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여느 때 같으면 순남이를 보기가 무섭게 활짝 웃는 얼굴로 반색을 하며 맞아주곤 했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오늘은 순남이를 한번 힐끗 바라보고는 아무 대꾸도 없이 외면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
그러자 순남이는 덜컥 불안해진 얼굴로 아버지의 눈치만 슬금슬금 살피고 있었습니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고는 곧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화가 잔뜩 난 표정이 되어 외면을 한 채 담배만 연신 뻑뻑 피워대고 있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지금 아버지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게 틀림없습니다.
순남이는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가뜩이나 화가 잔뜩 난 아버지에게 섣불리 물어보기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연거푸 담배만 피우며 외양간에 누워 있는 누렁이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었습다. 순님이의 눈길도 덩달아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누렁이에게로 쏠렸습니다.
순간, 순남이의 두 눈은 누렁이의 눈보다 더 크게 동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니, 우리 누, 누렁이가 어쩐 일로……?‘
지금 누렁이의 몸뚱이는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습니다. 금방 개울물에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이 있습니다. 몸만 그런 게 아닙니다.
곧 숨이라도 넘어갈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마다 누렁이의 코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가 마치 사나운 태풍소리처럼 그렇게 요란할 수가 없습니다. 숨을 크게 몰아 쉴 때마다 누렁이의 입에서는 허연 침이 마치 엿기름이 흘러내리듯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누렁이가 순남이가 들어오는 인기척 소리가 들리자 순남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살려 달라고 애원이라도 하듯 툭 불거진 충혈된 눈으로 순남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정말 불쌍하고 가엽기 그지없는 누렁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순남이는 어떻게 된 영문을 몰라 아버지와 누렁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 이윽고 아버지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뜻밖에도 순남이가 듣기에도 무서울 정도로 거칠고 상스러운 욕설이 거침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에이, 오라질 놈의 쇠 새끼 같으니라구, 이젠 아무짝에도 못 쓰겠다니까. 그동안 살이나 찌개 잘 처먹여서 돌아오는 장날에는 도살장에 가서 불고기가 되든 말든 팔아 버려야지 별 수 없겠다, 이 말이야! 에이, 죽일 놈의 쇠 새끼 카악, 퉤에엣……!”
아버지는 이렇게 퉁명스러운 욕을 하고는 화를 견딜 수 없다는 듯 앞마당을 향해 힘껏 침을 뱉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궁금함을 참다못한 순남이가 마침내 겁먹은 표정으로 더듬거리는 목소리고 묻게 되었습니다.
“아, 아버지, 오늘 우리 누령이가 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이구, 말도 마라. 글쎄 저 미친놈의 쇠 새끼가 오늘 읍내 장에서 우리 마을의 비료를 달구지로 싣고 오다가 갑자기 꾀를 부리고 쓰러지는 바람에 비료 푸대가 모두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떨어지면서 비료 푸대가 모두 터져 버리고 말았지 뭐냐. 이제 우리 집은 저놈의 쇠 새끼 때문에 쫄딱 망했다, 망했어!“
”……?“
순남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순남이가 생각하기에는 그토록 힘이 넘쳐흐르는 힘으로 일을 열심히 하던 누렁이가 꾀를 부리나니 그럴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누렁이가 꾀를 부리고 쓰러지다니요? 그게 사실이었다면 누렁이에게 그럴만한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게 아니어요?“
”사정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사정이야. 저 죽일 놈의 쇠 새끼가 이젠 늙어빠져서 기운이 떨어지니까 여우 새끼처럼 꾀를 부린 거라니까."
아버지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잔뜩 우거지상이 된 얼굴로 애꿎은 담배만 연신 뻑뻑 빨아대고 있었습니다.
순남이는 지금 아버지가 화가 잔뜩 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오늘 누렁이가 달구지로 싣고 오던 비료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구입한 비료였습니다. 그런데 그 비료를 읍내에서 싣고 오다가 누렁이가 쓰러지는 바람에 그 많은 비료값을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몽땅 물어내야 할 판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순남이가 이번에는 애원하듯 아버지에게 졸랐습니다.
“아버지, 누령이는 절대로 꾀를 부린 게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팔아버리면 절대로 안 된다니까요.”
“뭐야? 꾀를 부린 게 아니면? 그리고 넌 그 비료값이 한두 푼인 줄 아니? 우리가 무슨 돈으로 그 많은 비료값을 모두 물어 내느냔 말이야? 그러니까 소를 팔지 말라니, 그럼 네가 비료값을 대신 물어낼 수 있겠니? 으이구, 답답해 죽겠네.”
아버지는 비료값을 물어낼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미치고 환장을 하겠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까지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남이는지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저 불쌍한 누렁이를 좀 보세요. 땀을 저렇게 몹시 흘리는 걸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누렁이는 꾀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니라 병이 난 게 틀림없다니까요. 그러니까 팔지 말고 동물병원에라도 데리구 가서 병을 고치면 될 게 아니어요?”
“아니 어린 녀석이 뭘 안다고 떠들고 있어? 모르면 잠자코 있기나 해. 저 쇠 새끼는 병이 난 게 아니라 이젠 일이 하기 싫으니까 괜히 꾀를 부리고 엄살을 떠는 거라니까.”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듯 여전히 퉁명스럽게 순남이를 향해 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순남이는 아버지가 하도 무섭게 소리치는 바람에 더 이상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남이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있었습니다.
누렁이도 여전히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살려달라는 듯 순남이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누렁이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순남이는 그런 누렁이의 모습을 보자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누렁이만은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순남이로서는 별도리가 없는 일이어서 더욱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외양간에 엎드린 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 누렁이 역시 이만저만 억울한 게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남의 사정도 잘 모르고 그저 꾀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우기고 있는 순남이 아버지가 그렇게 밉고 야속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아아, 답답해라!”
누렁이는 정말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꾀를 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때 얼른 나서서 피를 부린 게 절대로 아니라고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실은 비료를 싣고 오다가 발톱 사이에 큰 못이 박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처럼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바로 그 하나 때문에 지금과 같은 오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야 말아버린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토록 누렁이를 사랑해 주던 순남이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렇게 변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습니다.
오늘 읍내 장에서 달구지에 비료를 잔뜩 신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제법 가파른 고갯길을 있는 힘을 다해서 오르고 있을 바로 그때, 누렁이는 갑자기 발바닥이 섬뜩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느닷없이 발톱 사이에 그만 큰 못이 박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누렁이는 못이 박힌 채 발바닥이 점점 쑤셔오는 고통을 이를 악물고 견디며 언덕을 오르려고 애를 썼습니다.
안간힘을 다해 언덕을 오르고 있는 누렁이의 온몸은 금방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발바닥의 고통이 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아, 이럴 때 발바닥에 못이 박혔다고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니 이놈의 쇠새끼가 갑자기 왜 이 모양이지? 이라! 이럇!”
갑자기 다리를 절며 쩔쩔매고 있는 누렁이를 보자 순남이 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멍에를 밀면서, 그리고 한 손으로는 손에는 채찍으로 누렁이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갈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금니까지 꽉 깨물고 아무리 언덕을 오르려고 애를 썼지만 고통을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누렁이는 그만 고통에 못 이겨 눈을 홉뜬 채 다리를 꺾고 언덕에서 나뒹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다음 날부터 순남이 아버지는 전에 없이 누렁이에게 살을 조금이라도 더 오르게 하기 위해 콩과 콩깍지를 듬뿍 넣은 여물을 먹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살이 많이 올라야 값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발바닥이 점점 더 쑤셔오고 고통스러워진 누렁이는 입맛이 없어서 통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누렁이를 귀여워해 주고 마음씨 좋던 순남이의 아버지가 갑자기 이토록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누렁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습니다.
“아니. 이놈의 쇠 새끼가 이런 걸 안 처먹으면 그럼 뭘 처먹겠다는 거야?”
순남이 아버지는 속이 상한다는 듯 누렁이의 머리통을 힘것 쥐어박았습니다. 그러자 누렁이의 마음은 더욱 슬프기만 하였습니다. 그런 누렁이의 눈에서는 또다시 긁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단지 말을 못한다는 죄 하나 때문에 이런 누명을 쓰게 된 누렁이는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마음이 아프고 답답한 것은 하루아침에 주인에게 버림을 받게 되었다는 억울함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