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와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며 손짓을 하는 따듯한 봄날입니다.
조금 전에 밖으로 놀러 나갔던 소라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금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소라는 마침 빨래를 하고 있는 엄마를 보기가 무섭게 옷자락에 매달려 또다시 생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엄마, 나 학교에 가게 가방 좀 사달란 말이야, 이잉…….”
“얘가 아침부터 또 시작이구나, 또 시작이야. 오늘은 놀이터에 같이 놀 친구들이 없든?”
"모두 학교에 가고 아무도 없단 말이야. 빨리 가방 사줘. 이잉…….”
소라는 심통이 잔뜩 난 얼굴로 여전히 입을 삐죽하게 내민 채 졸라댑니다.
엄마는 그런 소리를 보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이리저리 달래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럼 방에 들어가서 재미있는 만화영화를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겠구나. 그치?”
"싫어, 싫어. 자꾸만 봐서 시시하단 말이야.“
"그럼 엄마가 더 재미있는 게임으로 바꾸어다 주면 되겠구나. 어때? 그게 좋겠지?“
“싫어. 그냥 빈방에서 나 혼자 보고 있는 건 심심하단 말이야. 그보다는 학교에 가서 여럿이 공부하고 싶단 말이야.”
"그럼 그림책을 보면 되겠구나. 그림책을 열심히 보면 우리 소라가 내년에 학교에 들어 가면 1등을 할 수 있거든.”
“싫어. 그까짓 1등을 하면 뭘 해? 지금 당장 친구들이 없어서 심심해 죽겠는 걸, 이제 그런 소리 좀 그만하고 어서 가방 사줘, 난 내일부터는 정말 학교에 갈 거란 말이야. 이잉.…….”
엄마가 아무리 달래 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소라의 인절미 찰떡같은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졸라라. 이따가 시장에 가서 엄마가 아주 예쁜 걸로 사주마.”
엄마는 그만 진이 빠져 못 견딜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그만 가방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엄마의 대답에 소라의 얼굴 색이 금세 환해지면서 되물었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엄마, 약속했다.”
“정말이라니까. 엄마가 언제 거짓말을 하든? 아무튼 쇠고집 네 등쌀 때문에 무쇳덩어리도 배겨나질 못한다니까. 쯧쯧쯧…….”
엄마는 소라에게 가볍게 눈을 흘겨 주고는 다시 말을 계속했습습니다.
“이 녀석아, 가방이 있다고 해서 학교에 누구나 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엄마가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듣겠니?”
“그럼 뭐가 또 있어야 갈 수 있는데?”
"취학통지서라는 게 있어야 그걸 가지고 학교 갈 수 있는 거라고 엄마가 귀가 아프도록 일러 주지 않았니?“
"취학통지서? 그게 뭔데?”
“이제 너는 학교 가도 된다' 하고 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나누어 주는 종이 쪽지를 받아야 된단 말이야.”
“그래? 그럼 나한테는 왜 안 줬어?”
“너는 아직 학교에 갈 나이가 안 돼서 내년에 나 나온다니까 자꾸만 그러네.”
“이렇게 키가 크고 힘이 센데두?"
소라는 갑자기 엄마를 향해 발뒤꿈치를 번쩍 들어 보이며 다시 말을 하였습니다.
“옆집에 사는 상철이랑 영아, 그리고 지숙이는 나보다 키도 작고 기운이 없는데도 모두 학교에 다닌단 말이야.”
소라의 이야기를 듣던 엄마의 입가에는 저절로 엷은 미소가 맴돌았습니다.
“아무리 키가 크고 기운이 많아도 학교에 나이가 돼야 들어갈 수 있는 거라니까 넌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니?”
"몰라. 난 그래도 갈 거야. 이따가 아주 예쁜 걸로 골라서 꼭 사줘야 해. 알았지?“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자꾸만 귀찮게 굴지 말고 다시 놀이터에나 나가서 실컷 놀다가 오란 말이야.”
소라는 갑자기 신바람이 나서 크게 소리쳤습니다.
"야! 우리 엄마 최고! 엄마, 그럼 밖에 나가서 놀다가 오겠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소라의 말투가 금세 존댓말로 바뀝니다. 그리고는 엄마의 뺨에다 ‘쪽' 소리가 날 정도로 뽀뽀를 하고는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소라가 엄마한테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 것은 기분이 마냥 좋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기분이 좋을 때마다 으레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에이구, 녀석두, 꽤나 심심한 모양이로군.“
엄마는 뛰어나가는 소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안 됐다는 얼굴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소라가 학교에 가고 싶어서 안달하고 생떼를 쓰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약 보름 전까지만 해도 소라는 이렇게 심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기가 무섭게 이웃에 상칠이랑 영아, 그리고 지숙이와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한데 어울려 다니며 재미있게 놀곤 하였습니다.
소꿉장난이나 달리기 같은 놀이를 할 때는 언제나 소라가 앞장을 서곤 하였습니다. 그만큼 소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숙성해서 키도 크고 힘도 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언제나 소라가 하자는 일은 무조건 따랐고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소라한테 번번이 혼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3월이 되자 친구들은 소라 하나만을 남겨 놓은 채 모두 입학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친구들을 모두 잃고 갑자기 외톨이가 된 소라는 심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들이 소라를 만날 때마다 가끔 빵학년이라고 놀릴 때는 이만저만 분하고 억울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날 저녁때였습니다.
"저 녀석이 오늘은 벌써 잠이 들었나? 아니, 그리고 저건 또 웬 가방이요?“
회사에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잠이 는 소라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소라는 엄마가 사준 빨강 색깔의 예쁜 가방을 두 팔로 꼭 껴안은 채 지금 한창 아름다운 꿈나라 여행 중이었습니다.
엄마는 할 수 없이 오늘 낮에 소라가 생떼를 썼던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아빠는 갑자기 큰소리롤 껄껄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하하하……, 우리 가문에 드디어 귀여운 천재 하나가 태어나셨군, 학교에 들어갈 나이도 안 됐는데 빌써 학교를 가게 되었으니 말이야."
"호호호,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야 오죽이나 좋겠어요.”
엄마도 덩달아 아빠를 따라 웃으면서 잠든 소라의 대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귀여운 모습으로 잠이 든 소라의 얼굴에도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알아들었다는 듯 방긋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