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세월이 가면 누구나

[누구나 늙는다]

by 겨울나무

깊고 깊은 산속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산도적들의 무리가 떼를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대부분 육중한 바위로 덮인 동굴 속이었습니다. 그 동굴속에 훔쳐 온 많은 양식과 갖가지 일용품들을 그득하게 쌓아놓고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제법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수백 명이나 넘는 산도적들에게는 그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인 두목이 있었습니다.


두목은 비록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산도적이란 신분이기는 했지만 어느 나라의 제왕이나 대통령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불편할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넉넉했으며 또한 모든 부하들이 우러러 받들고 권세도 이만저만 높은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두목이 그처럼 부하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고 우러러보게 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목은 워낙에 몸집이 크기도 했지만 힘도 이만저만 센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목소리조차 이찌나 우렁차고 큰지 한 번 고함을 질렀다 하면 온 산골짜기에 서 있던 거대한 나무들과 풀들까지 우르르 떨며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런 그를 보기만 하면 주눅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두목이 부하 산도적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게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그 그 어느 부하라 해도 차별 하지 않고 공평하게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생김새와 달리 마음씨가 여리고 몹시 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목은 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하들에게 입버릇처럼 자신의 생각을 힘을 주어 역설하였으며,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김없이 실천에 옮기곤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잘 알다시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서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남의 덕이나 보면서 자신만 편하게 지내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이란 말이요. 난 당장 죽으면 죽었지 그런 꼴을 보고는 못 참는 성미란 말이오.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해 오고 있지만, 난 앞으로도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만큼의 차이를 두어 배급을 주게 됨은 물론 그 밖의 다른 것들 모두도 그런 방법으로 추진해 나갈 생각이오.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이나 남의 눈을 피해 꾀나 부리면서 적당히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대우를 해준다는 것은 얼마나 불공평한 일이겠소?“


두목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온 산골짜기가 흔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면서도 위엄이 있었습니다.

두목의 그런 설명을 들을 때마다 부하들은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라는 듯 모두가 한결같이 고개만 끄덕거릴 뿐 그 누구도 감히 불평을 하며 나서지를 못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목이 그렇게 한 말은 그 모두가 곧 법이 되곤 하였습니다.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능력별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우를 하겠다는 두목의 뜻을 반대할 까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하들은 두목의 뜻을 받들어 항상 열심히 일하며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열심히 일을 한다는 것은 두둑질을 뜻하는 말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산도적들은 눈만 뜨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도둑질을 하는 일에 눈코 뜰 새가 없이 바빴습니다. 그리고 도둑질을 해 온 물건들은 일단 모두 두목에게 바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모인 양식이나 물건들을 모두 굴속 깊은 곳에 쌓아두었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어김없이 부하들의 능력에 따라 골고루 나누어 주곤 하였습니다.

능력에 따라 배급의 차이를 두어 도둑질을 해 온 물건의 양이나 값어치, 그리고 한 달 동안 며칠간 일을 하지 않고 쉬었나 하는 것도 참작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두목의 뜻이 그렇게 확고한 걸 아는 부하들은 누구나 하루도 쉬지 않고 전보다 더욱 도둑질을 많이 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돈이나 물건을 강제로 빼앗는 강도짓이나 훔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바위 동굴 속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과 곡식, 그리고 갖가지 값비싼 물건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산더미처럼 쌓여만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정도의 양이라면 수백 명의 산도적들이 여러 해 동안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고 먹고도 남을만큼 충분한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목은 아무리 도둑질해 온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가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하들에게 주는 배급의 양은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 해도 그런 개인적인 사정에는 왼눈 하나 깜짝하기는 커영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우리 두목님은 존경받을 만한 분이야.”

“아암, 그렇게 덕망이 높은 분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말고.”

"아마 욕심이 많은 두목이었다면 혼자만 배를 채우고, 자신만 호강을 누린들 그 누가 감히 어떻게 하겠어.”

“맞아. 우리들을 위해서라도 더 오래오래 사셔야 할 훌륭한 분이라니까.”


부하들은 틈만 있으면 두목의 칭찬으로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늘 두목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도둑질을 하는 일에 앞뒤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어떻게 된 일인지 두목에 대한 불평을 하는 부하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맨 처음으로 두목을 찾아가서 불평을 털어놓게 된 사람은 늙고 병이 들어 몹시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늙은 부하였습니다.


“두목님, 송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저는 보시다시피 가뜩이나 나이가 많아 늙은 데다가 이렇게 병까지 들어 이제는 제 몸뚱이조차 마음대로 가눌 수가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두목은 대뜸 불만스러운 얼굴이 되어 되물었습니다.


“허허, 그래서 그걸 날 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요?”


그러자 늙은 부하는 다시 애걸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예, 염치없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각자 개인의 능력에 따라 배급을 주시는 것도 좋지만, 저처럼 늙고 병이 든 사람들에게는 먹고 살아갈 수만 있게 특별히 어진 마음을 베풀어주심이 어떨까 해서 이렇게 용기를 내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얘기를 듣고 보니 결국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게 아니겠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다시 한번 자세히 말해 보시오.“


”예, 두목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저는 사실 지금지 열심히 일을 하기 위해 제 나름대로 그 누구 못지않게 무던히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젠 보시다시피 늙고 병이 들어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건강하고 힘이 센 젊은이들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몸이 너무 아플 때는 그마저도 별 도리없이 일을 못하고 쉬는 날도 더러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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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배급이 적으니까 앞으로는 일을 많이 한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해 달라 이말 아니오?”

“아, 그게 아닙니다. 어찌 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염치없이 건강한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기를 바라겠습니까? 지금 제가 바라는 것은 굶주린 배나 곯지 않을 정도로 양식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배급의 양이 너무 적어 굶는 날도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가뜩이나 병이 든 몸이 더욱더 쇠약해지고 있는 형편이오니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선처해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가끔 떨리듯 말하는 늙은 부하의 목소리는 마침내 울먹이는 울음 소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두목은, 한동안 눈을 같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잠시 뒤에 다시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말씀하신 뜻은 잘 알겠소. 내가 너무 평등하게 부하들을 다스리다 보니 당신처럼 늙고 병이 든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내 불찰이었소, 앞으로는 내가 섭섭하지 않게 알아서 해결해 드릴 터이니 이제 아무 걱정 말고 돌아가서 어서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에만 신경을 써주실 바라오."

늙은 부하는 두목의 따뜻한 배려에 몇 번이고 굽신거리며 절을 올리고 그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그 소문은 곧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늙은 부하나 환자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두목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두목님, 저는 오랫동안 당뇨와 혈압으로 인해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알겠소, 아무 걱정말고 앞으로는 어서 빨리 병이나 고칠 생각이나 하시오.”


마음씨가 착하고 약한 두목은 첫눈에 보아도 병색이 몹시 짙어 보이는 환자의 부탁을 혀를 끌끌 차며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두목님, 저는 벌써 여러 해째 허리 협착증으로 인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어이구, 저런, 쯧쯧쯧…. 정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군요. 다른 일은 아예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집으로 가서 편히 쉬시오.“


두목은 이번에도 위로의 말까지 덧붙여 주면서 첫마디에 시원스럽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몸이 약하거나 병이 든 환자들이 줄을 이어 찾아와 두목에게 사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목은 그때마다 조금도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이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기로 선뜻 약속을 하였습니다.


“두목님, 정말 고맙습니다.”

“두목님의 깊고 너그러우신 은혜는 평생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혹시나 하고 두목을 찾아왔던 부하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두목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뒤부터 이곳 산속에 사는 산도적들은 마음씨가 착하고 너그러운 두목의 덕으로 더욱 즐겁고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이 약하거나 병이 들어 도둑질을 제대로 못해도 이제는 먹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록 나이가 너무 많아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약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못해도 두목이 그들만을 위해 특별히 대우를 해주었기 때문에 먹고 살아가는 일에는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으며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오랫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부하들 사이에는 또다시 불평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불평을 하게 된 사람들은 주로 산도적들 중에서도 몸이 매우 건강하면서도 행동이 민첩하여 도둑질을 잘하기로 이름 난 부하들이었습니다.


"두목님, 이렇게 불공평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두목은 두 눈이 둥그렇게 되어 되물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불공평하다는 것인지 어디 자세히 말을 해 보게나.”

“두목님께서는 항상 이 세상에서 일을 제대로 안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암, 그랬었지. 그래서?“

"그런데 지금 두목님께서는 일을 제대로 못하는 노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일을 전혀 못하고 누워 있는 환자들까지 저희들과 똑같은 대우를 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음, 그렇지. 그래서?“

”저희들이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게 바로 불공평하다 이 말씀입니다. 분명히 평등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고요.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그 어느 누가 매쳤다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두목님?“

”으음, 얘길 듣고 보니 일 리가 있군.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자네들의 의견을 말해 보게나."

“저희들의 불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옛날처럼 다시 일을 얼마나 열심히 많이 했느냐에 따라 차이를 두어 대우하는 것이 공평하고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헛, 허으음……!”

젊고 힘이 막강한 부하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두목은 얼른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두 눈을 꼭 감은 채 한동안 다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 평등하게 부하들을 다스리는 일인지 얼른 좋은 묘안이 떠오르지를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두목이 다시 부하들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그럼 자네들은 지금처럼 언제까지나 건강한 몸으로 늙지도 않고 병도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두목이 묻는 말의 뜻을 얼른 알아차린 부하들은 급히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면서 다시 대답했습니다.


“저희들 역시 언젠가는 늙거나 병이 들겠지요. 그러나 그때는 그때고 지금 저희들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놀고 앉아 있어도 편히 먹고 살 수 있다면 그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두목님?”

"나도 자네들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아닐세. 그러나 자네들의 말대로 한다면 늙거나 병이 들어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굶어도 좋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그동안 평등을 주장한 것은 젊고 건강하면서도 빈둥거리면서 꾀나 부리고 일을 안하는 사람과, 일을 하고 싶어도 늙거나 병이 들어 못하는 사람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자는 것이었다네. 그게 바로 올바른 평등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말이라네. 내 말이 이해가 가나?”


“…….”


두목이 사정하는 투로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젊고 건강한 체격을 가진 부하들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들을 짓고 있었습니다.


부하들을 간신히 달래서 보낸 두목은 걱정스럽고 답답한 마음에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래도 불평 저래도 불평이니 두목 노릇 하기도 정말 어렵고 힘이 드는구먼.”


두목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어떻게 해야 모든 부하들의 불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게 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부하들을 평등하게 다스리는 것인가에 대해 다시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았지만, 부하들을 평등하게 다스리기 위한 뾰족한 묘안이 좀처럼 떠오르지를 않았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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