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어진 퇴계 선생(39)

[이 황(李滉, 1501~1570)]

by 겨울나무

이황 선생은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7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2세 때부터 작은아버지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논어를 배우던 중 리(理)라는 글자는 일의 옳은 이치를 뜻하는 글자라고 말하는 등 12세에 이미 글자의 깊은 뜻을 생각할 줄 알 정도로 똑똑하였다.


19세 때에는 송나라 시대의 학문을 대표하는 '성리대전'이란 책을 읽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진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20세 때에는 이미 ‘주역'을 읽고 그 뜻을 알아내기 위해 한때는 침식을 잃을 정도로 몰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523년에는 서울로 올라와 성균관에 입학하여 1528년 진사가 되고, 문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지냈다.

1545년 을사사화 때, 이기의 모함에 의해 관직에서 쫓겨났다가, 1547년 정4품인 응교로 재직하다가 그 이듬해 풍기 군수로 있던 중 병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다음 해 고향에 ’한서암‘이라는 집을 짓고 한동안 그곳에서 독서와 사색의 생활로 세월을 보냈다. 특히 ‘주자 전서'라는 책을 읽고 깊이 연구하여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간추려 ’주자서 절요‘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1558년 57세 때 주자가 지은 ’역학계몽‘을 깊이 연구한 끝에 '계몽전의’라는 책을 지어 펴냈으며 그는 계속해서 주자와 그 후계자들의 학문을 연구하게 되었으며 59세 때는 ‘송계지명 이학통록'이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는 주자학의 대가였을 뿐 아니라, 시도 잘 지어 '도산십이곡' 같은 유명한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서암‘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는 1560년, 59세가 되던 해에 다시 대사성, 부제학 등의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40년 동안 벼슬을 하면서 4명의 왕을 모셨다. 그러면서 그는 나쁜 벼슬아치들을 색출하는 일에 엄격하였으며 왕위에 오른 어린 선조에게 왕으로서의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 6조항으로 적은 ’무진 육조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해 그는 유학의 근본 원리와 실천 방법을 모아 중요한 내용만을 간추려 적은 ’성학십도‘를 지어 왕에게 올리고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 ’성학십도‘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을 기울여 지은 마지막 책이다.

그는 도산서원을 지어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병중에도 글을 배우러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성심껏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주자학의 대가가 된 뒤에도 자기 학설이 잘못된 점은 자주 수정해 가면서 고쳐 나갔다.

그의 제자들 중에서는 유성룡, 기대승 같은 뛰어난 유학자들이 나왔으며, 특히 제자인 기대승과는 8년 동안이나 학문을 토론하기 위해 서신을 교환했다고 한다.


그가 지은 ‘주자서절요'를 비롯하여 많은 책들이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어 그곳 일본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따라서 주자학을 만든 중국에서조차 이황의 주자학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성학십도', ‘주자서절요’, ‘계몽전의’, ‘송계지명이학통론' '도산십이곡' 등이 있다. 그는 문종과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단양의 단암서원 등에서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의 정신은 학문과 저술에서뿐 아니라, 그의 높은 인격 속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이황 선생 집의 배나무


이황 선생의 집 울타리에는 해마다 가을이 오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만큼 큼지막한 배가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리곤 하였다.


그 이웃에는 마침 어린 소년 하나가 살고 있었다. 소년은 아침저녁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배를 쳐다보며 어떻게 하면 따먹을 수 있을까 하고 궁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이황 선생의 집이 조용한 틈을 타서 돌팔매질을 하게 되었다. 마침 배나뭇가지가 길 밖으로 뻗쳐있어서 가지에 매달린 배를 돌을 던져서 쉽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소년이 두서너 차례 돌 팔매질을 하자 먹음직스러운 배가 여러 개 떨어졌다. 그러나 배는 안타깝게도 모두 담장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디 다시 한번 더 해보자!”


소년은 계속 쉬지 않고 돌을 던졌지만, 배는 여전히 담장 안으로만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안에서 하인에게 지시하는 퇴계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엄이 있는 퇴계 선생의 목소리에 소년은 그만 간이 콩알만해지고 말았다.


“이크! 이거 들키고 말았구나!”


그러자 퇴계 선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거기 아무도 없느냐!


퇴계 선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지금 소년이 서 있는 곳은 퇴계 선생의 사랑채 마루에서 훤히 내려다보였기 때문에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도망을 가지고 못하고 담장 밑에 몸을 착 붙인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퇴계 선생의 부름을 받은 머슴이 사랑채 마루 쪽으로 달려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소년은 얼굴빛이 하얗게 되고 말았다. 잡히기만 하면 크게 야단을 맞을 것이고, 결국 아버지 어머니에게 알려져 매를 맞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머슴이 달려오자 퇴계 선생이 다시 일렀다.


”저기 마당에 배가 많이 떨어졌더구나. 저 배를 바구니에 담아 이웃집 아이에게 주도록 해라, 그 아이가 배가 몹시 먹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소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의 말을 듣는 순간 소년의 콧등이 찡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 이건 분명히 내가 잘못한 짓이야. 이제부터 절대로 이런 나쁜 짓은 하지 말아야지!‘


소년은 굳게 결심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의 너그러움에 크게 감복을 한 것이다.


이처럼 너그러움은 남을 감복시키게 된다. 그때 만일 퇴계 선생이 그 소년을 잡아 호되게 야단치거나, 소년의 부모에게 알려서 꾸중을 듣게 했다면, 소년은 도리어 퇴계 선생을 두고두고 원망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인해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그러움이란 이처럼 때로는 상대방의 마음도 풀어주는 큰 힘이 되는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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