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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r 23. 2021

도대체 손주가 뭐길래?

[MBC라디오 ‘여성시대’에 방송]

요즘 들어 부쩍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는 영국의 속담을 문득 머리에 떠올리며 속담에 담긴 뜻을 절실히 실감하곤 한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고 보니 조금은 망설여지기도 한다. 왠지 공연히 쑥스럽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왕에 사나이가 꺼내든 칼이니 무라도 잘라야지 어찌 도로 접을 수가 말인가. 그러기에 결국은 몇 번이나 망설이던 끝에 겨우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누가 뭐라고 흉을 보든 말든, 나 자신의 부끄럽고 쑥스러움보다는 이 야기만은 꼭 여성시대의 전파를 통해 전국으로 자랑스럽게 울려 퍼지게 하고 싶은 나 혼자만의 작은 소망과 욕망이 더욱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의 피 끓는 젊은 나이를 질긴 동앙줄로 꽁꽁 동여맨 채 오래오래 젊게만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고 오늘날까지 그저 무덤덤하게 그날그날을 살아온 것 같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에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라고 했듯이, 그리고 세월은 쏜살 같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새 내 나이 80이 가까워진 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혹자는 요즈음 백세 시대에 돌입했는데 이제 겨우 80도 안 된 사람이 무슨 늙은이 타령이냐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늙은이가 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인 것이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의 연배들은 그들 모두가 이미 손주들을 본 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손주가 크게 성장해서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하기도 하였고, 흔치는 않지만, 손자가 벌써 결혼을 하여 어느새 손자며느리까지 둔 친구들도 더러 있다.  

    

나는 가끔 그런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왠지 모르게 못마땅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들이 모임에서 툭하면 손주 자랑을 잔뜩 늘어놓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으레 휴대폰을 온통 도배하듯 저장된 손주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손주 자랑에 열을 올리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게 친구들을 만나기 위한 순수한 모임인지, 아니면 그들의 만남의 목적이 마치 손주 자랑을 늘어놓기 위한 자랑 대회 장소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착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대체 손주가 뭐기에 그토록 좋아서 야단들이람!     


 그들에게 언제부터 손주가 그토록 대단한 존재로 군림하게 되었단 말인가! 과연 그들에게는 손주가 왜 그렇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보물로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난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애를 써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 손주를 끔찍이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그들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긴 어떤 사람은 오랜만에 손주를 본 뒤부터는 퇴근 후, 그 좋아하던 술도 딱 끊어버리고  친구들을 멀리한 채 손주와 어울려 놀기 위해 곧장 집으로 달려가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기는 하다.

 또 누군가는 손주를 보고 난 뒤부터는 일손마저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음은 물론, 심지어 중요한 모임에도 빠질 정도로 정신이 언통 손주한테 빠진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난 친구들이 신바람이 나서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손주 자랑을 늘어놓을 때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나머지 예의상 그저 건성으로 으레 고개만 조금씩 끄덕여주는 것으로 화답해 주곤 하였다.


 아무리 손주가 소중하고 귀여운 존재라고는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사실 여기서 이실직고하자면, 내가 친구들이 손주 자랑으로 열을 올리고 있을 때마다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번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겐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 있듯이, 그리고 매우 부끄럽고도 쑥스럽긴 하지만 이쯤에서 이실직고를 해야 하겠다.  

    

솔직히 나는 이 나이를 먹도록 아직 손주를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남달리 결혼을 늦게 하여 그나마 2남 1녀를 두긴 했지만, 우리 아이들 역시 하나같이 애비를 닮아 그런지 40이 다 된 나이임에도 아직도 모두 미혼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의 태도는 여전히 급한 게 없고 항상 느긋하고 천하태평이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 바로 자식들의 속마음인 것 같다. 결혼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 하려고 작정을 한 것인지 그건 나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이니 생각할수록 더욱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문에도 마침내 대단한 사건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있다고 하더니 약 3년 전, 아들 하나가 갑자기 뜻밖에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  

    

첫째도 아니고 막내였는데 그야말로 여자를 만나자마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는 곧 서울에 새로 전셋집을 얻어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그후, 어느덧 결혼 3년째인 지난 11월 26일 새벽 1시 2분. 드디어 우리 가정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고도 남을만한 경사가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쥐구멍에도 볕이 들 날이 있다더니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드디어 떡두꺼비처럼 건강하면서도 듬직한 옥동자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난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뛸 듯이 기뻤다. 그 뒤로 며느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손자의 성장하는 모습을 정성껏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내게 보내주곤 하였다. 난 그런 며느리가 고마운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매일매일 달라지는 손주의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귀엽고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이미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지 오래이지만, 문득 그 옛날 살아생전의 아버님의 목소리가 내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나의 아버님 역시 외아들인 나를 늦게 두셨기에 늘 환갑이 되기 전에 그토록 며느리를 몹시 보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님 연세 70이 다 되어서야 겨우 아버님의 꿈을 이루어 드린 불효자였다.

     

아버님은 내가 첫째 아들을 낳은 뒤부터는 늘 손자가 가방을 메고 학교에 입학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가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후, 아버님의 소원대로 손자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아버님의 첫 번째 소망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러자 다시 아버님의 소원이 또 바뀌고 말았다.     

 

이번에는 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가고 싶다고 늘 노래를 하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아버님은 마침내 두 번째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손자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결국 안타깝게도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말았던 것이다.      


인간의 속마음은 원래 간사한 것이라고 했던가!     


‘나도 이번 모임에서는 기죽지 말고 휴대폰에 저장된 손자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손자 자랑을  실컷 늘어놓아야지! 아암, 그렇게 해야하고말고!’       

  

  이제 뒤늦게나마 친구들이 손주 자랑에 열을 올리며 좋아하던 그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도 남을만 하다. 그리고 벌써부터 새삼 친구들과의 모임이 기다려진다.


‘그런데 과연 나는 우리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모습만이라도 보고 눈을 감을 수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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