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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l 09. 2020

진정한 친구

[진정한 친구란 상대방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많은 벗을 가진 사람은 결국 한 사람의 친구도 얻지 못한다'     


     <아리스토 텔레스>        


       



옛날에 집안 형편이 넉넉한 젊은이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워낙 성품이 착하고 인정이 많아서 주위에는 늘 많은 친구들이 그를 따르며 모여들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동안 아들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그에게 묻게 되었다.  

   

“가만히 보니 너는 많은 친구들과 사귀고 있는 모양이더구나. 그런데 그들이 모두 진실한 친구인 것이더냐? 어려울 때 진정으로 서로 도와줄 수 있을 정돌 친한 사이란 말이냐 이 말이다.”     


그러자 아들은 서슴지 않고 얼른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고말고요. 제 친구들은 모두 진실하고 의리가 있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거 아주 다행이로구나. 진실한 친구가 많다는 것은 값진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도 훌륭한 일이란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란 겉으로만 보고는 모르는 법이니 어디 한번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좋습니다. 아버님. 저는 제 친구들의 믿음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습니다.”     


아들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집을 나서게 되었다. 두 사람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아들이 가장 친하게 지낸다고 믿고 있는 친구네 집이었다.     


아버지는 대문 밖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로 하고, 아들 혼자 그 집 안으로 급히 뛰어들어가서 다급하게 친구를 불러냈다.  

    

“여보게, 큰일 났네, 나 좀 도와주게나. 내가 그만 빚을 많이 지게 되어 지금 빚쟁이들한테 쫓기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네. 그래서 지금 빚쟁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나를 쫓고 있으니 제발 당분간만이라도 자네네 집에 나 좀 숨겨 주게."      


그러나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표정은 아주 냉담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마디로 거절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전혀 그런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친구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가 없었다.      

“이 사람아, 빚을 졌으면 자네가 해결해야지. 만일 빚쟁이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와서 자네를 내놓으라고 야단을 떨면 그땐 내 꼴이 어떻게 되겠느냔 말이야?


젊은이는 별 도리없이 쫓겨나듯 친구네 집에서 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궁금한 표정으로 묻게 되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니?”     


젊은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다음 친구네 집에 가면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번에는 두 번째 친구네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집에 가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쫓겨나오게 된 것은 세 번째, 네 번째 친구네 집에 서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이란 알 수 없다는 옛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젊은이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토록 친구들과 맺어진 우정을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젊은이가 좀 부유하게 살고 있었기에 덕을 좀 볼까 하고 거짓으로 진실한 친구처럼 행세를 했던 것이다.     

 

그러자 아들을 따라다니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아버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 좀 보렴. 자주 만나서 밥이나 서로 나누어 먹고 사이좋게 지낸다고 해서 모두가 다 진실한 친구라고 볼 수는 없는 거란다. 그럼 이번에는 내 친구한테 한번 가보자꾸나. 나는 너처럼 많은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지만, 진정으로 서로 믿는 친구 한 사람이 있단다.”     


아버지가 이번에는 아들을 데리고 그의 친구네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친구를 불러낸 아버지가 급히 사정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여보게, 내가 그만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네, 그러니 나 좀 숨겨 줄 수 없겠나? 지금 관가에서 나를 잡으려고 뒤쫓아오고 있는데 도망칠 곳이 없으니 제발 나 좀 숨겨 주게.”     


그러자 사정 얘기를 들은 아버지의 친구가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자네처럼 착한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니 믿을 수 없네, 자네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게 사실이라면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싶네. 자,어서 집으로 들어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세. 아무 걱정 말게. 그 후에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 보겠네. 나는 자네를 끝까지 믿고 있다네.”     


아버지의 친구는 곧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하였다.    

  

이 이야기는 단 한 사람의 친구를 사귀더라도 진정으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들은 흔히 자신보다 좀 가진 게 없다고 해서 우습게 보거나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그가 오히려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친구가 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친구를 잘 사귀고 못 사귀는 것은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친구라 할지라도, 때로는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그를 피하지 말고 오히려 한 걸음 다가가서 좋은 말로 충고를 해서 바로잡아 주는 사람이 진실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모른 체 외면하거나 피해버린다면 그건 올바른 친구의 도리가 아닌 것이다. 다만 몇 번 충고를 해주어도 듣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서 공자께서는 세 번 충고해도 듣지 않거든 그만두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친구로, 사귀지 말라고 하였다.     


친구란 의리로 맺어진 사이이기 때문에 무한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 번의 충고로 끝나야 한다. 이것이 한 어머니 뱃곡에서 나온 형제와 다른 점이라 하겠다. 형제는 피로 맺어졌기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네 번, 다섯 번 충고해서 끝까지 바로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형제와는 다르다. 친구의 올바른 충고를 세 번씩이나 받아 주지 않는다면 그 뒤로는 계속 친구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라 하겠다. 진정한 친구 한 명을 사귄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한 사람 얻기가 쉬운 일은 아니라 하겠다.          

 

      - 옛날 이야기 중에서-         




 

누구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생기게 된다. 학창 시절에 반 친구나 선후배, 그리고 이웃에서, 어떤 동아리 모임에서, 군대 생활에서, 직장에서 등,     


그렇게 해서 어렵게 또는 우연히 사귀게 된 친구들이 끝까지 서로 진한 우정을 나누고 유지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것은 때로는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희망 사항에 불과하며 물거품으로 끝날 때가 많다. 언젠가는 갑자기 그가 싫어져서 나 스스로 그를 멀리하게 되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상대방이 갑자기 소식을 뚝 끊고 멀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누구나 허망감, 허탈감, 그리고 때로는 진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요즘 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끼리는 어떤 모임에서 만났다가 헤어질 때 ‘언제 한번 밥이나 같이 먹지’란 제안을 개인적으로 습관처럼 자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주중에 한 번 꼭 만나보자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만 따로 그런 인사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새로운 정감이 싹트게 되곤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나가는 말처럼 무책임하게 약속한 말을 모두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란 걸 알았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다음 주에 꼭 만나볼 준비를 하고 기다려 보지만 그 뒤론 전혀 아무 소식도 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어쩌다 그다음에 그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더욱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었더냐 하는 식으로 아무 말이 없다. 그리고는 또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는 약속을 되풀이하곤 하는 것이다. 정말 실망이다. 그럼 어디까지 그 사람을 말을 믿어줘야 한단 말인가. 난 그런 사람들은 딱 질색이다. 적어도 한번 입에서 내뱉은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희망한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내가 그와의 관계를 먼저 멀리하거나 아예 끊어버리곤 하며 재내고 있다.      


나 역시 수십 년간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보았지만, 지금 내 주변에는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라고는 별로 없다. 그중에는 퇴근 시간마다 매일 술을 같이 마시며 술이 취하면 술집에서 그대로 잠을 자고 그 이튿날 술집에서 일어나서 바로 출근을 하거나, 어떤 때는 집이 먼 친구가 번번이 우리 집에 와서 잠을 잔 친구들도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비록 손가락은 걸지 않았지만, 우리 죽을 때까지 서로 우정을 나누자며 굳게 약속했던 친구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슬그머니 소식이 두절되면서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또한, 내게는 몹시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평생 아동문학만을 고집하며 많은 작품을 낸 아동문학가들 중에도 제법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요 ‘고향의 봄’과 ‘겨울 나무’ 등의 노랫말을 쓴 이원수 선생, 그리고 역시 동요 ‘초록 바다’를 쓴 박경종 선생, ‘나뭇잎 배’를 쓴 박홍근 선생, 그리고 한국 판타지 동화의 효시가 된 ‘날아간 두루미’를 쓴 장욱순 선생 등, 나는 그분들의 집에 자주 방문을 하기도 하고, 특히 그 중에서도 박홍근 선생은 퇴근 시간에 맞춰 내가 근무하는 직장 부근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야말로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술을 맘껏 마시고 다시 돌아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몹시 즐겁기도 하고 마냥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두가 아무 말 없이 한 명씩 두 명씩 세상을 등지고 말았기에 지금은 어쩌는 도리없이 그때의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만 하고 있을 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진정한 친구 한 사람은 남아있다 -          


진정한 친구 한 사람을 사귀기가 어려운 세상에 난 그런 친구를 한 사람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아직은 복이 많은 사람이라 여기며 가끔 행복감에 젖기도 한다.         


그는 대학에서 처음 만난 친구이다. 학창 시절에 어쩌다 등교할 때나 하교할 때에도 그는 다른 친구들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려 했고 오직 나하고만 같이 다녔다. 글서 오죽하면 친구들이 그런 우리들을 보고 동성연애를 한다고 오해하기도 하였다.      


그는 나보다는 좀 부유한 가정이었기에 용돈도 항상 어느 정도 두둑하게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학교에 오갈 때 가끔 막걸리 생각이 날 때마다 그가 으레 막걸리를 사주어서 마셨고, 보고 싶은 영화가 나오면 영화관 입장료를 지불하는 것도 번번이 그였다. 돈을 아까워하지도 않았다. 나에게 쓰는 돈이라면 아낌없이 지불하곤 하였다. 그래서 난 좀 염치가 없는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 친구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의 고향은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이었는데 호랑이가 나올 정도로 높은 산들이 첩첩이 에워싼 두메 산골이었다.    

   

졸업 후에도 그 먼 전라도에서 그 당시 시골에 살고 있던 우리 집에 자주 찾아오곤 하였다. 그리고 만일 내가 외출을 하여 집에 없을 경우에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1주일이고, 열흘이고 우리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함께 지내곤 하였다.      


그는 아주 힘도 몹시 좋았다. 그 힘든 지게로 산고개를 넘다들며 하루 종일 농작물을 나르는 일이나 그 밖의 콩밭을 매는 일 등을 조금도 힘든 줄을 모르고 열심히 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나보다는 그를 더 신임하게 되었고 찾아올 때마다 마치 멀리 나갔던 아들이 온 것처럼 몹시 반가이 맞이하곤 하였다.       


내가 영장을 받고 군대에 가기 전에도 친구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입영 소식을 듣게 된 그는 군대에 가기 열흘 전쯤에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는 우리 집에서 같이 기거하면서 낮에는 여기저기 읍내로 데리고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고 사주고, 극장에 가서 영화도 같이 보곤 하였다. 군대에 가면 한동안 못 보게 된다며 미리 와서 그런 호의와 성의를 베풀어 준 것이다.      


물론 그때의 경비도 모두 그가 지불했다. 내가 한사코 사양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집도 여간 센 게 아니었다. 벼룩도 낯이 있다고 아무리 친구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으니 어쩌랴. 정말 지금 생각해도 염치가 없고 뻔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입대해서 군에 복무하고 있을 때에도 그의 우정은 더욱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때 군대 생활은 왜 그토록 배가 고팠던지, 눈에 늘 삼삼하게 어리는 것은 오직 밥 밖에는 없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입이 짧았던 나였지만, 그리고 여간해서는 울지 않던 내가 배고픔을 참다 못해 창피함도 잊은 채 울어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집안 형편이 뻔한데 그런 사정을 알리기에도 염치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내게 송금이 되어 있었다. 내가 배가 고파한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가 마침내 돈을 보내온 것이다. 어찌나 고맙고 반가웠던지? 지금도 그 고마움을 가끔 잊지 못하고 되새겨 보곤 한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뒤, 그는 군대에 장교로 복무하고 전역을 한 뒤 군산으로 보금자리를 옯겨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수필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우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내가 한때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게 되자 살림에 보태쓰라고 금일봉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그리고 지금도 틈이 날 때마다 가끔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을 묵고 가곤 한다.      


또한, 오래전에 내가 몸살이 심하게 나서 앓고 있을 때였다. 난 어떻게 된 일인지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몸의 부속을 잘못 끼워 넣은 불량품이어서 그런지 수시로 두통이 일어나기도 하고 몸살도 아주 자주 나곤 하여 뇌신, 명랑, 사리돈, 바랄긴 등 진통제를 늘 달고 지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조금도 변함이 없다. 


멀쩡하게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몸이 아파 쩔쩔매는 꼴을 보고 가끔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꾀병을 앓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누가 아무 이유없이 꾀병을 앓으며 약을 먹겠는가. 그때마다 그렇게 비웃는 사람들이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그날도 나는 식구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고 혼자 집에서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파트 1층 현관에서 누군가가 벨을 누르고 있었다. 귀찮고 짜증이 났지만 겨우 몸을 일으켜 인터폰을 보니 이런 때 하필이면 그 전라도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온 것이 아닌가.  

      

난 사정사정해서 오늘은 내가 너무 고통스러우니 미안하지만 도로 내려가는 게 나를 돕는 거라고 하며 사정을 했다. 나중에 귀찮고 고통스러웠다고 군소리를 하며 그를 원망하는 것보다는 미리 딱 잘라 내려가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 말에 친구는 어이가 없었던지 아무리 아파도 큰맘 먹고 멀리에서 찾아왔는데 얼굴이나 한번 보고 바로 내려가겠다며 사정을 하고 하였다.      


그러나 난 지금 생각해도 그때 너무 냉정했다. 얼굴이나 한번 보고 그냥 내려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냐며 얼굴 보고 나면 다시 이런저런 걸 귀찮게 묻고 할 텐데 난 지금 그럴 힘도 없고 모든 게 귀찮으니 그냥 내려가라고 하였다. 친구는 투덜거리며 뭐라고 혼자 지껄이더니 그럼 내려갈 테니 몸이나 어서 완쾌하라고 위로의 말과 그럼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바로 내려가게 되었다. 나도 너무했다는 생각에 너무 서운하면서도 그가 고맙기도 하였다.      


그런데 얼마 뒤, 또 다시 두 번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또 몸살과 두통으로 몹시 앓고 있었다. 시쳇말로 처녀가 시집갈 날에 등창이 난다고 했던가. 지난번에 쫓겨 내려갔던 그 친구가 다시 찾아오게 된 것이다. 난 하필이면 왜 내가 아플 때만 찾아왔느냐며 이번에도 냉정하게 도로 내려가라고 사정사정하였다. 친구는 두 번씩이나 내쫓는 놈이 어디 있느냐고 화를 내면서 잠깐 얼굴만이라도 보고 바로 내려가겠다고 하였다. 그래도 나는 한사코 제발 나를 한번만 좀 살려주는 셈 치고, 그리고 진정으로 날 위해서라면 바로 내려가 달라고 다시 애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친구는 또다시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네가 아무리 떠밀어도 무슨 수르 써서라도 한번 들어가 보고 말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다시 군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몇 달 뒤 그가 다시 올라왔다. 이번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맞이하고 술자리를 마련한 뒤 술 한 잔을 나누며 그때 두 번이나 돌려보낸 미안함을 진심으로 사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더 고마웠다. 아마 저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도로 돌려보냈을 것이라며 오히려 몸이 불편한 것도 모르고 찾아온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며 허허 너털웃음으로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만일 자신을 돌려보내지 않고 싫은 걸 억지로 맞이했다가 나중에 이러니저러니 하고 뒤에서 흉을 보거나 불평을 잔뜩 늘어놓는 것보다는 바로 돌려보내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고 현명한 결정이었다며 우리 사이가 너무나 가까우니까 그런 결정을 했지 다른 사람한테도 그럴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고마워하기도 하였다.  

    

나는 지금도 가끔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만일 어중간하게 별로 가깝지도 않은 친구가 그때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 그 친구처럼 똑같이 되돌려 보냈다면 그 후에 다시 찾아올 친구가 그 누가 있겠는가. 아마 열 명이면 열 모두 오해를 하고 갖은 욕을 다 퍼부으며 다시는 연락도 안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진정한 친구라면 그처럼 먼 곳에서 온 것을 그때의 형편이나 사정에 의해 다시 돌려보냈다 하더라고 오해를 하지 않고 다시 찾아올 정도로 가까운 우정, 그게 바로 진정한 친구 사이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주 작은 오해로 인해 바로 정을 끊는다면 그게 어디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에는 코로나로 인해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은 밖으로 함부로 나다니기가 매우 두렵고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지금도 그와는  비록 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문학에 관한 이야기며 적어도 3,4일만에 한번씩 자주 안부를 주고받곤 한다.  그 안에 안부가 없으면 왜 안부를 안했느냐며 바로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아마 그놈의 웬수같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벌써 몇 차례는 나를 찾아왔을 거라며 당분간은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 해도 지금은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 코로나가 끝나게 될는지? 그러기에 코로나가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우리 두 사람은 더욱 학수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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