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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ug 08. 2020

52전(顚)53기(起)

[은근과 끈기의 도전 정신]

은근과 끈기!      


예로부터 국문학사에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민성을 ‘은근과 끈기’로 기술해 오고 있다. 나 역시 어찌 보면 면 국문학사에서 밝히고 있는  ‘은근과 끈기’의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나 자신이 가끔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라’는 말이 있다. 또한 ‘가다가 곳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말도 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말의 뜻을 그 어떤 유명한 격언이나 속담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이를 묵묵히 실천해 오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어떤 일을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면 그 일이 끝날 대마다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끊임없이 게을리하지 않고 추진해 나가는 끈질긴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항상 결과에 대해 연연하지 도 않는다.


따라서 결과가 좋든 말든 한번 어떤 일을 시작했다 하면 절대로 중간에서 결코 포기하는 일이 없이 끝장을 볼 때까지 은근과 끈기의 정신과 기질을 한껏 발휘해 보곤 한다. 좀 느리다 해도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끝까지 가보고야 마는 게 직성이 풀리는 게 나의 성격이며 기질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에서 결과적으로는 느린 거북이가 이겼듯이…….     


난 한때 그런 끈질긴 기질을 발휘하면서 학창 시절부터 시나리오 창작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힘들게 한편의 시나리오가 완성될 때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그 당시 영화사나 영화 잡지사 공모에 열심히 응모하곤 하였다.      


그때 시나리오 응모작이 으레 몇백 편씩 되곤 했는데 운이 좋았던지 내 작품은 처음부터 기분 좋게 예심을 통과하곤 하였다. 그때의 내 기분은 이미 작가라도 된 듯 한껏 신바람이 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더 열심히 오직 시나리오 창작에 매진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시나리오 창작을 하기 위해 5,6년간 줄곧 방구석에 꼼짝없이 틀어박혀 앉아 오직 글만 쓰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는 부모님의 시선은 결코 고울 수가 없었다. 글을 쓴답시고 매일 밥만 먹고나면 방구석에 죽치고 앉아 있는 궁상맞은 내 꼴을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1,2년도 아니고, 기약조차 없는 글을 쓴답시고 매일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내 모습이 부모님의 눈에는 마치 눈엣가시처럼 너무 답답하고 한심하면서도 마치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으리라.      


그건 내가 생각해 봐도 그럴 만했다. 그렇지 않아도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 무위도식하며 하루 세끼 양식만 축내고 있는 자식 하나가 하릴없는 기생충이 아니면 식충이처럼 몹시 한심해 보였으리라.     

  

결국,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부모님의 성화와 눈치를 견디다 못해 우선 직장부터 잡아야 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우선 급한 대로 아무 직장이나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에 전에 쓰다가 만 시나리오 원고지 14장을 소중히 간직한 채…….       


그러나 막상 직장에 들어가 보니 직장 생활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한가한 것만은 아니었다. 잦은 야근과 각종 업무 보고 등,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이 직장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퇴근 시각이 되기가 무섭게 술을 같이 마시자고 덤벼드는 동료 직원들의 유혹이 빈번했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매일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기도 마음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직장에 다니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시나리오를 써보겠다고 생각했던 나의 당초 계획은 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그때부터 장르를 바꾸어 새로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어린이들을 위한 창작동화를 쓰는 일이었다.     

 

극영화 시나리오 대본 한 편을 탈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백자 원고지 3,4백 장을 써야 했다. 그러나 창작동화는 대부분 원고지 3매 안팎이 소요되는 작업이어서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는 시간적으로 훨씬 더 여유가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난 그날부터 곧 틈이 나는 대로 창작동화를 쓰는 일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동화가 완성되는 대로 추천을 받기 위해 모 월간 잡지에 응모하곤 하였다. 그 결과 그 잡지에 3회 추천까지 완료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아마 그렇게 3회 추천을 받기까지 대략 3년은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화로 당당하게 등단하기 위해서는 좀 더 권위가 있는 잡지에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다시 호기심이 동하게 되었다.   

  

그가 말한 어린이 잡지는 그 당시 발행인이 고 김수환 추기경인 ‘가톨릭 소년’이었다. 2회까지 추천을 받아야 하는 잡지였다. 난 그때부터 다시 처음 시작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열심히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끄럽긴 하지만 2회 추천을 모두 끝내기까지 무려 5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그 잡지에 2회 추천을 마치기까지 자그마치 5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으니 지금 생각해 봐도 몹시 부끄럽고 쑥스러운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5년 동안 단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끈질기게 다달이 원고를 써서 보내곤 하였다. 마치 거북이의 느린 걸음과도 같은, 그리고 은근과 끈기를 지닌 거룩한 우리나라 국민성을, 그리고 나다운 근성을 한껏 발휘해 가면서…….     


그렇게 5년간이나 다달이 보냈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1972년 5월호에 드디어 첫 번째 추천을 받게 되는 영광을 거두게 되었다. 그 기간이 만 4년하고도 5개월이 흘렀으니 그동안 부끄럽게도 무려 52개 꼭지의 동화가 보기 좋게 낙선이 되고 53번째에 가서 겨우 추천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난 그때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기쁘기만 하였으니,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1회 추천을 마친 나는 곧 2회 추천 완료를 받아내기 위해 다부진 마음으로 또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9월에 다시 2회 추천을 받게 되었으며, 마침내 당당히 동화작가라는 이름으로 등단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결국, 칠전팔기가 아닌 나만의 ‘52전53기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마침 동요 ‘고향의 봄’의 노랫말을 작사한 원로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이 ‘한국아동문학가협회’라는 단체를 새로 결성하게 됨에 따라 나도 그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난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 뒤부터는 해마다 모집하는 신춘문예에도 당선이 되든 말든 꾸준히 거북이 정신을 가지고 응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해 뒤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로 당선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였다.  


난 약 40여 년간 꾸준히 동화를 쓰면서 지금까지 신문이나 잡지 등, 여러 곳에 어림잡아 1천여 편의 창작동화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창작동화집도 20여 권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오르막길이 끝나면 내리막길이 있다고 했던가. 어떻게 된 일인지 불과 몇 해 전부터는 일반 잡지는 물론, 어린이신문마다 창작동화를 싣는 난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추세였다. 난 그 뒤로도 꾸준히 동화를 쓰고는 있었지만, 발표할 지면을 잃게 되고 보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금년 1월 초에 우연히 브런치 작가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지난 1월 5일에 선뜻 신청하였더니, 반갑게도 1월 9일 자로 바로 곧 승인 통지를 받게 되었다.


난 그 소식을 듣자마자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영글지 못한 부족한 글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약 7개월 동안 400여 꼭지의 글을 올렸다.  

    

내 나이 어느덧 석양을 바라보며 저만큼 기울고 있다. 그러나 요즘 100세 시대라고 야단법석들을 떨고 있다.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직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남아 있다고 믿기로 하였다.      

만일 나에게도 100세까지 살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앞으로 2,30년은 지금처럼 브런치에 마음껏 글을 쓰면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될 게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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