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따까운 초여름의 햇살이 연둣빛 색깔의 대지 위를 골고루 핥아주고 있습니다. 나뭇잎들은 온통 연둣빛 색깔에서 초록색 물감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줄기가 가녀린 나무들은 제 몸을 버티지 못하고 하나같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손바닥보다도 더 넓고 싱싱한 나뭇잎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그 무게를 감당해 낼 수가 없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뭇잎들마다 금방 참기름이라도 발라 놓은 듯 햇살을 받을 때마다 반짝반짝하게 윤이 납니다. 마침내 모든 산과 들, 그리고 온 세상이 온통 초록빛 색깔로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초록빛 신록의 싱그러운 냄새를 맡으며, 석용인 바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구구우 꾹꾹, 구구우 꾹꾹…….”
산너머 어디에선가는 이따금 꾹꾹새가 궁상맞게 울어대고 있습니다. 석용인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립니다.
꾹꾹새 소리는 지금 엄마가 외롭게 혼자 잠을 자고 있는 할미산 쪽에서 들려옵니다.
작년 이맘때 엄마가 그곳으로 갈 때에도 꾹꾹새는 오늘처럼 그렇게 구슬프게 울어댔습니다. 석용이가 꾹꾹새의 우는 소리를 싫어하게 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의 일이었습니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을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는 석용이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힙니다. 발걸음은 아까보다 더 빨라집니다. 얼른 집에 가서 산새들의 먹이를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집에서 기르고 있는 아기새가 병이 들어 그것이 더욱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할미산으로 떠난 뒤 지금까지 석용인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할미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추우나 더우나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버리기가 무섭게 할미산에 가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닙니다. 그저 엄마가 자꾸만 그립고 보고싶기 때문에 하루도 가지 않으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석용일 볼 때마나 아빠나 누나는 그만 좀 가라고 말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석용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석용이가 더욱 딱하게 여겨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걱정스럽기는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는 산에 오르는 석용일 볼 때마다 좋은 말로 말려도 보고 타일러 보기도 했지만 석용이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가고, 눈이 무릎까지 쌓일 정도로 많이 온 날이면 다리가 무릎까지 푹푹 빠져 가면서도 기어이 올라갔다 오고야 마는 석용이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습니다.
“쯧쯧쯧……. 저러다가 언젠가는 병이 나거나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기고 말겠는 걸.”
그런 석용이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걱정을 하곤 하였습니다.
작년 봄 이맘때의 일이었습니다.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오래전부터 자리에 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도 해보았습니다. 좋다는 약이란 약은 모두 써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식구들의 극진한 간호와 정성을 외면한 채 그만 눈을 감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석용인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전혀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틀만에 상여꾼들이 우루루 석용이네 집으로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석용이가 아무리 울고 매달리며 애원을 해 보았지만 상여꾼들은 결국 엄마를 꽃가마에 싣고야 말았습니다.
“안 돼요. 안 돼! 내일모레 쯤에는 우리 엄마가 다시 일어난단 말이에요! 엉엉엉…….”
석용이는 애타게 울어대면서 상여꾼들의 꽁무니에 매달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땅바닥에 누운 채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여꾼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엄마를 상여에 싣고는 딸랑 소리에 맞추어 마침내 출발을 하고 말았습니다.
석용인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상여꾼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 모구가 저승사자처럼 보였습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여꾼들을 붙잡을 생각을 하기는커녕, 아이고, 아이고 소리만 내면서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아빠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석용이는 상여꾼들을 붙잡다 못해 지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너무 울다 지쳐서 어떤 때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서서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 상여꾼들을 쫓아가더니 다시 매달리며 애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엄마 어서 내려 놓으셔요. 네? 우리 엄만 나하고, 오래오래 같이 산다고 했다니까요. 네? 흐흐흑…….”
석용이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상여꾼들의 눈에도 한결같이 주먹만큼이나 큰 이슬방울이 맺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엄마는 기어이 양지바른 할미산 기슭에 묻히고야 말았습니다.
갑자기 뜻밖에 엄마를 잃은 식용인 그때부터 몹시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없는 집안이 이렇게 쓸쓸하고 빈집처럼 허전해질 줄은 생각조차 못해 본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의 공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부가 재미가 없어서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리던 선생님의 목소리는 어느 틈에 신기하게도 햇솜처럼 포근하고 인자하기만 했던 엄마의 음성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을 초점 잃은 눈으로 멀거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금방 엄마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할미산 기슭에 있는 엄마의 무덤으로 변해 보이기도 합니다. 교실 안은 온통 안개가 짙게 낀듯 어둡고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윤석용! 윤석용!”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란 석용이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앞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멍청하게 앉아 있는 석용일 발견한 선생님이 부르는 목소리였습니다. 석용이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둥그렇게 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요즈음 석용이는 지금처럼 선생님의 꾸중을 자주 듣곤 합니다.
“딴생각 말고 똑바로 앉아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선생님도 석용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크게 꾸짖지는 않습니다. 겁에 질린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 보던 석용인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바른 자세로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 뿐, 생각은 어느 틈에 또 다시 엉뚱한 곳으로 출달음을 칩니다
그렇기는 집에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처럼 어리광을 부릴 데가 없어졌고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하러 들에 나가고 어쩌다 누나까지 밖으로 나간 날은 텅 빈 집 안이 그렇게 허전하고 쓸쓸할 수가 없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서운 유령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소름이 돋으면서 오싹하기도 합니다.
그 날도, 석용인 학교에서 오자마자 어느새 할미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미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가까이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꾹꾹새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엄마! 나 이제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그런데 만일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 해도 그땐 누가 기뻐하고 칭찬을 해주지? 엄만 정말 미워, 밉단 말이야. 날 이렇게 혼자 놔두고 아무 말없이 가버린 엄마가 입단 말야. 흐흐흑…….”
석용인 엄마의 무덤 앞에 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긴 넋두리가 시작됩니다. 석용이의 뺨에서는 어느 새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넋두리는 좀처럼 끝이 날 줄을 모릅니다. 이 세상에 오직 혼자만 남이 있는 듯한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몸부림치며 울기도 합니다. 새삼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엄마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석용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찌지직, 찌직…….”
어디서 갑자기 예쁜 할미새 한 쌍이 날아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할미새는 엄마의 무덤에서 조금 떨어진 저쪽 소나무 위에 앉아 정답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석용인 무덤에 앉은 채 할미새를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한동안 재미있게 지저귀던 할미새 중 한 마리가 마치 곤두박질이라도 하듯 소나무 밑 숲속으로 쏜살같이 내려 곤집니다. 석용인 자기도 모르게 슬그머니 일어나서 소나무 밑으로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숲속을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푸르륵~~~”
“앗! 깜짝이야!“
석용인 저도 모르게 소스라치며 놀랐습니다. 석용이가 서 있는 바로 옆에서 할미새가 날아갔기 때문입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 가며 할미새가 날아간 자리를 조심스럽게 살펴봅니다.
“히야! 새둥지가 여기 있었구나.”
오랜만에 석용이 눈이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석용인 숲을 헤치고 새둥지 속을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둥지 안에는 노란색 솜털이 예쁘게 돋아난 아기할미새 네 마리가 몸을 바짝 옹그린 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석용인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달래면서 조심스럽게 할미새의 둥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찌직~~~ 찌지직~~~”
어디서 날아왔는지 갑자기 어미새 두 마리가 석용이의 머리 위를 맴돌며 처량한 목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석용인 급히 돌멩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덤벼드는 어미새를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그러나 어미 새는 잠깐 돌멩이를 피해 달아났다가는 더욱 극성맞게 울어대며 석용이에게로 달려돌곤 합니다.
조금 겁에 질린 석용이는 재빨리 둥지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산을 급히 내려갑니다. 그러자 어미새는 끈질기게 더욱 사납고 극성스럽게 석용이를 따라오며 사납게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히야! 그놈들 참 대단한걸!”
석용인 다시 돌멩이를 집어 어미 새를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앗!”
석용인 저도 모르게 소리칠 뻔했습니다. 하마터면 돌멩이가 어미새의 몸을 맞출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도 공지깃을 슬쩍 맞은 어미새는 그제야 슬픈 비명을 지르며 멀리멀리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석용인 좀 안됐다는 표정으로 사라져 가는 어미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난 뒤에야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습니다.
“석용아, 그 새는 집에서 기르기는 힘든 새야. 그러니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로 그 자리에 갖다 놓으렴. 그리고 새끼를 잃은 어미새들이 얼마나 슬펴하겠니?”
아기 할미새를 본 아빠는 안 되겠다는 듯 당장 도로 제 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석용이는 아빠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어느 틈에 새장까지 만들더니 네 마리의 새를 새장 속에 조심스럽게 정성껏 넣었습니다. 아기 할미새들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몸을 서로 의지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날부터 석용인 새를 기르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아기 할미새는 방아깨비나 메뚜기 새끼 같은 곤충을 잘 받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실지렁이나 굼벵이 같은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고작 하루에 한두 마리 정도 먹을 뿐, 더 이상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가냘픈 목소리로 하루 종일 울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들이 차츰 힘을 잃어갈수록 석용이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동안 석용이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누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달래보았습니다.
“석용아, 아버지 말씀대로 새들이 모두 죽어버리기 전에 제자리에 갖다가 놓아주렴.”
그러나 석용이는 펄쩍 뛰면서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건 안돼. 난 이 새들을 정성껏 끝까지 잘 길러볼 거야.”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는 석용이의 정성도 아랑곳없이 아기할미새들의 건강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허약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오늘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일찍 잠이 깬 석용이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여느 때와 같이 새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앗! 이럴 수가……!”
순간 석용인 바짝 겁에 질린 눈으로 할미새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할미새가 거의 다 죽어가는 가냘픈 목소리를 내며 비틀비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두 눈을 꼭 감은 아기할미새는 곧 죽을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석용인 얼른 잡아다 두었던 벌레들을 새장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먹이는 본체도 않고 여전히 비틀거리고만 있습니다. 가슴이 찡해 오며 새삼 할미새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그런 모습을 보고 학교로 온 석용인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이럴 줄 미리 알았다면 진즉에 아빠가 시키는대로 놓아주지 않은 것이 크게 후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더구나 공부가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찌지직~~ 찌직~~~”
갑자기 석용이 귀에 지난번에 하마터면 돌에 맞을 뻔하다 겨우 살아서 날아간 어미새의 애처롭게 울어대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공연히 어미와 아기새를 생으로 떼어 놓고 죽게까지 했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몹시 아팠습니다. 어쩌면 지금 아기새들도 엄마를 잃은 자신보다 마음이 더 아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맥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석용이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외면한 채, 한 마리의 아기새는 오늘 아침에 고개를 뒤틀고 있는 모습이 꼭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석용이의 발걸음은 아까보다 더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한 마리의 아기새가 고개를 모로 꼬고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니, 오늘은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오니?“
그때 마침 앞마당을 쓸고 있던 누나가 급히 뛰어들어 오는 석용이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석용인 아무 대꾸도 없이 급히 새장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한 마린 벌써 죽었더라.“
"……!”
누나의 말에 순간 석용이의 눈이 커지며 표정이 납덩이처럼 굳어졌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느낌입니다. 누나의 말대로 아기새 한 마리가 새장 바닥에 보기 싫게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때 진즉 산에 놔 줄 걸 그랬지 뭐니. ”
누나가 안 됐다는 듯 석용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습니다.
“누나, 먹이는 줬어?"
석용인 누나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럼 주고말고. 그렇지만 저 새는 네가 학교로 간 뒤로 바로 죽어버린 걸 뭐.“
석용인 온몸이 힘이 쭉 빠집니다. 아기새들한테 마치 배신을 당한 듯 가슴속에서 서운하고 분한 마음이 치밀어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아기새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던 석용이의 뜻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석용인 갑자기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누나도 무슨 일인가 하고 아무 말없이 석용일 마주 봅니다.
“누나, 지금이라도 남은 할미새 두 마리를 산에 갖다 놓아 주면 어떨까?”
누나의 눈이 금방 커졌습니다. 너무나 의외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좋긴 하지만 네가 섭섭하지 않겠니?”
“아냐, 지금 생각하니까 공연히 내 생각만 하고 고집을 부렸나 봐.”
“그래, 정말 잘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남은 새들도 다 죽어버리겠더라.”
“누나, 알았어.”
석용인 순간 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는 새장을 꺼내들더니 밖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누나, 그럼 얼른 다녀올게.”
“응, 그래 늦지 않도록 얼른 다녀오도록 해.”
석용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누나의 표정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석용이도 오랫만에 활짝 갠 표정으로 대문을 빠져나와 부지런히 할미산을 향해 걸어갑니다. 한 시라도 빨리 둥지가 있던 곳에 아기새를 풀어 놓고 싶다는 생각에 숨이 차오르는 것도 모르고 급히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어미새를 그토록 그리워하며 슬퍼하던 아기새들이 꿈에도 그리던 어미새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찌지직~~ 찌직~~~”
석용이 손에 들려 있는 새장 속의 아기새들이 갑자기 가냘픈 소리로 지저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슬플 때 우는 그런 시끄러운 소리가 아닙니다. 기분 좋을 때 부르는 아르다운 노랫소리였습니다.
할미산 쪽에서는 다시 꾹꾹새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 소리를 듣게 되자 석용인 또 갑자기 엄마가 그리워집니다. 그리고는 곧 인자하기 그지없었던 엄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처럼 핏기가 없이 창백하기만 하던 엄마의 얼굴이 오늘은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석용이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꾹꾸욱, 꾹꾹, 꾹꾸욱 꾹꾹……”
꾹꾹새가 이번엔 할미산 쪽에서 하늘을 가로질러서 석용이가 걸어가고 있는 곳을 향해 날아오며 요란스럽게 울어댑니다. 석용인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꾹꾹새가 날아가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꾹꾹새가 저 멀리 먼 산 너머로 사라지자 이번엔 하늘을 쳐다 봅니다. 날씨도 지금 석용이의 후련한 가슴처럼 아까보다 더 화창하기만 합니다.
석용인 다시 산을 힘껏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고갯마루에 오르자 저 멀리 할미산에 서 긴 잠을 자고 있는 엄마의 무덤이 보입니다. 석용인 언덕 위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달립니다. 한 손에는 새장을 들고 할미산에 있는 엄마의 무덤을 향해 힘껏 달려갑니다.
“꾹꾸욱, 꾹꾹, 꾹꾸욱 꾹꾹……”
먼 산에서는 다시 꾹꾹새의 울음소리가 초록색깔의 신록의 냄새와 함께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