면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집어치우고 다른 일을 찾으셔야죠.”
그러자 김 생원도 덩달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뭐가 어째? 이제 와서 나를 보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구?“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잖아요.”
“듣기 싫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하고 그런 말을 계속 지껄일 거라면 공부에 방해가 되니까 어서 나가란 말이야!”
김 생원이 화가 나서 크게 소리치는 바람에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쫓겨나다시피 방에서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여러 날이 흘렀습니다. 그것은 삶이라고 하기보다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도 숨이 막힐 정도로 비참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과거에 급제하고야 말겠다는 김 생원의 고집과 집념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김 생원의 승낙도 없이 아침 일찍 집을 나간 부인이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슨 일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인은 당장 살판이라도 생긴 듯 오랜만에 활짝 밝아진 얼굴로 호들갑을 떨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여보, 기쁜 소식 한 가지 알려 드릴게요. 두고 보세요. 이제 우리도 얼마 뒤부터는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날이 꼭 올 거 같아요.”
밑도 끝도 없는 부인의 부인의 이야기에 김 생원이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되묻게 되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야?“
부인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목소리로 신바람이 나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고생을 하며 살 수는 없지 않아아요. 그래서 오늘 제가 어디를 다녀온 줄 아셔요? 생각다 못해 작은아버님을 찾아뵙고 왔어요.”
"아니 뭐라구? 뭘 어떻게 하려구?”
작은아버님을 만나보고 왔다는 말에 김 생원은 깜짝 놀란 얼굴이 되어 되물었습니다. 작은아버님이라면 나라에서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있는 분으로 더구나 과거 때마다 과거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분으로도 이름이 난 인물이었습니다.
부인이 잠시 머뭇거리고 있자 김 생원이 다시 다그쳤습니다.
“그런데 내 말은 왜 그분을 갑자기 찾아뵙고 왔느냐구?”
“왜 찾아뵙기는요. 좀 부끄럽긴 했지만, 우리 집 형편을 모두 털어놓으며 통사정을 좀 하러 갔던 것이었죠.”
“그래서?”
“그랬더니 작은아버님께서도 우리 집 사정을 이미 잘 알고 계시더라구요. 그리고 만인 당신이 내년에도 급제를 못하게 되면 좋은 자리 하나 꼭 마련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당신이 꼭 과거 급제를 하기를 원한다면 그 일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 시간이 나는 대로 당신을 한번 만나 보자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러니 이제 다된 일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부인의 이야기를 다 들은 김 생원은 화가 크게 난 얼굴로 펄쩍 뛰었습니다.
"아니 왜 점점 시키지도 않은 짓을 제멋대로 하고 돌아다니면서 이 야단이야? 누가 그런 짓을 하고 돌아다니랬어? 난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 해, 내 말 알아듣겠어?“
김 생원이 하도 화가 잔뜩 나서 소리치는 바람에 찔끔 놀란 부인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대꾸했습니다.
”전 당신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남들은 그런 언덕이 없어서 비개질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판인데 당신 고집은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너무하다니 뭐가 너무해? 그럼 나보고 부정한 짓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밥을 굶지 않기 위해 아버님이 마련해 주는 벼슬자리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란 말 아니야?”
“그럼 언제까지나 이렇게 굶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니예요. 그런 걸 생각하면 얼마나 좋은 기회냐 이 말이에요.”
“듣기 싫어! 이제 와서 나를 보고 양심까지 팔아먹으란 말이지? 오늘 당장 굶어 죽으면 죽었지 난 그런 짓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하겠다, 이 말이야. 알아듣겠어?”
"몰라요. 알아듣긴 뭘 알아들어요? 난 정말 당신의 그 똥고집은 이해할 수가 없다구요.“
부인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이렇게 마주 소리치고는 그 길로 방을 뛰쳐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도 김 생원은 무슨 배짱인지 더욱 공부에 미련스럽게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날이 계속 이어지자 부인은 답답하다 못해 정말 미칠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마침 좋은 자리가 하나 나왔으니 급히 만나보자는 전갈이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벌써 몇 번째 나 거듭해서 온 전갈이었습니다.
그러나 김 생원은 이번에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리고 매번 끈질기게 김 생원을 그런 식으로 부르고 있는 작은아버지까지 불쾌하게 여겨지고 원망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뭐라구요? 그런 옳지 못한 정신 자세를 가진 분이 어떻게 나라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난 당장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부정한 짓은 못하겠다고 분명히 전해 주시오.”
김 생원은 전갈을 온 사람에게 불쾌한 어조로 이렇게 꾸짖고는 당장 문전에서 되돌려 보내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소문은 마침내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허허, 요즈음 세상에 그토록 양심이 바르고 정직한 선비가 있었다니 그거 참 가상한 일인지고, 그러나 소문만 듣고는 그 사람의 인품을 소상히 알 수 없는 일이로고, 내가 직접 사람을 시켜 다시 한번 그 사람의 인품을 시험해 볼 터이다.”
김 생원의 소문을 전해 들은 임금님은 몹시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나라를 다스려야 할 훌륭한 인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김 생원네 집에는 뜻밖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여보, 이게 웬 곡식이죠?“
김 생원의 부인이 기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펄쩍 뛰면서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른 아침에 밖으로 나가 보니 헛간에 웬 쌀가마니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인은 여전히 기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다시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너무 가난하게 사는 걸 보고 불쌍한 마음에 아마 누가 몰래 갖다 놓고 간 모양이에요. 아이구, 고맙기도해라. 이제 우리도 한동안 양식 걱정을 안 해도 되겠어요. 안 그래요. 여보? 호호호…….”
그러나 김 생원은 이번에도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소리쳤습니다.
“허허, 저렇게 속 좁은 여자를 그래도 마누라라고 여태까지 같이 살아온 내가 잘못이지. 옛말에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지 않소? 그 쌀이 어떻게 해서 우리 집까지 굴러 들어오게 되있는지는 몰라도 누가 떳떳하게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닌 이상 지금 당장 대문 밖으로 내다 놓도록 해요. 주인이 나타나면 언젠가는 찾아가게 되겠지. 내 말이 틀렸소?”
“아니 지금 몰래 남의 집에 들어가서 훔쳐와도 시원치 않은 판에 그냥 저절로 굴러들어온 복도 차버린단 말이예요? 당신은 아직도 배가 덜 고파서 그러는 모양인데 난 그렇게는 못해요.”
“아니 뭐가 어쩌구 어째? 당장 입 닥치고 어서 쌀가마니나 내놓을 생각이나 하란 말이야.”
김 생원은 더욱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부인도 지지 않고 마주 소리치며 한동안 큰 소리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쌀 가마니는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리 오너라!”
밖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나가 보니 나라에서 보낸 심부름꾼 한 사람이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어명이오. 대궐로 속히 입궐하시라는 분부이십니다."
이에 감 생원은 태연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상감마마께서 어찌하여 저 같은 소인을……?”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아마 높은 벼슬자리에 부임하시라는 분부이신 듯 하옵니다. 아무튼 속히 떠날 준비를 서두르십시오.”
그러나 김 생원은 이번에도 딱 잘라 냉정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어명을 거역하는 것은 천하에 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오나 난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과거에 삼십여 년 동안 낙방하였겠습니까? 마마께 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소인은 분명히 소인의 실력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소인에게 맞는 당당한 자리를 찾겠다고요.”
김 생원의 얼음장처럼 차디찬 거절에 심부름을 왔던 관리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허허허, 과연 인물은 인물이로다!“
신하들로부녀 자초지종을 전해 듣게 된 임금님은 크게 감탄만 할 뿐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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