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대감 나무

by 겨울나무

동철인 도무지 겁이라고는 없는 아이입니다. 우선 겉모습만 보아도 그랬습니다.

나이에 비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딱 벌어진 가슴과 어깨, 그리고 부리부리하게 생긴 눈동자만 보아도 금세 다부진 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성격이나 행동도 그랬습니다.


“허어, 고놈 이담에 크면 무슨 일이든 한 가락 하겠는걸. 허허허…….”

“그러게나 말일세. 웬만한 어른은 뺨을 치겠다니까. 허허허…….”


어쩌다 동철이의 야무진 모습을 볼 때마다 동네 어른들은 입을 딱 벌리며 이런 말을 해주곤 하였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동철인 싫지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바로 동철이를 은근히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뜻이 섞여 있다는 것을 자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겁이 없고 다부지기만 하던 동철이에게 요즈음 큰 걱정이 한 가지 생기고 말았습니다.


바로 사흘 전 오후,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늘 그랬듯 동철이는 그날도 같은 반인 영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영진아, 너 우리 동네 대감나무에 알 귀신이 살고 있다는 얘기 들어본 적이 있지?”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은 영진인 알 귀신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두 눈의 금방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응, 들어보고말고.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묻지?"

“어쨌든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봐, 알 귀신이 있다는 말 넌 믿니 안 믿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니. 그럼 넌 알 귀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니? "

”헤헤, 이런 바보 같으니라구. 넌 여태 5학년이 되도록 공부를 헛 했구나, 헛 했어.”

“아니, 뭐라고? 공부를 헛 하다니?”


영진인 기분이 좀 상해서 퉁명스러운 목로소리로 대꾸하였습니다.


“그러엄, 헛 하고말고. 생각을 좀 해보렴. 지금이 어떤 세상이니? 과학의 발달로 이미 달나라를 정복하고 화성까지 가는 세상에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고 있단 말이야?”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귀신들이 죽어버리나?”


“누가 죽어버린다고 했니? 내 말은 귀신이란 존재는 아예 이 세상에 있지도 않았다는 얘기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티격태격 두 아이의 입씨름은 좀처럼 끝이 날 줄을 몰랐습니다.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자칫하다가는 큰 싸움까지 벌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동철인 알 귀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영진이가 그렇게 못마땅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알 귀신이 절대로 없다고 끝까지 우겨대는 동철이가 몹시 못마땅하였습니다.


동철인 지금 어른들은 모두 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철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저녁마다 모닥불 앞에 모이기만 하면 늘 도깨비나 귀신 이야기를 꺼내곤 하는 것이 정해진 레파토리였습니다. 실제로 보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산 너머 늪에 가면 물귀신이 나와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등,


또 배밭골 선바위 위에는 저녁마다 도깨비들이 모여 굿을 한다는 등, 정말 별의별 이야기를 다 늘어 놓곤 합니다. 그 이야기들은 모두 신물이 날 정도로 듣고 또 곱빼기로 귀가 아플 정도로 들었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처음엔 동철이도 그런 말들을 모두 정말로 믿고 흥미있게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게 사실일까 하는 의심에 고개를 갸웃거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동철이는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배밭골까지 갔다가 그만 해가 저물고 말았습니다. 배밭골이라면 귀신이나 도깨비가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조금만 어두워도 어른들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틈에 사방은 땅거미가 지고 컴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겁이 없고 다부진 동철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선바위 쪽으로 자꾸 고개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타날 것만 같아 머리털이 쭈뼛하고 온몸이 오싹해지기도 하였습니다.


동철이는 두려움을 참아가며 숨소리까지 죽인 채 한 발, 두 발 동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 딛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가 동철이의 귀에 유난히도 크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이마에 뿔이 커다랗게 달린 도깨비가 나타나 북슬북슬하게 털이 길게 난 손으로 덥석 뒷덜미를 잡아당길 것만 같은 느낌에 소름이 돋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꼭 나타날 줄로만 알았던 도깨비는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끝내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동철이는 더욱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날부터 저녁때마다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타난다는 곳은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고 용기를 내어 찾아가 봤지만 그것들은 끝내 단 한 번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동철인 동네 어른들의 말은 모두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믿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른들은 왜 그런 쓸데없는 거짓말들을 해서 겁이 나게 하는 것인지 동철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대감나무에 대한 두려움만큼은 아직도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대감나무는 동네 한가운데 개울가에 서 있습니다. 몇백 년이나 묵은 나무인지 나무 기둥 속은 삭아서 텅텅 빈 늙은 오리나무였습니다.


언제 부터인지는 잘 모르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 오리나무를 모두가 대감나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대감나뭇가지에는 항상 갖가지 색깔의 헝겊들이 흉칙하게 걸려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습니다. 헝겊은 무슨 색깔이 무슨 색깔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랫동안 비바람에 퇴색해 버린 흉물스러운 헝겊들이었습니다. 그 모두가 동네 사람들이 무슨 소원을 빌기 위해 매달아놓은 것들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이 나무 밑에 밥이 하나 가득 담긴 바가지가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시루떡이 놓여 있기도 하고 짚으로 흉하게 만든 허수아비가 걸려 있기도 합니다.


동네 사람들 중에는 아침저녁으로 이 대감나무를 찾아와 정성을 드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무당이 와서 요란한 북과 징을 울리며 춤을 추고 굿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동네 사람들은 슬픈 일이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이 대감나무 밑에 와서 빌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이 나무를 신주 위하듯 보호하며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아니 감히 건드릴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깨비도 귀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동철이가 아직도 이 대감나무를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나무에 대한 전설 때문이었습니다.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오래 전에 이 나무에서 떨어진 삭은 가지와 낙엽을 긁어다 아궁이에 때고 난 뒤에 온 동네 사람 모두가 심한 열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니 그보다 더 생생한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삼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 동네에 10여 년 전에 이 동네 개나리 울타리 집에 시집을 온 새색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시집을 온 지 10여 년이 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해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이 대감나무에 지극정성으로 백일기도를 드린 끝에 마침내 예쁜 아기를 낳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모든 일이 대감나무 속에 살고 있는 알 귀신의 조화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동철이도 이 나무만은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두려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섭고 두렵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알 귀신을 만나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해오던 동철이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오늘 마침 영진이와 우연히 다투게 된 것입니다.






이번엔 영진이가 발끈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럼 그런 것들이 모두 거짓말이라면 너 오늘 저녁에 대감나무에 한번 가 볼 자신 있니?"

”아암, 그야 물론이지. 어디 가 보는 것뿐이겠니? 나뭇가지라도 꺾어버릴 수 있단 말이야.”


동철이도 여전히 지지 않고 여유가 만만한 목소리로 대꾸하였습니다.


“너 그거 정말이지?"

“치이, 내가 왜 너헌테 거짓말을 하니?”


“좋아. 너 그럼 너 오늘 저녁에 정말 해 보는 거다.”

“그래, 알았다니까. 내가 어떻게 하나 두고 보란 말이야.”


한동안 티격태격하며 다투던 두 아이는 결국 저녁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일단 헤어졌습니다.


이윽고 그날 저녁이 돌아왔습니다. 급히 저녁을 먹고 난 동철이는 약속대로 곧 대 감나무가 서있는 개울가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보름이 가까웠는지 달님이 사방을 훤히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겁이 없는 동철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대감나무의 가지를 꺾을 생각을 하니 은근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동철아, 너 지금 나오는 거니?”


언제 미리 와 있었는지 개울가 숲에 숨을 죽이고 숨어있던 영진이가 다가오면서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걸었습니다. 벌써부터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응, 넌 언제 나왔는데?”


이렇게 대답을 하고 있는 동철이의 목소리도 약간 떨리고 있었습니다.


“야, 동철아,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우리 그냥 두자, 응?”

“괜찮아. 걱정 마. 이렇게 낫까지 가지고 왔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러니?”


동철인 한쪽 손에 들고 있던 낫을 들어보이며 말했습니다.


“너 정말 조금도 무섭지 않은 거니?”

“무섭기는, 이런 겁쟁이 같으니. 그렇게 무서우면 넌 여기서 가만히 앉아서 구경이나 하라구.”


동철인 영진이가 말릴 사이도 없이 대감나무 가까이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영진인 그 자리에 선 채 아무말도 못하고 겁에 질려 동철이의 태도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대감나무 앞에 다다른 동철인 낫자루를 꽉 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우선 대감나무의 아래위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동철이도 속으로는 금방이라도 알 귀신이 뛰어나와 잡아먹을 것 같은 생각에 머리털이 빳빳하게 곤두섭니다. 그러나 한동안 아무리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순간 낫을 번쩍 들어올린 동철이가 대감나무 가지가 길게 늘어진 가지를 잡고 사정없이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사정없이 뛰면서 숨도 가빠옵니다. 정신마저 아득해 옵니다. 그러나 동철인 나뭇가지를 결국 베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나무를 찍어대고 있었습니다. 사정없이 나뭇가지를 찍어대는 소리가 밤공기를 요란스럽게 흔들며 멀리 퍼져 나갑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이구 저런, 거기 웬 녀석들이냐?”


갑자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웬 어른의 호통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겁에 질린 동철인 호통 소리에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동철인 찍던 가지를 그냥 내버려 둔 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급히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놈 잡아라! 저놈!”


뒤에서는 어른이 쫓아오며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이번에는 잠을 자고 있던 동네 개들까지 여기저기서 극성맞게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동철인 정신 없이 쏜살같이 달려 어느 틈에 뒷산 언덕배기까지 도망을 와서 숨을 헐떡이며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른의 소리가 잠잠해질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동네가 조용해지고 개 짖는 소리까지 서서히 멎게 되자 동철인 조심스럽게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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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이었습니다. 온 동네가 온통 발칵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허허, 이거 어쩌면 좋은가. 이거 큰일 났지 뭔가. 아마 언젠가는 무슨 재앙으로 위 동네가 쑥밭이 되고 말걸세.”


마을 사람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여기저기 모여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이구, 어떤 놈이 그런 몹쓸 짓을 해서 이렇게 온 동네가 망하게 해 놓는담.”

“아, 어떤 놈인지 알기만 하면 그냥 두기나 하구?”


동철인 동네 사람들이 서슬이 퍼렇게 된 얼굴로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겁이 덜컥 나고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영진아, 너 절대로 누구한테라도 비밀로 해야 한다. 알았지, 응?”


동철인 영진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다짐을 하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히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게 근심과 걱정으로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동철이의 귀에 또 다시 놀랄만한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대 감나무에 지성으로 기도를 드린 끝에 기적적으로 낳은 개나리 울타리 집 아기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기가 병이 든 것은 누군가가 대감나무를 함부로 건드렸기 때문에 대감 나무 귀신이 크게 노해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철이의 근심과 불안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쌓여만 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을 미리 알았다면 공연히 대감나무를 건드렸다는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날 갖가지 약을 써 보기도 하였지만 아무 차도가 보이지 않자, 마침내 개나리 울타리 집에서는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굿을 하게 되면 누가 대감나무를 꺾었는지, 그리고 아기의 병도 낫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덩덩, 덩더쿵! 덩덩, 덩더쿵……!”


마침내 장고와 북, 그리고 징을 두드리며 굿을 하는 소리가 동철네 집까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동철이는 몹시 불안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나무를 꺾었는지 무당이 정말 알아내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를 초조하게 지내던 동철이에게 또다시 깜짝 놀랄만한 겁나는 소문을 돋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무당이 굿을 한 결과 꼭 누구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동네 에 사는 아이들 중에 분명히 대감나무를 꺾은 아이를 언젠가는 밝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철인 정말 불안해서 더 이상 못 견딜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아기의 병은 굿을 했음에도 조금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굿을 해서 대감나뭇가지를 꺾은 사람을 찾아내고 나면 아기의 병이 낫게 된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습니다.


동철인 이제 입맛조차 떨어지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의기양양하고 활발하기만 하던 동철이의 표정은 어둡게 일그러지고 어깨까지 축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학교에 가도 또 집에 와도 항상 마음이 놓이지 않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문득 어딘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멀리 도망을 가고 싶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동철인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자마자 오늘도 동네 뒷산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이 뒷산에 오르는 것이 버릇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마을 바로 뒷산 산기슭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시원스럽게 펼쳐진 넓은 잔디밭이 있습니다. 이 잔디밭에 벌렁 누워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금이나마 가슴 속에 쌓인 근심과 걱정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엔 햇솜처럼 하얀 흰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습니다. 동철이의 온 마음과 몸이 온통 자신도 모르게 구름 속에 묻히는 느낌입니다. 동철이가 한동안 이렇게 잔디밭에 벌렁 누워 근심 걱정을 달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니, 넌 누군데 어쩐 일로 혼자 산에 올라와서 누워 있는 거지?”


동철인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알어났습니다. 그리고 얼른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바라보고 되었습니다. 웬 낯모를 신사 아저씨가 고갯길을 올라오며 동철일 보고 싱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큰 가방을 들고 하얀 까운을 입고 있었습니다. 얼른 보기에도 의사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후유, 고갯길이 제법 가파른 걸. 나도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야겠구나.”


아저씨는 동철이가 앉아 있는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아, 아저씨는 누구세요?”


동철인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약간 경계하는 눈빛으로 아저씨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아, 이 녀석아 보면 몰라? 이 동네 개나리 울타리 집에 아기가 아프다고 해서 잠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란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동철이의 눈에 금방 번쩍하고 빛이 났습니다. 지금까지 답답하게 혼자만 걱정하던 일을 속 시원하게 풀리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도 그 아기가 앓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런데 그 아기는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거예요?“

“너 이렇게 덤비는 걸 보니 그 집 아기하고 무슨 관계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아, 아뇨. 아무 관계도 없어요.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이 그 아기 걱정으로 하도 소문이 떠들썩해서 저도 궁금해서 그래요.”

"음, 그래 ? 그 아기는 지금 경풍에 걸린 거란다.“


”경풍이라니 그게 무슨 병인데요?“


동철인 의사 선생님 곁으로 조금 더 바짝 다가앉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으응, 그건 뱃속에 회충이 있거나 열이 심하게 날 때 깜짝깜짝 놀라는 병이란다.“

“아하, 그렇구나. 그럼, 대감나무 때문에 생긴 병이 아니란 말씀이죠?”


“뭐? 대감나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동네 사람들은 누가 대감 나무를 함부로 건드렸기 때문에 그 아기가 병이 난 것이라고 떠들고 있던데요?”


“옛기 이 녀석, 그 말을 곧이들어? 말같은 소리를 해야지. 하하하…….”

“……!”


순간, 동철이의 어두웠던 표정이 금방 밝아집니다. 오랫만에 입가에는 미소까지 감돌고 있습니다.


“그럼 언제쯤이면 그 아기의 병이 낫게 될까요?"


“글쎄, 모르긴 하겠다만, 내일 주사 한 대만 더 맞고 약만 먹이면 모레부터는 아마 차도가 보일 걸. 그거 아주 가벼운 병이거든.”


동철인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동네를 향해 비탈길을 힘차게 뛰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동철이의 갑작스런 태도를 보고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뛰어내려가고 있는 동철이의 뒷모습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러지?”


동철인 여전히 정신없이 동네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내려가고 있습니다.


활짝 갠 푸른 하늘은 마치 지금 동철이의 가슴 속처럼 더욱 시원스럽게만 느껴집니다. 아마 동철인 지금 영진일 만나러 급히 뛰어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대감나무에 알 귀신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