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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ug 04. 2020

이리와 개 이야기

[세르비아의 이솝 우화]


 슬기로운 사람은 그 어떤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넘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사람은 유혹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착하고 어질게 사는 사람은 항상 남에게 사랑을 베풀줄 알기 때문에 누가 해치려고 들지 않아 걱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용기 있고 정정당당하게 사는 사람은 두려움이나 겁이 없습니다.    

 

                                        -논어-        


            

남에게 한번 크게 속아서 큰 손해를 보게 된 사람들은 으레 ‘한번은 속았지만 두 번 또 속겠느냐’며 앞으로 다시는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단단하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남을 속이는 사람은 그렇게 단단하고 굳은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쉽게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교묘한 재주를 총동원하여 그를 다시 쉽게 넘어가게 하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번 속아 넘어갔던 사람들이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것보다 몇 배나 더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다시 접근해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속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남을 교묘한 방법으로 속이기 위해 밤낮으로 오직 속이는 방법만을 연구하고 있는 그들을 어찌 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마치 그럴듯한 말에 번번이 속아 넘어가는 보이스피싱 수법에 당하고야 마는 어리석음처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또 속게 마련이며 뒤늦게야 땅을 치고 후회를 해도 그것은 이미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며 소 잃고 난 뒤에야 외양간을 다시 고쳐보려 하는 어리석음을 번번이 반복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남을 잘 속이는 사람들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고 본다.     


첫째, 나 자신의 걱정거리나 어려움, 그리고 아픔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며 어떤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남달리 다정하고 친절하게 서서이 접근해 오면서 갖은 친절을 다 베풀곤 한다. 생각해 보라. 자신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며 갖은 친절을 다 베풀고 있는데 그를 물리칠 장사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항상 자신의 재산이 많음을 은근히 과시하곤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값진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자기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가 점점 번창하고 있음을 가끔 각인시켜 주기도 하면서 먹잇감을 향해 접근하곤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결정적인 시기가 왔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을 개시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 이유없이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경계해 보아야 할 일이라 하겠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병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들 역시 어리석고 착한 사람들이 그들의 먹잇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무위도식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그런 못된 기생충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탄을 하며 울고 있을까. 그리고 평생 피땀 흘려가며 한 푼 두 푼 알뜰히 모아놓은 재산을 하루 아침에 그놈들 아가리에 한꺼번에 털어놓고 땅을 치며 통탄을 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프다.


참고로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인적으로는 본인도 과거에 이미 세 차례나 그런 몹쓸 놈들한테 어리석게 크게 당했던 경험이 있기에 가슴 한쪽이 늘 미어지곤 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로 인해 큰 고통을 안은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그럴듯한 남의 말만 그대로 믿다가 결국 큰 낭패를 보게 된 이와 비슷한 경우의 유럽의 재미있는 우화 한 토막을 소개해 볼까 한다.    


                  




개 한 마리와 이리 한 마리가 우연히 산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둘은 곧 오래전부터 친했던 것처럼 금방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평생 떨어지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굳은 약속까지 하고 항상 붙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개와 이리는 사이좋게 목장 근처를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양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이리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자 이리는 몹시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이리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나서 개에게 물었습니다.     


“이봐, 저 먹음직스러운 양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먹고 싶으면 네 마음대로 하렴.”     


그러자 이리가 양에게로 다가가서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쳤습니다.     


“당장 네 숨통을 끊어놓고야 말겠다. 꼼짝 말고 당장 누워있으란 말이야, 어서!”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양이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습니다.     


“저를 잡아먹더라도 잠깐만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저는 눕는 건 딱 질색입니다. 그 대신 그 자리에 서서 입을 크게 벌려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의 입속으로 뛰어들어가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군!”  

  

이리는 양의 말대로 입을 크게 벌리고 서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양은 자신의 머리를 낮추더니 젖먹은 힘을 다해 이리를 향해 돌진해 나갔습니다. 양은 두 뿔로 이리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받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양의 뿔로 가슴에 심한 충격을 받은 이리는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면서 개와 함께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둘은 다시 오랫동안 말없이 걷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이번에는 길가에 나귀 한 마리가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봐. 개야, 저 나귀를 어떻게 할까?”  

   

이번에도 탐이 난 이리가 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니? 네 마음대로 해보렴.”     


그러자 이리는 이번에도 나귀에게로 다가가더니 큰 소리로 호통치듯 소리쳤습니다.   

  

“야! 내가 지금 배가 몹시 고프거든. 그래서 너를 꼭 잡아먹어야겠어. 어서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으람 말이야!”     


그 바람에 깜짝 놀란 나귀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네, 이리님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나를 잡아먹기 전에 반드시 한 가지 조심하셔아 할 게 있습니다.“

”조심할 일이라니? 그게 뭔데? 어서 말해 봐.“


”지금 제 발바닥에는 쇠로 만든 발굽이 박혀 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그대로 먹었다가는 큰 변을 당하실 게 분명합니다.“     

"아하, 그렇겠구나! 그렇다면 그 발굽부터 먼저 빼놓은 다음에 잡아먹어야 되겠구나. 자, 그럼 어서 뒷발부터 번쩍 들어보렴.”     


나귀는 곧 이리가 시키는 대로 뒷발 하나를 번쩍 들었습니다. 이리는 나귀의 발굽을 뺄 생각으로 번쩍 들고 있는 나귀의 뒷발을 향해 성큼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나귀가 갑자기 있는 힘을 다해 뒷다리고 이리를 걷어차고 말았습니다.   

   

“으아악~~~!”     


이리는 그만 너무나 고통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도망을 치게 되었습니다. 개도 이리의 뒤를 따라 덩달아 같이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둘이는 다시 한동안 정처없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 먹이가 될만한 짐승은 좀처럼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리가 배고픔을 참다못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개야, 난 잊 배가 고파서 더 이상 못 걷겠어. 너도 배고프지? 어디 먹을 것이 없을까? 어디 요기라도 할 만한 곳을 알고 있으면 말해 봐.”     



이리의 물음에 개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아는 곳이 있긴 해, 시내로 들어가면 음식점이란 곳이 많단 말이야. 그중에서도 우리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파는 집이 있지. 그리고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에 소금구이 집이 있어, 아마 거기 가면 고기가 많이 있을 거야.”    

 

“뭐어? 쇠고기가 있다구?”     


쇠고기란 반가운 말에 이리의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아암, 있고말고. 아마 너는 그렇게 맛있는 고기는 여태까지 먹어보지 못했을 거야. 소금을 칠해 구워 먹는 것인데 맛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


“그래? 나는 고기라면 무조건 다 좋아하거든. 그러니 어서 가보자구, 어서!‘    


이리는 입맛이 당긴다는 듯 침을 한번 꼴깍 삼키면서 재촉을 했습니다. 마참내 둘은 걸음을 재촉해서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소금구이 집을 발견하자 개가 앞장서서 그 집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어갔습니다.


마침 영업이 끝났는지 집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선 부엌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먹다 남은 고기가 즐비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이리는 고기를 보자마자 미친 듯이 마구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정신없이 고기를 먹다가 개에게 물었습니다.     


“야, 물은 어디 있니? 짠 고기를 너무 많이 먹었더니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거든.”     


소금구이를 잔뜩 먹은 이리는 목이 타고 말라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글쎄, 찾아보면 어디 있을 거야.”     


동네에 살면서 개는 전부터 가끔 부엌에 들어와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따금 소금구이도 맛도 보았기 때문에 부엌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가 이번에는 부엌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찾는 수도꼭지는 보이지 않고, 술통이 한구석에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이리에게 말했습니다.    

  

“야, 여기 물이 있긴 있는데 독한 물이거든. 맛이 아주 쓰면서도 혀를 톡 쏘는 물이란 말이야.”     


이리는 너무 목이 말랐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큼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그래, 물이면 됐어. 아무것이나 괜찮다구.”     


이리는 이렇게 대답하기가 무섭게 술통째 번쩍 들어 입에 대더니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술을 배부를 정도로 실컷 마신 이리는 갑자기 머리가 얼얼하면서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마구 마셔댔기 때문에 술에 취한 것이었습니다.    

 

"이봐. 기분이 몹시 좋아지는 걸, 이런 기분은 난생처음이란 말이야. 으하하하…….”     


잔뜩 술에 취한 이리는 두 다리로 껑충껑충 뛰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를 부른답시고 고함도 꽥꽥 질러 대고 있었습니다.     


"야, 그만해! 사람들이 네 목소리를 듣고 우리들이 이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장 몽둥이를 들고 와서 우리들을 때려죽일 거야. 그러니까 제발 조용히 하란 말이야.“     


개가 이렇게 겁먹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렸지만 이리는 그 소리가 귓등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넌 잠자코 있어. 그리고 내 노랫소리를 더 들어보란 말이야.”     


이리는 좀처럼 개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리는 점점 더 목청이 터져나갈 듯한 소리를 꽥꽥 질러 대고 더욱 신바람이 나서 껑충껑충 뛰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소란스러운 소리에 그 집 저쪽으로 떨어진 먼 곳에서 잠을 자고 있던 소금구이 집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습니다. 이웃집 사람들도 놀라 한밤중에 이리가 들어와서 소란을 피운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리와 개를 향해 마구 몽둥이를 휘둘러 댔습니다.     


그런 중에도 이리와 개는 틈을 보아 용케 도망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는 힘껏 달아날 수 있었지만 이리는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뒤쫓아온 사람들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겨우 빠져나와 가까운 숲을 향해 뛰기 사쟉했습니다.  

    

겨우 숲속까지 도망을 치긴 했지만, 이리는 너무나 몽둥이에 맞는 바람에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신까지 아득했습니다. 그는 커다란 상수리나무 밑에 철버덕 눕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난 너무 내 욕심만 부리는 욕심쟁이었어. 내가 어리석었어!"


첫째, 이리들은 그 누구도 개와 친구가 되는 법이 없었거든. 그만큼 이리와 개는 다르단 말이야. 그동안 내가 개를 따라다닌 것이 너무나 어리석었던 거야.      


둘째, 내가 바보가 아니었다면 양이 입속으로 거저 뛰어들기를 기다리지는 않을 거야. 입을 벌리고 양이 입속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린 내가 바보였지 뭐야.     


셋째, 나귀 발바닥에 박힌 발굽을 빼고 잡아먹었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말이었어. 나귀란 놈은 뒷발길 질이 장기인데 그놈의 다리 밑으로 바싹 알굴을 갖다 댄 내가 바보였다구.      


넷째, 사람이 살고 있는 부엌으로 몰래 들어가서 소금구이를 훔쳐먹은 것도 잘못이고, 술을 마신 것도 바보짓이었어. 내가 왜 바보처럼 그런 짓을 했을까? 개는 사람들하고 친하니까 괜찮겠지만 이리는 다르단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바보였어. 솔직히 말해서 몽둥이찜질을 당해도 싸지. 싸단 말이야.    

 

이리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후회를 하고 있을때였습니다. 갑자기 근방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검은 그림자가 어느새 다가왔습니다. 곧이어 날쌔게 몽둥이가 이리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사냥꾼에게 걸렸던 것입니다.     


“어이쿠!”     


뜻밖의 봉변을 당한 이리는 그 자리에 맞아 죽을뻔했다가 간신히 도망을 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나서 산속 깊은 곳에 이르자 사방을 둘러보고 자리를 찾아 앉으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번에 내가 당한 모든 일들은 슬기롭지도, 착하지도, 용맹스럽지도 못한 나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 주었어.”     

이리는 한바탕 어려움을 겪은 뒤늦게야 겨우 제 잘못을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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