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피란 중 나룻배 대신 얼음판을 건너던 이야기]
1950년 6월 25일 새벽,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우리 남한의 온 국민은 모처럼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북한군은 갑자기 기습적이며 돌발적인 불법 남침을 감행해 왔다. 이로 인하여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우리 국군은 뜻하지 않은 그들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파죽지세로 후퇴를 거듭하다가 결국 국가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였다. 마침 국제연합군과 우리 해병대는 맥아더 장군의 지휘하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용기와 힘을 얻은 우리 군과 유엔군은 순식간에 38선을 돌파하고 압록강과 함경남도 남쪽까지 진격하게 되자 국토 통일은 곧 눈앞에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해 10월, 중공군(중국 인민지원군)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압록강을 건너오면서 전쟁에 개입하게 되자 11월에는 국군과 유엔군이 이에 맞서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군은 그들의 인해전술을 감당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속절없이 후퇴를 거듭하다가 그 이듬해 1월 4일에는 결국 안타깝게도 서울에도 철수 명령을 내리게 되었으며 그것이 곧 이른바 1.4후퇴였다.
국군과 유엔군들이 적군에게 밀려 후퇴를 하게 되면 그에 따라 민간인들도 덩달아 후퇴가 아닌 피란을 가기에 바빴다.
우리 마을 주민들 역시 6. 25 전쟁으로 인해 한 차례 피란을 갔다가 얼마 전에 겨우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제야 안착을 하고 살게 되나보다 하는 기대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하루하루를 어렵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한두 달도 되지 않아 1.4 후퇴로 인해 다시 피란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중공군들의 개입으로 인해 다시 서둘러 피란길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피란 보따리를 싸기에 바빴다. 그리고 너도나도 남부여대하고 그 지겨운 피란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제 마을 사람들 모두는 이미 하도 피란을 다니면서 많은 고생을 해본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피란 보따리를 싸는 일, 그리고 피란을 다니는 일이 먼젓번보다 훨씬 익숙해진 듯했다.
1.4 후퇴를 하던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가끔 눈도 유난히 많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피란 보따리를 지고 먼저 가야 할 1차 목적지는 서빙고 나루였다. 그때는 한강에 다리라고는 오직 한강 인도교(지금의 한강 대교)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한강 인도교는 이미 지난번에 폭격으로 인해 끊어져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강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만 했다. 그러기에 서빙고 나루로 가서 배를 타고 건너갈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겨우 초등학생인 어린 나이였다. 워낙 입이 짦기도 했지만, 어떻게 된 체질인지 종일 굶어도 배고픈 줄을 몰랐다. 그리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너무나 철이 없어서 그런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조차 전혀 느끼지 못했다. 죽음이 뭔지 이해를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 모두가 피란 생활이 힘들다고들 하지만, 나는 계속 쉬지 않고 힘들게 걷는 일만 빼고는 별로 고생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철부지였다. 마치 어미 개를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새끼처럼 부모님이 가자는 대로 그저 아무 말 없이 쫄랑쫄랑 따라다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내고향 파주에서 서빙고 나루까지는 약 2백 리가 훨씬 넘는 거리였다. 그러기에 이른 아침부터 짐을 싸서 피란 길에 올라 종일 걷다 보니 중간쯤에서 이미 하루해가 지고 말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느 빈집을 찾아들어가서 하룻밤을 새우잠으로 때우고 그다음 날 다시 아침부터 걷기 시작했다. 그때는 집주인이 이미 피란을 가고 비워진 집은 누구나 내 마음대로 들어가서 쉴 수 있어서 내 집과 네 집이 따로 없었다.
날씨는 겨울이어서 눈이 이따금 내리면서 몹시 추웠다. 그렇게 다시 고생 끝에 겨우 저녁때가 되어서야 서빙고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난 그때까지 시골에서만 살았으며 서울이라고는 단, 한 번도 구경조차 하지 못해서 서울 길이라고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아버님은 용케도 서울 지리를 잘 알고 계셨다.
내고향 파주에서 서빙고 나루까지는 약 2백 리가 훨씬 넘는 거리였다. 그러기에 이른 아침부터 짐을 싸서 피란 길에 올라 종일 걷다 보니 중간쯤에서 이미 하루해가 지고 말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느 빈집을 찾아들어가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그다음 날 아침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때는 집주인이 이미 피란을 가고 비워진 집은 모두 내 마음대로 들어가서 쉴 수 있는 내 집이나 다름없었다.
날씨는 겨울이어서 눈이 이따금 내리면서 몹시 추웠다. 그렇게 다시 고생 끝에 겨우 저녁때가 되어서야 서빙고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서울'이란 말만 들었지 서울 구경은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서빙고 역시 전쟁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가본 서울이었다. 길이라고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아버님은 어떻게 된 일인지 서울 지리를 어느 정도 잘 알고 계신 것 같았다.
길을 묻고 물어가면서 이윽고 서빙고에 도착하자 아버님이 갑자기 잠깐 지게를 길에 내려놓더니 우리 식구들에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디론가 혼자 갔다가 금방 돌아오셨다. 알고 보니 나룻배 편을 알아보러 갔다가 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매우 절망적이면서도 낙심한 표정으로 우리 식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낭패가 다 있나! 아, 글쎄 그저께까지는 서빙고 나루에서 배로 강을 건넜다는데 그다음 날부터 이틀동안 갑자기 한강에 얼음이 두껍게 얼어서 지금은 배로 건널 수 없게 되었다니 이를 어쩌면 좋지!”
해도 이미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있었고 별다른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일단 서빙고 부근 어느 빈집을 찾아 들어가서 하룻밤을 다시 묵기로 하였다.
"탕! 탕! 탕……!"
"쾅! 콰다당, 쾅……!"
북쪽에서는 여전히 중공군과 인민군들이 진격을 해오면서 쏘아대는 총소리와 대포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국군들이 이에 대항하면서, 그리고 계속 후퇴를 하면서 마주 쏘아대는 총소리도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다음 날 아침이 다시 어김없이 밝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짐을 챙긴 다음 일단 한강 서빙고 나루로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한강에는 이미 피란민들이 띄엄띄엄 얼음판 위를 걸어 건너가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배로 건너던 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틀 동안 언 얼음 위로 강을 건너고 있다니 그해에 얼마나 강한 한파가 왔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강가로 가까이 가서 얼음판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동안 눈이 많이 내려 사방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들이 건너가고 있는 그곳만은 눈이 쌓이지 않았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고 있는 한강 물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한강 강바닥이 거울을 보듯 선명하게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미 얼음판 위를 띄엄띄엄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줄을 이어 계속 건너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얼음판 위에서 발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요란스럽게 ‘짱짱!’ 소리를 내며 얼음판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얼음장이 깨져내릴 듯 위태로운 느낌에 몹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적군들이 쳐들어오면서 쏘아대는 총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기에 적군들의 총에 맞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얼음판이 곧 깨져 물에 빠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강을 반드시 건너야만 하는 진퇴양난인 기로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얼음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마치 고무로 만든 다리처럼 사람이 건너갈 때마다 쑥 들어갔다가 올라왔다를 반복하며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얼음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다는 위험한 생각에 피란민들은 같은 가족이라 해도 되도록 한두 사람씩 따로따로 떨어져서 그야말로 죽음의 살얼음판을 건너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나 남자 어른들은 그런대로 겁을 내지 않고 성큼성큼 익숙하게 잘 건너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그렇게 잘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썰매를 많이 타던 시절이어서 그나마 얼음 위를 다니는 일에 능숙해진 덕을 톡톡히 보게 된 것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 여자아이들과 아낙네들은 그게 아니었다. 특히 아기를 업고, 그리고 무거운 보따리까지 머리에 이고 건너가던 아낙네들은 하나같이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불과 몇 발자국을 걸어가다가 얼음장이 쑥 들어갔다 나오곤 하는 바람에 지레 겁을 먹고, 급히 성큼성큼 되돌아 뛰어나오는 아낙네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만큼 얼음판 위를 걸어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 것도 큰 원인 중의 하나였으리라.
아윽고 이번에는 우리 가족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강을 건너갈 차례였다. 머리에 무거운 짐을 잔뜩 인 어머니와 나, 그리고 누나가 먼저 따로따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갓난아기를 업은 어느 젊은 아주머니 한 사람이 얼른 보기에도 서툰 걸음으로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몹시 겁이 난 표정으로 균형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몹시 위태롭게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의 간격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내 어깨를 잡으며 자신의 몸을 의지하며 걷게 되었다. 그러자 마침 그 광경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펄쩍 뛰면서 몹시 화가 난 목소리로 그 아주머니를 향해 사납게 소리치고 있었다.
"누굴 죽이려고 왜 남의 아이 어깨를 잡느냐고. 얼른 그 손을 놓고 좀 멀리 떨어져서 건너가지 못하겠느냐고……."
어머니의 무서운 불호령 소리에 기겁을 해서 놀란 아주머니는 내 어깨를 잡았던 손을 얼른 놓게 되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몹시 겁먹은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좀 멀리 떨어져서 걷게 되었다.
앗! 그런데 바로 그다음 순간이었다.
갑자기 '으지직,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장이 깨지면서 조금 전의 그 아주머니가 그만 아기를 업은 채 얼음장 밑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물이 너무나 맑고 깨끗했기 때문에 허우적거리며 물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내려가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연신 두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물속 깊이까지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 참혹한 모습도 생생하게 눈에 보였다.
지금까지 피란을 다니면서 총에 맞아 길바닥에 쓰러져 죽은 사람들은 가끔 보았지만 얼음이 깨지면서 산 사람이 생으로 물속에 빠져 죽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하기는 난생처음이었다. 꼭 나 때문에 그 아주머니가 그런 비참한 경우를 당하게 된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어린 나이었음에도 그 후에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그 광경이 자꾸만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우리 세 식구는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일단 한강 중간에 있는 모래톱까지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래톱까지만 무사히 다다르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모래사장이어서 한강을 건너가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안전지대였다. 그야말로 천행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건너온 강가에서 모래톱까지는 약 7, 80미터쯤 되는 거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린 일단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그제야 뒤를 바라보게 되었다.
피란민들은 아직도 그 위험한 얼음판 위를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둘씩 건너오고 있었다. 적군들이 진격을 하면서 쏘아대는 대포와 총소리들은 점점 더 가까이 요란스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적군들이 이미 서울까지 쳐들어온 것 같다고 하였다.
우리 아군의 폭격기 몇 대가 아까부터 한강의 얼음판 위에 낮게 떠서 마치 매가 공중을 배회하듯 빙빙 계속 맴을 돌고 있었다. 적군들이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오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폭격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당장이라도 곧 폭격을 가할 기세처럼 보였다.
뒤를 돌아보고 있던 우리 식구들은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 식구만 먼저 간신히 무사히 건너온 뒤에야 아직 아버지가 건너오지 못하신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건너온 저 건너 쪽 강가를 바라보니 아버지는 아직도 지게에 무거운 짐을 잔뜩 등에 진 채 강가 여기저기를 헤매며 정신없이 허둥거리고 계셨다.
등에 진 짐도 무거웠지만 이미 얼음이 거의 다 녹아버린 상태였다. 특히 강가 가장자리에 얼었던 얼음은 발을 딛기가 무섭게 깨지곤 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아예 얼음판에 발을 디딜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허둥거리고만 계셨던 것이다.
애를 태우며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듯 우리 남매를 향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다시 건너가서 어떻게 해서라도 아버지와 같이 건너와 볼 테니 혹시라도 아버지와 내가 강에 빠져 죽게 되면 너희들끼리 어디라도 가서 죽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 알겠지?”
“......!”
난 그때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나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여서 그랬는지 그냥 아무 감정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어머니의 그 말씀 한마디가 영영 마지막 작별의 유언 인삿말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자칫하면 부모를 한꺼번에 잃게 된 순간인데도 별로 겁이 나지도 않았다. 만일 어머니와 아버지가 강물에 빠벼 돌아가시게 되면 별수 없이 누나를 의지하며 같이 살아가겠다고 가볍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어리석고 철부지였음이리라.
그 길로 어머니는 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음이 다 녹은 강을 건너 용케도 우리가 금방 건너왔던 강가 아버지에게로 달려가셨다. 우리 남매는 멀거니 서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건너오시게 될까 하는 걱정을 하며 바보나 멍청이처럼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니 바보가 아니라 해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별 수가 없는 일이긴 하였지만…….
강 건너까지 급히 달려간 어머니는 일단 아버지가 진 지게를 얼음판 위에 눕혀서 내려놓게 하였다. 그리고는 짐을 실은 지게에 우선 밧줄을 단단히 묶어 맸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 밧줄을 잡고 앞에서 끌고, 어머니는 작대기를 지게에 대고 힘껏 밀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아버지가 밧줄로 끌고, 어머니는 뒤에서 작대기로 지게를 밀면서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우리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앞에서 힘껏 당기고, 뒤에서는 힘껏 밀게 되자 달려오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러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얼음은 심하게 밑으로 쑥 가라앉았다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있어서 곧 얼음이 깨지면서 모두 가라앉을 것만 같은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누나의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여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는 피를 말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하늘이 도왔는지 신이 도왔는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물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우리 곁으로 오는 일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자 우리 식구들 모두 저절로 안도의 긴 한숨이 나왔다.
“아, 이제 우리 모두 살았구나!”
어머니는 갑자기 우리 남매를 꼬옥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눈에서도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누나와 나는 여전히 뭐가 뭔지를 몰라 얼떨떨하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아직도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하마터면 누나와 나는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고아 신세가 될 뻔한 불행한 위기를 천만다행으로 넘겼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뻐하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뜨르르륵~~~ 꽈다다당~~~~”
지금까지 얼음판 위에서 빙빙 맴을 돌고 있던 폭격기가 갑자기 얼음판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폭격 소리와 함께 얼음장들이 공중으로 높이 날아다니며 한강을 덮고 있던 얼음들은 모두 날아가고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몇 명인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뒤늦게 얼음판을 건너오고 있던 피란민들도 비행기 폭격에 의해 안타깝게도 모두 강물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 우리 가족은 참으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우리 가족들도 조금만 더 늑장을 부리고 지체를 했더라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슬아슬하면서도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로 이처럼 끔찍한 추억이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우린 그제야 다시 모래톱에서 짐을 챙긴 다음 피란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한강 모래톱 여기저기에는 그동안 여러 날 내린 눈들이 바람에 날리며 한데로 모이고 쌓여 어떤 곳은 무릎 위까지 찰 정도로 높게 쌓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앞장서서 몇 걸음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어머니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혀를 끌끌 차고 계셨다.
“어이구,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이거 가엾어서 어쩌면 좋으니!”
어머니가 잠시 머리에 이고 있던 보따리를 내려놓고 멀거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갓난아기였다. 포대기에 둘둘 말아 쌓인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아기는 울지도 않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우리 가족들을 바라보며 귀여운 모습으로 귀엽게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아기의 포대기 앞섶에는 아주 작은 삶은 감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아기의 엄마가 피란을 가다가 너무 힘에 겹고 지쳐 그만 아기를 버리고 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을까!
그 뒤에도 확실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렇게 버려진 아기를 두어 명은 더 본 것 으로 기억하고 있다.
난 언젠가 어느 젊은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여성들마다 이구동성으로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내 이야기를 거짓말 하지 말라고 부정하고 있었다. 아니 부정 정도가 아니라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은 다시는 꺼내지도 말라고 펄쩍 뛰며, 그리고 듣기 싫다며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난 그 이야기를 한번 꺼냈다가 그만 뜻밖의 무안을 당하고 만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이 이야기를 되도록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얘기해 봤자 또 거짓말이라는 핀잔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여성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로 당장 거짓말이라고 일축해 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백번 그 여성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 남기도 하였다. 어머니의 몸을 모두 바쳐서라도 자식하나만은 반드시 살려보겠다는 강한 희생정신과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어머니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전쟁 때 아기를 버리고 갔던 그때의 어머니들의 심정도 한번쯤은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러기에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해 주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모성애와 살신성인 정신을 발휘하여 기차나 자동차에 치여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한 자식을 간신히 살려내고 그 대신 어머니가 목숨을 잃게 된 안타까운 사건이 얼마나 많던가.
또한, 내 몸의 일부를 떼어서라도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며 자식을 위해 희생한 거룩한 어머니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 모든 일들이 순간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전쟁은 그런 상황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힘에 겨워도 약 한 달이나 두 달만 견디어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실한 보장만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아기를 버릴 어머니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지독하도록 강한 모성애와 거룩한 희생정신을 발휘해 가면서라도 견디어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으로 인해 그때 어머니들은 이미 몇 달 또는 몇 년째 굶주림에 지치고 고된 피란살이에 지쳐 언제 자신도 죽게 될지 모르는 몸이고 내 몸 하나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지치고 지친 상태였으리라.
우선 엄마가 먹지를 못해 젖은 나오지 않아 아기에게 젖도 못 먹이고, 지치고 지친 상태에서 그리고 언제 폭격을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기를 끝가지 몸에 품고 다닐 수가 있단 말인가.
또한, 어머니들 모두가 다 그렇게 아기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당시 가뜩이나 지치고 지친 몇몇 어머니들은 다른 어머니들이 버린 아기를 보는 순간, 순간적으로 충동심리 내지는 군중 심리라는 게 발동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들이 버리고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도 순간적으로 버릴 수밖에 없는…….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역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난 아무런 답변을 할 수도 없고 이제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 그 생생했던 상황을 사진으로 남겨놓았거나 그 밖에 다른 증거가 내겐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까 지금은 그저 아쉬움만 남을 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