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였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길남이는 엄마가 정성껏 미리 차려준 점심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합니다. 보나 마나였습니다. 오늘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 일이 그렇게 급하다는 것을 엄마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에이구, 좀 천천히 먹으렴, 누가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한다든? 얘가 도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성미가 급하담.”
길남이의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엄마가 몹시 걱정스럽고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길남이를 나무랍니다.
그러나 길남이에게 있어서 그런 잔소리는 언제나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엄마의 말은 들은 둥 마는 둥 입이 금방 터져나갈 정도로 음식을 욱여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너무 많아서 씹기조차 어려운지 두 눈을 꿈벅거리면서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꺽거리며 삼키고 있습니다.
“어이구, 이 녀석아, 제발 천천히 좀 먹어라. 누가 빼앗아 먹기라도 한다든?”
엄마가 몹시 걱정이 되어 다시 이렇게 나무라보았지만, 길남이는 여전히 보기만 해도 안스러울 정도로 여전히 허겁지겁 씹어 삼키고 있습니다.
“끄으윽~~, 엄마, 나 친구들이랑 밖에서 놀다가 돌아올게, 알았지?”
눈 깜짝할 사이에 금방 밥 한 그릇을 비워버린 길남이는 마치 용수철에 튕긴 것처럼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아, 이 녀석아, 아무리 노는 것도 급해도 물은 마셔야 할 게 아니니?“
“저 애가 이 다음에 뭐가 되려고 점점 저 모양이람.”
그런 길남이를 보자 엄마는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는 길남이의 꽁무니를 쫓아가다가 방문이 ‘꽝’ 하고 닫히는 바람에 그 소리마저 방안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면서 또 다시 걱정에 잠깁니다.
엄마는 생각할수록 그렇게 속이 상할 수가 없습니다. 길남이가 엄마에게는 귀하게 얻은 단 하나뿐인 아들입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 훌륭히 키워 보고 싶은 것이 엄마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보란 듯이 자랑을 해보고 싶은 것이 엄마의 단 하나뿐인 소망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길남의의 태도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열이면 열 단 한 가지라도 엄마의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그래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잘 따르던 길남이였습니다. 그런데 차츰 나이를 먹어가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말을 듣지도 않아서 엄마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말이라고는 귓등으로 듣지도 않던 길남이는 이제 동네에서는 이름난 개구쟁이요, 말썽꾸러기로 소문이 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랬습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를 하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신신당부를 했지만, 그 모두가 쇠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녀오기가 무섭게 툭하면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말썽꾸러기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틈이 나는 대로 친구들을 괴롭히고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곧잘 하던 공부도 이제는 바닥을 도맡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길남이 덕분에 엄마는 종종 학교 선생님의 부름을 받아 창피를 당하기도 하고 상담도 많이 받아왔습니다. 엄마로서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후유, 도대체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한담!“
엄마는 그동안 이름난 심리상담소에 자주 가서 상담도 해보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쫓아가서 사람이 좀 되도록 잘 좀 지도를 해달라고 부탁도 해보고 애원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길만이에게는 그런 약발들을 전혀 듣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길남이를 너무 귀엽게만 키웠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엄마는 실망과 허탈감 때문에 날이 갈수록 착잡해지기만 하였습니다.
그날 저녁때였습니다.
온 동네방네로 쏘다니며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던 길남이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다가 땅거미가 내릴 무렵에야 겨우 제집이라고 그나마 용케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집에 다다른 길남이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안에서 엄마와 아빠가 큰 소리로 싸우고 있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글쎄, 그 녀석이 그렇게 된 것은 당신의 책임이 크단 말이야!”
“…….”
“당신이 집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웠기에 그 모양이냔 말이야?”
“…….”
지금 집안에서는 아빠가 엄마를 향해 계속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쥐죽은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히 길남이 자신 때문에 엄마가 아빠한테 야단을 맞고 있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아빠의 거친 목소리는 집안이 쩌렁쩌렁할 정도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게 내가 늘 뭐라고 했소? 귀여운 자식일수록 여행을 보내라는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차비 하나 없이 보내는 고생스런 여행 말이오. 그러니까 내 말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따끔하게 길러야 한단 말이요.“
“…….”
“난 당신이 알다시피 자원해서 해병대를 나갔던 해병대 출신이란 말이오. 난 그 애가 자라면 우선 혹독한 고생을 기키기 위해 나처럼 해병대에 지원하게 할 생각이요. 그러면 당장 부모의 마음은 괴롭고 아프겠지만 그래야 고생을 알고 의젓하고 사나이다운 인간이 될 수 있을 게 아니겠소?”
“…….”
숨을 죽인 채 밖에서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길남이는 더럭 겁이 났습니다.
지금까지 아빠가 저렇게 화가 나서 큰 목소리를 치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큰 죄라도 저지른 듯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는 엄마가 너무 불쌍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빠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어요. 두고 봐요. 내일부터는 그 녀석 버릇을 내가 고쳐보겠소.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그놈 매일 이를 닦지 않는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이를 닦지 않을 때마다 밥을 굶긴다 굶긴다 하면서도 지금까지 단 한 끼도 굶겨본 적이 있소 없소?
당신은 늘 말만 앞섰지 굶겨본 적은 없지 않소? 매사가 다 그 모양이니까 그 녀석이 당신 말을 우습게 여기고 말을 듣지 않게 된 거란 말이오. 이제 알아들었소? 두고 봐요. 내가 이부터 닦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할 테니까.”
“…….”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은 길남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가 푹 숙여졌습니다. 야단을 맞고 있는 엄마가 너무 불쌍하고 미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화를 내며 소리치고 있는 아빠가 조금 야속하기는 하지만 그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였습니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제가 그동안 너무 엄마 말을 안 듣고 속을 썩혀 드려서……. 내일 아침부터는 당장 이도 잘 닦고 무슨 말씀이라도 잘 들을게요.’
이렇게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길남이의 눈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맺혀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우리 길남이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를 닦으란 말을 하기도 전에 스스로 이를 닦고 있다니? 내일은 어쩌면 서쪽에서 해가 뜨겠구나!“
아마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스스로 이를 닦고 있는 길남이를 본 엄마가 놀란 얼굴로 이렇게 소리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흐뭇하고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닦고 있는 자신을 덥석 껴안고 좋아할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런 길남이의 이슬 맺힌 얼굴에도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