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기차가 보이는 언덕

by 겨울나무

“쓰르람, 쓰르람……”

“맴맴, 매애앰……”


쓰르라미와 매미가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옵니다.


”짜르르르, 짜르르르……“


이따금 여치가 울어대는 소리도 요란하게 들려옵니다.

오늘따라 태식이는 그런 소리들이 모두 시끄럽고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여느 때 같으면 그런 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던 태식이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고

태식이는 지금 저 멀리 기차가 보이는 언덕에 힘없이 앉아 하모니카를 불고 있습니다. 하모니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모두가 춘희가 좋아하는 노래들이었습니다.


”빵, 빠아아앙~~~“


그때 갑자기 저 멀리서 디젤 기관차의 기적 소리가 들려옵니다. 디젤 기관차의 기적 소리에 깜짝 놀란 태식이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서울을 향해 달려가는 기관차를 멀거니 바라봅니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아까보다 공연히 더 슬퍼집니다. 태식이의 눈에서는 다시 곱고 예쁜 춘희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바로 오늘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난 오늘 산에 못 올라갈지도 몰라. 개학이 며칠 안 남아서 엄마가 오늘이나 내일쯤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거든."

춘희의 갑작스러운 말에 태식이는 금방 서운한 마음에 어깨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새삼 여름 방학이 짧은 게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춘희를 서울로 올라가지 못하게 붙잡아 놓고 언제까지나 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음메에~~~”


그때 갑자기 산골짜기에서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난 태식인 산골짜기를 향해 허둥지둥 달려갔습니다. 춘희를 생각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 소의 고삐를 풀어준 채 풀을 먹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이렇게 소에게 풀을 먹이곤 하는 것이 태식이의 일과이기도 하였습니다.


산골짜기를 따라 깊숙이 내려가면 결국은 다시 맞은 편에는 높은 산으로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골짜기 깊은 곳에는 소가 좋아하는 풀이 얼마든지 많았습니다. 그 골짜기에 소를 풀어놓으면 풀을 배불리 먹은 소가 다시 되돌 나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소가 골짜기에서 풀을 뜯어먹는 동안 태식이는 언제나 마음 놓고 산 중턱에 있는 언덕 상수리 나무 그늘 밑에 누워 하모니카를 불거나 간단한 숙제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음메에~~~ ”

태식이는 숨가쁘게 소가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급히 달려갔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녀석이 또 있나!”


소는 나무 뿌리에 고삐를 바짝 동여맨 채 꼼짝을 못하고 소리만 지르고 있습니다. 고삐를 풀어놓은 태식인 다시 골짜기로 소를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발길을 돌려 상수리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숨을 헐떡이며 급히 올라왔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전에 디젤 기관차가 지나간 기찻길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기관차는 이미 사라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까 그 기차로 춘희가 떠났으면 어떡하지?”


태식인 또다시 춘희 생각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습니다.



태식이가 춘회를 알게 된 것은 벌써 보름이 지난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태식이는 여느 때처럼 이 골짜기에 소를 몰아 넣고는 언덕에 올라 하모니카를 정신없이 불고 있었습니다. 한창 신바람이 나서 불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콧노래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소리는 지금 태식이가 불고 있는 하모니카 곡을 따라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어리둥절해진 태식이는 하모니카를 입에서 떼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어느 틈에 왔는지 태식이 옆에는 난생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태식이를 바라보며 수줍은 듯 생글생글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여자가 먼저 물었습니다. 그렇게 묻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예뿔 수가 없었습니다.


“너 이 동네에 살고 있니?”

“으, 으응.”


태식이는 당황한 얼굴로 얼른 더듬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태식이의 얼굴이 금세 벌겋게 물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럼 학교에 다니겠구니?”

“응, 지금 5학년이야.”


“그래? 나도 5 학년이거든.”

“그래? 그런 넌 어디 사는데?


“우리 집은 서울인데 외할머니댁에 엄마와 같이 잠깐 놀러 온 거야. "

“그렇구나. 그럼 외할머니댁이 어딘데?”

“넌 이 동에네 산다니까 잘 알겠구나? 마당에 우물이 있고 오래 묵은 향나무가 있는 집이거든.”

태식인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집이라면 태식이가 훤히 알만한 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 같이 놀 친구도 없이 심심하던 참에 마침 네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가 하도 듣기가 좋아서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거야. 어떻게 그렇게 하모니카 부는 솜씨가 좋으니?”

“헤헤헷, 잘 불기는…….


여자아이의 칭찬에 태식인 조금 민망하면서도 속으로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두 아이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어느새 벌써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금방 친해졌습니다.


”아니야. 정말 잘 분다니까. 우리 반에도 하모니카를 가진 아아들은 많지만 너처럼 잘 부는 아이는 아무도 보지를 못했는걸.”

“치이, 거짓말."


"아냐, 왜 거짓말을 하니? 내가 노래 몇 곡 더 부탁해도 되겠니?”


태식인 좀 무안했지만 여자아이가 시키는 대로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습니다. ‘산바람 강바람’, ‘고향 땅’, ‘옹달샘’ 등 신바람이 나서 불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아이는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고개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태식인 여자아이의 노랫소리가 들으면 들을수록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식이네 반에서 가장 잘 부른다고 소문이 난 경숙이나 희옥이는 저리가라였습니다.


태식인 지금까지 배운 노래 중에서 아는 것은 모두 불렀고 여자 아이도 끝까지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태식이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기는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습니다.

한참 신바람이 나서 하모니카를 불던 태식이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난 듯 여자아이한테 물었습니다.


“아참, 너 혹시 산딸기 좋아하니? ”

“산딸기라니?”


“응, 저절로 산에서 자란 야생 딸기인데 아주 맛이 있거든.”

“그게 어디 있는데?”


호기심에 여자아이의 눈이 동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어기.”


태식이는 곧 여자아이를 이끌고 소를 몰아넣은 산골짜기를 향해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가파르거나 위험한 곳에서는 여자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기도 하면서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 보니 그 골짜기 앞에는 또 다른 여러 개의 골짜기가 둘러싸여 있있고 그 골짜기마다에는 잘 익은 수많은 산딸기들이 먹음직스럽게 무르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수를 놓은 듯 빨갛게 점점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우와아! 신난다. 웬 딸기가 이렇게 많으니?”


두 아이는 정심없이 딸기를 따 먹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어떠니? 정말 맛있지?”

한동안 정심없이 딸기를 따 먹고 있던 태식이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자아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맛있고 말고, 가게에서 파는 딸기보다 훨씬 더 싱싱하고 맛이 있는걸. 시골에서는 이런 것도 공짜로 먹어 볼 수 있구나. 호호호…….”


그 날 땅거미기 지도록 두 아이는 서울과 시골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자 아이의 이름이 춘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날 저녁의 일이었습니다. 춘희를 알고 난 그날부터 태식인 하루하루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이면 모닥불 가에 춘희와 둘이서 감자를 구워먹으며 입이 지저분하게 되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다시 만나 틈이 있는 대로 춘희와 같이 곤충채집과 방학 숙제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비가 개기가 무섭게 뒷산으로 올라가서 버섯을 따다가 구워 먹기도 하고 둥그런 체와 깡통을 들고 개울가로 가서 고기잡이도 하였습니다.


춘희는 그 모든 일이 신기하고 흥미롭다는 듯, 태식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하며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하모니카를 큰 소리가 나게 불었습니다. 그러면 어느 틈에 춘희가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영락없이 태식이에게 달려오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즐겁고 신바람 나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새 개학할 날이 다가온 것입니다.


태식인 지금 아침에 춘희가 하던 말을 생각하며 기찻길만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춘희와 재미있게 지내던 지난 일들이 자꾸만 눈앞에 어리고 떠오릅니다. 웬일인지 오늘은 아무리 하모니카를 마음껏 불어봐도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아프게 될 줄을 알았더라면 차라리 춘희를 안 만난 것만도 못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빵, 빠앙~~~”


또다시 멀리서 디이젤 기관차의 기적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태식아아! 잘 있어어!”


태식인 스스라치게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봅니다.

저 멀리 강둑을 따라 기차 정거장으로 가는 길에 춘희가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가며 소리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손을 흔들며 자꾸만 태식이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태식인 순간 가슴이 뭉클하면서 또다시 양쪽 어깨에 힘이 쭉 빠집니다.


“그래애, 잘 가. 춘희야아!”

태식이도 두 손으로 손나팔을 만들어 입에 대더니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치고 있습니다.

두 아이가 서로 외치는 소리는 온 들판 가득 울려퍼지더니 그때마다 붉은 저녁 노을에 스며들어버리곤 합니다. 태식의 두 뺨에서는 저도 모르게 어느새 굵은 이슬이 맺혀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더 이상 춘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태식인 그만 맥빠진 걸음걸이로 산골짜기를 향해 터벅터벅 옮겨 놓고 있습니다.

“쓰르람, 쓰르람~~~”

“맴, 매애앰, 맴~~~”


산골짜기마다에서는 아까보다 더 극성맞게 울어대는 쓰르라미와 매미의 울음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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