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귀천]
방금 전에 밖으로 놀러 나갔던 동수가 반 시간도 채 안 된 것 같은데 금방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잔뜩 나서 씨근덕거리고 있습니다.
마침 빨래를 하고 있던 엄마가 동수의 앞으로 다가서며 걱정스러운 낯으로 물었습니다.
“왜, 더 놀지 않고 벌써 들어왔니? 너 누구하고 다퉜구나?"
”…….”
동수는 여전히 얼굴이 벌겋게 된 채 씨근덕거리고만 있습니다. 가끔 엄마를 흘금흘금 바라보는 동수의 얼굴에는 불만의 빛이 가득합니다.
“동수야, 엄마가 무얼 잘못한 게 있니? 어서 무슨 일인지 말을 좀 해 보라니까.”
엄마는 너무 답답해서 이번에는 동수의 두 손을 꼬옥 잡고 무릎을 꿇은 채,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엄마가 계속 다그치는 바람에 동수는 그제야 할 수 없다는 듯 버럭 성을 내며 퉁명스럽게 소리쳤습니다.
"나 이제부터는 친구들하고 절대로 같이 안 놀 거란 말이야, 씨이…….”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니? 친구들하고 언제나 사이좋게 놀아야 착한 어린이라고 엄마가 늘 말했지 않니?“
"내가 뭐 사이좋게 놀기 싫어서 그런 줄 알아? 그 자식들이 공연히 기분 나쁘게 놀려 대니까 그렇지.“
“뭐라구? 친구들이 너한테 뭐라고 놀려 댔기에 우리 동수가 이렇게 화가 난 거지?”
엄마가 두 눈이 둥그렇게 되어 물었습니다.
"나를 보고 글쎄 쓰레기 장수 아들이라고 놀렸단 말이야.”
"아니, 뭐라구? 누가 그런 나쁜 소리를 함부로 하든?“
“철구, 영진이, 병호, 그리고 기지배들까지 모두 그렇레 놀렸단 말이야.”
동수의 엄마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어리둥절한 채 동수를 바라보고 있던 엄마가 다시 물었습니다.
“친구들이 왜 너한테 그런 나쁜 소리를 했는데?”
“그러니까 그놈들 아주 나쁜 자식들이란 말이야. 아까 사장님 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사장님은 저희들만 하겠다는 거야. 그리고 난 아빠가 청소부니까 사장님 놀이에서도 사무실 청소만 맡으라는 거야. 씨이…….”
동수는 점점 더 분해서 못 참겠다는 듯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씨근거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제야 동수가 심통이 난 이유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어떻게 이해시켜 줘야 할지 몰라 가슴만 답답했습니다.
“동수야, 그럼 너도 아빠가 청소부 일을 하시는 게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그럼 창피하지 않을 리가 있어?"
동수는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얼른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더욱 속이 상한 얼굴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청소를 하시는 아빠가 왜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니?”
“내 친구들의 아빠는 거의 다 돈을 많이 버는 사장님이 아니면 높은 자리에 있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 아빠는 하필이면 남의 집에서 버린 지저분하고 더러운 쓰레기나 치우고 다니니 그게 창피하지 않으면 뭐가 창피해?”
동수의 입에서 불쑥 나온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금세 서운한 빛이 역력하였습니다.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가느다란 한숨까지 저절로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동수야, 너 엄마 얘기 좀 들어보지 않으련?”
엄마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동수를 달래기 위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말이지. 사장님인 네 친구들의 아빠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아빠도 그분들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더러운 쓰레기나 치우고 다니는 아빠가 뭐가 더 훌륭하단 말이야?“
엄마의 말에 동수는 더욱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엄마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엄마의 표정이 더욱 난처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우리 동수가 굉장히 똑똑한 줄 알았더니 가만히 보니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
동수의 눈이 금방 커다랗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말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엄마가 다시 천천히 물었습니다.
“그럼 동수는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그야 물론 큰 회사의 사장님이 되고 싶지.”
“그럼 왜 사장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사장님이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럼 지금처럼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되고 그게 얼마나 좋으냔 말이야.“
“그럼 높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는 뭐니?”
"그야 장관이나 대통령, 그리고 판사처럼 높은 사람이 되면 남들이 모두 우러러보게 되고 큰소리를 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동수는 지금까지 다른 친구들한테 가난하다고 놀림을 받으며 지내온 가슴속의 응어리리ㅣ라도 풀어내려는 듯 조금도 서슴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엄마는 동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동수야, 내 이야기를 다시 잘 들어 보렴. 만일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장님이 되고 또 높은 사람들이 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기는, 그러면 지금처럼 남들한테 업신여김이나 손가락질을 받을 일이 없을 테니까 얼마나 좋겠어?”
그러자 엄마도 지지 않고 끈질기게 묻고 있었습니다.
“그럼, 사람들 모두가 돈이 많은 사장이나 대통령, 그리고 장관이 된다면 그분들이 입고 다니는 옷의 빨래나 밥 등, 자질구레한 일들은 누가 하게 될까?”
"빨래는 세탁소에 맡기고 밥은 부엌 아줌마한테 맡기면 되지 뭐.”
"여자들도 모두 밥이나 빨래하기가 싫어서 모두 사장님이나 장관 같은 높은 사람이 된다면 그땐 어쩌지?“
“……?”
엄마의 물음에 동수가 이번에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정말 엄마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돈이 많은 사장님이 되거나 높은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편한 자리에 앉아 아랫사람들한테 명령이나 하게 된다면 빨래는 누가 하고, 또 밥은 누가 지어야 할까!
동수가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긴 동수를 보자 엄마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빨래도 하지 않은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언제까지나 입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지? 그리고 아무리 돈이 많은 사장님들이나 높은 분들도 밥을 굶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게 아니겠니?“
“……?”
“그리고 아빠는 6·25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돌봐 줄 사람이 없으니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셔서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장사도 다해 보셨단다. 그러다가 마침 환경미화원 시험이 있어서 그것도 아주 어렵게 합격하여 그런 자리라도 다니게 되신 거란다.
그 뒤부터는 아빠가 열심히 환경미화원으로 일을 하시는 덕분에 우리 식구들이 그나마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고 동네도 깨끗해지니 아빠도 만족하게 생각하시고 계시니 얼마나 좋은 일이니. 안 그러니?”
“……!”
동수는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듯 대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잔뜩 심통이 났던 표정이 봄눈 녹듯 슬그머니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동수의 모습을 보자 안심이 된다는 듯 엄마의 입에서도 차츰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른 말귀를 알아차리고 있는 동수가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고많은 일들 중에는 빨래나 밥을 짓는 일이 아니더라도 그보다 더욱 어렵고 힘든 일이 얼마든지 많단다. 예를 들자면 깊은 땅 굴속에 들어가서 석탄을 캐는 일, 땡볕이 내리쬐는 공사장에서 높은 곳까지 벽돌을 지고 운반하는 일, 그리고 아빠처럼 고약한 냄새를 참아가며 남의 집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란다.
가만히 생각해 보렴. 석탄을 캐는 일이 위험하고 힘이 들다고 모두가 안 한다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변소 냄새가 고약하다고 해서 그것을 치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은 결국 어떻게 되겠니?”
“그러면 얼마 안 가서 화장실이 모두 넘쳐 흐르게 되고 나라가 온통 고약한 냄새 때문에 살기가 어렵게 되겠지 뭐.”
“그래, 바로 그거란다. 그래서 옛날부터 직업의 귀천은 없다고 하는 거란다. 일에 따라서는 어렵고 쉬운 차이, 그리고 높고 낮음이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 세상에 어떤 일이든 중요하지 않은 게 없는 거란다.”
“으음, 이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빠가 하는 일이 좀 지저분하긴 해도 누군가는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구나!”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 동수의 얼굴빛이 점점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아암, 그렇고 말고,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시는 아빠를 조금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그처럼 훌륭한 일을 열심히 하시는 아빠를 더욱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이 말이야. 알아듣겠니?”
“으응, 알겠어.”
동수는 활짝 갠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있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엄마, 궁금한게 한 가지 있어.”
"그게 뭔데?”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높은 자리에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힘만 많이 들고 고생만 하면서도 돈을 조금밖에 벌지 못하는 걸 보면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야.”
"음, 그건 말이지, 앞으로 동수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엄마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다음에 저절로 알게 될 거란다.”
동수의 물음에 엄마도 이번에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얼른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으음, 난 그럼 이다음에 커서 어른이 된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될까?”
“아까 네가 말하지 않았니? 돈이 많은 사장님이나 대통령, 그리고 장관이나 판사처럼 높은 사람이 되겠다면서?"
“아니야, 아까까지는 그랬는데 엄마의 얘기를 듣고 보니까 꼭 그런 사람들만 훌륭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걸.”
“그래 맞았다. 높은 사람이나 돈만 많이 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각자 그 사람의 취미와 성격에도 맞아야 하지만 소질도 따라야 한단다. 그래야 그 일을 하면서 싫증도 안 느끼게 되고 보람도 느낄 수 있게 되거든.”
“엄마, 그럼 난 이다음에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까?”
“글쎄다. 사람마다 취미나 적성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거란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어떤 일이 나한테 꼭 맞는 것인지 그걸 발견해 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단다.”
"그건 또 왜?”
"우선 나라가 잘 돼야 개인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는 법이거든,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고 가난한 개인이 어떻게 혼자만 행복할 수 있겠니?“
엄마의 자세하고 긴 설명을 들은 동수는 흐뭇한 얼굴이 되어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는 장차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딩동~~ 딩동 ~~~.“
현관문 초인종 소리가 울리기가 무섭게 그때 숙제를 하고 있던 동수가 재빨리 뛰어가서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문이 열리면서 꼭두새벽부터 일을 나갔던 아빠가 몹시 지친 모습으로 들어섰습니다. 언제나처럼 옷은 먼지투성이가 되어 보기에도 흉했습니다.
동수는 와락 아빠의 팔을 잡고 매달리며 반가이 맞이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던 일이었습니다.
"아빠! 고생 많으셨어요? 잠깐만 서 계셔요. 제가 옷 벗겨드릴게요.“
동수는 냄새가 풀풀 날 정도로 더러워진 아빠의 옷을 벗기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오늘따라 그런 냄새도 별로 싫지 않게 느껴집니다.
"아니, 이 녀석이 오늘따라 웬일로 이렇게 서비스가 좋아졌지?“
아빠는 갑자기 달라진 동수의 태도에 그만 어리둥절해진 채 동수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동수는 지금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호호호…….“
그러자 엄마가 활짝 밝아진 얼굴로 소리 내어 웃으면서 동수 대신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런 부끄러운 일을 하는 애비를 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니?“
아빠는 더욱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엄마와 동수의 눈치를 번갈아 살펴보면서 물었습니다.
그러지 동수가 한껏 기분이 좋은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아빠! 난 이다음에 자라면 아빠도 훌륭한 일을 하고 있지만, 아빠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동수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나오자 아빠는 더욱 무슨 영문인 줄을 몰라 여전히 고개만 가웃거리고 있었습니다.
“동수가 당신을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데 그게 뭐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셔요. 자, 시장하실 텐데 어서 씻고 식사할 준비나 하세요. 호호호 …….”
"……?”
아빠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그러나 흐뭇한 표정으로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샤워실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세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조용히 엿듣고 있던 달님도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얼굴이 되어 환한 미소로 동수네 집을 더욱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