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 -2회 중 2회분-]
“허허허……, 그거 좀 안된 일이긴 하지만 그까짓 일을 가지고 그렇게 마음이 약해져서야 앞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니?”
“……?”
꽃씨는 바위가 그렇게 큰 소리로 웃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바위까지 은근히 밉고 속이 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어찌된 영문을 몰라 한동안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바위가 다시 꽃씨를 향해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얘야, 어떻게 보면 너에겐 그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네에? 그게 잘된 일이라구요?"
꽃씨는 바위가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암, 그렇구말구.”
“꽃밭에 심어지지도 못하고 이렇게 고약하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참새 똥과 함께 섞여 버림을 받았는데도요?”
“글쎄, 내 말이 맞는다니까 자꾸만 그러는구나.”
꽃씨는 그만 약이 바짝오르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톡 쏘는 목소리로 되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똥 속에 묻혀 금방이라도 질식을 해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도요?”
그러자 이번에는 바위가 한층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꽃씨를 달래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애야, 너 혹시 저 아래에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 본 적이 있니?”
"아니요. 전 너무 어려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건 그렇겠구나, 그럼 내 얘기를 좀 들어보렴. 세상 사람들 중에는 아주 훌륭하고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그렇지만 전 이미 틀렸잖아요. 저 같은 못난이가 고생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바위가 조금 언짢아진 얼굴로 꽃씨를 나무랐습니다.
“옛기 이 녀석아. 벌써부터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무슨 짝에 쓰겠니?”
바위는 답답하다는 듯 먼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아까보다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꽃씨를 향해 물었습니다.
“식물들이 잘 자라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야 물론 영양분이 많은 거름이 아닐까요? 햇볕도 필요할 거고요.”
“그래, 맞았다. 잘 알고 있구나. 그런데 지금 너는 너희들에게 가장 필요한 거름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얻지를 않았니?”
“제, 제가요?”
“아암, 아무리 냄새가 고약하고, 참기가 어려워도 조금만 더 견디어 보렴, 참새 똥이 너희들한테는 아주 훌륭한 거름이 될 수도 있거든.”
꽃씨는 그제야 겨우 바위가 하는 말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솔깃해진 얼굴로 다시 물었습니다.
“하지만 저한테 아무리 훌륭한 거름이 있다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전 다른 꽃씨들처럼 제대로 여물지를 못했다니까요.”
"허어, 모르는 소리, 넌 틀림없이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너의 꿈을 이룰 수가 있다니까 그러는구나.”
“피이, 어떻게요?”
“눈 꾹 감고 돌아오는 이번 여름철만 한번 잘 참고 견디어 보렴.”
“그럼 그땐 무슨 수가 생기나요?”
"아암, 생기고말고. 곧 여름철이 돌아오면 그때는 이 바위가 뜨거운 햇볕을 받아 일마나 뜨겁게 달구어진다는 걸 넌 아마 상상조차 하기가 이려울 게다.“
“그럼 그때는 지금보다 더욱 견디기가 어려워질 텐데요?”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 어려움을 잘 참고 견디고 나면 뜨거운 바위의 열에 의해서 넌 지금보다 훨씬 더 야무지게 잘 여문 씨앗으로 변하게 되지 않겠니?”
“정말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요?”
“글쎄, 내 말을 믿어 보라니까 자꾸만 딴소리를 하는구나. 넌 아마 아직 어려서 잘 모를게다.”
“어려서 잘 모르다니요?”
“지금까지 이 바위 위에 너처럼 떨어졌던 씨앗들이 너 말고도 제법 많았거든."
”저 말고도 여기 떨어진 씨앗들이 많았다고요?“
“아암, 그리고 다른 씨앗들도 이 바위 위에 떨어졌을 때 처음에는 그들 모두가 지금 너처럼 절망을 하고 하나같이 울고 짜고 야단들이었지.”
“그랬었군요. 그래서요?”
꽃씨는 이 바위 위에 떨어진 친구들이 많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부쩍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위의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였습니다.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처음에는 울고 짜고 법석들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수많은 어려움들을 참고 견디어 낼 수밖에 별수 없었지.”
“그래서요?”
“그래서 결국은 남들보다 더욱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예쁘고 탐스러운 꽃을 활짝 피운 꽃씨들도 많았고, 자랑스러울 정도로 큼직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나무들도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지.”
“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 누가 그런 거짓말에 속을 줄 아세요?”
"아니, 거짓말이라니?“
"바위님은 지금 제 처지가 너무 안 돼 보여서 그냥 달래주느라고 거것말을 하시는 거 아니에요?“
바위는 자신의 말을 하도 믿지 않는 바람에 이번엔 언성을 조금 높여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하였습니다.
"옛기 이 녀석!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비싼 밥을 먹고 너한테 거짓말이나 하고 앉아 있는 줄 알았니?“
“그럼 그렇지 않아요? 만일 여름철을 이 바위 위에서 잘 견디고 난 다음에 씨는 잘 여문다 해도 어떻게 이렇게 단단하고 육중한 바위 위에 무슨 수로 어떻게 뿌리를 내릴 수가 있겠어요?”
“그런 건 조금도 염려 마라,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언제나 무서운 장마와 폭우가 내리게 마련이거든.”
“그래서요?”
“그때 넌 아무리 이곳을 떠나기가 싫다 해도 결국은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단다."
“떠나다니 어째서요?”
“넌 그저 가만히 있겠다 해도 쏟아지는 빗물이 너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게 마련이거든.”
“그래요? 어디로 데리고 가게 되는데요?”
꽃씨는 갑자기 마음이 들뜨고 흥분이 되어 마음이 몹시 초조해졌습니다.
"그걸 난들 알 수가 있겠니? 하지만 이 바위를 떠나고 난 다음에는 빗물과 함께 산개울을 따라 어쩌면 네가 어제 있었다던 꽃밭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지 않겠니?“
“그래요? 그럼 전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죠?”
“허허, 저렇게 급하기는……, 네가 떠내려간 그곳 땅속에 묻혀 다시 한 해 겨울만 잘 지내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김없이 다시 따뜻한 봄이 오지 않겠니?”
“봄이 오게 되면요?”
“그때는 너도 땅속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네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아주 예쁘고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지 않겠니? 아마 넌 이번 고생만 살 견디고 나면 틀림없이 어제 심어진 네 친구들보다 훨씬 더 예배고 싱싱하면서도 탐스러운 꽂을 피울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거든.”
"바위님,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바위의 설명을 들은 꽃씨는 너무나 가슴이 설레고 벅차서 몹시 들뜬 목소리로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바위가 저 건너에 보이는 산기슭을 가리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에야, 내 말이 그렇게 의심스럽다면 저기 보이는 저 나무들을 좀 바라보렴.”
바위가 가리키는 저 멀리 산기슭에는 건강하고 든든하게 자란 싸리나무 숲의 무성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 싸리나무들이 저렇게 든든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이유를 너는 아마 잘 모를 거다. 그렇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암, 그야 그렇겠지. 저 나무들이 저렇게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게 된 것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나무들보다 모진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란다.”
“어떤 고생들을 했는데요?”
“한여름에는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뜨거운 땡볕과 장마, 그리고 무서운 태풍을 모두 이겨냈지, 그뿐만이 아니란다. 거울엔 모진 눈보라와 추위, 그리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살을 에일듯한 칼날 같은 찬바람을 모두 장하게 견디어 냈기 때문이란다.”
"아하! 그랬었군요!“
“아암, 그렇고말고. 이제야 겨우 내 말을 좀 알아들은 모앙이구나. 그러니까 너도 틀림없이 내 말대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테니까 좀 힘이 들겠지만 그런 고생을 참고 견디어 보렴.”
“……!”
바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꽃씨는 당장이라도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코에 와 닿는 참새 똥의 고약한 냄새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꽃씨는 곧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빌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아무리 힘든 어려움이 온다 해도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끝까지 잘 참고 견디어 내겠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내년 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빌고 또 빕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정성껏 빌고 있는 꽃씨의 눈에서는 어느새 기쁨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꽃씨의 눈에는 어느 새 먼 훗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꽃을 피운 자신의 자랑스럽고도 건강한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
- 2회중 2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