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오싹 귀신 이야기
어느덧 하루해가 지고 땅거미가 서서히 내리는가 했더니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김 기사는 어느 지방 도시에서 벌써 10여 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늘따라 신바람이 나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택시를 몰고 있었다.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하루종일 쉬지 않고 핸들을 잡은 그는 지금 몹시 지치고 피곤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은 운이 좋았던지 수입이 제법 짭짤할 정도로 주머니가 두둑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흥이 났던 것이다.
김 기사는 지금 막 읍내로 들어가는 손님을 태워다주자마자 다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빈 택시를 몰고 교외로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읍내에 차를 세워놓고 손님을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돌아다니면서 손님을 먼저 차지하겠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차는 어느새 읍내를 빠져나와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길을 한창 달리고 있었다. 그곳은 마을에서 인적이 별로 없는 외진 곳이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어떤 젊은 여자 하나가 저 앞에 혼자 서서 조용히 손을 흔들며 택시를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역시 내 짐작이 맞아떨어졌군! 아니, 그런데 이렇게 외진 곳에 웬 손님이지? 더구나 젊은 여자 손님이 말이야. 어쨌거나 오늘은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로군!”
김 기사는 몹시 반가운 마음에 급히 여인의 앞으로 다가가서 차를 멈추게 되었다.
택시를 세운 사람은 얼른 보기에도 30대 초반쯤 된 여자였다. 게다가 얼굴 생김새나 미모가 아주 눈에 띄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손님, 어서 오십시오. 그리고 어디로 모실까요?“
김 기사가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자 여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택시 뒷자리에 조심스럽게 올라탔다. 여인이 차에 오르자 김 기사가 다시 물었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범 바위골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인은 매우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는 여자 같았다. 택시에 오르자 그다음부터는 더이상 아무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는 줄곧 어두운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좀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김 기사는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가끔 운전대 위에 달린 룸미러를 통해 뒷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인을 흘금흘금 훔쳐보게 되었다.
'히야! 정말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여자로군!‘
여인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황홀할 정도로 그렇게 아름답고 예쁠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내려온 선녀나 천사도 이처럼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도 아름답고 고귀하게 생겼다는 생각에 감히 말을 걸기조차 망설여졌다.
한동안 흘금흘금 여인의 눈치를 살피면서 운전을 하고 있던 김 기사가 궁금함을 참다못해 여인에게 먼저 묻게 되었다.
"저어, 실례지만 원래 범바위골에 사시는 분은 아니시죠?“
"호호호, 왜요? 제가 거기 사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으세요?"
여인은 여전히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재미있다는 듯 약간 소리내어 웃으며 되묻고 있었다. 약간 부끄러운 듯 차분하면서도 고운 목소리는 김 기사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하였다.
"전 이미 이 바닥에서 10여 년째 택시를 몰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고장에 사는 웬만한 사람들은 대개 낯이 익거든요. 하하하…….”
김 기사의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이 고장에서 태어났고, 또한 이 고장에서만 오랫동안 택시를 몰았기 때문에 이 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김 기사의 말에 흥미가 없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어두운 바깥만 바라보며 입가에 엷은 미소만 지은 채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 기사가 내친김에 다시 용기를 내어 묻게 되었다.
"그럼 범바위골의 어느 댁을 찾아가시는 길이신지요?“
그러자 여인은 여전히 창밖으로 시선을 둔 채 곱고 도 상냥한 목소리로 공손히 대답했다.
”전 지금 누굴 찾아가는 길이 아니에요."
"네에? 그렇다면 어디까지……?“
김 기사는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냥 그 마을 앞에서 내려주시기만 하면 돼요.“
여인은 이번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렇게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나 모습이 보면 볼수록 너무나 곱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자 김 기사가 다시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을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말이죠. 어째서 그런 외진 곳에서 차를 잡게 되셨는지요?“
"왜요? 그런 데서 차를 세우면 안 되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거긴 워낙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라서…….“
"그럼, 아저씨는 지금 제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세요?“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절대로 아닙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다니요.“
"그럼 됐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거든요.”
여인은 약간 당황한 듯 이렇게 얼버무려 대답했다. 그리고는 피곤한 듯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다시는 대답하기가 몹시 귀찮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아아, 그러셨군요.“
김 기사는 자꾸만 말을 더 걸고 싶긴 했지만,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보고는 더이상 말을 걸지 못하고 다시 앞을 바라보며 운전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방은 어느새 조금 전보다 더욱더 어둡고 캄캄해지고 말았다. 차의 전조등만 없다면 뭐가 뭔지 전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밤이 된 것이다. 택시 안에 켠 실내등만이 그나마 차 안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택시가 한창 어느 산모퉁이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한동안 조용하기에 깜빡 잠이 든 줄로만 알았던 아가씨가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실내등을 좀 꺼 주시면 안 되겠어요?“
"네네, 알겠습니다.”
김 기사는 여인이 시키는 대로 두 말도 하지 않고 곧 실내등을 껐다. 그리고 다시 한참을 달리다 보니 이윽고 전조등으로 비추고 있는 저 멀리에 범바위골이 뿌우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는 이윽고 범바위골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다다르게 되었다.
김 기사는 잠시 길에 택시를 세워놓고 공손히 여인에게 물었다.
"손님, 어느 쪽으로 모실까요?“
”…….“
그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갈래길이 있었다. 왼쪽은 아랫마을로, 그리고 오른쪽은 윗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핸들을 잡은 채 김 기사가 다시 되물었지만 어쩐 일인지 뒤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아가씨가 그새 잠이 들었나?“
김 기사는 이상한 예감에 그제야 룸밀러를 통해 뒷자리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뒷자리에 얌전하게 마치 그림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던 여인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차를 세운 적도 없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김 기사는 불안한 마음에 조금 전에 껐던 실내등의 스위치를 다시 올렸다. 그리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자리를 다시 꼼꼼이 살펴보았다. 그러나 역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뒷좌석에 얌전히 앉아 있던 여인의 모습이라고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말 귀신이 곡을 할 일이로군!“
순간, 김 기사가 더럭 겁이 난 표정으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어디선가 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간드러지고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아저씨, 뭘 찾느라고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는 거야? 나 여기 있잖아. 호호호…….“
“으아악~~~!”
문득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룸밀러 속을 들여다보던 김 기사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룸밀러 속에는 엉뚱하게도 아까 분명히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인이 그 속에서 기분 나쁘게 웃는 표정으로 김 기사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 기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뒷자리를 돌아다 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여인의 모습이라고는 보이지를 않았다.
잔뜩 겁에 질린 채, 허둥거리며 한동안 택시의 뒷자리와 룸밀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던 김 기사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거참, 귀신이 곡할 희한한 일이로군!“
그러나 여전히 룸밀러 속에는 벌겋게 상기된 표정으로 김 기사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러자 여인이 다시 야무지고도 독한 목소리로 김 기사에게 물어왔다.
"아저씨, 도대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기나 해?“
그러자 김 기사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모, 모르겠는뎁쇼.”
"이런 멍청한 양반 같으니라구. 오늘이 바로 당신의 제삿날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이런 한심하고 멍청한 인간 같으니라구. 호호호…….“
여인은 자지러지게 웃고 나더니 금방이라도 김 기사를 해치울 듯 원망이 가득찬 독한 눈초리로 김 기사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으아악~~~! 사, 사람 살려요!!“
김 기사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칠흑같이 캄캄한 범바위골의 저녁 공기를 뒤흔들며 멀리 메아리쳐 나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