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서로가 아끼고 사랑하면서 그야말로 깨가 쏟아질 정도로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내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러다가 안타깝고도 불행하게도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을 남겨둔 채,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던 아내를 잃고 갑자기 혼자가 된 남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보다 더 크고 무서운 아픔이었다.
남자는 마침내 죽어버리고 말겠다는 극단적인 마음을 먹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차마 죽지는 못하고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외롭고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남자는 자나 깨나 오직 아내 생각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래도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여러 날을 고민하던 끝에 결국은 새우젓 장수로 나설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방황하면서 아내의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새우젓 사려! 맛좋은 새우젓이 왔어요!”
그 날도 남자는 새우젓 통을 지게에 짊어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쏘다니며 새우젓을 팔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날도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어느덧 저녁때가 되고 말았다.
그날따라 새우젓은 좀처럼 팔리지를 않고 지치고 지쳐 등에 진 새우젓은 점점 더 돌덩이처럼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점심까지 걸렀기 때문에 지칠대로 지친 몸은 이미 천 근, 만 근이나 되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그래도 그 무거운 다리를 이끌면서 이번에는 다른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죽은 아내 생각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목청껏 소리치고 있었다.
"새우젓 사려! 새우첫! 싱싱하고 맛좋은 새우젓이 왔어요!“
남자는 그렇게 소리소리 지르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어느 산기슭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는 잠깐 쉬어갈 생각으로 지게를 내려놓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이럴 때 마누라만 곁에 있었어도 이렇게 힘들고 외롭지는 않았을 텐데……!”
남자의 생각은 어느 틈에 다시 죽은 아내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아내의 장삿날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의 장삿날이었다.
남자는 미리 준비해 둔 고양이의 털을 품속에 소중히 간직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아내의 관 속에 그 고양이 털을 슬쩍 집어넣었다. 그렇게 하면 죽은 시체가 되살아서 벌떡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누근가에게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그렇게 해서라도 죽은 아내를 다시 살려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한 짓이었지만 그 역시 결국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흥, 옛날 사람들의 말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니까.”
한창 아내의 생각에 잠겨 있던 남자는 갑자기 ‘톡’ 소리를 내며 무슨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아니, 저건 뼈다귀가 아니야? 저런 게 어디서 떨어졌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건 분명히 뼈다귀였다. 지금 막 저만치 땅바닥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큼직한 뼈다귀 하나가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것은 사람의 종아리 뼈가 틀림없었다.
남자는 약간 겁먹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 뼈다귀가 있는 쪽을 향해 한 발 두 발 다가가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이런 뼈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남자는 순간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남자가 다가가는 만큼 뼈다귀도 슬그머니 미끄럼질을 하듯 그만큼 뒷걸음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거참 이상도 하군!“
남자가 이번에는 뒷걸음질을 쳐 보았다. 그러자 뼈다귀도 그만큼 다시 남자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남자가 다시 뼈다귀가 있는 쪽을 향해 빨리 달려가 보았다. 그러나 뼈다귀도 다시 남자가 달리는 속력만큼 정확하게 뒤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
더럭 겁이 난 남자는 새우젓 지게를 짊어지고 벌떡 일어섰다. 더이상 뼈다귀와 실랑이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가던 길을 다시 재촉하게 된 것이다.
남자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가끔 뒤를 흘금흘금 돌아다보곤 하였다. 그러나 뼈다귀는 여전히 거머리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남자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남자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남자의 걸음이 빨라지면 뼈다귀도 빨라졌다. 느리게 걸으면 뼈다귀도 느린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와 뼈다귀의 거리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항상 그대로였다. 그러는 동안 사방은 어느새 검컴컴하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허기도 지고 지치고 지친 남자의 등줄기에서는 어느새 땀이 흥건히 배어 나오고 있었다.
"허, 이거 이러다가는 밤을 새워도 안 되겠군!”
남자는 그러는 동안 마침내 길을 잃고 깊은 산 속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사방은 점점 캄캄해지는데 길까지 잃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지?”
남자는 그만 울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아, 마침 저기 집이 보이는구나!“
저 멀리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을 발견한 남자는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그곳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에 다다른 남자는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몇 번이고 소리쳐 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 싸립문이 소리없이 열리면서 그 집에서 주인인 듯한 젊고 어여쁜 여인이 나타나며 물었다.
"누구신데 어인 일이시온지요?”
어둠 속에서 얼른 보기에도 선녀처럼 아주 곱고 아리땁게 생긴 여인이었다. 목소리 역시 옥을 굴리듯 그렇게 곱고 상냥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예, 산중에서 그만 길을 잃고 하룻밤만 묵었다가 갈 수 있을까 해서 이렇게…….”
남자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겁먹은 얼굴로 뒤를 돌아다 보았다. 끝가지 따라오고 있을 뼈다귀가 몹시 신경에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거머리처럼 따라다니던 뼈다귀가 그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남자는 그제야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좀 누추하긴 하지만 어서 들어오시지요.”
남자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얼굴로 몇 번이고 여인에게 허리를 굽혀가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젊은 여인이 안내해 주는 대로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여인이 정성껏 차려준 저녁밥까지 맛있게, 그리고 배불리 얻어먹게 되었다.
저녁을 다 먹고 상을 물리고 나자 여인이 물었다.
"그래, 어찌하여 이런 깊은 산중으로 들어오게 되셨는지요?"
남자는 낮에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설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뼈다귀가 이 집 앞에까지 따라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러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여인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참, 세상에는 별난 일이 다 있군요. 아마 요즈음 마음이 허해져서 헛것을 본 것은 아니시온지요?”
"아, 아닙니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걸요.“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여전히 생그레 웃으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누추하긴 하지만 많이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일찍 주무시지요. 저는 저쪽에 아랫방이 하나 또 있는데 그 방에 가서 쉬겠습니다. 자, 그럼…….”
여인은 허리를 굽히며 공손히 인사까지 하고는 방에서 나가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 방안에는 남자 혼자만 남아 있게 되었다. 남자는 어찌나 피곤했던지 자리에 눕기가 무섭게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쓱싹! 쓱싹……!”
남자는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리는 바람에 문득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소리는 남자가 묵고 있는 방에서 아주 가까운 바깥 앞마당에서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뚫어진 문창호지 구멍을 통해 밖을 살펴보게 되었다. 마침 보름달이 비추고 있어서 밖은 대낮처럼 훤하게 다 보였다.
"아니, 아닌 밤중에 웬……?”
순간 남자는 온몸이 싸늘하게 굳어지는 것만 같았다. 바로 아까 그 여인이 앞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부엌칼을 열심히 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얼굴을 이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어딘가 모르게 흡사 죽은 아내의 얼굴과 모습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
날이 선 부엌칼은 어찌나 정성껏 열심히 갈았는지 달빛을 받아 시퍼렇게 번뜩이고 있었다. 정말 저절로 소름이 끼쳐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남자는 갑자기 두려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오르라들며 덜덜 떨리고 있었다.
여인은 여전히 식칼을 열심히 갈고 있었다. 그리고는 연신 얼마나 날이 잘 섰는가를 달빛에 비추어 보며 확인해 보곤 하였다. 그러다가 여인이 마침내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앗! 아니, 저럴 수가?“
여인이 허리춤에서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닌 뼈다귀였다. 아까 낮에 새우젓 장수를 따라다니던 바로 그 뼈다귀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남자가 숨을 죽이고 조금 더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여인이 뼈다귀를 향해 작은 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여인의 목소리는 아까 부드러웠던 목소리와는 달리 이번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고 싸늘하게 느껴졌다.
"저 방에 있는 저 자가 바로 관 속에 고양이의 털을 넣은 바로 그 못된 자란 말이지? 음, 알겠어. 오늘 밤에 당장 이 칼로 해치고 말아야지, 히히히…….“
여인은 여전히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흘리면서 오른손에 쥔 부엌칼자루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새우젓 장수가 묵고 있는 방을 향해 한 발, 두 발 가까이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