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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Feb 06. 2020

그리운 운동회

'깃발이 춤을 춘다 우리 머리 위에서 

달리자 넓은 마당 푸른 하늘 마시며' 


해마다 가을이 오면 문득 그 옛날의 운동회가 그리워지곤 한다.    

  

금방 목청이 찢어져 나갈 것처럼 외쳐대던 아이들의 운동회 노랫소리가 우렁찬 메아리가 되어 내 귓가를 맴돌기도 한다.       


시골 초등학교(옛날의 국민학교)의 운동회 날이면 그 고장 전체의 거대한 축제날이 되곤 한다. 


그래서 이날만은 어른들까지 농촌의 바쁜 일손을 모두 내려놓은 채 그동안 벼르고 별러 오던 운동회 구경을 나선다.      


운동장에는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달려온 구경꾼들과 각종 먹을거리를 파는 장사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곤 하였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좀처럼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북적거리기가 일쑤였다.     

어디 그뿐이랴.      


운동회 구경도 구경이지만, 오색찬란한 만국기가 가을 하늘을 뒤덮고 수를 놓은 채 펄럭이고, 아이들이 외치는 청군 백군의 응원소리를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지곤 하였다.      

  

새로 하얀 줄을 그은 트랙에서는 귀가 아플 정도로 요란한 총소리에 따라 머리에 흰색과 청색 띠를 머리에 두른 아이들의 달리기가 연신 이어지고 있다. 


그때마다 구름떼처럼 모여든 학부모들과 구경꾼들은 말뚝을 박고 새끼줄을 쳐놓은 경계선 밖에서 덩달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어디 그뿐이랴.    

 

2인3각 달리기, 바늘귀에 실 꿰고 달리기, 가장행렬 등의 각종 프로그램들은 어른,아이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함께 즐기며 마음껏 웃을 수 있어서 더욱 신바람과 흥을 돋우곤 했다.      


그러다가 오전 경기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으레 점심시간을 알리는 박 터뜨리기 경기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한시라도 빨리 부모님들이 정성껏 마련해 온 맛있는 점심을 먹기 위해 온햄을 다해 콩주머니를 던져댄다. 그러다가 결국 박이 터지게 되면 우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각자 점심을 마련해 놓은 자리로 우루루 달려간다.      


점심 메뉴는 주로 김밥이며 삶은 계란, 삶은 밤과 고구마가 전부였지만 그 시절에는 1년에 한 번 정도 맛을 볼 수 있는 특식이 아닐 수 없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면 곧 오후 경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오후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에는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청·백군의 릴레이경기, 그리고 부락 별 계주경기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경기가 시작되면 아이들과 구경꾼들이 모두 하가가 되어 손에 땀을 쥐고 응원을 하기 위해 소리소리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며 그야말로 운동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무슨 까닭일까! 요즈음에는 아무리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성대하게 치른다 해도 옛날과 달리 모여드는 구경꾼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모두들 살아가기가 힘들고 바빠서일까.


요즈음 학교에서 가끔 마련하고 있는 체육대회가 아니라 그 옛날의 운동회를 몹시 그리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그 고장 사람들이 모두 모여 정을 함께 나누고 마냥 즐거워하던 그 옛날의 운동회가 오늘따라 새삼 그립기만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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