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달아 달아 둥근달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by 겨울나무

보름달이 동산 위에 둥실 떠올랐습니다.

유월이어서 그런지 밤바람도 보드랍습니다. 달빛은 나무 이파리마다 좌르르르 미끄럼을 타고 산골 마을로 쏟아져 내려옵니다.

“힘들지 않지요?”

한식이는 뒤에서 할머니의 허리를 두 손으로 밀며 말했습니다.

“후훗, 전에는 애비가 밀면서 산꼭대기를 올라갔는데……. 너도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니까 다 컸구나.”

할머니는 연신 웃음을 흘렸습니다.

“할머니, 시작해요.”

“뭐를?”

“아, 우리가 늘 부르던 행진곡 말이에요.”

“후훗, 그래그래.”

“그럼 제가 먼저 부를게요.”

“오냐.”

“달아, 달아…….”

“두웅근 달아!”

한식이와 할머니는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며 발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민둥산! 이 산은 전에 나무 한 그루 없던 대머리산이었습니다. 그런 산을 마을에서 공동으로 목초지로 만들어 소를 기르고 있습니다.

그다지 높지 않은 민둥산 꼭대기에는 돌이 작은 집채만큼 쌓여져 있습니다. 한식이 할머니가 40년이 넘도록 보름날 밤마다 쌓아놓은 것입니다.

할머니는 처녀 적에 이 마을에서 살다가 그리 멀지 않은 북쪽 강원도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랬다가 아들 하나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6·25를 만났으며 1·4후퇴 때 남편과 헤어져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헤어질 때,

“윤수를 데리고 어서 몸을 피하라우. 빨갱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잡으러 다니니까 함께 삼팔선을 넘다가 들키면 우리 셋이 몰살을 당할 게 뻔하디 않캈소?”

하고 재촉하였습니다. 그때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 약속도 하였습니다.

“통일이 되면 꼭 찾아갈게. 그 날이 올 때까지 당신은 민둥산 꼭대기에 보름밤마다 올라가서 지성을 다해 하느님께 기도 드리라우. 내 죽으면 넋이라도 찾아가리다.”

그리하여 젊은 아내, 즉 한식이 할머니는 갓난 아들을 업고 눈보라 속을 헤치며 친정 마을로 피난을 왔던 것입니다.

한식이 아버지인 윤수는 외가에서 무럭무럭 자라났고, 장가를 들어 어였한 농군 가정 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삼팔선을 넘어온 뒤부터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보름밤마다 민둥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북녘을 향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부디 통일이 되어 제 남편이 돌아오게 해 주소서!”

할머니는 산꼭대기에 올라갈 때마다 돌을 주워다 쌓았습니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던 것이 이제는 커다란 돌단이 되었습니다.

“에이구, 좀 쉬어가자꾸나.”

할머니는 풀밭에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할머니, 제가 업고 올라갈까요?”

“후후훗, 네가 업겠다구? 괜찮다. 이리 와 앉거라.”

“예.”

“녀석두, 할아버지 모습을 쏙 빼다 박았구나.”

할머니는 한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또 할아버지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죠?”

“에휴, 그러게 말이다. 그때 빨갱이 놈들을 피해 다니시다가 붙잡혀 돌아가셨는지 원…….”

“돌아가시면 넋이 되어 저 산꼭대기로 찾아오신다고 했잖아요?”

“아암, 그랬지.”

“저 돌단에 한 번도 안 나타나셨으니까 살아 계신 게 틀림없어요.”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겠구나.”

“틀림없다니까요. 할아버지는 살아계셔요. 그리고 통일이 되면 꼭 찾아오실 거에요. 오늘부터는 저도 할머니와 같이 나란히 서서 기도하겠어요.”

“고맙구나. 원 녀석두 신통도 하지.”

할머니는 쭈글쭈글해진 손등으로 눈물조차 말라버린 눈언저리를 닦았습니다. 바로 그때 산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던 한식이가 외쳤습니다.

“할머니! 저기 좀 보세요. 할아버지가 찾아오신 거 아니에요?”

“어디?”

“저기 돌단 위에!”

“아니 이 영감이!”

아닌 게 아니라 민둥산 꼭대기 돌단 위에 웬 할아버지가 서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한식이가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그 할아버지는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금세 할아버지가 사라졌어요.”

“하, 할아버지가 도, 돌아가신 무양이구나. 그래서 넋이 되어…….”

할머니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갑자기 풀밭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정신 차리셔요.”

한식이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고오, 불쌍한 영감, 빨갱이들을 피해 다니느라 고생만 하다가 그만…….”

할머니는 통곡을 하였습니다. 한식이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을 모셔오려고 허겁지겁 집을 나섰습니다.

신경통이 다시 도진 할머니는 아랫목에 반드시 누운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이제부터는 산에 올라갈 필요가 없겠네요?”

한식이는 할머니 곁에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져서야 되겠니?”

할머니는 약간 비뚤어진 입을 힘겹게 움직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뭘.”

“나처럼 된 사람이 어디 하나 둘 뿐이겠니? 북쪽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이 할미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죽을 때까지 저 산꼭대기 돌단 위에 올라가서 기도할란다.”

“그럼 저도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기도하겠어요.”

한식이는 코허리가 찡하여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웬 할아버지를 몸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방 안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으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신경통에는 그저 침만한 약이 없지.”

할머니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습니다.

“어이구, 난 싫어!”

한식이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곧 할머니를 향해 물었습니다.

“왜요, 할머니?”

“왜라니? 하고 많은 침쟁이들 중에 하필이면 왜 원수 마을의 침쟁이를 불러왔느냔 말이야!”

할머니는 꼴도 보기조차 싫다는 듯 곧 등을 돌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한식이네 마을과 오래 전부터 틀어져 버린 북리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입니다.

어느 정월 보름날, 남리와 북리는 돌팔매질을 하며 싸움을 한 뒤부터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두 마을 사람들은 민둥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 왕래도 안 하고 혼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예전에 우리 북리가 먼저 돌싸움을 걸었던 건 사실이오. 그때 청년대장이 바로 나였고요. 그 뒤부터 두 마을은 서로 원수지간이 된 것이지요. 난 이토록 늙도록 그 때의 잘못을 평생 잊지 못하며 살아왔 소이다. 그래서 민둥산에 흩어져 있는 돌멩이만 보아도 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기 짝이 없습니다. 할머니, 어려운 부탁인 줄 알고 있습니다만, 이젠 그만 저를 용서하시고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시는 게 어떠실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제야 할머니가 왜 그토록 화를 내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인 할아버지가 울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염치없는 부탁인 줄 압니다만, 부디 마음을 푸시고 용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늙은이는 그동안 민둥산에 흩어져 있는 그 몹쓸 돌멩이들을 하나하나 주워다가 쌓고 있는 한식이 할머니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소. 그래서 오늘 밤에도 산꼭대기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한식이가 외쳐 부르는 소리에 그만 너무나 민망해서 도망을 쳤던 것이랍니다.”

그러자 궁금하다는 듯 한식이가 갑자기 할아버지를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럼 아까 돌단 옆에 계시던 분이 바로……?”

“그렇단다. 그게 바로 나였단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머니는 어디서 그런 기운이 일어났는지 거짓말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는 아직도 살아 계신 게 분명해요. 아까 돌단에서 뵌 분은 바로 이 할아버지이셨어요.”

한식이는 할머니를 와락 힘주어 껴안았습니다. 할머니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방문을 열어젖뜨리더니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한식이도 황급히 할머니를 따라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식아, 어서 가자!”

“할머니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갑자기 힘이 생기는구나.”

“네, 할머니 알겠어요.”

민둥산을 향해 오르고 있는 할머니와 한식이의 뒤를 어느새, 북리에 살고 있는 침쟁이 할아버지도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틈에 할머니와 한식이가 부르는 행진곡이 달빛과 어우러지며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달아, 달아…….”

“두웅근 달아……!”

“한민족이 다 함께…….”

“노올던 달아!”

“저기, 저기 저 산 너머에서는…….”

“흩어진 부모 형제.”

”울고 있다아!.”

돌단 위에서 혼자 놀고 있던 산토끼 한 마리가 노랫소리에 놀라 그만 멀리 뺑소니를 치며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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