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대왕의 방석(56)
[영조 대왕, 조선 시대 21대 임금(1694~1776)]
조선 시대 제 21대 영조 대왕,
그는 바로 우리나라 역사상 무려 52년이란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임금이다.
영조는 재위 기간이 길기도 했지만, 기나긴 재위 기간 동안 오직 백성들을 위한 일에 온갖 힘을 기울여 훌륭한 업적을 가장 많이 남긴 임금으로도 이름난 분이다.
그는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기 위한 ‘탕평책’을 새로 만들고 세금을 균등히 걷기 위해 ‘균역법’을 실시하는 등 백성들을 편히 살게 하기 위한 수많은 정책을 마련함으로써, 조선 후기에 황금기를 이룩한, 역사에 빛나는 훌륭한 임금으로 손꼽히고 있다.
옥에도 티가 있다고 했던가. 물론 그 긴 세월을 재위하는 동안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인좌의 난' 이란 어려움을 겪었고,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등의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다른 임금들과는 달랐다. 그 무엇보다도 백성들에게 절제와 검소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농사에 힘쓰도록 하여 민생의 안정을 꾀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늘 검소함을 몸소 실천하여 많은 신하와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의 그런 정신은 조금 지나칠 정도로 유난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거치하는 대결 방문의 창호지가 뚫어지면 손수 종이 조각을 발라 사용하는 검소함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용상은 비단 대신 무명천을 깔게 하였으며, 버선도 해지거나 뚫어지기가 무섭게 손수 기워 신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늘 방석 하나 깔지 않은 장판 위에 앉아 나랏일을 보고 있는 초라한 영조의 모습을 보다 못한 호조판서가 방석 하나를 만들어 슬그머니 바치게 되었다.
무명천에 푸른 물을 들여 보통 솜을 넣어 만든, 그 당시 웬만한 백성들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던 그저 수수한 방석이었다.
"마마, 이 방석이라도 좀 깔고 국정을 보심이…….”
호조판서는 혹시 불호령을 맞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은근히 영조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방석을 내밀었다. 이런 흔한 방석을 임금께 올린다는 것은 마음조차 먹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임금 같으면 화려한 수를 놓은 비단 천에 누에고치에서 금방 뽑은 비단 솜을 넣어 만들었겠지만, 워낙에 검소한 영조가 사치스러운 방석을 쓸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어디 좀 봅시다. 정말 훌륭한 방석이로다! 정말 고맙소, 경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항상 아껴 쓰도록 하겠소.”
다행히도 영조는 매우 흐뭇해하며 기쁜 낯으로 호조판서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루 이틀은 그 방석을 잘 사용하였다.
그리고 사흘이 되자, 영조는 갑자기 호조판서를 대궐로 불러들였다. 호조판서는 겁이 났다. 그리고는 무슨 불호령이라도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영조의 다음 분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경이 만들어 준 방석을 깔고 앉아 보니 내 몸은 편하기가 이를 데 없었소.”
“……?”
아무 응답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호조판서에게 영조가 이번에는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몸이 편해지니까 나도 모르게 마음도 덩달아 게을러지게 됩디다. 그래서 난 앞으로는 절대로 방석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소,
이번에 경께서 내게 정성을 베풀어 주신 방석 하나로 인해 검소한 생활을 하게 되면, 물건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을뿐만 아니라 부지런한 마음까지 길러지게 된다는 값진 체험을 했으니 참으로 고맙기 이를 데 없소. 그러니 이 방석을 도로 가지고 가도록 하시오. 허허허…….“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마마!”
그제야 겨우 영조의 뜻을 알아차린 호조판서를 비롯하여 모든 신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몹시 감격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관리와 백성들은 더욱 검소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영조의 방석' 은 검소함을 상징하는 기념품으로 백여 년 동안이나 호조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