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알이나 럭비공처럼 공격적인 성향의 무서운 사람들]
녹두는 콩과에 속한 한해살이 곡식으로 길다란 꼬투리의 모양이 팥과 비슷하며 꼬투리가 익으면 검정색으로 변한다.
녹두는 주로 빈대떡을 만들어 술 안주로 쓰이거나 죽을 쑤어 먹기도 하며 영양은 물론 그 맛이 일품인 고급 음식이다.
그런데 이 녹두는 다른 곡식들과 달리 수확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여름에 노란 꽃이 피었다가 곧 연두색깔의 길다란 열매(꼬투리)가 매달리게 되는데 이 꼬투리가 검정색으로 변했다 하면 그때마다 바로바로 바구니나 주머니를 들고 다니면서 따서 담아야 한다.
만일 그때마다 수확을 하지 못하고 때를 놓치게 되면 꼬투리가 갑자기 쩍 갈라지면서 녹두 알맹이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바람에 제대로 수확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녹두 알갱이가 너무 작아서 땅바닥 어디로 튀어갔는지 찿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녹두 수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느 때 터져버릴지 모르는 검정색으로 변한 녹두 꼬투리를 아침 저녁으로 자주 녹두밭 사이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수확을 해야 한다.
언제 어느 때 어느 방향으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녹두. 그것은 어쩌면 럭비공과 흡사한 성질을 닮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만히 보면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 역시 어쩌면 잘 익은 녹두 알이나 럭비공과 그 성격이 흡사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성격이 불같은 공격적이며 무데뽀인 성향의 사람들을 보면 언제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존파‘, ’막가파‘, ’묻지마‘, ’무데뽀‘, ’이판사판‘ 등 말만 들어도 우리들의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단어들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오래전 ’지존파‘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찌 보면 잘 익은 녹두 알이나 럭비공을 닮은 대표적인 공격적인 성향의 인간들이라 하겠다.
일명 지존파 사건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1년 2개월에 걸쳐 20대 초반의 나이로 결성된 6명이 죄없는 5명을 연쇄살인하고 성폭행을 저질렀던 희대의 끔찍한 사건이다.
그들은 검거 후 자백에서 대학입시 부정, 강남의 땅투기 부자들, 즉 가진자들의 횡포에 대한 반항심과 불만에 따라 저지른 범죄라고 자백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지존파가 검거되고 일단락되면서 사회가 한동안 안정되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다시 ’막가파‘, 즉 앞과 뒤를 가리지 않고 막되게 행동하자는 각오로 9명의 조직들이 나타나서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고 말았다.
말만 들어도 끔찍한 이 막가파 조직 역시 놀랍게도 9명의 10대 말 또는 20대 초의 어린 나이의 인원으로 결성된 악랄하기 그지없는 깡패 조직이었다.
그들은 지존파를 모방하여 행동강령까지 만들어 놓고 기왕에 망가진 인생 죽을 각오로 막가자는 각오로 행동강령까지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던 무서운 깡패 조직이었다.
그들의 섬뜩한 행동강령을 보면,
첫째, 우리는 최고의 깡패가 된다.
둘째, 배신자는 바로 죽는다.
셋째, 화끈하게 멋있게 살다 죽는다.
넷째, 잡히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다. 등이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도 하였다.
이 세상에 남의 지나친 간섭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말도 세 번 이상 들으면 듣기 싫고 짜증이 난다고 하였다.
하물며 자신이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짜증이 날 때 누군가가 공연히 생트집을 잡으며 자신의 감정을 건드리며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는 인간이면 누구나 순간적으로 막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을 가지고 참아내는 것 또한 때론 현명한 사람들의 처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가슴속에서 복받쳐 터져 나오는 감정을 그때마다 폭발하며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기에 예로부터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도 나오게 된 것이고, 또한, 참을 인(忍)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옛말도 생기게 된 것이 아닐는지!
그런데 아직도 이 사회 곳곳에는 자신의 성질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때마다 마치 녹두알처럼 공격적으로 마구 튕겨나가는 안하무인적인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가고 있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누구나 연세가 지긋해지면 그렇지만, 나의 어머니 역시 연세가 많아짐에 따라 건강이 좋지 않아 시름시름 앓고 계셨다. 그러던 중 2008년도에는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가까운 도립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입원한 지 약 두 달 만에 결국 향년 90세에 돌아가셨다. 벌써 13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우리 가족들은 두 달 동안 번갈아가며 어머니 간병을 하느라고 가족들이 모두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병실에 어떤 젊은이 하나가 나의 어머니 바로 옆 침상에 입원하게 되었다.
나이 40이 좀 넘어 보이는 그 젊은이는 허우대도 멀쩡하고 잘 생긴 편이었다. 보호자로는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얼른 보기에도 다 꼬부라진 할머니로 보이는 한분이 딷라오셨는데 그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그 젊은이는 입원하자마자 침대에 벌렁 누워 잠만 자고 있었다. 무슨 병으로 입원하게 되었느냐고 그의 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보니 아주 작은 소리로 ’술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조금 뒤, 간호사 하나가 주사기를 들고 들어오더니 침대에 누워 있는 젊은이에게 다가오며 매우 공손한 말로 깨우고 있었다.
“◌◌◌ 님! 주사 맞으셔야 해요. 얼른 일어나세요!”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마치 잠이 든 듯이 그때까지 조용히 누워있던 젊은이가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간호사를 향해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며 심한 욕설을 퍼붓는 것이 아닌가!
“야, 이 ◌◌년아! 왜 잠자는 사람을 함부로 깨우고 이 지◌이야? 너 내 손에 죽고 싶어?”
“……!!”
간호사는 그만 기절초풍을 하고 놀라 그대로 병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 바람에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은 물론 보호자들 모두가 너무나 놀란 얼굴로 입을 딱 벌린 채 그 젊은이를 흘금흘금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자 젊은이는 자리에 다시 누우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년이 남 잠도 자지 못하게 아무 때나 주사를 맞으라고 지◌이야!”
나는 물론이지만, 병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겁에 질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혀만 내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뒤에 아니나 다를까. 병실문이 다시 열리면서 병원 남자 직원 두 명이 들어오더니 젊은이에게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누워 있는 젊은이에게 다시 아주 조심스럽고 공손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미리 설명을 들었기 때문인지 얼른 보기에도 겁을 좀 먹은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 씨! 우리 병원에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셨는지요? 그렇다면 말씀만 해주십시오. 바로 시정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다시 젊은이가 이번에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들을 향해 성질을 벌컥 내며 소리치고 있었다.
“야! 이 새끼들아, 너희들은 또 뭐야? 제발 잠 좀 자게 조용히 있지 못하겠어?”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병원 직원들 역시 기겁을 해서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그 바람에 병실 안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들은 모두 긴장한 탓에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자 젊은이의 어머니가 아들을 향해 달래듯, 그리고 쩔쩔 매면서 조심스럽게 울상이 된 표정이 되어 애원을 하듯이 입을 열었다.
“얘, 너 왜 그러냐? 내가 기껏 사정사정해서 들어온 병원인데 여기서 쫓겨나면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거야? 으이구, 속상해서 못 살겠네.”
그러자 젊은이가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씨◌, 병원이 여기뿐인 줄 알아? 나가라면 나가면 될 거 아니야?”
“…….”
어머니도 더 이상 아무 대꾸도 못하고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젊은이는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하였으며 게다가 직업도 없는 총각이며 그냥 놀고 먹는 건달이라고 하였다.
그냥 놀고 먹기만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틈만 나면 건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노름도 하고 술만 마시며 세월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돈만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돈을 요구하는 바람에 그게 죽을 지경이라고 하였다.
어쩌다 아들과 단둘이 살아가는 그의 가정은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손바닥만한 땅뙈기 하나 없는 가정이어서 어머니는 그 나이에 지금도 남의 집 품팔이를 하거나 폐지를 주우며 근근히 살아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봄이면 임자가 없는 개울 둑에 호박이나 콩 등을 심어 수확을 하면 장에 나가 팔아가며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하였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을 아들은 집에 올 때마다 빼앗아 간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이 병원에 자주 입원을 한다는 것이다.
자주 이 병원에만 입원을 하는 것은 면사무소에서 극빈자 증명을 발급받아 제출하면 상당한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겨우겨우 사정을 해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간호사나 직원들한테 난리를 치면 또 쫒겨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어머니는 불안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그게 아니었다. 그 뒤로도 모두가 제 마음대로였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말이 있다. 병원에서도 이런 사람들한테는 매우 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그 뒤로도 이 젊은이가 제멋대로 행동을 해도 간호사나 의사들, 그리고 직원들 모두가 이 사람한테는 항상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춰주기에 급급했으며 그렇게 관대할 수가 없었다. 그런 걸 보면 때로는 녹두알 같은 성격도 어쩌면 편할 때가 있다고 느껴졌다.
일반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그토록 고자세로 때로는 거만스럽기 짝이 없는 의사들도 그 젊은이 앞에서는 그렇게 비굴할 정도로 관대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렇게 이판사판으로 막나가는 환자들과 같이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싸워봤자 결국은 자신들만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리고 전과까지 있는 젊은이를 신고해봤자 나중에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에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저 참고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뒤로 그 젊은이는 적어도 이 병원 안에서는 마치 제왕이나 된 듯 모두가 제 멋대로였다. 병원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한마디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그는 내가 어수룩하게 보여서 그랬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나한테 먼저 가끔 말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무서운 젊은이가 나한테만은 깍듯이 존댓말을 써가며 관대했다. 나로서는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에도 어디가 심하게 아픈 것이 아니라 술병이 좀 나서 이 병원에 와서 잠깐 쉬고 싶어서 입원을 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에도 몸이 좀 피로하거나 쉬고 싶은 때는 이 병원에 가끔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병원에 오면 밥도 제때 나오고 잠도 마음대로 잘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에 그 젊은이가 이 병원 치과에 왔었던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의 일이라고 하였다. 잇몸이 붓고 몹시 아파서 이 병원 치과에 와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하였다.
의사가 이를 보더니 약간의 응급처치를 하고 약을 처방해 주었단다. 그리고 1주일 뒤에 다시 오라며 그동안 이가 다 나을 때까지만이라고 절대로 술을 입에 대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1주일 뒤, 잇몸은 여전히 부은 채 낫지를 않아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고 하였다. 의사가 입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왜 마시지 말라는 술을 또 마셨느냐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1주일 동안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음에도 왜 술을 마셨느냐고 의사가 책망을 하는 바람에 젊은이 역시 화가 났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마시고 싶은 술을 마시지 않고 1주일을 견디었음에도 잇몸은 그대로 아파서 짜증이 날 판에 마시지도 않은 술을 마셨다고 하는 의사가 몹시 야속하고 성질이 나더란다. 그래서 젊은이도 성질이 나서 대답했다.
“절대로 술을 입에도 대지도 않았다니까요.”
그러자 의사가 더욱 짜증스러운 표정이 되어 다그쳤다는 것이다.
“이 사람아, 술을 마셨으면 마셨다고 솔직히 말해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여태 이렇게 부어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가는 바람에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마시지도 않은 술을 자꾸만 마셨다고 우기는 의사가 순간 죽이고 싶도록 기분이 상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바로 의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이 날렸다고 하였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안 마셨다고 하는데 네가 뭘 안다고 짜증나게 자꾸만 마셨다고 우기고 지◯이야?”
순식간에 주먹세례를 받은 의사는 코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유유히 그 병원을 빠져 나왔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묻게 되었다. 그 뒤로 아무 일도 없었느냐고? 그리고 의사가 그렇게 맞고도 가만히 있었느냐고?
그러나 그 지역에서는 소문난 건달이라는 것을 눈치챘음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의사가 뭐라고 하면 내가 가만히 있었겠느냐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아마 그 의사도 후환이 두렵기도 했겠지만,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녹두알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의사는 아직도 그 병원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 젊은이의 이야기를 듣고 아직도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마냥 비굴해지는 우리 사회, 그리고 법보다는 아직도 주먹이 먼저인 우리 사회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 * )
-다음에는 두 번째 녹두알 이야기를 올려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