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두 마리 흰둥이의 추억

[6.25 전쟁이 남겨놓은 가슴의 상처]

by 겨울나무

뜻밖의 날벼락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던 6. 25동란 전후 시절,


그때 우리 마을에는 집집마다 개를 기르지 않는 집이 별로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마을뿐만이 아니라 그때는 어느 마을이나 개를 기르지 않는 집이 드물었던 것 같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대부분 두세 마리, 그리고 너댓 마리씩은 길렀던 것 같다. 개들 모두가 애완견이 아닌 이른바 똥개들이었다.


이렇게 집집마다 개를 기르고 있는 가장 큰 목적의 하나는 우선 집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 목적은 새끼를 많이 낳게 하여 그때마다 읍내 장에 가서 강아지를 팔거나, 집에서 기르던 개가 어느 정도 크게 자란 다음에는 육용(보신탕)으로 개장수에게 팔기 위해서였다.


돈을 만져보기가 매우 어려운 시절에 똥개들은 집을 지키기도 하고 돈을 만져볼 수 있는 유일한 소득원의 하나가 되기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톡톡히 하였던 셈이었다.


“멍, 머~엉! 멍멍!”


어쩌다 어느 한 집에서 개가 짖기 시작했다 하면, 마을에 있는 개들 모두가 총알처럼 밖으로 뛰어나와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큰소리로 짖어대는 바람에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개들 모두가 순발력도 매우 뛰어나게 잽싸고 빨랐다. 마치 어느 집 개가 짖기를 기다리기라고 하고 있었다는 듯 마치 훈련이 잘된 병사들처럼 순식간에 밖으로 뛰어나와 으르렁거리며 짖곤 하였다.


그 당시에는 특별히 사나운 개가 아니라면 대부분 목줄을 매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데나 제멋대로 자우롭게 돌아다니며 아무것이나 주워 먹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몰려다니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싸움도 하고 마음껏 놀기도 하여 마을이 온통 그들의 세상이기도 하였다.


조용하던 마을이 갑자기 개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시끄럽게 짖는 소리가 들릴 때는 그건 보나 마나 마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돌아다니고 있으니 경계하라는 신호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개가 짖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밖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대충 짐작할 수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다른 세상이 되고 말았다. 웬만한 가정마다 소위 바다를 건너온 갖가지 생김새의 이름도 모를 애완용 개들을 많이 기르고 있다. 세월이 바뀜에 따라 옛날처럼 집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고 크게 자라면 팔아먹기 위해 기르던 것과는 그 목적이 너무나 달라진 것이다.


애완용 개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집 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고 있음은 물론, 집안에서도 따로 고급스럽고 예쁜 개집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웬만한 가정에서는 사람도 사먹기 어려울 정도로 값진 고급 사료를 먹으며 가족들에게 최대의 대접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만이랴. 개가 타고 다닐 수 있는 개 전용 유모차도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고, 개 전용 운동기구도 있다. 어쩌면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융숭한 대우와 사랑을 받으며 마냥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어쩌다 애완견이 사고를 당했거나 명이 다해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정성을 다해 장례식을 치르게 됨은 물론, 고급 납골당에 안치되는 호강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새삼 ‘사람 팔자 개만도 못하다’는 옛말을 절감하기도 한다.


또한 요즈음 개들은 주인이 사는 방이 제집이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개가 사람이 사는 방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방안에 들어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가끔 주어질 때도 있었다. 좀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가끔 아기가 실수로 방바닥에 똥을 쌌을 경우, 그것을 개에게 핥아 먹게 하기 위해 방안으로 불러들였을 때가 바로 그때라 하겠다.


그 시절에는 웬만한 집에서는 개가 편하게 지낼 개집도 특별히 따로 마련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여름에는 개들 스스로 대문 앞이나 툇간 같은 곳, 그리고 추운 겨울철에는 스스로 짚단이 쌓인 곳에 깊이 들어가서 스스로 자리를 잡고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잤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밤낮으로 집을 지키고 오직 주인만을 지켜주기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하였다. 다시 말해서 낯선 사람들의 침입을 막거나 도둑을 지키는 절대적인 파수꾼의 역할을 다 하였던 것이다.


옛날부터 개가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충성을 다하다가 그만 자신이 희생을 당하게 된 애틋하고도 슬픈 이야기는 작품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져 오고 있다.


영국의 여류작가 위다가 쓴 ‘플랜더스의 개’가 그렇고, 우리나라 고려 시대 때의 문인인 <최 자>라는 사람이 쓴 <보한집>에 나오는 ‘오수의 개’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오수의 개’에 대한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그 당시에는 지사면 영천리)에 유난히 주인에게 충직한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개의 주인은 ‘김개인’이라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김개인은 마침 이웃 마을에 잔치에 초대를 받고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개를 데리고 함께 가게 되었다.


잔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개인은 어느 들판 잔디밭에 이르자 술도 좀 취하고 몸이 노곤하여 잔디에 누워 잠깐 쉬고 있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뒤 그 부근에서 갑자기 뜻하지 않은 들불이 크게 일어나고 말았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을 알아차린 개는 주인을 깨우기 위해 아무리 짖어댔으나 주인은 너무 깊은 잠에 취해 일어나지를 못하고 여전히 곤한 잠에 취해 있었다.


그러자 개는 어쩔 수 없이 급한 마음에 그 근처 개울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첨벙 물에 담갔다가 돌아와서 그 물이 묻은 몸뚱이를 주인이 누워있는 부근 에 뒹굴며 불붙은 잔디를 물로 적셨다.


그러기를 수십 차례를 반복하던 개는 결국 안타깝게도 기진맥진하고 지쳐버린 끝에 그만 불에 타죽고 말았다. 주인을 살리기 위해 충성을 다하다가 갸륵하게도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바쳤던 것이다.


한참 뒤에야 겨우 잠이 깬 주인은 개가 자기 대신 불에 타죽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몹시 슬퍼하며 개가 죽어있던 자리에 땅을 파고 정성껏 묻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끼며 지니고 다니던 지팡이를 비석 대신 무덤 위에 꽂아주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무덤에 꽂아놓았던 그 지팡이는 신기하게도 싹이 나오더니 나무로 자라났다. 그래서 그곳을 ‘개(獒 )오’, 그리고 ‘나무 수(樹 )’자를 넣어 그때부터 ‘오수리’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이 갸륵하고 애달픈 사연을 알게 된 지방 관서에서 이 갸륵한 개를 추모하기 위해 그곳에 정자를 세우고 개의 동상을 세웠으며 ‘오수의 견‘이라는 비문도 세워 놓고 현재 문화재로 보호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수의 견’ 못지않은 충견이 우리 집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6.25 동란 전, 나의 어린 시절,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길러왔는지는 몰라도 우리 집에도 늘 개를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기르던 여러 마리의 개들 중에서도 특히 두 마리의 개에 대한 추억은 지금도 좀처럼 잊혀지지를 않고 있으며 그 개를 생각할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오기도 한다.


그 두 마리의 개의 털 빛깔은 온몸이 모두 새하얀 털로 뒤덮힌 흰둥이였다. 암놈과 수놈 한 쌍이었다. 그래서 개가 멀리 나갔을 때 개를 부를 때는 ‘흰둥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 대신 부르기 쉽게 “신둥아!”하고 큰 소리로 부르곤 하였다.


개의 습성상 어떤 개나 주인을 잘 따른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길렀던 그 두 마리의 개는 유난히 우리 집 식구들을 잘 따르고 순종하였다.


그러면서도 성격이 워낙 온순해서 낯익은 이웃집 사람들이라면 아무나 꼬리를 치며 잘 따르는 편이어서 마을 사람들에게도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식성도 까다롭지 않아서 아무것이나 잘 먹고 무럭무럭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자랐다.




아마 6·25 동란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의 어느 해 늦가을이었나보다.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나는 그날도 아무 할 일 없이 바깥마당에 나와서 흰둥이와 같이 놀고 있었다.


“꿩꿩, 푸드드득!”


그때 갑자기 꿩 한 마리가 꿩 특유의 목청을 다해 소리 지르며 우리 마을 뒷산에서 건넌 마을 산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5, 60호 가량 되는 우리 마을은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건넌 마을 양쪽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가을 추수를 끝낸 제법 크고 작은 논들이 올망졸망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재롱을 부리며 놀고 있던 우리 집 흰둥이 한 마리가 갑자기 꿩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꿩이 날아가는 방향을 향해 번개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동작도 빨랐지만 그렇게 재빠르게 잘 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치타보다도 더 빠른 것 같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순하고 착하기만 하던 개가 어디서 그런 무서운 힘이 솟아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논바닥이든 논두렁이든 가리지 않고 그저 무서운 속도로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는 꿩을 힐끗힐끗 고개를 들고 쳐다보며 무서운 속력으로 전력 질주하며 쫓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잘 뛰는 개를 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마을 사이에 있는 논바닥을 다 벗어난 개는 마침내 눈 깜짝할 사이에 건넌 마을에 다다랐다. 꿩은 건넌 마을 뒷산을 향해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 집 흰둥이도 날아가는 꿩을 놓칠세라 가끔 힐끔힐끔 바라보며 뛰어가다가 마침내 건넌 마을 뒷산을 사력을 다해 뛰어올라가고 있었다.


꿩도 이미 개가 따라오는 것을 눈치챈 듯 하였으나 계속된 날갯짓에 지쳤는지 마침내 산 중턱쯤까지 가서는 잠깐 쉬었다 가기 위해 내려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흰둥이는 여전히 꿩이 내려앉은 그 산기슭을 향해 재빨리 달려 올라가고 있었다. 그 뒤부터는 흰둥이는 나무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꿩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조금 뒤에 꿩이 다시 ‘꿩꿩, 푸드덕’ 소리를 내며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아마 꿩이 쫓아오고 있는 흰둥이를 보고 크게 놀란 것 같았다. 그러나 흰둥이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꿩은 마침내 힘이 지쳤는지 다시 한동안 날아가다가 어딘가에서 도로 내려앉더니 그 뒤로는 꿩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뒤, 아아! 마침내 흰둥이가 꿩을 한입에 물고 산을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결국, 날아가는 꿩을 끝까지 전력질주로 추격한 끝에 꿩이 지쳐 땅에 내려앉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물었던 것이다.


흰둥이는 꿩을 입에 문 채 산을 내려오더니 어느 새 건넌 마을 앞을 지나오고 있었다. 그때 건넌 마을에서도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꿩을 물고 내려오는 흰둥이를 보자 꿩을 뺏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흰둥이는 그런 사람들을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그들을 피해 결국 우리 마당까지 삽시간에 달려오게 되었다. 그리고는 입에 물고 있던 그 꿩을 슬그머니 내 앞에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사력을 다해 어렵게 잡은 꿩을…….


개들은 잡식이어서 동네 닭들이 돌아다닐 때 생으로 잡아 뜯어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마 그때 흰둥이도 꿩이 몹시 먹고 싶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싶은 걸 꾹 참아가며 마을 사람들이 뺏으려고 쫓아다녀도 끝까지 빼앗기지 않고 달려와서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가서 잡은 꿩을 내 앞에 내려놓다니! 정말 주인을 위한 개의 충성심에 새삼 두고두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 다음 해쯤에 뜻하지 않은 6·25 동란이 벌어지고 말았다. 전쟁이 일어나자 우리 가족들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하나 생기게 되었다. 당장 피란은 가야 하는데 피란길에 흰둥이 두 마리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쌀겨를 가득 담아놓은 둥구미(볏짚으로 엮어 만든 둥글고 깊은 그릇)두 개를 남겨놓고 우리식구들끼리만 피란을 가게 되었다. 개에게 줄 먹이가 없어서 언제 다시 돌아오게 될는지는 기약이 없었지만, 그동안 쌀겨라도 먹고 지내고 있으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막상 피란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을 날 때 흰둥이 두 마리도 신바람이 나서 우리 가족들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두 마리의 개를 집으로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 영문을 모르는 개들은 우리가 쫓을 때마다 일단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우리 가족들을 계속 따라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개를 쫓아도 계속 따라오는 개를 향해 나중에는 돌멩이질까지 하면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무섭게 소리소리 지르고 나서야 간신히 개를 떼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얼른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먼발치에서 멀거니 선 채 우리 가족들이 가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그리고 몹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아무리 무섭게 쫓아도 끝까지 따라오려고 기를 쓰던 두 마리의 개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리곤 하는 바람에 피란을 가면서도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속이 쓰리던지! 지금도 그때의 개들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눈에 선하면서도 가슴이 미어질 것처럼 아프기만 하다. 생각할수록 눈물이 자꾸 앞을 가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쫓아오려고 덤비던 개를 쫓아버리고 피란을 가고 있는 우리 가족들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두 마리의 흰둥이를 버린 채 피란을 갔다가 약 석 달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국군들이 반격을 해오면서 인민군들이 북쪽으로 후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국군들이 반격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은 우리 가족들도 기쁜 마음으로 고향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것은 역시 두 마리의 흰둥이 생각뿐이었다. 그동안 아무 일 없이 아직도 잘 살고 있는지, 아니면 굶어 죽거나 어떤 사고로 죽지나 않았는지…….


우리 가족들이 그런 궁금한 생각을 가지고 드디어 고향 집의 대문을 열고 안마당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예감이 이상했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주인 냄새나 기척을 듣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오며 꼬리를 치며 기어오르고 반색을 했어야 할 개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왠지 불안했다. 게다가 앞마당으로 들어서 보니 앞마당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선혈이 낭자한 웬 핏자국이 뿌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우선 둥구미부터 들여다보니 쌀겨로 가득했던 둥구미는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석 달 동안 등겨를 먹으며 굶주림을 견디어 온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점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흰둥이 두 마리의 모습이 전혀 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고향으로 먼저 돌아온 이웃집 어느 아주머니가 우리 가족들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우리 집으로 급히 달려왔다. 그리고는 혀를 차며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쯧쯧쯧……. 사흘만 일찍 돌아왔어도 이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로 사흘 전에 인민군들이 후퇴를 하면서 우리 흰둥이를 모두 총으로 쏴서 죽여 잡아먹었다는 것이었다. 앞마당에 핏자국은 그들이 쏜 총에 맞아 흰둥이들이 흘린 핏자국이라고 하였다. 우리 가족들은 순간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멍한 나머지 곧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다음에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 가족들은 더욱 가슴이 아려왔다.


개들이 죽기 전 며칠 동안, 우리 마을의 남쪽에 위치한 성황당 언덕길을 우리 흰둥이 두 마리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성황당을 향해 뛰어갔다가 돌아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고향으로 속속 돌아오는 모습을 본 두 마리의 개가 혹시나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수시로 성황당을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가족들이 두 마리의 흰둥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피란을 갈 때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식구들을 따라가고 싶어서 신바람이 나서 따라 나섰다가 쫓으면 또 쫓아오고, 쫓으면 또 기를 쓰고 쫓아오던 흰둥이 두 마리.


그러다가 우리 가족들이 끝까지 쫓는 바람에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우리 가족들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결국은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집으로 어슬렁어슬렁 돌아가던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지금도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리고 미어지는 듯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죽을 기를 쓰고 사력을 다해 잡은 꿩도 제가 먹지 않고 나에게 바쳤던 충성스러운 흰둥이였었는데…….


이 모두가 전쟁이 남긴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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