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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ug 09. 2020

차암, 고마운 사람들

[강화도 창후리 수로 낚시 장면]

 난 오래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낚시를 즐기고 있다. 주로 민물낚시를 한다. 그렇게 낚시를 즐기기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이나 되었다.      


낚시에 한창 미쳤을 때는 멀리 안면도에도 몇 번 텐트까지 쳐놓고 하룻밤을 지새워가면서 낚시를 해본 적도 있었다. 고기가 잘 낚이고 너무 재미를 붙였기 때문에 여름철마다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조금 가까운 곳으로는 강화도 수로도 자주 갔었고 철원 학저수지도 가끔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낚시를 좀 오래 하다 보니 굳이 먼 곳까지 가지 않기로 하였다. 기분 전환이 좀 될지는 모르나 가고 오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고 고기가 잡힌다고 해봐야 가까운 곳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주로 집에서 가까운 강가에 가거나 가까운 수로를 찾아가서 가끔 낚시를 즐기곤 한다.      


처음에 낚시를 배울 때는 낚싯대만 물에 드리우고 찌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고기가 물어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차라리 아예 몰랐다면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들이 다 그렇듯이 조금 알게 되면 점점 더 어렵다고 하더니 낚시 역시 오래 하다 보면 오래 할수록 점점 더 어어려운 것이 낚시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공부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끝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삼 느끼기도 하였다.       


우선 낚시도구를 챙기는 일부터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낚시를 전혀 안해본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낚싯대 하나에 떡밥이나 지렁이 등 미끼만 가지고 가면 될 텐데 뭐가 그리 복잡하냐고 하겠지만 절대로 그게 아니었다. 


낚시 장소에 따라 미끼도 여러 가지고 달랐다. 어느 곳에는 어떤 떡밥을 고기가 잘 먹는다느니, 또 어떤 곳에는 지렁이를 잘 문다는 둥, 미끼를 준비하는 일도 여간 신경을 써야 했다.      


또 낚싯대도 어느 장소에서는 몇 칸 대를 써야 잘 물린다는 둥, 몇 호짜리 바늘을 써야 잘 문다는 둥, 그리고 중층낚시, 하층 낚시, 내림 낚시 등, 낚시하는 방법도 아주 다양하고 복잡했다. 게다가 릴낚시까지 겸하려면 낚시를 할 때 편안히 깔고 앉아서 해야 할 의자 등 짐이 너무나 많고 복잡했다. 


그래서 난 지금도 누가 훙을 보든 말든 내 방법(재래식)대로 낚시를 하고 있다. 그래도 운만 좋으면 아무리 요즈음 새로운 방법을로 채비를 해온 어느 낚시꾼보다 더 잘 잡힐 때도 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댜행히도 바다와 가까운 강이 있었다. 난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주로 그 강에 가서 낚시를 즐기곤 하였다. 그래서 낚시를 종하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곳 강을 보고 먼 곳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해온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봄부터 가을철까지는 주로 대낚시과 릴낚시를 하였다. 그리고 가을철에는 게망을 가지고 나가서 참게 낚시를 하였다. 어찌나 참게가 많은지 어느 날을 커다란 통으로 금방 하나 가득 차서 금방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또 겨울철이 돌아오면 훌치기도 하였다. 훌치기는 온몸을 움직이며 힘을 쓰는 낚시여서 잠깐 동안 훌치기를 해도 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철인데도 이마에 금방 흐르는 땀으로 흥건해지면서 겨울철 운동으로도 매우 좋았다.      


물고기가 어느 해에는 많이 올라오고 또 어느 해에는 덜 올라오는 것 같다. 어느 해에는 훌치기를  하다 보면 던질 적마다 큰 붕어가 걸려오곤 하였다. 붕어는 어찌나 큰지 한 마리의 무게가 1.5키로 이상이 되는 놈도 있으니 10마리만 잡아도 15키로 이상이 되어 주차해 놓은 곳까지 들고 오기도 힘이 들었다. 운이 좋으면 가물치도 잡혀 오고 메기도 끌려 나왔다.   

   

또 어떤 때는 훌치기를 던지기만 하면 큼직한 잉어가 걸려오곤 하는데 작은 놈은 그 길이가 50센티에서 큰놈은 1미터에 가까운 놈들이 자주 나왔다. 그런 놈들을 뭍으로 끌어낼 때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아마 그래서 낚시꾼들 모두가 그 맛에 낚시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삽시간에 다섯 마리만 잡아도 더 이상 운반해 올 수가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잘 잡히던 해에는 어림잡아 무려 350키로 이상을 잡았던 것 같다.      


나는 민물고기를 전혀 입에 대지도 않는 식성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모두 방생해 주곤 하는데 그 해에는 350키로 이상을 잡은 잉어와 큰붕어들을 모두 물고기를 좋아하는 친척에게 모두 우송해 주곤 하였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날이었다. 난 그날도 안사람과 같이 강가에 나가 대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느닷없이 다가와서 공손히 인사를 하고 있었다. 뒤로 돌아보니 난생처음 보는 낯선 젊은이였다. 아마 어림잡아 45살은 좀 넘었을까 말까 해 보이는 젊은이었다.      


그 젊은이 역시 낚시를 하러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내 곁에 앉아서 낚시하는 방법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낚시를 아주 잘하는 젋은이라는 느낌이 금방 들었다. 


처음에는 난생처음 보는 젊은이가 아무 이유 없이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 것을 보고 별난 사람이 다 있다는 생각에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이였다. 시장거리 어딘가에서 친구와 들이 음식점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고마움 하나     


그 뒤로 난 낚시를 하러 갈 때마다 그 젊은이를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그때마다 먼 곳에 앉아서 낚시를 하다가도 가까이 다가와서 공손히 인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다가 제 자리로 가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낚시를 한창 하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그 젊은이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시의 낚시 가방을 내려놓더니 가방 속에 있던 낚싯대 한 개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한두 번 쓰던 것인데 얼른 보기에도 이름이 있는 꽤나 값진 낚싯대 같아 보였다.


 그리고 왠지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드리는 것이니 아무 부담없이 그냥 쓰라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쓰는 낚싯대를 보니 너무 낡아 보이고 게다가 구형이어서 하나 주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난 평생 공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몹시 부담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 극구 받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는 맡기다시피 낚싯대를 그대로 두고 도망치듯 다른 곳을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그냥 받자니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2,30만 원은 훨씬 넘는 고급 낚싯대라고 하였다. 하기는 간혹 어떤 사람들은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곤 하였다. 나는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물론 그가 들으면 욕을 먹을 소리이긴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렇게 혼자 비웃곤 한다.   

   

“그런 비싼 낚싯대로 낚시를 하면 고기가 얼마나 더 잘 잡힌다더냐?”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를 발견한 그 젊은이가 이번에도 다시 나에게로 다가오면서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낚싯대 한 개를 내게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아번에는 먼젓번에 주었던 낚싯대보다 훨씬 더 길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난 염치가 없어서 펄쩍 뛰면서 극구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먼젓번에 준 낚싯대도 지금 이렇게 잘 쓰고 있다고…….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그는 기어이 낚싯대를 주고는 다른 곳으로 낚시를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 부부는 지금도 가끔 낚시를 할 때마다 그 젊은이 덕분에 메이커가 있는 고급 낚싯대로 낚시를 즐기고 있다. 그 젊은이의 고마움을 가슴속 깊이 두고두고 고마워하면서…….     


요즈음 눈을 뜨고도 자칫하면 코를 베이는 세상이라고들 떠들곤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사허ㅣ에는 그런 젊은이들이 있기에 아직도 살아갈 만한 세상이라도 말들을 하나보다.          



고마움 둘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어느덧 8개월째로 들어서고 있다.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난 그동안 브런지에 오늘로 400여 꼭지의 글을 올렸다.        


내가 읽어 봐도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일단 내 글을 올렸다 하면 글을 올리자마자 고마운 분들이 속속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른바 라이킷을 하는 작가님, 별로 알맹이가 부족한 글이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정성껏 댓글로 격려와 힘을 실어주는 고마운 작가님들, 그리고 글을 계속 읽어보겠다는 뜻으로 구독을 해오는 작가님 등, 아마 그런 분들이 안 계시다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은 욕구도 어쩌면 힘을 잃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첫인상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댓글 역시 어느 정도 그런 것 같다.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의 일부분이며 마음이라고 하였다. 정말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댓글을 달아주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어보면 바로 그 작가님의 성격이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글을 올릴 때마다 번번이 성의를 다해 댓글을 달아주는 작가님들에게는 늘 고맙고 황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내가 처음에 브런치를 시작할 때는 주로 어원 풀이에 대한 글을 어설프게 많이 올렸었다. 그때 내 글을 올릴 때마다 잘못된 부분을 친절하게 지적해 주곤 하던 고마운 작가분들이 몇 분 계셨다. 특히 한솔바우 작가님, 그리고 루파고 작가님 등…….     


참 고마운 분들이어서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난 사실 어원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여기저기 참고 문헌들을 뒤적이면서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어원을 골라 내 나름대로 다시 풀어서 올리곤 했던 것이다.       


웬만한 분들은 그 어원이 맞든 말든 대부분 그냥 넘기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몇 분의 작가님은 내가 어원을 올릴 때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때마다 잘못된 부분을 까다로운 정도로 지적해 주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히 어떤 작가님은 국립어학원까지 친히 가서 내기 올린 어원에 대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시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만일 그런 작가님들이 안 계셨다면 난 아마 지금도 그 어원이 맞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러기에 그분들은 어쩌면  나를 그런 위험에서 구출해 주신 고마운 작가님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작가님들 중에서 한 분은 계속 댓글로 나와 서로 친근하게 소통해 올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그 분이 바쁜 일이 있으시다며 자주 소통을 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솔직히 조금 서운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오래전부터 브런치 글 외에 따로 소설을 쓰고 있느라고 바빴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요즘에 다시 브런치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난 반가운 마음에 얼른 댓글을 남겼다. 그러자 바로 그분의 댓글이 달렸다. 그동안 쓴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놀랍게도 현재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난 마치 내 일처럼 너무 반갑고 기뻤다. 그래서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댓글을 달았다. 기회가 닿는대로 읽어보고 싶기도 하였다.      


아, 그랬더니 이건 또 무슨 횡재란 말인가! 그 귀하고 소중한 책이 나오는 대로 내게 보내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난 또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바로 이메일로 내 주소를 바로 보내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마침내 현재 당당히 베스트셀러가 된 그분이 쓴 공상 추리소설, 두 권이 우리 집으로 배달이 된 게 아닌가! 남 너무나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작가님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마 이 기쁨은 내 생을 다하는 날까지 두고두고 잊지 못하리라.     


그분 역시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생면부지의 작가님이시다. 그런 걸 보면 브런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나 보람이 있고 감사하다.      


그러고보면 난 빚을 많이 진 복많은 사람이다.  그 고마움을 언제 다 갚아야 할까.


세상살이가 나날이 험악하면서도 삭막해지고 있다고들 야단이다. 그러나 이런 분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세상에 존재하고 있기에 아직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란 말들을 자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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