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그리고 배고팠던 시절 이야기]
휴전 직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해의 일이었다. 방에 화롯불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늦가을이거나 이른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그날따라 이웃 친구네 집에 가서 한참 놀다가 늦게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기가 무섭게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색을 하면서 나를 맞이해 주셨다.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딜 갔다가 이제야 오니? 자, 배고플 텐데 어서 이거부터 좀 맛을 보렴.”
어머니는 나를 화롯가로 잡아끄셨다. 지금 화로에는 가느다란 싸리나무 막대기로 꿰어있는 알 수 없는 무슨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바짝 익어 있었다. 얼른 보기에도 적당히 익은 그 고기가 하도 먹음직스럽게 보여 아무리 먹성이 짧은 나였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군침이 입안 가득 고이고 있었다.
“엄마, 이게 무슨 고기야?”
“글쎄, 그런 건 묻지 말고 우선 맛이나 좀 보렴. 네가 요즘 하도 밥을 먹지 않기에 엄마가 아주 어렵게 구해온 귀한 고기란다.”
사실 그때 난 워낙 먹성이 짧아 밥을 잘 안 먹어서 몸은 허약할 대로 허약해서 부모님에게 늘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던 터였다.
난 어머니가 먹여주는 대로 우선 화롯가에 있는 고기를 한입 입에 물고 씹어보았다. 내 입맛에 딱 맞게 약간 짭짤하게 간이 맞으면서도 적당히 잘 익은 고기는 아삭아삭하면서도 씹히는 고기의 육질이며 맛이 그렇게 기가 막힐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너무 맛이 있어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맛이 있는 고기는 난생처음 맛보는 고기였다.
난 너무 맛이 있어서 구워놓은 고기를 단숨에 다 먹어치우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먹어보고 싶은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입맛을 쩍쩍 다시며 다시 어머니에게 묻게 되었다.
“정말 맛있는걸! 엄마, 그런데 이게 무슨 고기야?”
난 궁금하기도 하고 감질이 나서 몇 번이고 물어보았지만, 어머니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선뜻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렇게 맛이 있다면 다음에 다시 구해 주겠다고만 하면서 끝내 가르쳐 주지를 않으셨다. 그 고기는 구하기도 어렵고 아주 귀한 고기라는 말만 되풀이하시면서…….”
유난히 태어날 때부터 워낙 약골로 태어난 나는 몸도 허약했지만 먹성도 매우 짧은 편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종일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을 모르고 밥 생각이 나지 않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체질이었다.
그러나 그때 다른 집 아이들은 모두 먹성이 좋았던 것 같다. 아마 그게 정상이었으리라. 그리고 다른 집 아이들은 틈만 나면 부모님에게 너무 먹을 것을 달라고 졸라서 그게 오히려 더 걱정이었다. 먹을 것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주전부리라고는 고작해야 가끔 장떡이나 보릿가루로 만든 개떡을 쪄서 주면 그것도 감지덕지하며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었다.
시커멓게 생긴 장떡은 너무 찝찔하면서도 딱딱해서 내 입에는 절대로 맞지 않았다. 보리 개떡도 딱딱하면서도 가끔 보리의 수염이 까칠까칠하게 나와서 목에 넘어갈 때 따끔거리고 맛도 없어서 난 그것도 어지간히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집 아이들은 그런 것도 없어서 먹지 못하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툭 하면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거나 먹을 것을 해달라고 조르면 부모님들은 그때마다 방금 먹었는데 또 밥 타령이냐며 뱃속에 거지가 열 마리는 들어있는 모양이라고 야단을 맞기가 일쑤였다.
모두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며 쩔쩔매던 전쟁 시절이었지만, 난 그나마 배고픈 줄을 모르고 지낼 수 있었으니 그것도 다행이라면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화롯가의 잘 익은 고기를 먹은 지 며칠 뒤, 나는 누나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맛이 있었던 그 고기의 정체를 마침내 알 수 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큰 개구리를 잡아서 넓적다리만 잘라 소금을 약간 뿌리고 나무에 끼워 구운 개구리 고기였던 것이다. 개구리 고기가 그렇게 맛이 있을 줄이야!
"우웨엑, 우웩!"
난 개구리 고기라는 말에 이미 며칠 전에 먹은 고기였지만, 갑자기 구역질이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어느 집이나 고기를 사서 먹는다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워낙 입이 짧은 나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고기를 먹여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고기 대신 개구리라도 잡아다 구워 먹이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러셨던 것 같다.
그리고 미리부터 나에게 개구리 고기라고 알려주면 내가 절대로 먹지 않을 것을 잘 알고 계시기에 어머니는 절대로 개구리 고기란 말을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아이들은 가끔 시간만 나면 부지깽이와 커다란 깡통을 하나 씩 들고 개울이나 들판으로 개구리 사냥을 하러 쏘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난 개구리 고기의 정체를 안 뒤부터는 그들을 따라다니지도 않았고 그 이후로는 개구리 고기를 절대로 먹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궁이에서 구워 온 웬 고기를 드시고 계셨다. 그리고 나에게 먹고 싶으면 너도 먹어보라고 권하셨다.
난 아버지에게 이번에도 그게 무슨 고기냐고 묻게 되었다. 놀랍게도 쥐 고기라고 하셨다. 난 쥐 고기란 말에 오만상을 찡그리고 그 자리를 얼른 피해 도망을 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동안 얼마나 굶주리셨기에, 그리고 얼마나 속이 헛헛하고 고기가 드셨으면 쥐까지 잡아서 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소문을 듣고 보니 쥐 고기를 잡아먹는 사람들은 비단 우리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게 되었다.
양식은 이미 바닥이 나서 고구마나 감자를 쪄서 몇 개씩 먹고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고구마나 감자라도 많이 있다면 그나마 큰 다행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세 끼를 굶는 집도 많았다. 그렇게 부실하게나마 한 끼를 때우고 나면 다음 끼는 기약이 없었다.
세상에 가장 서러운 것은 뭐니뭐니 해도 배가 고픈 서러움이라고 하였다. 배가 고파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얼른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절이었기에 뭐든지 먹고 나서 죽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고 아무것이나 입에 넣고 씹으면서 연명해야만 했다.
이번에는 곤충이나 파충류 같은 동물들의 이름을 얼른 생각이 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개구리, 쥐, 참새, 도마뱀, 청개구리, 땅강아지, 거미, 달팽이, 잠자리, 복숭아 벌레, 번데기, 소금쟁이, 물방개, 들 메뚜기, 방아깨비, 송장 메뚜기, 파뚜기, 벼메뚜기, 여치, 개미, 매미……등.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에 나열한 곤충이나 동물들 모두가 그 당시에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잡아서 허기진 배를 달랬던 소중한 먹거리들이었다. 아마 그런 배고픈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거짓말이라고 머리를 흔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역시 며칠씩 허기가 지고 굶주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리라.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직접 두 눈으로 목겼했던 이야기들이기에 조금도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사실임을 밝힌다.
위에 열거한 동물들 중에 참새나 벼메뚜기, 그리고 개구리는 그나마 고급 먹거리에 속했다.
특히 가을에 논에 날아다니는 벼메뚜기는 나중에 술집에서 값진 고급 요리로도 자주 등장하곤 하였다. 그래서 오래전에는 길거리 포장마차마다 따끈한 정종 한 잔에 참새구이 안주가 애주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인기를 끌었던가.
그러나 그때는 참새와 벼메뚜기는 물론이고, 돌아다니는 동물들은 모두 다 먹거리가 되었다. 벼메뚜기뿐만 아니라 송장 메뚜기니 뭐니 메뚜기 종류는 모두 잡아서 구워 먹었다. 그 중에서도 방아깨비는 살이 많고 알을 밴 것도 많아서 인기가 아주 그만이었다.
심지어는 매미나 여치, 그리고 소금쟁이나 물방개도 잡아서 구워 먹기도 하였다. 개미는 구워먹지 않고 개미를 손가락으로 꼭 잡고 항문을 빨아먹었다. 개미의 항문은 나도 한번 빨아보았다. 몹시 짜면서도 맛이 이상했다. 그 뒤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매미나 잠자리, 그리고 소금쟁이는 굽고 나면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 인기가 별로 없었다. 아무튼 너무 배가 고플 때는 집 벽(그땐 벽을 대부분 흙으로 발랐음)에 바른 고운 흙을 떼어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다가 고운 모래까지 삼켜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오죽하면 굶어 죽는 사람들도 있었으랴.
요즈음에는 보기가 어렵지만, 옛날에는 도마뱀(도롱뇽)도 흔했다. 어쩌다 산길을 걷다 보면 발자국 소리에 놀란 도마뱀들이 여기저기서 도망을 치는 모습들이 눈에 쉽게 띄곤 하였다.
어른들의 말을 들어보면 도마뱀이나 청개구리를 잡아서 산 채로 입에 넣고 꿀떡 삼키면 '기운이 불끈 솟아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였다. 그래서 용감한(?) 아이들은 그것들을 잡아서 생으로 꿀떡 삼키는 모습을 곁에서 낯을 찡그린 채, 가끔 구경을 해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운이 나게 한다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복숭아 속에 있는 벌레도 먹으면 좋다고 하였다. 어쩌다 집 마당이나 울타리에 열린 복숭아를 따 먹다 보면 복숭아 속에서 가끔 벌레가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그것을 버리지 않고 눈을 꾹 감은 채 도로 삼켜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때 도마뱀이나 청개구리, 그리고 복숭아 속에 있는 벌레를 그냥 삼키라고 어른들이 시킨 것을 보면 실로 무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워낙 먹을 것이 없던 배고픈 시절이어서 아무것이나 먹고 요기를 하라고 권했던 그 또한 어른들의 하나의 지혜가 아닌가 짐작해 보게 보게 된다.
또한 곤충이나 파충류, 그리고 벌레들만 먹은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식물들도 모두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곤 하였다. 일단 입에 넣고 씹어보고 지독한 냄새가 나거나 어느 정도 그런대로 삼킬 수 있으면 모두 목구멍 속으로 삼켰던 것 같다.
그때 산과 들, 그리고 벌판으로 다니며 캐거나 뜯어서 먹었던 식물들은 생각이 나는 대로 나열해 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난 아버지에게 이번에도 그게 무슨 고기냐고 묻게 되었다. 쥐 고기라고 하셨다. 난 쥐 고기란 말에 오만상을 찡그리고 그 자리를 얼른 피해 도망을 가버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그동안 얼마나 굶주리셨기에, 그리고 얼마나 헛헛하고 고기가 드셨으면 쥐까지 잡아서 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소문을 듣고 보니 쥐 고기를 잡아먹는 사람들은 비단 우리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게 되었다.
양식은 이미 바닥이 나서 고구마나 감자를 쪄서 몇 개씩 먹고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고구마나 감자라도 많이 있다면 그나마 큰 다행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세 끼를 굶는 집도 많았다. 그렇게 부실하게나마 한 끼를 때우고 나면 다음 끼는 기약이 없었다.
세상에 가장 서러운 것이 배가 고픈 서러움이라고 하였다. 배가 고파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얼른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절이었기에 뭐든지 먹고 나서 죽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고 아무것이나 입에 넣고 씹으면서 연명해야만 했다.
이번에는 곤충이나 파충류 같은 동물들의 이름을 생각이 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개구리, 쥐, 참새, 도마뱀, 청개구리, 땅강아지, 거미, 달팽이, 잠자리, 복숭아 벌레, 번데기, 소금쟁이, 물방개, 들 메뚜기, 방아깨비, 송장 메뚜기, 파뚜기, 벼메뚜기, 여치, 개미, 매미……등.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에 나열한 곤충이나 동물들 모두가 그 당시에 아이들이 잡아서 허기진 배를 달랬던 소중한 먹거리들이었다. 아마 그런 배고픈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머리를 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역시 며칠씩 허기가 지고 굶주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리라.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직접 두 눈으로 목겼했던 이야기들이기에 분명히 조금도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사실임을 밝힌다.
위에 열거한 동물들 중에 참새나 벼메뚜기, 그리고 개구리는 그나마 고급 먹거리 편에 속했다.
특히 가을에 논에 날아다니는 벼메뚜기는 나중에 술집에서 값진 고급 요리로도 자주 등장하곤 하였다. 그래서 오래전에는 길거리 포장마차마다 따끈한 정종 한 잔에 참새구이 안주가 애주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인기를 끌었던가.
그러나 그때는 참새와 벼메뚜기는 물론이고, 돌아다니는 동물들은 모두 다 먹거리가 되었다. 벼메뚜기뿐만 아니라 송장 메뚜기니 뭐니 메뚜기 종류는 모두 잡아서 구워 먹었다. 그 중에서도 방아깨비는 살이 많고 알을 밴 것도 많아서 인기가 아주 많았다.
심지어는 매미나 여치, 그리고 소금쟁이나 물방개도 잡아서 구워 먹기도 하였다. 개미는 워먹지 않고 개미를 손에 잡고 항문을 빨아먹었다. 개미의 항문은 나도 한번 빨아보았다. 몹시 짜면서도 맛이 이상했다. 그 뒤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매미나 잠자리, 그리고 소금쟁이는 굽고 나면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 인기가 별로 없었다. 아무튼 너무 배가 고플 때는 집 벽(그땐 벽을 대부분 흙으로 발랐음)에 바른 고운 흙을 떼어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다가 작은 모래까지 삼켜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오죽하면 굶어 죽는 사람들도 있었으랴.
요즈음에는 보기가 어렵지만, 옛날에는 도마뱀(도롱뇽)도 흔했다. 어쩌다 산길을 걷다 보면 발자국 소리에 놀란 도마뱀들이 여기저기서 도망을 치는 모습들이 눈에 쉽게 띄곤 하였다.
어른들의 말을 들어보면 도마뱀이나 청개구리를 잡아서 산 채로 입에 넣고 꿀떡 삼키면 기운이 불끈 솟아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였다. 그래서 용감한(?) 아이들은 그것들을 잡아서 생으로 꿀떡 삼키는 모습을 곁에서 낯을 찡그린 채, 가끔 구경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운이 나게 한다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복숭아 속에 있는 벌레도 먹으면 좋다고 하였다. 어쩌다 집 마당이나 울타리에 열린 복숭아를 따 먹다 보면 복숭아 속에서 가끔 벌레가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그것을 버리지 않고 눈을 꾹 감은 채 도로 삼켜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제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때 도마뱀이나 청개구리, 그리고 복숭아 속에 있는 벌레를 그냥 삼키라고 어른들이 시킨 것을 보면 실로 무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워낙 먹을 것이 없던 배고픈 시절이어서 아무것이나 먹으라고 권했던 그 또한 어른들의 하나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와 같이 곤충이나 파충류, 그리고 벌레들만 먹은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식물들도 모두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곤 하였다. 일단 입에 넣고 씹어보고 지독한 냄새가 나거나 어느 정도 그런대로 삼킬 수 있으면 모두 목구멍 속으로 삼켰던 것 같다.
그때 산과 들, 그리고 벌판으로 다니며 캐거나 뜯어서 먹었던 식물들은 생각이 나는 대로 나열해 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송기(봄에 소나무 가지의 겉껌질을 벗기고 속 껍질을 멋겨 먹었는데 달착지근하고 맛이 있었음), 송화, 산딸기, 머루, 알밤, 사탕 수숫대, 옥수숫대, 싱아, 찔레, 박하 풀, 칡뿌리, 마, 삘기, 산딸기, 뱀딸기, 수수깜부기, 보리깜부기, 목화송이, 밀, 개똥참외, 논에 나오는 올망댕이, 쌀(어쩌다 쌀이 생기면 날로 가끔 몰래 먹음) 개떡, 장떡도 자주 해 먹음.
아무튼, 요즈음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때는 그게 현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옛말도 생겨난 게 아닌가 싶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