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그날 마침 서울 충무로 소재 대연각 호텔 대형 화재로 인해 무려 163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참변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망자 외에도 호텔에서 뛰어내리다가 추락을 하거나 크게 부상을 당한 사람, 그리고 실종된 사람들의 수도 63명에 달하는 세계적으로도 손을 꼽는 대형 화재 참사이기도 하다.
마침 대연각 화재가 발생한 날부터 우리 시골 마을에는 마침 전기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그전까지는 석유 등잔불이나 양초, 그리고 좀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석유가 많이 소모되는 램프등을 켜고 지내는 집도 드물게 있었다.
등잔불을 켜고 살다가 어쩌다 양초라도 켜기라도 하면 어찌나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환하고 밝던지……!
난 그때 직장 생활을 하면서 1주일에 한 번씩 고향 집에 들르곤 하였다. 단 하나 밖에 없는 누님은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고향집에는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는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만 계셨다.
옛말에 말을 타다 보면 경마를 하고 싶다고 했던가!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자 난 문득 TV 한 대를 들여놓아야 하겠다는 그 당시로서는 분에 넘치는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이 심심할 때 가끔 재미있게 시청을 하신다면 그보다 더 좋은 효도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의 TV는 모두 네 개의 다리가 달린 진공관식 TV여서 자리도 많이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런 TV였지만, 60호가 넘는 우리 마을에는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는 한 집만이 TV를 들여놓고 시청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를 막론하고 모두가 몹시 부러워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 TV 한 대를 들여놓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TV 값이 만만치 않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늘 근검절약 정신이 뼛속까지 박힐 정도로 몸에 밴 아버지가 TV를 들여놓는 꼴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대부분 다 그랬지만, 나의 아버지의 근검절약 정신은 그야말로 남달랐으며 매우 대단했다.
그 당시에 난 고향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직장에 나가서 하숙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주일마다 한 번씩 집에 올 때마다 고기를 좀 사 들고 오곤 하였다. 그러나 고기를 사들고 오는 걸 보기가 무섭게 당장 갖다 버리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야단을 치시는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이렇게 야단을 치시는 것은 우리가 고기를 사 먹을 돈이 어디 있느냐며 돈이 좀 여유가 있을 때 더욱 아껴야 한다고 펄쩍 뛰며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효도를 좀 하고 싶어도 아버지가 무서워서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또한, 평소에도 돈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일을 하려고 하면 질색을 하며 펄쩍 뛰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꼴을 보기라도 하면 늘 ‘차라리 벌거벗고 은장도나 차라’고 하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시곤 하셨던 아버지였다. 그리고 제발 철없는 짓 좀 그만하고 정신 좀 차리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늘 밤이나 낮이나 오직 일만 하시는 분이었다.
그래도 난 그런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내 고집대로 고기를 사다 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1년 내내 고기 한 점 드시지 못하고 등골 빠지게 논과 밭으로 나가서 일만 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속이 상하고 안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야단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고기를 사 가지고 갈 때면 으레 가방 속에 숨겨가지고 들어가서 아버지 몰래 부엌 부뚜막 위에 몰래 올려놓곤 하였다.
그토록 지독할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골수에 박힌 아버지이셨기에 TV를 들여놓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벌거벗고 은장도를 찰 일이요, 꿈도 꾸지 못할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고집을 꺾고 꼭 무리를 해서라도 TV를 꼭 사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나는 부모님에게 말씀도 드리지 않고 이미 TV를 덜컥 주문해 놓고 말았다.
주문해 놓은 TV는 이미 그날 오후에 자동차로 배달해 오기로 되어 있었다. 어제 이미 TV값도 모두 지불해 놓은 상태였다.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보고 나니 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벌써부터 은근히 걱정이 되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성격에 TV를 보자마자 내동이 치면서 대판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밖에 나와 서성거리며 이제나 저제나 하고 동구 밖을 자주 내다보게 되었다. 그러자 조금 뒤 약속한대로 TV를 실은 자동차가 우리 집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동구 밖에 나타났다. 막상 TV를 실은 자동차가 오는 것을 보니 또 다시 겁이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우리 집에 TV 설치 기사들이 도착하자 난 기사들에게 TV를 잘 설치해 달라는 부탁을 해놓고 부랴사랴 급히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한테 야단맞을 생각을 하니 불안해서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왕에 엎질러진 물이기에 지금으로서는 아버지를 우선 잘 달래드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버지는 그때 마침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셨기 때문에 집에 계시지 않았다. 난 아버지가 나무를 하러 가신 산을 향해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자꾸 걸어갔다. 야단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면서…….
한참 산을 향해 걸어가다 보니 그때 마침 저 앞에서 지게에 나무를 잔뜩 지고 마주 오고 계신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버지를 보니 두려운 마음에 다시 또 가슴이 더욱 벌렁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버지와 만나게 되자 난 그날따라 체면이나 자존심을 송두리째 버린 채 아버지에게 있는 아양 없는 응석을 다 발휘하기 시작했다.
“힘드시죠? 일 좀 쉬엄쉬엄 하세요. 그리고 제가 지고 갈 테니 나뭇짐부터 벗어놓으세요.”
난 우선 아버지가 한사코 괜찮다는 나뭇짐을 빼앗다시피 하면서 억지로 내 등에 짊어졌다. 그리고 기왕에 저질러 놓은 일이며 발등에 떨어진 불이니 어떨 수 없이 이해를 시켜드리기 위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마침 전파사를 하고 있는 잘 아는 사람이 갑자기 TV를 반값에 판다고 하기에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되어 아버지에게 미처 승낙도 받지 못하고 그냥 구입하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TV값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우선 반만 지불했는데 나머지는 다달이 조금씩 부담없이 갚으면 되는 아주 좋은 기회여서 구입했노라고…….
그래서 이미 조금 전에 집에 TV가 들어왔는데 심심하실 때 가끔 보시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그리고 아버지에게 미리 승낙을 받지 못하고 그냥 구입하게 되어 매우 죄송하다고…….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이 모두가 아버지의 불같은 화를 모면하기 위해 내가 꾸며낸 거짓말들이었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셨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날따라 쓰다 달다 아무 대꾸도 없이 지게를 진 내 뒤를 따라오기만 하였다.
이렇게 해서 TV 한 대를 우여곡절 끝에 구입하는데 큰 소동없이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아버님의 말씀대로 돈을 절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유가 좀 있다고 해도 부모님 승낙없이 TV 한 대 구입하기란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운 좋게 첫 번째 관문(?)은 아무 탈 없이 잘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미처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힘들고 귀찮은 일이 매일 벌어지고 말았다.
지금 기억하기에 그 당시에는 아마 TV 방영 시간이 오후 4시 반경에 애국가로부터 시작해서 밤 12시에 애국가가 나오면서 끝이 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집에 TV를 새로 들여놓았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동네 사람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저녁 4시가 되기도 전에 미리 자리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와 앉아서 TV가 방영되기를 기다리곤 하였던 것이다.
방안은 물론이고 방문 바깥까지 서서 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날마다 매진이었고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TV 한 대가 이토록 인기가 좋을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사람들이 늘 그렇게 많이 모여들어 방 안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마치 콩나물 시루처럼 꽉 차게 되자, 그때부터 우리 식구들은 방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없었다. 그 사람들은 밤 12시가 될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곤 하였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 바람에 우리 식구들은 식사를 할 때에도 여간해서는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 저녁 식사 때가 되면 부엌으로 들어가서 부엌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이 벌어지고 말았다.
귀찮고 힘든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어찌나 방에 먼지가 많고 지저분한지 방을 쓸어내고 걸레질을 해야만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런 일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그런 귀찮은 일이 연중무휴로 이어지고 있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TV가 딱 두 대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너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토록 구입하고 싶었던 TV가 그야말로 큰 걱정거리요, 애물단지가 되고 만 셈이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때만 되면 먼저 와서 자리를 차지하려고 미리 방에 와서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내 맘대로 내쫓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고역 중의 큰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좋은(?) TV를 들여놓았음에도 처음부터 아예 TV를 보실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다. 호기심에 잠깐이라도 보실 만도 한데 정말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었다.
막상 TV를 보고싶다 해도 편히 앉아서 보실 자리도 없었지만,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TV를 보면서는 절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TV를 보려고 매일 법석을 떨고 있었지만, 아버님은 늘 사랑방에 혼자 앉아 라디오를 켜고 새끼줄을 꼬거나 멍석, 맷방석, 둥구미 등을 열심히 만들곤 하였다.
그리고 아버님의 말씀은 라디오를 들으면서는 일을 할 수 있어도 TV를 보면서는 일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버님의 철학이며 지론이셨다.
그 뒤로도 TV 시청자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늘어가기만 할뿐,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았다. 어떤 때는 마루는 물론이고 추운 겨울인데도 방문을 열어 젖혀 놓고 앞마당에까지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때는 너무 사람들이 많이 오는 바람에 어느 정도 사람이 방에 차면 어쩔 수 없이 좀 안되긴 했지만, 아예 대문의 빗장을 걸어 닫기도 하였다. 그런 일을 하는 것도 매우 귀찮고 차마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대문을 걸어닫게 되면 아이들이 몰려와서 대문을 열어달라고 대문을 흔들며 끈질기게 애원하는 바람에 몹시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대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애원을 하는 소리는 매일 저녁때마다 끈질기게 오래 계속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몹시 신경이 쓰이면서도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마침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불이야! 불이야!”
느닷없이 밖에서 불이 났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정말 시뻘건 불길이 이미 어두운 밤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부리나케 뛰어나가 보니 우리 집 바깥 마당 건너 편 밭에 쌓아놓은 짚가리에 큰 불이 난 것이었다. 그 짚단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소의 여물로 썰어 끓여주거나 소 외양 깃으로 요긴하게 쓰이는 것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멍석이나 맷방석 새끼줄을 꼴 때 쓰이는 농촌에서는 대단히 귀한 짚단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문을 열어주지 않자 이에 앙심을 품게 된 어느 아이가 짚가리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불이 나자 TV 시청을 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양동이와 물동이로 부근에 있는 공동 우물에서 물을 퍼다가 불을 진압하는 일로 가슴을 쓸어안으며 무사히 하룻밤이 지나고 말았다.
이를 보다 못해 화가 몹시 나신 아버지는 그 뒤로부터 내가 토요일마다 집으로 올 때마다 제발 TV를 갖다 버리라고 성화를 부리셨다. 그러나 그다음 날도 그리고 또 그다음날도 우리 집으로 TV를 보러 오는 사람은 늘 인산인해요, 만원을 이루곤 하였다.
난 그야말로 효도를 하기 위해 TV 한 대를 사놓은 죄로 한동안 참 어렵고 힘든 세월을 보낼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