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꽃다발

[윤희가 왜 말을 하지 않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by 겨울나무

"으이그, 바보처럼 왜 말을 못하고 친구들한테 늘 놀림을 받고 있는 거지?"


민수는 요즈음 윤희를 볼 때마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만 아픈 게 아닙니다. 답답한 마음에 울컥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그런 윤희를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민수입니다.


윤희와 민수는 같은 반입니다. 더구나 같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윤희는 남달리 얼굴이 잘 생기고 예쁘서 누구나 첫눈에 반하곤 합니다. 한마디로 얼짱입니다.


그런데 민수가 가끔 윤희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는 것은 윤희가 너무 어수룩하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착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유없이 괴롭혀도 대들지를 못하고 그냥 져 주기가 일쑤입니다.


윤희는 그렇게 어수룩해서 가끔은 아래 학년인 조그만 아이들한테도 놀림을 받는가 하면 가끔은 어린아이들한테 때리면 때리는 대로 그냥 매를 맞기도 합니다.


게다가 윤희는 또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누가 말을 시켜도 여간해서는 전혀 대답을 안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윤희가 말을 하는 걸 본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선생님이 말을 시켜도 안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다 누가 말을 걸어오면 고작 고개만 끄덕끄덕하거나 좌우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곤 하는 것이 의사 표현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윤희는 늘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받거나 바보 취급을 받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 윤희였기에 별명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윤희를 부를 때마다 친구들은 이름 대신 바보, 병신, 쪼다. 똘아이, 벙어리, 천치 등으로 부릅니다.


"그렇게 예쁘고 착하게 생긴 아이가 왜 말을 못하는 거지?”


민수는 그런 윤희를 볼 때마다 몹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공연히 속이 상하고 가슴 속이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답답한 일은 오늘 또다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마침 학교에서 음악 실기 시험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저마다 설레는 마음을 달래가면서 그동안 이 시간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동안 연습도 많이 하였습니다.




마침내 음악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출석부 순서에 따라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습니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친구들이 한 명씩 긴장된 얼굴로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저마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해온 노래를 친구들 앞에서 마음껏 뽐내며 부르곤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고운 노랫소리는 교실 가득 곱고 아름답게 울려 퍼져 나가곤 하였습니다.


”히야아! 기똥차게 잘 부른다!“

”짝! 짝! 짝!“


숨을 죽이며 노래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친구들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함성을 지르며 힘찬 박수를 쳐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윽고 윤희의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자, 이번에는 윤희 차례가 되었는데 어떻게 할까? 이런 기회에 윤희도 한번 멋지게 불러보지 않을래?”


“……!!”


선생님은 이렇게 말을 하고는 한동안 윤희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습니다. 윤희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알면서도 차마 그냥 넘어가기가 서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윤희에게로 쏠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윤희 차례가 오면 어떻게 넘어가게 될까 하고 벌써부터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든 시선이 윤희에게 쏠리고 있는 동안 교실은 마치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정말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자리에 앉은 채 아무 말 없이 망설이고 있던 윤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것입니다. 그리고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선생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짝! 짝! 짝!”

“히야, 오늘 윤희가 어떻게 된 일이지? 윤희가 앞으로 나가고 있잖아?”


“그러게 말이야. 쟤가 웬일이니? 내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겠는걸”


그러자 갑자기 아이들은 저마다 신기하다는 듯 둥그렇게 된 눈으로 웅성거리며 교실 안 가득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놀란 표정으로 윤희의 태도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윤희가 앞으로 나가자, 놀란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그 누구보다도 민수였습니다. 지금까지 윤희가 과연 이 시간을 어떻게 넘기게 될까 하고 속으로 애를 태우며 걱정을 하고 있던 민수였기 때문입니다.

민수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숨을 죽인 채 초조한 마음으로 윤희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와! 별 꼴을 다 보겠네. 쟤가 정말 노랠 부르려고 나간 걸까?"

“그걸 누가 알겠니. 노래를 부를지 안 부를지는 더 두고 봐야지.”


“지금까지 벙어리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럼 그게 아니었나 봐.”


이번에는 선생님까지 의외라는 듯 그러나 몹시 반가운 표정으로 윤희를 바라보며 재촉을 하였습니다.


“우와! 우리 윤희가 오늘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왔네. 자, 그럼 기왕에 나왔으니까 어서 한번 멋지게 불러보렴. 그럼 무슨 노래를 불러볼까?"


“……!!”


선생님이 몇 번이나 재촉을 해보았지만 굳게 다문 윤희의 입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간만 자꾸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윤희는 여전히 입을 꼭 다문 채 그 자리에 선 채 전혀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동안 윤희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아이들이 마치 벌집이라도 쑤셔 놓은 듯다시 저마다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으이그,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정말 답답해 미치겠네!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면 왜 앞으로 나간 거지?"


"그래, 그러니까 빨리 불러 봐. 아이고오, 속 터져라."

“으이그,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 벙어리가 노래 부르는 것 본 적이 있냐?“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민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안 되는 일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저도 모르게 선생님을 향해 불쑥 소리를 질렀습니다


“선생님! 윤희 대신 제가 부르면 안 될까요?”


그 바람에 아이들의 눈이 이번에는 일제히 민수에게로 쏠렸습니다. 민수는 벌겋게 된 얼굴로 씨근덕거리며 선생님의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정말 웃긴다. 그치? 남이 부를 노래를 대신 불러주겠다네.”

"누가 아니래. 하하하…….“


"더구나 지금은 음악 시험을 보는 건데 그래도 되는 거니?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다니까. 호호호…….”


아이들이 이렇게 시끄럽게 수군거리며 떠들고 있자 이번에는 성만이가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반에서 윤희를 가장 많이 괴롭혀 온 성만이였습니다. 그런 성만이였기에 이번 일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혼자 킬킬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너희들, 민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나 하니? 민수가 바로 윤희 애인 아니니? 쟤네들은 벌써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이런 때 민수가 대신 불러주지 않으면 누가 불러 주겠니, 내 말 틀렸니? 낄낄낄…….”


"하하하……. 애인이래.”

"그렇고 그런 사이래. 호호호…….”


성만이의 말에 배꼽을 잡고 웃고 떠드는 소리로 교실은 다시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야! 성만이 너, 나한테 정말 죽어 싶어!”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 있던 민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순간, 민수는 재빨리 제 책가방을 드는가 했더니 성만이를 향해 힘껏 내던졌습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어이쿠우!"


책가방으로 머리를 맞은 성만이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신음까지 내고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그날 가장 즐거워야 할 음악 시간은 난장판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날 모든 수업이 끝난 오후였습니다.

'에이 바보 같으니라구! 윤희가 아이들한테 놀림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민수의 표정은 우거지상이 된 채 어둡기만 합니다.


민수는 지금 오늘 음악 시간에 벌어진 일로 인해 선생님한테 벌을 받다가 이제야 혼자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민수의 생각은 여전히 윤희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윤희가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한테 놀림 받을 생각을 하면 여전히 답답하고 그렇게 속이 상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민수의 힘으로는 별도리가 없는 일이어서 더욱 답답하기만 합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렇게 걸어가고 있던 민수가 문득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습니다.아아, 그런데 뜻밖에도 윤희가 저 앞에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은 민수가 오기만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


뜻밖에 윤희를 다시 만나게 된 민수는 몹시 반가웠습니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윤희는 민수가 벌을 받게 된 것이 저 때문이라는 듯 몹시 미안한 얼굴로 민수를 빤히 바라보며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 윤희의 까만 눈동자와 표정이 오늘따라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민수는 덤덤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윤희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뜻밖에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말을 꼭 한번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말은 입속에서만 뱅뱅 돌뿐 차마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윤희도 아무 말이 없이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민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제 가만히 보니 윤희는 등 뒤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얼른 보기에도 예쁜 들국화를 꺾어서 만든 꽃다발이었습니다. 민수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들판 여기저기를 쏘다니면서 예쁜 꽃만 꺾어서 정성껏 만든 꽃다발인 게 틀림없었습니다.


한동안 민수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던 윤희의 얼굴이 갑자기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순간, 등 뒤에 감추고 있던 꽃다발을 갑자기 민수에게 불쑥 내밀었습니다.


"얼른 집에 가지 않고 누가 이런 걸 만들어 달랬어?"

민수는 윤희가 내밀고 있는 꽃다발을 거칠게 낚아챘습니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런 윤희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윤희가 준 꽃다발을 소중히 손에 든 채 다시 가던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윤희는 그런 민수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민수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갑니다. 여전히 미안한 듯 생글생글 웃으며 따라가고 있는 윤희의 표정은 저도 모르게 얼굴 가득 해맑은 미소가 번지며 생기가 돕니다.

해님은 아까부터 민수와 윤희의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빙그레 웃는 얼굴로 두 아이의 머리 위를 더욱 포근하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