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장 높은 절벽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생긴 절벽인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절벽은 너무나 높아 구름 속에 파묻혀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절벽 꼭대기까지 남보다 먼저 올라가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니, 욕망뿐만이 아닙니다. 너도나도 누구나 그 험한 절벽을 올라가기 위해 갖은 고생을 무릅쓰고 이미 계속 오르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 절벽을 올라가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처럼 모두가 눈이 벌개진 채 숨을 헐떡이며 있는 힘을 다해 오르고 있었습니다. 자일도 없이 무작정 오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은 그 모두가 어떤 목적으로 그리고 무슨 이유로 오르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과연 누구를 위해 그리고 왜 이렇게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오르고 있는지를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미련스럽게 남들이 오르고 있으니까 전혀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여전히 죽을 힘을 다해 오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 중에는 마음씨가 착하고 성실한 청년도 한 명 끼어 있었습니다. 그는 남달리 무쇠처럼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도 절벽을 오르기란 마음처럼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를 쓰며 젖먹은 힘을 다해 비지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약 이십여 년간이나 쉬지 않고 열심히 오르고 있었지만, 아직도 절벽의 꼭대기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절벽은 너무나 험준하고 가파르기가 상상조차 못할 정도였습니다. 하마터면 발을 헛딛고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져 죽을 뻔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헉, 허억……. 휴유우,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야 되겠구나!”
청년은 조금 몸을 의지할만한 곳에 다다르자 잠깐 쉬어가기 위해 나뭇가지를 꽉 부여잡고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연신 숨을 헐떡이며 절벽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그만 눈앞이 아찔했습니다. 현깃증이 나서 하마터면 정신을 잃고 절벽 아래로 구를 뻔했습니다. 절벽 꼭대기가 구름에 덮혀 보이지 않듯 그 아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치 깊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처럼 발밑이 마치 지옥처럼 아득하고 까마득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청년은 이 험한 절벽을 여기까지 큰 사고없이 오른 것만 해도 여간 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잠깐 쉬었으니 그럼 다시 힘을 내 볼까!”
용기를 낸 청년은 다시 천 근, 만 근이나 된 무거운 다리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발 옮겨 딛으려고 할 바로 그때였습니다.
“으아아악~~~”
청년은 갑자기 자지러는 듯한 비명 소리에 섬찟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비명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아아! 그 순간,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꼭 감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절벽 아래는 여전히 개미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기어오르고 있었고, 또한 발을 헛딛거나 옆 사람한테 떠밀려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떨어지는 사람마다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그때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소중한 목숨을 잃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춘 채 넋을 잃고 그 사람들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서로 밀고 밀리며 어떻게 하면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먼저 올라갈 욕심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아우성 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절벽을 오르는 일에만 눈이 벌겋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정말 사람들은 인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올라가기 위해서는 앞 사람의 다리를 잡아당겨 떨어뜨리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는 너그러운 마음이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이나 목숨 같은 것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서글프면서도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아, 그렇지!”
순간 청년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무릎을 쳤습니다. 그의 얼굴엔 갑자기 희망에 넘친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청년은 모두가 오르고 있는 절벽을 청년 역시 덩달아 열심히 쉬지 않고 무작정 오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절벽을 오르고 있는지를 전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조금 보람을 느낀 것이 있다면 그저 남보다 조금 앞서서 오르고 있다는 만족감과 즐거움 오직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청년은 한동안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무슨 생각에서인지 바위틈에서 무성하게 자란 칡넝쿨을 돌멩이로 두드려 끊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처럼 건강한 사람도 이렇게 절벽을 올라가기가 어렵고 힘이 드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랴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힘겹게 절벽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습니다.
젊은이는 바위 틈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칡넝쿨을 돌멩이로 두드려 끊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닥을 끊은 칡넝쿨을 튼튼하게 꼬아 절벽 밑으로 늘어뜨리며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청년의 우렁찬 목소리는 온 산 공기를 흔들며 절벽 밑으로 메아리쳐 퍼져 나갔습니다. 청년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절벽을 오르던 일을 잠시 멈추고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힘이 자라는 데까지 돕겠소. 그러니까 여러분은 안심하시고 이 줄을 잡고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에 절벽을 오르던 사람들은 모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기쁨의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그거 참 고맙소!”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곧 청년이 내려준 줄을 잡고 절벽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튼튼한 줄을 잡고 오르다 보니 절벽을 오르기가 훨씬 더 힘이 덜 들고 수월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청년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청년의 말을 곧이듣지 않고 한바탕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봐, 청년! 그따위 어리석은 수작에 누가 속을 줄 알아?”
“지금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저 혼자만 먼저 올라가려고 죽을 기를 쓰는 판에 남을 돕다니 그런 엉뚱한 수작에 내가 넘어갈 줄 알았냐?”
“야, 이놈아! 난 절대로 안 속는다구.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만일 그 줄에 매달렸다가 네 놈이 그 줄을 끊으면 우린 어떻게 되게? ”
아아,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청년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남의 성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이토록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없이 서글프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다시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제발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괜한 고집 피우지 말고 어서 이 줄을 잡고 올라오시란 말씀입니다."
“야, 이 사기꾼 같은 놈아, 안 속는다니까 안 속아. 그러니까 걸리적거리지 않게 어서 그 밧줄이나 치워 다오!”
어떤 몇몇 사람들은 청년의 말을 여전히 믿지 않고 심지어는 심한 욕지거리까지 퍼붓고 있었습니다.
“…….”
청년은 그만 말문이 막혀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낭떠러지를 열심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서 다시 줄을 늘어뜨려야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말을 믿고 청년이 내려준 칡넝쿨을 붙잡고 올라가던 사람들은 훨씬 더 쉽게 절벽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속 깊이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유없이 남을 돕고 있는 청년의 마음을 여전히 이해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조금 전에 청년에게 욕설을 퍼붓던 사람들의 말처럼 이 세상에 공짜는 하나도 없는 것이니까요.
사실 그것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회생시키는 일을 밥 먹듯 해온 세상이었으니까요.
한동안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절벽을 오르던 청년은 잠깐 절벽 아래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느 틈에 많은 사람들이 방금 전에 청년이 칡넝쿨을 잡아매었던 곳까지 쉽게 올라와서 다시 청년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에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청년은 다시 없던 힘이 샘솟았습니다. 그리고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을 돕는다는 일이 이토록 값진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청년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쉴 사이 없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온몸은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처와 피로 물들었습니다. 청년은 땀과 피를 닦을 사이도 없이 다시 칡넝쿨을 끊어 동아줄을 만들어 절벽 아래로 늘어뜨렸습니다.
“히야아, 줄이 또 내려온다, 줄이 내려온다구!”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다시 줄을 잡고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줄을 잡고 올라온 사람들 중의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청년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이봐요, 청년! 아무 이유 없이 우리들을 이렇게 돕고 있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오? 그리고 혼자 올라가기도 힘이 드는 판에 우리를 돕는 이유가 도대체 뭐냔 말입니다.”
청년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닦아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아무리 궁금해도 조금만 더 참고 올라가 주십시오. 제가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여러분께서 낙오 없이 이 절벽 끝까지 올라가게 되는 날, 아마 여러분은 그 모든 궁금증이 저절로 풀리게 될 것입니다. 자, 다시 다 함께 힘을 내십시오!”
청년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청년의 대해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또 물어보았지만 청년의 대답은 언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청년이 계속 줄을 마련해 주는 대로 오르고 또 오르는 동안 어느새 수십 해란 세월이 흘렸습니다. 이제 청년의 검은 머리는 어느새 백발이 되고 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절벽을 오르던 그 많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 수효가 많지를 않았습니다. 수십 해를 그렇게 절벽을 오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낙오되었기 때입니다. 그중에는 힘과 능력이 모자랐던 사람, 그리고 게으르거나 청년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말을 전혀 믿지 않고 고집을 피우며 제멋대로 오르던 몇몇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모두가 낙오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노인은 마침내 절벽 맨 꼭대기에 올라 백발을 날리며 마지막 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얼마 멀지 않은 절벽 아래에서는 끝까지 낙오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노인이 만든 줄이 내려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자신을 끝까지 믿고 따라 준 그 사람들을 볼 때 몹시 대견스럽고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노인이 마침내 마지막으로 힘겹게 만든 줄을 늘어뜨리며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이제 다 올라오셨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있는 힘을 다해 올라오십시오. 이제 조금만 더 올라오시면 여러분이 평생 그토록 고생을 하며 오르고 싶었던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절벽 위에 올라오시게 됩니다. 자, 어서요!”
사람들은 청년의 말에 따라 마지막 힘을 다해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드디어 오랜 세월 동안 꿈에도 그리던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절벽 꼭대기에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저마다 가슴 설레고 부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마침내 사람들은 차례대로 절벽 꼭대기로 하나씩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기진맥진하여 절벽에 올라오기가 무섭게 털썩 주저앉거나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힘이 다 빠져 기진맥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껏 기대에 찬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사방이 온통 깍아지른 듯 절벽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실망했다는 듯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이거 절벽 말고는 아무것도 볼 게 없잖아!”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허탈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허허, 우리들 모두는 결국 이 꼴을 보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이렇게 늙을 때까지 그 숱한 고생만 한 셈이군요.”
“이런 줄 알았다면 차라리 저 밑에서 편히 쉬기나 할 걸 괜한 고생을 하며 올라왔지 뭡니까, 안 그래요?”
사람들은 저마다 지나온 세월이 아깝다는 듯 불평과 실망의 빛이 가득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된 청년은 사람들의 푸념과 넋두리를 한동안 듣기만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조금도 실망하거나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평생 소망하던 뜻을 이룬 뒤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줄로 알고 있지만, 한번 그 뜻을 이룬 뒤에는 다시 다른 욕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동안 정말 장하게도 끝까지 그 수많은 죽을 고생을 이겨내며 마침내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것을 만족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자기의 뜻을 꼭 이루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보다 더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아왔느냐가 더욱 값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노인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이제야 이해가 조금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생을 하며 평생 절벽을 오른 일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성실하게 살아오지 못한 지난날들을 오히려 아쉬워하며 입가에는 엷은 행복의 미소까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평생 꼭 올라가야만 할 험하고도 가파른 고생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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