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이 수줍은 듯 서산 너머로 얼굴을 슬며시 감추자, 사방은 차츰 엷은 회색빛깔의 어둠으로 덮여가고 있었습니다.
은주는 지금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동산 밑에 있는 조그만 개울가에 와서 혼자 쪼그리고 앉아있습니다. 그리고는 매우 심각해진 표정으로 손을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흥, 엄마는 뭐가 그리 예쁘다고 나보다는 동생만 더 좋아하고 있지?”
은주는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니,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누구한테 쫓겨난 게 아닙니다. 우선은 가장 먼저 엄마가 밉고, 동생도 미워서 은주 자신이 스스로 집을 나와버리고 만 것입니다.
“흥, 엄만 정말 미워! 거짓말쟁이란 말이야. 내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맨날 귀가 아프도록 떠들어 대더니 피이, 내가 없으면 어디 얼마나 더 재미있게 잘 사나 두고 보라지.”
은주는 그토록 미운 엄마와 동생, 그리고 아빠를 버리고 아예 집을 나와버린 것입니다.
은주는 집에서 나올 때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혹시 엄마와 아빠가 집을 나온 은주를 찾아와서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해도 절대로 뿌리칠 생각입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싹싹 빌면서 그전처럼 다시 자신만을 사랑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기 전에는 절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굳게 다짐을 한 끝에 결국 집을 뛰쳐나왔던 것입니다.
어른들의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렇게도 은주를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금덩이처럼 귀여워 해주던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동생이 생기기가 무섭게 하루아침에 싹 변해버렸으니까요.
바로 오늘 낮에 엄마의 표정이나 행동만 봐도 그랬습니다.
은주는 오늘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이 있었는데 기분 좋게 백 점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백 점을 받은 아이가 겨우 세 명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분이 좋고 신바람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해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게 되면 학교에서 잘 된 작품을 골라 과제물 전시회가 열리곤 했는데 은주는 거기서 상장을 두 장이나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기 쓰기와 그림을 잘 그려서 받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의 칭찬까지 받게 되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은주는 방학 숙제도 아주 정성것 잘 해왔지만 방학 동안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오늘 받아쓰기도 백 점을 받게 되어 선생님 마음이 얼머나 기쁜지 몰라요. 여러분들도 앞으로 모두 은주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어린이가 되도록 힘써주시길 바랄게요.”
선생님의 칭찬에 은주는 그만 얼굴이 빨갛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기분은 너무 좋았습니다. 마치 하늘 높이 날아갈 것처럼 뛸 듯이 기뻤습니다.
‘후후훗……. 엄마가 아무리 동생을 좋아해도, 내가 받은 상장과 백 점짜리 시험지를 보여주면 아마 좋아서 펼펄 뛰면서 기뻐할걸!’
은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학교 공부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임마는 그때 마침 동생을 재우기 위해 숨소리조차 죽이고 동생의 등을 토닥토닥 두리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나 오늘 받아쓰기 시험에서 백 점 받았어! 그리고 이렇게 상장을 두 장이나 받구…….”
그러나 몹시 기뻐서 미칠 듯이 좋아할 줄 알았던 엄마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쉿! 그래. 알았다, 알았어. 조용히 하란 말이야. 지금 한창 아기가 잠이 들려고 하던 참인데 아기가 깨면 어쩌려구 눈치도 없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이 야단이니? 으이구,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쯧쯧쯧…….”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뻐서 신바람이 났던 은주의 표정은 금방 시무룩해지고 말았습니다. 김이 팍 새고 말았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은주를 으스러지도록 꼭 껴안고 뽀뽀도 해주면서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해 주던 엄마였지만 오늘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은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흥, 엄마는 이제 내가 백 점을 받든, 상장을 받든 나한테는 아무 관신이 없다 이거지? 그리고 오직 아기 밖에 안 보인다 이거지?’
은주는 금세 토라진 얼굴이 되어 입을 쑥 내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거실로 나오자마자 책가방을 마룻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치고 말았습니다.
“꽈다당!’
책가방을 동댕이치는 요란한 소리에 이제 막 잠이 들려던 아기가 깨어 자지러들 듯한 목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으앙, 으아앙…….”
그러자 곧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잔뜩 화가 난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아니, 너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못 됐구나! 아기가 제때 잠을 자지 못하면 하루 종일 얼마나 보채는지 너 알기나 해? 네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밖에 나가서 놀든지 네 맘대로 하란 말이야!“
엄마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다시 아기를 재우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치이, 엄마는 이제 내 꼴조차도 보기 싫다 이 말이지? 알았어. 그렇다면 속 시원하게 내가 이 집에서 나가버리면 될 거 아니야?”
은주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화가 잔뜩 나서 그 길로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몇 번이고 하게 되었습니다.
“부엉, 부우엉…….”
저녁때가 지나고 짙은 어둠과 함께 어느새 밤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이따금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올 뿐, 사방은 온통 무섭도록 고요하기만 합니다.
밤이 되면서 은주는 차츰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서운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타날 것만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렇다고 도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래저래 속만 상하고 애만 타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홍,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엄마한테 괜히 동생을 낳으라고 졸라댔지 뭐야!’
전에는 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동생 하나만 낳아달라고 얼마나 얼마나 졸랐던지 모릅니다.
‘흥, 그건 그렇고. 엄마나 아빠는 왜 아직까지 나를 찾을 생각조차 안 하고 있지? 이대로 그냥 도로 집으로 돌아가 내릴까! 그건 절대로 안돼! 그까짓 꼴조차 보기 싫은 동생과 엄마가 있는 집에는 이제 죽어도 들어가지 않겠단 말이야!’
은주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걱정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산에서 귀신이나 유령이 나타날 것만 같아 그게 더 큰 걱정이었습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머리털이 빳빳하게 곤두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은주야! 우리 은주 어디 있니?”
그때 마침 멀리서 큰소리로 은주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은주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반갑다는 생각에 얼른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엄마아! 나 여기 있어! 금방 갈게에~~~!‘
은주는 대답을 하기가 무섭게 엄마가 부르고 있는 쪽을 향해 허둥지둥 급히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무서웠던 마음도, 그리고 엄마와 동생을 미워하던 마음도,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모두 한꺼번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