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구는 지금 화가 잔뜩 나 있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동생한테 된 소리 안 된 소리 마구 지껄여대고 있었을 성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닙니다. 동생이 옆에 있는데도 전혀 말을 걸지 않습니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문 채 시무룩한 얼굴로 만화책만 건성으로 뒤적거리고 있습니다.
민구는 그런 형의 표정을 보자 공연히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형의 눈치만 슬금슬금 살피면서 장난감들만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성구가 이렇게 화가 나게 된 것은 바로 자전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조금 전의 일이었습니다.
“민구야, 우리 자전거 타러 갈래?”
형이 갑자기 민구에게 물었습니다.
“형, 두 발 자전거 말이야.”
“형이 두발 자전거 탈 수 있어?”
“그러엄, 민구야, 너 이제 보니까 형을 우습게 아는 모양이구나?”
성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민구는 눈이 둥그렇게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형이 그걸 언제 배웠어?"
"너 아직 소식이 깡통이구나? 자, 이걸 보여 줘도 못믿겠어?”
성구는 이렇게 말하고는 곧 양쪽 팔과 다리, 그리고 무릎을 민구 앞에 내보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형의 팔꿈치와 무릎에는 아직도 채 아물지 않은 크고 작은 상처투성이들이눈에 보였습니다.
상처를 본 민구가 낯빛을 찡그리며 놀란 얼굴로 물었습니다.
형! 왜 이렇게 많이 다쳤어? 많이 아프겠다!”
“이 바보야, 그래도 모르겠단 말이야? 이게 다 두 발 자전거를 배우다가 다친 거란 말이야.”
성구는 아프지도 않은지 오히려 그 상처들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으스대며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민구가 다시 물었습니다.
“두 발 자전거가 어디 있는데? 우린 아빠가 저번에 사다 준 세 발 자전거밖에 없잖아?”
“요즈음 말이지. 학교에 가보면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이들이 부쩍 많아졌어, 우리 반 아이들도 많아. 그래서 우리 반 친구들한테 가끔 빌려서 배우게 된 거야.”
“형, 그럼 이제 두 발 자전거 잘 타겠네?”
"그러엄, 잘 타고말고. 너만 한 아이 하나쯤 뒤에 싣고 달리는 것은 이제 식은 죽 먹기란 말이야."
"우와아, 형이 그렇게 잘 타?”
"그러엄, 그러니까 같이 가자는 거 아니니?"
“그럼 자전거가 어디 있는데?”
“그런 건 걱정 말고 나만 따라오란 말이야. 지금도 학교 운동장에 가면 우리 반 아이들한테 빌려 타볼 수 있을 거야.”
“우와! 신난다!”
민구는 저절로 신바람이 나서 크게 손뼉을 치면서 소리쳤습니다.
민구의 손을 잡은 성구는 그 길로 곧장 학교 운동장을 향해 급히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한 점 없이 따가운 햇볕만 내려쬐고 있는 한여름의 날씨는 정말 이만저만 더운 게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더워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습니다.
바람도 전혀 불지 않아서 나뭇잎들도 마치 누가 그려놓은 그림처럼 조금도 움직일 줄을 모르고 죽은 듯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학교를 향해 정신 없이 달리고 있는 민구와 성구의 몸은 이미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문에 들어서자, 운동장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실피고 있던 성구가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히야! 저기 마침, 내 친구가 운동장에 남아 있구나, 저 애가 우리 반 친구란 말이야.”
운동장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아직도 집에 가지 않고 운종장을 빙빙 돌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성구는 운동장 저쪽에서 빨간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는 남자아이를 향해 쫓아가며 소리쳤습니다.
"영구야! 잠깐만 멈춰 봐. 그리고 나도 운동장 한 바퀴만 타보자, 응?”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어엉, 저리 비켜! 빨리 비키란 말이얏!”
성구의 목소리에 잠깐 힐끗 한눈을 팔던 영구는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구를 항해 소리치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성구도 놀라 쩔쩔매며 자전거를 피하다가 그만 둘은 함께 운동장에 나뒹굴고 말았습니다.
“어이쿠!"
“아얏!”
성구가 겁에 질린 채 쓰러진 친구를 부축해 일으켰습니다.
“영구야, 미안해, 많이 다치지는 않았니?"
성구가 미안한 얼굴로 우선 영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영구는 있는 대로 오만상을 찡그린 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소리쳤습니다.
“듣기 싫어. 저리 비켜! 이게 다 너 때문이란 말이야!”
그러나 다행이었습니다. 영구는 그나마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무릎이 약간 까졌을 뿐이었습니다.
“미안해, 정말 내가 잘못했어. 자, 일어서봐, 응?”
성구는 친구를 일으켜보려고 부축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아까보다 더욱 화가 나서 얼굴을 찡그리며 형의 부축하고 있는 형의 손을 홱 뿌리쳤습니다.
“비켜! 다 필요 없어. 앞으로는 절대로 너한테 자전거를 빌려주지 않을 거란 말이야.”
친구는 이렇게 사납게 쏘아붙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저전거를 끌고 절룩거리며 교문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친구의 뒷모습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성구가 맥이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짜아식, 저전거만 있으면 뵈는 게 없나? 자 가자, 민구야.”
분한 마음에 성구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공연히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입을 꾹 다문 채 만화책만 뒤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혀엉!”
한동안 형의 눈치만 슬금슬금 살피면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민구가 형을 불렀습니다.
“왜 불러?”
성구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만화책을 뒤적거리며 틍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아까 형 친구 말이야. 내가 봐도 정말 나쁘더라. 그치? 형이 그만큼 잘못했다고 빌었으면 그만이지, 왜 자꾸 화만 내난 말이야, 안 그래, 형?
"그래, 그놈 아주 나쁜 자식이야. 다시는 자전거를 빌려 달라고 하지 마. "
"형! 그리고 이제 그 자전거 치사하니까 다시는 빌려달라고 하지 마. 알았지?"
"그래, 빌려준다고 해도 그까짓 치사한 자전거를 누가 타기나 한대? 치이-“
민구가 형의 편을 드는 바람에 성구는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민구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혀엉! 이렇게 하는 게 어때?"
“뭘 말이야?”
“그까짓 거 치사하게 자꾸 빌려 달라고 할 게 아니라 말이지.”
“그래서?”
“우리도 아빠한 테 자전거 한 대만 사달라고 조르면 될 게 아니야? 내 생각이 어때?”
“그건 절대로 안 돼.”
“왜 안 되는데?”
“내가 벌써부터 그동안 아빠나 엄마한테 얼마나 졸랐는지 넌 몰라서 그런단 말이야.”
“그래? 그랬더니 뭐래?”
“그때마다 돈이 없어 못사준다고 하면서 번번이 이다음으로 미루곤 했단 말이야."
“자전거 한 대에 얼만데?"
“굉장히 비싸대, 아마 모르긴 해도 웬만하면 십 만원쯤 하는 거 같더라구.”
“우와! 자전가 되게 비싸네!”
민구는 하품을 할 때처럼 입을 딱 벌린 채,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맥이 빠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언제쯤에나 사줄 수 있대?"
“그건 나도 잘 몰라. 여유가 좀 생기면 사준다고 하면서 항상 다음으로 미루니까 말이야. 에이 그놈의 돈이 뭐길래 항상 돈 타령들이람?”
“…….”
성구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민구는 더 이상 묻지를 못하고 덩달아 시무룩해지고 말았습니다. 성구와 민구는 다시 한동안 한숨만 뒤며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성구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참! 민구 너 저번에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그랬지?”
"언제?”
“저번에 아빠가 너한테 물어 봤을 때 아마 돈이 많은 자가용 운전사가 되겠다고 했을 걸, 나는 무슨 물건이든지 발명할 줄 아는 척척박사가 되겠다고 대답했고 말이야.”
“아하, 이제야 생각이 났어. 그래, 그때 내가 형한테 그랬지? 만날 공부도 안 하고 놀기만 좋아하면서 어떻게 척척박사가 될 수 있느냐고 말이야."
"그래, 맞았어. 그럼 넌 지금도 자가용 운전사가 되고 싶니?”
"응. 형은?”
“난 척척박사 대신 그림을 잘 그리는 미술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어. 그 결심은 바로 조금 전에 하게 된 거야.”
“왜애?”
"내가 그렇게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란 말이야.“
성구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저도 모르게 입이 저절로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생각만 해도 저절로 신바람이 나는지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민구야, 잉제부터 형 말을 잘 들어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갑자기 바보란 생각이 들었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민구야, 내 말좀 잘 들어봐. 왜 사람들은 만날 돈 타령만 해대고 돈은 만들 줄 모르느냔 말이야. 안 그러니?”
"아하! 그러니까 형은 정차 미술가가 되어 돈을 그대로 그려서 마음 대로 쓰겠다. 이 말아니야?“
"그래, 맞았어. 바로 그거야. 역시 너는 내 동생이라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는구나. 내 생각이 어떠니?”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형이 진짜 돈처럼 똑같게 그틸 수가 있을까?”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열심히 그림 공부를 하면 아마 문제없을 거야. 난 그림 그리기는 소질이 좀 있거든.”
성구는 이렇게 말하고는 당장 그림물감과 도화지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붓과 가위도 준비했습니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이야.”
성구는 도화지를 가위로 여러 장을 정성껏 잘랐습니다. 그리고는 천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를 열실히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민구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형, 기왕이면 천 원이나 오쳔 원짜리를 그리지 가장 비싼 5만 원짜리를 그리는 게 어때?”
“아하, 그렇구나! 역시 넌 형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혜헤헤…….”
“히히히…….”
성구와 민구는 서로 히히덕거리며 이번에는 5만 원짜리를 그려나가기 시자하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고 정성껏 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저녁때가 되자 회사에 나갔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더니 조금 뒤에 아빠도 돌이왔습니다.
어느 틈에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던 아빠가 살며시 도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아빠가 들어간 것도 모를 정도로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방해가 될 게 염려되어 도로 나온 것입니다.
"여보, 저 녀석들이 뭘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있지?“
아빠의 물음에 엄마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왜 아이들한테 직접 물어보지 그러셨어요? 호호호 …….”
“내가 방에 들어간 것도 모르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기에 내가 슬쩍 물어보긴 했지.”
“그랬더니요? 호호호…….”
“이 사람이 자구만 웃기는, 그랬더니 아빠는 몰라도 된다면서 대꾸도 안 하고 그림만 그리고 있더라고.”
“얼른 봐도 알 수 있는 그림인데 그게 무슨 그림인지 몰랐다고요?”
“그래? 그게 도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데?”
“성구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바로 5만 원짜리 돈이란 말에요. 호호호……. 이제 당신이나 나나 똑똑한 이들 하나를 둔 덕분에 머잖아 돈방석에 올라앉게 됐지 뭐에요. 호호호…….“
"아니, 뭐야?"
아빠는 아직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두 눈이 둥구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여전히 저절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억지로 참으면서 돈을 그리게 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이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아갑자기 큰소리로 웃어대고 있었습니다.
“으하하하……, 마침내 조만간 우리 집에 무허가 은행이 하나 생기게 되었군. 하하하…….”
“호호호……, 그 게 다 당신이 똑똑한 아들을 둔 덕분이지 뭐예요? 호호호……."
아빠와 엄마가 한바탕 크게 웃음보를 터뜨리자 성구와 민구가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이 둥그렇게 된 채 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성구한테 먼저 물었습니다.
“네가 돈을 그려서 자전거를 사겠다구? 자전거가 그렇게 갖고 싶었다면 내가 당장 내일 사주마. 하하…….”
아빠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그게 정말이세요?”
민구와 성구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아암, 정말이구말구. 아빠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니? 그 대신 돈은 열심히 그려서 이다음에 아빠가 돈이 떨어지면 갚아야 한다. 알겠니? 하하하…….”
“네, 알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틀림없이 갚을 생각었어요.”
성구의 대답 소리를 들은 아빠와 엄마는 또 다시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왜 그렇게 웃기만 하세요?“
성구가 알 수 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아빠와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아마 아빠와 엄마가 오늘은 허팟줄이 끊어졌나 봐.“
성구와 민구의 말에 아빠와 엄마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지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밖에서는 어느새 무더운 한여름 저녁의 땅거미가 소리 없이 내려 덮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