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색종이 카네이션

by 겨울나무

세상이 온통 푸르름으로 짙어 가는 5월입니다.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지고 있고, 신록은 어딜 가나 푸른 색깔로 부지런히 단장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산과 들판은 연두색깔의 고운 옷을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저마다 엷은 초록색깔의 옷으로 갈아입고 한껏 멋을 부리며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날씨도 몹시 화창하고 맑아서 나들이를 하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날입니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5월의 싱그러운 훈풍이 감미롭고 상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좋은 날에 재준이는 지금 바짝 심통이 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 이른 아침부터 텅 빈 집에 혼자 남아 집을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따라 혼자 집을 보고 있기가 여간 답답하고 지루한 게 아닙니다.

더구나 오늘은 재준이가 그토록 마음 속으로 은근히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이날입니다. 그러기에 재준이의 답답한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두껍게 쌓여만 갑니다.


지루하고 따분함을 견디다 못한 재준이는 결국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치이, 무슨 어린이날이 이렇게 시시하담! 이럴 바엔 차라리 어린이날을 숫제 없애버리는 게 훨씬 낫겠네!”

집에서 나은 재준이는 한동안 어디로 갈까 하고 서성거리면서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친구인 민수네 집으로 부리나케 발길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혹시 민수가 집에 있으면 같이 재미있게 놀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딩동~~~ 딩동~~~”


어느 틈에 민수네 집 대문 앞에 다다른 재준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힘껏 눌렀습니다.


"누구세요?“


초인종에서 몇 번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울린 끝에 마침내 안에서 낮의은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단번에 누구 목소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민수네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의 목소리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재준이……!“

"으응, 재준이로구나. 그런데 어쩌면 좋지?“


”왜요?“

"왜라니. 지금 민수가 집에 없으니까 그렇지.”


혹시나 했던 재준이의 마음이 금방 허탈해지면서 한꺼번에 기운이 쭉 빠집니다.


"민수가 어딜 갔는데요?"


"호호호……. 어딜 가나니? 오늘이 어린이날이잖니. 그런데 민수가 오늘 같은 날 집에 있을 리 있겠니? 벌써 식구들이 총동원해서 아침 일찍 서둘러 떠났는걸.“


"네에, 그럼 어디로 갔는데요?“

"글쎄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롯데월드나 서울 대공원에 갔겠지 뭐.“


”쳇!“


재준이는 금방 시무룩해져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부지런히 준영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준영아! 준영이 집에 있니?“


준영이네 집 앞에 다다른 재준이는 준영이를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안에서 준영이 대신 준영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누구니? 준영인 벌써 나가고 없는데…….”

"나갔다구요? 어디루요?“


"어딘 어디야. 오늘이 어린이날이지 않니?”

"네에, 그건 저도 알아요. 그래서요?“


"이 녀석아, 뭐가 그래서야? 식구들이 모두 아침 일찍 차를 타고 함께 놀러 간다구 나갔는데 어딜 갔는지 그걸 나 같은 늙은이가 어떻게 알겠니? 차암, 그런데 넌 어디 놀러 가지 않은 모양이구나?“


”쳇!“


재준이는 또다시 맥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아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아 이번에도 그냥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이, 내가 놀러 가기가 싫어서 안 간 건가? 놀러 갈 수가 없었던 거지!”


재준이는 바짝 심통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럴 줄을 알았으면 엄마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집이나 보고 있을 걸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오늘따라 그처럼 사이좋게 지내던 민수가 갑자기 밉게 느껴졌습니다. 준영이도 밉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치이, 우리 아빠나 엄마는 왜 오늘 같은 날에도 일을 가야 하지? 다른 집 아빠나 엄마들은 다들 한가하게 놀러 가는데 말이야.”


재준이는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나가는 아빠나 엄마가 민수나 준영이보다 더 밉고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집에 다시 들어가기는 그렇구, 그럼 그다음에는 어딜 가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골목길을 힘없이 걸어가고 있던고 있던 재준이는 홧김에 마침 길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돌멩이 하나를 힘껏 걷어찼습니다.


"어이쿠우 아이구 아파라!“


너무나 힘껏 걷어찼는지 돌부리에 채인 발가락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재준이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신음이 텨져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발가락을 움켜잡은 채 한동안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데구르르~~~“


한동안 굴러가던 돌멩이는 저만치에서 굴러가다가 멈추었습니다.


"저눔의 돌멩이가 누굴 약을 올리나? 남의 발가락만 아프게 해 놓고 왜 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더 굴러가지를 못하느냔 말이얏, 에잇, 더러워!“

재준이는 돌멩이가 더 멀리 굴러가지 않고 가까이에서 멈추고 있는 꼴조차 공연히 짜증스럽고 화가 납니다.

"에이, 시시해라. 왜 쓸 데 없이 어린이날을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골탕을 먹이고 있담!”

여느 때 같으면 그렇게나 많던 동네 아이들이 오늘은 놀이터에도, 골목길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를 않고 조용하기만 합니다. 모두들 엄마나 아빠와 함께 어디론가 신나게 놀러 갔기 때문입니다.


재준이는 무심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잘그락~~ 잘그락~~~”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가 손에 만져졌습니다. 순간 눈이 번쩍 띕니다.


"아참, 나한테 동전이 있었구나!“


재준이의 표정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재준아, 이거 받으렴. 어린이날인데 아빠가 너랑 같이 놀러 가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동전 한 개는 아빠가 아침에 일을 나가기 전에 어린이날이라고 특별히 준 용돈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개는 집을 잘 보고 있으라고 엄마가 나갈 때 준 동전입니다.


"옳지, 이걸 가지고 거길 가야겠구나! 내가 왜 진작에 그런 생각을 못했지?“


재준이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집니다. 이번에는 신바람이 나서 휘파람까지 불면서 그 길로 곧장 오락실로 달려갔습니다.


"뽕뽕, 삐리리용~~~“

오락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시끄러운 소리들이 앞을 다투어 문밖으로 요란스럽게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오락실에도 제법 많은 아이들이 오락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느라고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재준이는 한동안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겨우 빈 자리 하나 찾아 이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오백원짜리 동전을 넣고 게임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전을 넣은 지 채 2분도 되지 않아 게임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러언! 재수없게시리 금방 백 원만 날려 버리고 말았잖아!“


재민이는 다시 기계 속에서 자동으로 거슬러 나온 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게임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빨리 게임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게임을 계속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기계가 오백 원을 모두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아까웠습니다.

”이걸 어쩌면 좋지?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재준이는 이제 달랑 한 개만 남은 오백 원짜리 동전을 손에 쥔 채 만지작거리면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시장에 다녀온 엄마는 재준이가 들으라는 듯 혼자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시장에서 파는 콩나물이 무척 싸더구나. 오백 원어치만 사면 우리 식구가 이틀은 실컷 먹을 수 있을 텐데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돈이 아까워서 사지 못하고 그냥 왔지 뭐냐. 이게 다 우리 집이 가난한 죄란다.”

그런 엄마의 얼굴은 모처럼 싸게 파는 콩나물이지만 돈이 없어서 사 오지 못한 것이 몹시 속이 상하고 안타깝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에 이어 이번에는 아빠의 측은한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일터에서 저녁 늦게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아빠를 바라보며 엄마가 물었습니다.


"아니, 좀처럼 늦게 오지 않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요?“

"으응, 오늘은 우리 집이 얼마나 먼가 하고 그냥 걸어서 와 봤지. 허허허…….”


"네에? 그 먼 곳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집에까지 걸어서 오셨다고요?“


엄마가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니까. 모처럼 운동 삼아 걸어 봤는데 생각보다 꽤 멀던걸."

"맨날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데 당신이 운동이 부족하다고요? 그까짓 버스비 좀 아끼려다 건강이라도 나빠지면 어떡하려구 그러세요”


“건강까지나 해치기는 무슨…….”


아빠는 겸연쩍은 얼굴로 이렇게 변명을 하고 있었지만, 엄만 벌써 아빠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픕니다. 단 한 푼이라도 돈을 아끼려는 아빠의 마음을…….


그러나 아빠는 그 뒤로도 가끔 그 먼 일터에서 집까지 가끔 걸어오곤 하였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문득 오백 원이란 돈은 지금 재준이네 집 형편으로는 정말 아깝고도 큰 돈이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귀한 돈을 함부로 쓰고 있다니 그건 말도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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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준이는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고 있던 오백 원짜리 동전을 도로 바지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무슨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락실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래, 그거야. 남은 돈으로는 그걸 사야 돼. 마침 사흘 뒤에는 어버이날이란 말이야!”


지금까지 우울하기만 했던 재준이의 표정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금방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오락실을 뛰쳐나온 재준이는 그 길로 큰 길가에 있는 문방구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오백 원으로 카네이션을 만들 색종이를 사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문방구를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는 재준이의 귀에 이번에는 며칠 전에 학교에서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어버이날에 대한 뜻을 자세하고 길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돌아오는 5월 8일은 무슨 날인지 다들 알고 있죠? 그날은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일년에 한 번밖에 없는 어버이날이에요. 그날은 비싼 돈을 주고 카네이션을 사는 것보다는 여러분들이 정성껏 직접 카네이션을 만들어서 부모님께 달아드리도록 해보세요. 아마 그러면 부모님들은 비싼 카네이션을 사서 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기뻐하실 거예요…….”


문방구를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는 재준이의 발걸음이 아까보다 점점 더 빨라집니다.


“그래, 바로 그거란 말이야!”


이제 재준이는 어린이날이 조금도 답답하거나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를 않습니다.


재준이의 눈앞에는 어느새 어버이날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재준이가 손수 색종이로 정성껏 만든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몹시 기뻐하고 있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방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재준이의 머리 위를 따사로운 오월의 햇살이 아까보다 더 덥게 감싸 주고 있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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