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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l 22. 2020

우째 이런 황당한 일이

[나만 이렇게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일까?]

어느 날 나는 원고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모레까지는 꼭 보내야 할 원고여서 마음이 급했다. 마음이 급한 탓에 진도는 오히려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급한 중요한 시기에 설상가상으로 장애물(?)이 한 가지 더 생기고 말았다. 왼쪽 눈이 조금씩 거북하기도 하고 뜨끔거리게 된 것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눈이 거북한 대로 원고를 다 마친 뒤에 병원에 가볼까 하고 참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게 어려웠다.      


눈이 점점 더 거북하고 뜨끔거리는 바람에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부터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안과에 가서 얼른 치료를 받은 후에 편안히 일을 하는 게 더 빠르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우선 급한 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안과 병원으로 달려가서 접수를 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자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시력검사, 안압 등 이것저것 몇 가지 검사를 하였다. 그 다음에는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 눈이 거북한 증상을 자세히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뜻밖의 진단을 받게 되었다.       


“왼쪽 눈에 백내장이 걸린 겁니다.”     


난 뜻밖에 백내장이란 말에 다소 놀란 얼굴로 다시 묻게 되었다.  눈만 잠깐 편안하게 치료를 받고 다시 일을 열심히 하려던 생각이었는데 뜻밖에 백내장이란 말에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네에? 백내장이라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백내장은 초기에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럼 오늘 당장 수술 예약을 잡아드릴까요?”      


히야, 이런 변이 또 어디 있을까. 빨리 수술을 하지 않으면 점점 더 눈이 나빠진단다. 난 혹을 떼려 왔다가 오히려 혹을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의사 선생님에게 나의 급한 사정을 설명하고 그래서 지금 당장 수술하기는 어려우니 하던 일을 끝낸 다음에 하겠다는 말을 하고 일단 병원에서 나오고 말았다.      


마음이 답답했다. 이대로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일을 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서 너무 답답한 마음에 그리고 내친김에 다른 안과를 다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금방 갔던 안과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안과로 가서 다시 접수하고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를 끝낸 의사 선생님이 다시 설명을 하였다.    

  

“백내장 때문에 눈이 따끔거리고 거북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두 군데 안과에서 백내장이란 판결이 나왔으니 백내장에 걸린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현재 백내장 초기이니 그냥 두었다가 말기가 되면 그때 수술을 하라고 하였다. 말기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일단 안심이 되었다. 당분간 일할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말기는 언제쯤 올 것 같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건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르니까 아마 1년쯤 뒤에 말기가 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난 첫째 병원보다는 훨씬 더 여유가 생겼다는 마음으로 병원문을 나섰다. 그리고 눈은 여전히 거북했지만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물론 두 병원을 거치긴 했지만, 눈에 안약을 좀 넣어주었을 뿐, 전혀 치료를 받은 것은 없었다.      


바삐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난 다시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고 궁금한 데가 있었다. 어떻게 같은 안과 병원인데 한 곳에서는 초기에,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말기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찝찝한 일이었다. 그래서 기왕 내친김에 또 다른 병원에 한 번 더 가보기로 마음먹고 다른 병원을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또 다른 안과 병원은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일단 또 다시 접수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이리저리 살피고 나더니 내게 물었다.      


“혹시 근래에 눈을 너무 혹사시키신 거 아닌지요?”    

 

나는 대뜸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눈을 너무 무리하게 많이 사용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웬만하면 당분간 눈을 좀 편히 쉬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안약을 처방해 줄 테니 열심히 넣어보라고 하였다.      


난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궁금한 것을 다시 묻게 되었다. 백내장에 걸린 것은 아니냐고…….    

 

나의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대답했다. 백내장은 무슨 백내장이냐며 그런 걱정말고 안약이나 열심히 잘 넣어주고 눈을 좀 쉬게 하면 금방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병원을 나온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이런 황당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하마터면 백내장 수술을 할 뻔했잖아.     


그 뒤로 난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처럼 거북하고 뜨끔거리던 눈도 모두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시력은 0.9, 1.0으로 멀쩡하기만 하다.    

  

그러나 난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궁금한 마음이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어찌 같은 안과 선생님들이며 같은 의대를 나왔을 텐데 그렇게 각기 다른 오진을 할 수가 있었단 말인가! 난 그때가지만 해도 굳게 믿고 있었던 의술에 대한 신뢰까지 잃고 말았다. 


우째 이런 황당한 일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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