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철이는 아까부터 가끔 동수의 눈치를 살피며 괜히 히죽히죽 웃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조금 전부터 동수의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동생인 동수의 곁으로 살며시 다가왔습니다. 연신 히죽이죽 웃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수상합니다.
동생 동수는 전혀 형의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지금 한창 방바닥에 엎드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형의 수상한 표정을 알 리가 없습니다.
동철이는 아까부터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연신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잘그락~~ 잘그라락~~~”
동철이의 주머니 속에서는 동전끼리 서로 맞닿아 부딪히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수의 눈치만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던 동철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동수야, 우리 슬쩍 바깥에 나갔다. 올래?"
“형, 바깥에 어디?”
동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습니다.
“이 바보야, 어딘 어디야? 척하면 알아들어야지.”
여전히 동수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동철이의 표정은 약간 겁에 질려 있습니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동수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정말 큰 일입니다. 나중에 엄마한테 고자질이라도 하게 된다면 당장 날벼락이 떨어질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형! 지금 집 보다 말고 혹시 오락실에 가자는 거 아니야?“
동철이는 우선 입안에 고였던 군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그리고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동수가 여전히 겁먹은 표정으로 형에게 물었습니다.
“형, 그러다가 만일 엄마한테 들키면 어떡하려구?”
“이 바보야, 엄마가 오늘은 시장을 보러 갔다가 좀 늦게 오신댔잖아. 이런 때 안가면 언제 가니? 그런 건 걱정말고 자, 빨리 일어서라니까.”
동철이의 설명에 순간 동수의 얼굴이 활짝 피어납니다.
“정말 괜찮을까?”
“글쎄 나만 믿으라니까 그러네. 그런데 동수 너 엄마나 아빠한테는 절대로 비밀을 지켜야 한다? 저번에 처럼 이르지 말고, 알았지?”
“응, 알았대두.”
동철이는 곧 동수의 손을 잡고 아파트를 빠져 나갔습니다. 아파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곧바로 시장 골목이 나타납니다. 시장 골목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락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피융, 핑, 뾰옹, 뾰로롱~~~”
오락실마다에서는 기계에서 나오는 갖가지 요상한 소리들이 귀가 아프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윽고 오락실로 재빨리 들어서고 있는 동철이와 동수는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동수야, 여기 빈 자리가 있다. 넌 여기 앉아서 해. 난 저쪽에 가서 할 테니까.”
“응, 알았어.”
동수는 백 원짜리 동전을 기계 속에 넣은 다음 오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쪽에 가서 자리를 잡은 동철이도 동수를 향해 한쪽 눈을 한번 꿈벅해 보이고는 곧 오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재수가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아빠가 아침에 출근할 때 두 형제에게 용돈으로 5백 원짜리 동전을 두 개나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후에는 엄마가 다시 시장에 가면서 5백 원짜리 동전을 한 개씩 주었습니다. 시장에 갔다 오는 동안 싸우지 말고 집을 잘 보라고 준 것입니다.
동수가 한창 신나게 오락을 하고 있을 때, 동철이가 슬그머니 다가왔습니다. 보나마나 돈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동수야, 너 오락 참 잘하는구나. 백 원짜리 하나를 넣고 여태 죽지 않았잖아?”
“응, 오늘은 아주 잘 되는걸. 형은?”
동수는 신이 난다는 듯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물었습니다. 동수는 오락이 너무 잘 되어 흥분을 해서 그런지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습니다.
“에이, 넌 재수가 없어서 금방 천오백 원만 모두 날렸어. 동수야, 너 5백 원짜리 한 개만 좀 빌려줄래? 이다음에 용돈이 생기던 두 배로 갚아 줄게, 응?”
“싫어. 그건 안돼. 만일 이따가 죽으면 난 뭘로 하란 말이야?”
동수는 한마디로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동철이는 더욱 바짝 동수의 옆으로 다가가서 어깨까지 껴안으며 보채고 있었습니다.
“야아, 그러지 말고 한번만 봐주라, 으응?”
동철이가 어깨를 껴안는 바람에 그만 동수의 게임이 망치고 말았습니다.
“으이그, 난 몰라, 이게 다 형 때문이란 말이야.”
동수는 몹시 아깝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래, 미안하게 됐구나. 그러게 돈을 얼른 주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게 아니니?”
“싫어! 형을 주고 나면 난 돈이 없는데 뭘로 하란 말이야!”
동수와 동철이는 그만 오락실 안에서 화까지 내면서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때였습니다.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동철이가 얼른 문을 열었습니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물건이 가득 담긴 시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동철이와 동수를 향해 활짝 밝아진 얼굴로 물었습니다.
“어이구, 착하기도 해라. 너희들 오늘 어디 나가지도 않고 집을 아주 잘 보고 있었구나?”
“…….”
동철이는 대답 대신 고개만 약간 끄덕이며 엄마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치가 워낙 빠른 엄마가 그걸 모를 리가 없습니다. 엄마가 들어왔는데도 동수는 본체 만체입니다. 화가 난 얼굴로 방구석에 혼자 앉아있는 것만 보아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동수야, 무슨 일이 있었구나?”
“…….”
엄마가 이번에는 동수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동수는 너무 억울했지만 입이 얼른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그저 형만 몹시 얄미웠습니다.
아까 오락실에서 강제로 돈을 빼앗다시피 하여 혼자만 오락을 했던 형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당장 엄마한테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다가 도로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만일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다가는 형은 당장 호되게 혼을 내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너희들 둘이 싸웠구나?”
엄마가 이번에는 다시 동철이에게 물었습니다.
“…….”
동철이는 약간 겁이 난 얼굴로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동수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 녀석들이 갑자기 꿀 먹은 빙어리가 됐나? 너희들 무슨 일이 있었지?"
엄마의 다그치는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겁이 났음인지 동수가 마지못해 형의 눈치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용서해 주셔요. 아까 형하고 나하고 집을 비우고 오락실에 갔었어요.”
“아니 뭐가 어쩌구 어째? 그럼 누가 먼저 거길 가자고 그랬니, 응?"
엄마의 눈꼬리가 갑자기 위로 올라갔습니다.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습니다.
“혀, 형이 먼저 가자고 그랬어. 그리고 오락실에 가서는 내 돈도 빼앗고…….”
“아니 뭐가 어쩌구 어째? 당장 총채 좀 찾아와! 아니 이 녀석들이 저번에도 그렇게 혼이 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지? 더구나 큰 녀석이 동생을 살살 꾀어서 그런 델 끌고 다녀?”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동철이와 동수에게 종아리를 걷게 하였습니다.
“엄마, 다시는 안 그럴래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네?”
동철이는 금방 울상이 되어 엄마에게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싹싹 빌기 시작했습니다.그걸 본 동수도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안돼! 너희들은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릴 녀석들이란 말이야.”
동철이와 동수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마다 임마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이번에도 총채 자루를 거꾸로 잡고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힘껏 때리는 바람에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고 종아리는 금방 피가 맺히고 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안방에서는 갑자기 엄마와 아빠가 큰소리로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문득 잠에서 깬 동수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여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이들을 그토록 몹시 때리는 사람이 어디 있소? 아이들 종아리를 보니까 아주 엉망이 됐습디다."
그건 분명히 엄마를 나무라고 있는 아빠의 목소리였습니다. 동철이와 동수가 잠깐 잠이 든 사이에 종아리를 살펴본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조금 뒤에 엄마의 목소리도 흘러나왔습니다.
“난 말이죠. 아이들이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제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하든 ‘오냐, 오냐' 하고 그저 아이들을 떠받들기만 하는 당신한테도 책임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건 나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오락실에 몰래 간 게 뭐가 그리 잘못됐다는 거요? 요즈음에는 그것도 제대로만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일부러 오락을 시키는 부모들도 있습디다.”
“어이구, 저렇게 답답한 양반 좀 봤나? 당신은 머리가 좋아지는 것만 생각했지, 그런데 다니다가 잘못하면 나쁜 길로 빠지게 된다는 건 걱정도 안 돼요?”
"아, 알겠소. 이러다가는 밤을 홀딱 새우겠소. 그러니까 내 얘기는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방법으로 매가 다는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거요. 자, 이제 그만하고 어서 잠이나 잡시다.“
“에이구, 나도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 키우기가 이렇게 까다로워서야 어디 워언…….”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는 거기서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고 잠잠해졌습니다. 아마, 모두 잠이 든 것 같았습니다.
“야, 동수야, 너도 들었니?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소리 말이야.”
어느 틈에 잠이 깼는지 동철이가 동수의 팔을 툭 건드리며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응, 나는 벌써부터 다 듣고 있었는걸, 형, 아깐 미안했어. 오늘은 나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거야.”
“아니야. 그게 아니라니까. 넌 잘못이 하나도 없어. 나 때문이란 말이야. 동수야, 너 종아리 맞은 거 많이 아프지?”
“응, 따끔따끔하고 쓰라려서 잠이 잘 안 와, 그런데 형!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엄마는 왜 우리들이 오락실에만 가면 그렇게 펼쩍 뛰며 야단이시지? 오락실이 정말 그렇게 나쁜 덴가?”
동수의 물음에 형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훗훗훗……. 글쎄 나도 그걸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건 엄마가 우리들을 끔찍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만은 틀림없어. 아까 엄마하고 아빠가 다투는 소리만 들어봐도 금방 짐작할 수 있잖아.”
“맞아, 그건 형의 말이 맞는것 같아. 우리들이 정말로 미웠다면 아주 멀리 내쫓아 버렸을 거야. 그치? 후후훗…….”
동수도 저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밤이 늦었으니 우리도 이제 자자."
“그래. 형. 나도 이제 피곤해.”
동수와 동철이는 언제 싸웠더냐는 듯 어느새 서로 꼬옥 부둥켜안은 채 꿈나라를 찾아 가고 있었습니다.
“또르르~~ 또르르~~~”
그렇게 가을밤은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함께 점점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