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하며 깊이 생각해 보기(26)]
♣ 우리 부모들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
< A. 생텍지페리 >
♣ 부모는 다만 단 두 분뿐인데 그 섬김에 있어서 늘 형제가 서로 미루고 아이를 기름에는 비록 열이 된다
해도 혼자 맡는다. 아이가 배고프고 따뜻한가를 늘 부모는 묻지만, 부모의 배고프고 추운 것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애당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자식에게 빼앗겼는데도…….
< 명심보감 >
♣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찌하여 정사에 참여하지 아니하나이까?’
이에 공자가 이르기를
‘오직 효도하며 형제와 우애함이 즉 정사를 시함이니라 하니 이 또한 위정이요, 어찌 참정함만을 위정이라
하리오’
< 논어 >
♣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어버이를 존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오만하지 않다.
< 효경 >
그는 혼천의와 자격루를 발명한 조선 시대의 과학 기술자이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장영실은 10살이 되자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었다. 벼슬아치의 집의 노비로 팔려가게 된 것이다.
어린 나이에 노비가 되어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 된 장영실은 자나 깨나 어머니 생각과 그리움에 남몰래 피눈물을 흘리며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손재주가 뛰어나서 도르래를 만들어 물을 쉽게 퍼 올리게 하였음은 물론, 오래 써서 녹이 슬고 못 쓰게 된 어떤 연장이라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하면 새것처럼 만들어 놓는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그 고을의 원님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원님 부인이 사용하고 있던 고장난 장롱을 고쳐 달라는 부탁을 듣고 그것을 말끔하게 고쳐놓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그때부터는 다시 원님 댁에서 심부름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에는 심한 가뭄이 들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장영실은 궁리 끝에 강물을 논으로 끌어들여 흉년을 면하게 되자 이를 본 원님은 장영실의 뛰어난 재주에 탄복하게 되었다.
원님은 곧 장영실을 불러 후한 상을 주기 위해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줄 테니 말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장영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주저없이 대답했다.
“예, 저의 소원은 오직 어머니를 한번 만나 뵙는 일이옵니다. 어머니를 딱 한번만이라도 만나게 해주신다면 그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이에 원님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장영실을 보자 다시 한번 감동하게 되었다.
그 후, 장영실의 지극한 효성은 세종대왕의 귀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이에 감동한 세종은 마침내 그에게 벼슬까지 내리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궁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때부터 노비의 신세도 벗어나게 되었으며 그토록 보고 싶고 그리웠던 어머니와 함께 오래오래 살아가게 되었다.
지성이면 감천, 즉 효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이 있듯이 ‘효’는 백 가지 행동의 근본이라 할 수 있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