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그리고 몹시 굶주렸던 시절]
아직 6.25 전쟁이 끝나기 전의 어느 해 겨울, 마침내 모든 아이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리스마스날이 돌아왔다.
나도 그랬지만 그때 학교에 다니고 있던 친구들 모두가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히 미군들이 직접 학교로 와서 푸짐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것이라고 미리부터 선생님이 귀띔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전쟁 시절에는 학교에 나오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어떤 선물을 받게 될지 모를 기대 때문이었는지 오늘따라 다른 날보다 유난히 학교에 나온 학생들이 많았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등교하는 대로 학교 운동장에 차례대로 줄을 세웠다.
그리고 조금 뒤 마침내 미군 트럭 한 대가 전쟁의 폭격으로 인해 운동장 군데군데 울퉁불퉁하게 파인 웅덩이들을 조심스럽게 피해 가면서 선물을 가득 싣고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은 트럭이 나타나자 ‘와아’ 하고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선물을 받는 것도 기분이 한껏 들뜨고 좋았지만 처음으로 미군 트럭과 미군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니 몹시 신기했었나 보다. 나 역시 과연 어떤 선물을 받게 될지 너무나 궁금하고 마음이 들떠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였다.
마침내 맨 앞에 줄을 서 있던 아이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선물을 실은 트럭 곁으로 급히 다가갔다. 그러자 미군 한 사람이 선물을 가득 실은 트럭 위에 앉아서 차례대로 선물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부러움에 학생들의 입에서는 '와아~ 와아~'하는 함성이 터져 나오곤 하였다.
선물의 종류는 학용품, 장난감, 책, 과자 상자 등 난생처음 보는 물건들로 다양했다. 줄을 선 아이들은 차례대로 미군이 잡히는 대로 집어서 건네주는 선물을 받아가고 있었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학생들은 너무나 좋아서 환해진 얼굴로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지곤 하였다.
이윽고 이번에는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그때 30 Cm 짜리 파란색 자 하나와 책 전체가 온통 예쁜 고양이 사진이 찍혀 있는, 그리고 드문드문 영어 글자가 찍혀 있는 예쁜 그림책 한 권을 받았다.
책을 받자마자 얼른 책부터 펼쳐보니 하나같이 갖가지 곱고 예쁜 색깔의 옷을 차려입고 있는 고양이들의 앙징스러운 모습들이 그렇게 아름답고 예쁠 수가 없었다. 비록 그림 옆에 찍혀 있는 영문 글자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너무나 예쁜 그림책이어서 매우 만족했다.
30cm짜리 자도 난생처음 가져본 것이기에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어린 시절에 난생처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것을 미군으로부터 받아보게 되었다.
내게는 그 선물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다고 생각하여 오래오래 아끼고 보관하면서 소중히 간직했다. 그리고 비록 영문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틈틈이 생각이 날 때마다 그림책을 가끔 들여다보며 그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곤 하였다. 내겐 평생 두고두고 잊지 못할 즐거운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중이었기에 미군들은 가끔 1주일이 멀다 하고 주기적으로 우리 마을 뒷동산으로 훈련을 받으러 오곤 하였다.
우리 마을 뒷동산은 대부분 나지막하면서도 정상에 올라가면 제법 넓은 평지로 된 곳도 많아서 훈련을 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곳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우리 마을 뒷산은 유난히 오랫동안 미군들의 훈련 장소로 자주 쓰이곤 하였다.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한번 시작한 훈련은 일주일 이상은 낮과 밤을 산에서 천막을 쳐놓고 숙식을 하면서 머물렀던 것 같다.
훈련을 하러 올 때는 늘 요란한 굉음을 내며 탱크도 오고 장갑차들도 왔다. 그리고 잠은 언제 자는지 밤새도록 미군들이 나무 위에 스피커를 걸어놓고 마이크로 뭐라고 꼬부랑 말로 떠드는 소리, 그리고 전화를 거는 소리, 가끔 탱크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돌아다니는 소리, 그리고 가끔 들려오는 총소리 때문에 몹시 시끄러워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 마을 아이들 모두는 미군들이 훈련을 받으러 올 때가 가장 신바람이 났다. 그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이 훈련하러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하였다. 하다못해 무슨 음식 찌꺼기든, 쓸모있는 물건이든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미군들이 훈련을 받기 위해 우리 마을에 오게 되면 웬만한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모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서 미군들이 훈련을 받는 모습을 멀리 떨어져서 밤을 꼬박 새우며 구경을 하곤 하였다.
구경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었다. 그렇게 서 있다가 뭐라도 좀 얻어먹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던 것이다. 그래서 미군들이 임시로 쳐놓은 철조망 밖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그렇게 힘들게 기다리곤 하였다. 혹시나 먹을 것을 좀 얻어먹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마음씨 좋은 미군인들은 특히 아이들을 좋아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철조망 부근에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먹을 것을 던져주곤 하였던 것이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미군인들은 처음에 우리나라에 왔을 때는 아이들을 몹시 귀여워하고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평소에도 어쩌다 우리 마을 아이들이 십 리가 넘는 학교에 갈 때는 국도(현재는 통일로) 하나를 건너서 가야 한다. 그때만 해도 포장이 안 된 흙먼지 길이었다.
어쩌다 국도를 건너갈 때 마침 미군 트럭 한 대가 지나가게 되면 그건 어젯밤에 꿈을 잘 꾼 행운의 날이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서 운이 몹시 좋은 날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학교에 가다 말고 그 자리에 서서 미군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다 보면 껌이나 과자, 그리고 초콜릿이건 아무것이나 하나씩 던져주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미군한테 무언가를 달라고 할 때는 손만 흔든 것이 아니었다. 비록 엉터리이긴 하지만 간단한 영어도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러기에 그때 국어도 제대로 못 배운 우리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영어 한 구절이 있었다.
바로 ‘헬로! 찹찹 쬬꼬레트 오케이!’라는 영어가 그것이었다.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그땐 영어의 문법 같은 것은 아무 소용없었다. 그저 ‘헬로! 찹찹 쬬꼬레트 오케이!’ 한 마디만 할 줄 알면 그야말로 만사가 다 오케이였다. 미군들도 그 말만 들으면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그때마다 먹을 것을 던져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언어가 발달하지 못한 원시 시대 때에도 손짓 발짓 몸짓으로도 모든 의사가 소통되었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미군과 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며 먹을 것만 달라고 요구하는 의사 전달이 무슨 이유로 어렵겠는가. 부득이 안 통할 때는 손짓 발짓을 해서라도 먹을 것을 좀 달라는 의사 표현만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할 게 아니던가.
그러기에 그때 가장 필요한 것, 그리고 먹을 것이 가장 우선이었을 그 시절에는 바로 ‘헬로! 찹찹 쬬꼬레트 오케이!’ 이 한 구절만 알면 만사형통이었다. 더 이상 복잡하기 그지없는 영어의 문법 같은 것은 더 배울 필요성조차 느끼지도 않았다.
미군들이 훈련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는 날은 그렇게 아쉽고 서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군들이 철수하고 돌아가기가 무섭게 온 마을 사람들 모두가 산으로 올라가서 두 눈에 불을 켜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곤 하였다. 그리고 혹시나 미군들이 버리고 간 물건이 있으면 무엇이든 줍기 위해서였다.
쇠붙이도 좋고 전화선도 좋고, 밧줄도 좋고 깡통도 좋았다. 그 모두가 엿장수한테 팔면 돈이 되기도 하고 가정에서 요긴하게 쓸모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미군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은 단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었다. 그러기에 속된 말로 미제라면 똥도 좋다는 말이 그때부터 생기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미군들이 훈련 중에 사용하던 쓰레기통을 뒤지다 보면 먹다 버린 갖가지 음식물들이 많이 나왔다. 반쯤 먹다 버린 캔 속에 남아있는 쨈, 통조림, 비스킷, 껌, 씹어먹는 껌, 담배, 1회용 커피 등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주워다가 그냥 먹을 수 있는 것은 그냥 먹고, 먹다 버린 통조림이나 햄 같은 것은 잘 씻어서 국이나 찌개로 끓여 먹기도 하였다.
짬밥통에서 나온 소시지나 햄 같은 것들을 넣고 끓여 먹기도 하였다. 그것이 바로 요즈음 음식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른바 꿀꿀이 죽이며 부대찌개였다.
그런데 얼마 뒤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인정이 많고 친절하기만 하던 미군들의 성격이 갑자기 사납게 싹 변해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우리들이 훈련을 받는 곳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기가 무섭게 소리소리 지르면서 가라고 사납게 소리지르게 되었던 것이다.
“싸나가배치, 슬랙기 보이! 께러웨이! 께러웨이!”
영어는 전혀 모르지만 그건 분명히 우리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어서 가지 못하겠느냐고 쫓는 소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 한 가지를 더 배울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슬랙기 보이’란 도둑놈이라는 뜻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그렇게 사납게 소리를 지르며 우리들을 보기가 무섭게 넌덜머리를 내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무리가 아니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그들이 훈련받는 근처로 가기만 하면 꼭 일을 저지르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훔쳐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훈련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어떤 때는 그들이 뒷산 나뭇가지마다 둘러가며 쳐놓은 전화선이나 철조망까지 펜치로 끊어 가는 바람에 전화 통화를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전화선이나 철조망을 늘어놓으면 또 끊어가고, 또 늘어놓으면 또 몰래 끊어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짜증이 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날 만도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철조망은 물론이고 전화선도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에 엿장수와 바꾸면 그 모두가 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잠시 세워 둔 육중한 탱크의 쇠사슬 벨트까지 뽑아 오는 대단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국 사람들은 참 재주도 많았다. 어떻게 그 육중하기 그지없는 탱크의 벨트까지 끊어올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단 말인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히고 혀를 내두를 일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 모두가 전쟁으로 인한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고 저지른 만행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