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부처(54)

[원효대사, 신라 중기의 승려(617-686)]

by 겨울나무

원효는 경북 경산 출신으로 설총의 아버지이며, <담날>의 아들이다.

648년 황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당시의 고승인 낭지, 연기, 보덕 등을 찾아다니며 불도를 닦았다.


661년에는 의상과 함께 불법을 배우러 당나라로 건너가던 중 날이 저물자 어느 무덤 사이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때 목이 마르던 참에 잠결에 해골 속의 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은 바 있어 그 길로 당나라로 가던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그 후 원효는 분황사에서 독자적으로 통불교를 제창한 뒤, 민중 속에 불교를 널리 보급하는 데 힘써 훗날 원효종, 분황종, 해동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는 한때 여자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른 것이 태종무열왕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마침내 요석 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게 되자 스스로 ’소성거사‘를 자처하며 ‘무애가'라는 노래를 만들어 춤추고 노래하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이로써 세상에 염불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며, 그 뒤로도 꾸준히 불교 사상의 종합적인 실천에 정진하는 한편 수많은 저서를 남기기도 하였다.

고려 숙종은 그의 공적을 기리는 뜻에서 '대성화정국사'라는 시호를 주어 그의 높은 학식과 덕망을 찬양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사신 몇 사람이 원효대사를 모시러 와서 말했다.


“대사께서는 한시바삐 서라벌로 돌아가 금강삼매경을 설법하여 주십시오.”

이에 원효대사는 길을 재촉하려고 짐을 챙기다 말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금강삼매경을 연구하여 자세히 주석을 달아 놓았던 종이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원효는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시 대강의 뜻을 생각해서 기록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생각다 못한 그는 자신이 타고 갈 소의 뿔과 뿔 사이에 벼루를 묶어 고정시켜 놓고 길을 재촉하였다. 그리고 서라벌로 가는 동안 소의 등에 올라탄 상태에서 부지런히 요점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요석궁을 떠난 지 2년 만에 다시 서라벌로 돌아온 그는 소의 등에서 급히 적은 주석을 가지고 금강삼매경을 무난히 설법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설법을 듣기 위해 미리부터 임금님을 비롯하여 왕비와 왕자, 공주, 그리고 여러 대신들과 전국에서 이름 있는 스님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원효대사가 마침내 그곳에 들어서니 모든 사람이 일어나서 합장을 하며 경의를 표하였다. 원효대사도 합장으로 인사에 답하면서 단상에 올라서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영하고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장내를 잠시 둘러보던 원효대사가 마침내 엄숙한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마음의 근원은 있고 없음을 떠난 것이다. 맑고 깨끗한 일심이 있고 없는 것은 떠나 있지만, 있고 없음의 중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있음의 반대가 없음도 아니요. 없음의 반대가 곧 있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리니…….“


원효대사가 강설하고 있는 금강삼매경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의 뛰어난 설법에 왕도 왕비도 대신들도, 그리고 오만하게 앉아 있던 고승들도 모두가 결국은 한결같이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동안 단 하루도 원효대사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다가 오랜만에 원효의 설법을 듣고 있는 요석 공주의 감격은 더할 나위가 있었으랴!


요석 공주는 지금까지 대사의 수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눈물을 머금고 한번 떠난 그를 두 번 다시 찾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그토록 그립던 그 얼굴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 그의 목소리를 바로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요석공주의 기쁨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었다.


요석공주는 가슴이 벅찬 나머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설법을 하는 동안 장내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며 원효대사에 대한 찬사가 일기 시작하였다.


“원효대사는 과연 살아 있는 부처님이시다!”

"보살의 화신이시다.“


긴 설법을 성공적으로 마친 대사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는 청중을 말없이 훑어보고는 다시 조용히 무거운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조정에서 백 개의 서까래를 구할 때 소승은 감히 그 속에 끼일 수도 없더니 오늘 단 한 개의 기둥을 찾을 때는 이렇게 소승이 홀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 후 원효대사는 절에 파묻혀 저술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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