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몸이 약했던 와트(55)

[제임스 와트. 스코틀랜드 발명가(1736~1819)]

by 겨울나무

세계적인 발명가 제임스 와트는 스코틀랜드의 항구 도시인 그린노크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손재주가 뛰어나서 여러 가지 기계를 잘 다뤘다. 배를 만드는 목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항해를 할 때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작은 배도 한 척 소유하고 있었다.


와트의 아버지는 배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장사를 겸하면서 사업이 꽤나 번창해서 생활을 하는데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와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서 어머니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과 보살핌으로 별 탈 없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평생을 두고 편두통과 힘겹게 싸우며 지내야 했다.


그는 어떤 일을 한번 해보려고 굳게 결심을 하고 그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편두통 때문에 도중에 포기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불행한 일이 잦게 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열등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몹시 싫어하게 되었다. 게다가 몸도 약해 학교 가기를 싫어했다. 항상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성적이 좋을 리 만무했지만 명석한 두뇌 덕분에 수학 성적만큼은 항상 남보다 우수했다. 그래서 그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기보다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항해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거나 항해에 필요한 부속을 수리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도와 목수일, 금속 세 공, 기계 등을 수리하면서 그나마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와트가 17세 되던 해에 그에게는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왔다.


그를 끔찍이 사랑해 주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얼마 후, 항해를 하던 아버지의 배까지 침몰해 집안 형편은 삽시간에 기울어지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와트 혼자 스스로 벌어먹어야 할 어려운 형편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사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건강이 약한 데다 붙임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난 장사를 하는 것보다는 손재주로 돈을 벌어야 돼,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에 흥미가 있으니 까 끝까지 그 방면으로 나갈 거야!”

어린 와트의 이런 결심은 훗날 증기 기관을 발명하는 데 첫발을 내딛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기술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와트는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그 당시 남들이 알아주는 완전한 기술자가 되기 위해서는 유명한 기술자의 제자가 되어 기술을 익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길드의 회원으로 가입해야 했다.


그는 영국으로 건너간 뒤에 ’존 모건' 이란 기술자를 스승로 모시고 본격적으로 기술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직 기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스승은 와트의 실력을 보고 매우 감탄스럽다는 듯 와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만하면 됐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기술을 모두 익혔으니 더 배울 필요가 없네. 그리고 자넨 정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니 후에 크게 성공할 게 틀림없네.”


와트의 스승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와트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 모두가 선생님께서 그동안 잘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와트도 눈물을 글썽이며 스승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1756년, 와트는 스승과 작별을 고하고 서둘러 고향의 옛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후에 대 발명가가 되기 위한 기틀을 차근차근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그는 마침내 1769년, 증기기관 특허를 얻는 위대한 발명가가 되었던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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