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파출부의 딸

by 겨울나무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점심을 먹기가 무섭게 급히 운동장으로 뛰쳐나온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소리가 학교가 온통 떠나갈 듯 시끄럽습니다. 순주 역시 점심을 먹자마자 급히 운동장으로 뛰어나오면서 친구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애들아, 잠깐만!”


순주는 헐떡이는 숨을 한동안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습니다.


"얘, 너, 너희들도 알고 있니? 이번에 우리 반 부반장이 된 정숙이 고 계집애가 말이지…….“


친구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건 톱 뉴스감이란 말이야. 고 계집애가 말이지. 이제 보니까 순 거짓말쟁이였단 말이야.”


순주의 느닷없이 꺼낸 엉뚱한 말에 영희가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정숙이라니? 우리 반 부반장 말이니?”


“으응, 이제 보니까 고 계집애가 우리들한테 거짓말로 순 뺑을 치고 있었다 이 말이야.”


“뻥이라니?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니?”


선영이와 희정이도 덩달아 눈이 동그랗게 되어 순주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순주가 신바람이 난 듯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정숙이 그 애 아빠가 고등학교 선생님이라고 그랬잖아.”


“응, 그래. 지난번 자기 소개할 때, 자기 입으로 그 애가 분명히 그랬지. 그래서?”


"그런데 그게 글쎄 순 거짓말이었다니까.“


“그래? 그럼 정숙이 아빠가 선생님이 아니면 뭐하시는 분인데?”


친구들의 눈이 여전히 동그랗게 된 채 순주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순주는 더욱 신바람이 나서 친구들을 향해 되물었습니다.


“너희들 요즈음 그 애 행동을 보고 뭐 이상한 거 느끼지 못했니?”


“……?”


친구들은 이번에도 입을 벌린 채 고개만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애 요즘 우리들 몰래 빈 병 주우러 다니는 거 너희들은 모르고 있었지?”


순주의 말에 친구들은 뜻밖이라는 듯 어리둥절한 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가 이번에는 영희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애? 그런데 정숙이가 빈 병 주우러 다니는 게 걔네 아빠가 선생님인 거 하고 무슨 관계라도 있단 말이니?”


“으이그, 이렇게 답답하기는……. 아빠가 고등학교 선생님이라면서 그래 선생님의 딸이란 애가 거지처럼 빈 병을 주우러 다니게 됐어? 너 같으면 그릴 수 있겠니?”


“아하! 그러니까 네 말은 정숙이가 빈 병을 주우러 다니는 걸 보면 그 애 아빠가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닐 거라 이 말이지?“


"그래 이 형광등아. 이제야 알아듣겠니?“


“……!”


순주의 설명을 들은 영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희정이가 그건 맞지 않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습니다.


“난 정숙이가 정말 빈 병을 줍고 다닌다 해도 네 생각과는 다르단 말이야.”


“다르다고? 그럼 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빠의 직업하고 빈 병 줍는 게 무슨 상관이 있느냔 말이야. 빈 병을 주우러 다닌다고 다 가난하고 창피한 건 아니잖아?”


희정이의 엉뚱한 대답에 순주는 기분이 상한다는 듯 정색을 하며 맞섰습니다.


“그럼 넌 니네 아빠가 고등학교 선생님이라면 빈 병을 주우러 다닐 수 있겠니?”


"그러엄, 그렇고말고. 내 말은 아빠가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가령 대통령이라 해도 주울 건 주워야 한다고 생각해. 빈 병을 줍는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건 잘못된 생각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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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그 애가 우리들을 속인 건 분명하다니까.“


“내 말은 정숙이 아빠의 직업도 잘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그런 소릴 하느냐 이 말이야.”


"잘 알지 못하다니? 나한테 증거가 있다니까.“


“증거라니? 무슨 증거?”


희정이가 계속 끈질기게 다그치는 바람에 순주가 이번에는 몹시 불쾌해진 얼굴로 퉁명스럽게 다시 대꾸하였습니다.


"너희들 놀라지 마라. 그리고 이건 비밀이다. 가만히 보니까 정숙이 엄마는 우리 옆집에 파출부로 일하고 있단 말이야. 그래도 너희들 내 말을 못 믿겠다고?“


순주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뜻밖이라는 듯 일제히 순주에게도 시선이 쏠렸습니다.


“뭐, 뭐라구? 그게 정말이니?”


그러자 다시 힘을 얻은 순주가 제법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엄, 내 눈으로 직접 봤다니까. 그런데 내가 왜 너희들한테 괜한 거짓말을 하겠니?“


”……?“


순주의 말을 들은 희정이와 영희, 그리고 신영이도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직접 보았다는 순주의 말을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순주가 다시 그거 보라는 듯 입을 삐죽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난 말이지. 그런 계집애가 버젓이 우리 반 부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게 왠지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하다는 느낌이 들어. 너희들은 안 그러니?”


“그, 글쎄에……!”


아이들은 얼른 뭐라고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리면서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희정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뒤로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순주네 반 아이들은 아침부터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얘, 오늘 정숙이 엄마가 학교에 오신대.“


"뭐어? 정숙이 엄마가 왜 학교엘 오신다니?“


아이들이 하도 궁금해하자 이번에도 순주가 얼른 나섰습니다.


“왜라니? 아마 정숙이가 그 주제에 이번에 부반장이 되었으니까 선생님한테 인사를 하러 오시는 모양이야. 어디 옷은 얼마나 잘 차려입었는지 구경 좀 해야지. 아마 파출부 일을 하신다니까 보나 마나 꼴이 말이 아닐 거야.”


정숙이 엄마가 하교에 나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제일 신바람이 난 것은 역시 순주였습니다. 오늘이야말로 그동안 비밀로 가려졌던 정숙이의 정체가 여지없이 드러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숙이는 누가 뭐라고 지껄이든 말든 못 들은 척하고 여전히 부반장으로써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흥, 저 앙큼한 것 좀 봐, 금방 본색이 드러날 텐데도 저렇게 시치미를 떼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워언…….”


순주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정숙이의 태연한 모습이 보면 볼수록 못마땅하다는 듯 연신 비웃고 있었지만, 정숙이의 태도는 여전히 태연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둘째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이윽고 양쪽 손에 선물 꾸러미를 잔뜩 든 정숙이 엄마가 교실에 나타났습니다. 고급스럽게 포장이 된 그 선물들은 반 아이들 모두에게 나누어 줄 학용품들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럴 수가……?”


순간 순주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옷차림이 파출부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고급스럽고 세련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얼굴 모습 또한 너무나 곱고 예뻤습니다.


‘흥, 오늘만큼은 한껏 예쁘게 잘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옷을 잠깐 빌려 입고 온 모양이지?’


순주가 마음속으로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매우 흐뭇한 얼굴로 정숙이 엄마를 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숙이 아빠는 현재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다는 것, 그래서 집안 살림이 좀 넉넉한 편이지만, 정숙이 엄마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파출부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알뜰하고 검소한 분이라는 것,

그리고 정숙이도 부모님의 검소하고 부지런한 생활 태도를 본받아 오래전부터 빈 병이나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열심히 저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에는 정숙이를 우리 반의 저축왕으로 추천을 하여 표창을 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짝! 짝! 짝……!”


“우와아~~, 정말 대단하다!”


선생님의 소개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요란한 박수 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순주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얼떨결에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있있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겋게 된 채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자, 순주야, 너도 받아.“


일일이 반 아이들에게 직접 선물을 나누어주고 있던 정숙이가 순주 차례가 되자 환한 얼굴로 다가와서 예쁘게 포장이 된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으응, 그래. 고마워…….“


순주는 몹시 무안해진 얼굴로 마지못해 선물을 받으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얼버무리며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수준의 얼굴 빛이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에 더욱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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