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오싹 귀신 이야기]
마을이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인 캄캄한 밤중이었다.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마을 어귀에는 대여섯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모여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이 마을의 청년들로서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큼직한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낫이나 삽을 든 청년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캄캄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것이든 나타나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때려잡고 말겠다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따금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한 듯 청년들 중의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에는 정말 나타날까?“
"그걸 누가 알겠나, 우리들이 이렇게 잔뜩 벼르고 기다리고 있는 날은 번번이 허탕이던 걸.“
청년들이 이렇게 단단히 무장을 한 채 매일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밤만 되면 이 마을에 나타나고 있는 처녀 귀신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청년들이 오늘처럼 이렇게 철통같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날은 그때마다 번번이 허탕을 치곤 하였다.
벌써 몇 달 전부터의 일이었다.
이 마을에는 밤만 깊어지면 어김없이 처녀 귀신이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그 처녀 귀신이 마을에 나타날 때는 으레 예고라도 하듯 멀리 산 너머로부터 슬프게 흐느끼면서 차츰 가까이 바람처럼 다가오곤 하였다.
그리고 마을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갈 때는 언제 올 때와는 달리 언제 내가 울었더냐는 듯 간드러진 웃음 소리를 흘리면서 어디론가 사라지곤 하였다.
처녀 귀신의 행동은 여느 귀신들과는 달리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가 왔다가 가는 곳은 그때마다 결혼을 얼마 앞둔 처녀가 있는 집에만 어김없이 나타나서 번번이 피해를 입히곤 하였다.
바로 며칠 전에도 다를바가 없었다. 그 날 마침 공교롭게도 청년들이 마을을 지키지 않는 날이라는 것을 미리 귀신처럼 알고 온 것 같았다.
"으흐흑~~~ 으흐흑~~~“
밤이 깊어지자 여느 때처럼 그 날 밤에도 마을 앞 건너편에 있는 높은 산 너머로부터 몹시 슬픈 목소리로 구슬프게 흐느껴 우는 처녀의 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음산하면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분 나쁜 울음소리는 마을을 향해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에 잠이 깬 마을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죽여가면서 바짝 긴장했다. 처녀의 울음소리를 들은 청년들이 그때야 부랴부랴 귀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급히 달려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이미 처녀 귀신이 바람처럼 빠른 동작으로 어느 집에 숨어들어가서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날 처녀 귀신은 느티나무집 앞마당에 바람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그 집 역시 얼마 후에 시집갈 날을 정해 놓은 처녀가 있는 집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처녀 귀신은 다 해진 헌 치마저고리 차림에 머리를 있는 대로 풀어 늘어뜨리고 나타나서 그 집 안방을 향해 슬픈 목소리로 흐느껴 울면서 애걸을 하고 있었다.
"제발 저에게 옷 한 벌만 주세요. 보시다시피 저는 입고 지낼 옷이 없어서 정말 부끄러워 살 수가 없다고요. 흐흐흑…….”
처녀의 아버지는 찢어진 창호지 문틈으로 밖을 몰래 내다보면서 사시나무가 떨리듯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를 하였다.
“우, 우리 집엔 처녀가 입을만한 옷이 없으니 제발 그러지 말고 어서 다른 집에나 가 보도록 해요.”
"그런 거짓말은 집어치우세요. 저는 이미 이 댁에 시집갈 따님이 있다는 걸 알고 왔습니다. 그리고 혼수감으로 장만해 둔 이불이나 옷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중에서 아무거나 한 벌만 주신다면 그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으흐흑…….”
그러자 처녀의 어머니 역시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잠시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귓속말로 묻게 되었다.
“여보, 저토록 애원을 하고 있으니 무슨 화를 당하기 전에 얼른 한 벌만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내의 말에 처녀의 아버지는 겁에 질린 채 얼떨결에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게 되었다.
"그, 그럼 오, 옷을 가지고 나갈 테니 잠깐만 기다리고 있구려.”
처녀의 어머니는 곧 장롱에 소중히 간직했던 딸의 옷을 한 벌 꺼내 가지고 살며시 방문을 열고 마루 밖으로 내놓고는 겁에 질려 급히 방문을 닫아버렸다.
"호호호…….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호호호…….”
옷을 내놓자 처녀 귀신은 너무나 기뻐서 흐느끼는 소리를 쏙 들어가고 어느새 간드러진 웃음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회오리바람 소리를 내면서 마을 앞산을 향해 차츰 멀리 사라져 가면서 웃고 있는 처녀 귀신의 웃음소리가 온 마을에 가득하게 울려 퍼졌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그렇게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그 날도 처녀 귀신은 마을 청년들의 삼엄한 경계의 눈을 피해 마을에 내려왔다가 다시 옷 한 벌을 얻더니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대추나무 영순이네 집이었다.
"아니 저 웬수 같은 게 어느 틈에 또 왔다가 가는군!“
"허허, 청년들이 매일 철통같이 지키면서도 저런 거 하나를 못 잡다니 정말 환장을 할 노릇이로군."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밤마다 공포에 질려 떨고만 있었다.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처녀 귀신은 그런 마을 청년들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간드러진 웃음을 흘리면서 어느새 앞산 기슭을 재빠르게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누구야! 꼼짝 말고 그 자리에 서지 못해!“
지금 막 산기슭을 급히 기어 올라가고 있는 처녀 귀신의 앞을 거세게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두 명의 마을 청이었다. 한 사람은 몽둥이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낫을 들고 있었다.
그 청년들이 언제부터 산기슭에 잠복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당당하고도 무서운 기세로 귀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허걱!“
느닷없이 앞을 가로막고 나타난 청년들을 보자 귀신은 급히 산을 오르던 발걸음을 우뚝 멈추며 잠시 놀라는 기색이 엿보였다.
"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 바른대로 말하지 못하겠어?“
"어서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당장 이 낫으로 찍어 죽이고 말겠다!“
청년들은 당장이라도 때려잡을 듯이 육중하고도 큼직한 몽둥이와 낫을 들고 처녀 귀신을 향해 앙주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나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할 것으로 알았던 귀신의 태도는 그게 아니었다.
청년들의 그런 태도가 몹시 불쾌하고 가소롭다는 듯 기분 나쁜 목소리로 간드러진 목소리로 웃어대면서 오히려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으하하, 호호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너희들이 감히 내 앞을 가로막다니? 어림도 없다, 이 녀석들아! 내가 너희들을 먼저 해치우기 전에 어서 길을 썩 비키지 못할까!”
“……?”
처녀 귀신이 이렇게 당돌하게 나오자 청년들은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고 귀신의 머리통을 힘껏 내려치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귀신은 번개처럼 빠른 동작으로 몸을 피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옆길로 빠져 저만큼 바람처럼 멀리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저쪽이다! 저쪽으로 쫓아가!“
"네가 도망을 치면 어디로 가려고? 거기 서지 못해!”
두 청년은 다시 귀신의 뒤를 있는 힘을 다해 허겁지겁 급히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러나 처녀 귀신의 동작은 어찌나 빠른지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는 물론, 집채만큼 크고 높은 바위와 바위 사이를 마치 날아다니는 새처럼 도망을 치고 있었다.
"허억헉……. 히야, 이거 정말 너무 빠른데!"
"맞아. 그러니까 귀신이지. 우리 저 귀신을 끝까지 놓치지 말고 꼭 때려잡자고!“
”알았어.“
청년들 역시 헉헉거리면서 여전히 죽을 힘을 다해 뒤쫓고 있었지만, 귀신과 그들의 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어어? 저기 다시 보인다! 저기 저 아래 어느 집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청년 한 사람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뜻밖에도 상여를 보관해 두는 상엿집이었다.
“그래? 저건 상엿집이잖아?”
"응, 맞았어. 그런데 귀신이 왜 저런 속으로 들어가는 거지?”
"어른들의 말을 들어보니까 귀신들은 원래 낮에는 저런 곳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나와서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 그거차암, 으스스한걸!“
두 청년은 은근히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살금살금 상엿집 가까이 다가갔다. 온몸이 굳어지면서 오싹한 느낌에 몽둥이와 낫을 움켜쥔 손에서는 어느새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상엿집 안을 슬그머니 들여다보고 있던 청년 하나가 들릴 듯 말듯한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분명히 이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아무 인기척도 없으니 어떻게 된 일이지?“
"그래? 그렇다면 우리들이 한번 안으로 들어가 볼까?"
"우리가 이 위험한 집엘 들어간다고? 아니야. 그럴 게 아니라 조금만 더 여기서 기다리면서 동정을 살펴보자구. 아마 모르긴 해도 분명히 이 안으로 들어갔다면 무슨 소식이 있을 거야.“
”…….“
그리고 조금 뒤, 숨소리를 죽여가며 한동안 상엿집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두 청년은 순간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 소리 없이 괴괴하기만 하던 상엿집 안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성냥불 붙이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곧 상엿집 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불빛이 흔들리며 어른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성냥불을 켠 것은 분명히 아까 도망을 쳤던 바로 그 처녀 귀신이었다. 아마 사방이 아무 기척도 없이 조용해지자 안심을 하고 성냥불을 켠 것 같았다.
처녀 귀신이 이번에는 성낭불을 촛불에 당겼다. 그러자 캄캄하기만 하던 상엿집 안은 더욱 환하게 밝아졌다. 그다음에는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큼직한 상자 하나를 열었다. 그리고는 금방 들고 온 옷을 그 속에 아주 소중하게 접어서 넣었다.
그리고 처녀가 이번에는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이제 한 벌만 더 채우면 결국 오십 벌이 되는구나! 흐흐흐…….”
처녀 귀신은 상자 속에 정리된 옷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매우 흐뭇해하고 있었다. 밖에서 그 모습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던 청년 하나가 입에 고였던 침을 꼴깍 삼키며 다른 청년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거 혹시 귀신이 아니라 옷 도둑이 아닐까?“
"글쎄에……. 우리 조금만 더 살펴 보자구.”
귀신이 이번에는 상자 속에 간직해 두었던 치마와 저고리를 하나씩 번갈아 꺼내 자신의 얼굴에 비비고 문질러 보면서 한껏 기분이 좋아진 목소리로 다시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머나! 색깔이 참 곱기도 하지. 나도 이제 이런 옷들이 있으니까 남부끄럽지 않게 보란 듯이 시집을 갈 수 있다구, 호호홋…….“
귀신은 혼자 좋아서 마냥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자 청년 하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지금 그냥 덮쳐 볼까?”
"아냐. 조금만 더 지켜보자구.“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처녀 귀신의 표정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갑자기 사납게 일그러지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청년들이 있는 곳을 향해 핵 돌아서면서 갑자기 성깔이 난 사나운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호호……. 고얀 녀석들 같으니라구. 난 너희들이 나를 잡으려고 끝까지 쫓아올 줄 내 이미 알고 있었느니라. 호호호…….”
“……?!”
“……?!”
그 소리에 놀란 두 청년은 그만 공포에 질린 채 금세 온몸 납덩이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저런 바보 같은 녀석들 같으니라구, 지금 난 마침 몹시 시장하던 참인데 제 발로 걸어들어오다니, 히히히……. 거기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거라! 우선 잠깐 요기만하고 나갈 테니 말이야, 알겠니?“
귀신은 이렇게 지껄이고 나더니 곧 두 손으로 바닥에 있던 무언가를 번찍 들었다. 둥글고 묵직하게 생긴 시뻘건 덩어리였다. 귀신은 배가 몹시 고픈 듯 그것을 두 손으로 들고는 입으로 게걸스럽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처녀 귀신의 입은 금방 피투성이가 된 무서운 꼴이 되고 말았다. 정말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다.
"으아아악! 사, 사람 살려요!!“
청년들은 그만 기겁을 하여 그 끔찍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몽둥이와 낫을 내던지고는 단말바의 비명을 지르며 죽을 힘을 다해 미친 듯이 허둥지둥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놈들! 거기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니까 어딜 가고 있는 거냐? 저런 겁쟁이들 같으니라구. 으하하하…….”
뒤에서는 잔뜩 독이 난 처녀 귀신의 목소리가 바짝 청년들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처녀귀신이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던 것은 다름이 아닌 금방 죽은 사람의 머리통이었던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