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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Feb 05. 2020

(18) 사발통문(沙鉢通文)

 

  ’사발‘은 옛날에 주로 밥을 퍼서 먹던 사기로 만든 그릇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발통문‘이란 여럿이 돌려가며 읽기 쉽게 쓴 통지문 즉, 광고문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럼 왜 하필이면 ’사발통문‘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발을 엎어놓고 원을 그린 다음 그 원에 따라 주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

도록 여러 사람의 이름을 둘러가며 적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발통문을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동학혁명 때라고 합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은 농민들을 동원하여 만석보(전북 정읍에 위치한 저수지)를 쌓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물을 쓰는 농민들에게 물세를 비싸게 받았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런저런 각종 이유를 만들어 농민들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아가는 일을 일삼았습니다.      


 이에 크게 분개한 농민들은 전봉준을 대표로 고부 관아(예전에 관리나 벼슬아치가 모여 나랏일을 보던 곳)를 습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학혁명의 발단이 된 것입니다.     

 

이때 동학 농민 운동의 주도자들과 참여자들은 봉기를 계획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사발통문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때 사발통문을 돌린 곳은 각 리의 집강(동학운동 때 동학 농민군이 전라도 각 고을마다 설치했던 자치 기구)들이었다고 합니다.           


  <예 문>     


  * 그는 조상이 유물로 남겨준 사발통문을 가보로 여기고 가장 소중하게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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