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다시 쓴 동화]
설달 그믐날 저녁이었어요. 바람도 거세게 불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몹시 추운 날씨였어요.
춥고 컴컴한 거리를 어린 소녀가 혼자 걸어가고 있었어요. 소녀는 머리에 모자도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어요.
소녀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가녀리고 연약해 보였어요. 그러나 가만히 보면 어딘지 모르게 강한 느낌을 주는 인상의 소녀였어요.
소녀는 처음부터 맨발로 다닌 것은 아니었어요.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는 분명히 슬리퍼를 신고 나왔어요. 슬리퍼는 옛날에 어머니가 신던 것이어서 헐렁헐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에 그때 마침 달려오던 자동차를 급히 피하려다 한 짝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다른 한 짝은 눈 속에 빠진 것을 어떤 못된 사내아이가 슬리퍼를 재빨리 들고 뺑소니를 쳤던 것이지요. 슬리퍼를 모두 잃은 소녀는 금방 울상이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였어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주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할머니의 인자한 목소리가 소녀의 귓가에 또렷이 들려오고 있었지요.
“착한 우리 아가야! 넌 누구보다도 굳세고 강한 아가란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약하게 먹지 말고 조금만 더 참고 힘을 내보렴. 넌 틀림없이 해낼 수 있단다.”
소녀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마다 멀리서나마 어김없이 이끌어주시고 힘을 주시는 고맙고 인자한 할머니의 말씀이 들려왔던 거예요.
그러자 소녀는 금세 거짓말처럼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어요.
“네 할머니 고마워요. 할머니 말씀처럼 참아볼게요.”
용기를 낸 소녀는 다시 추운 눈보라 속을 맨발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녀의 발은 꽁꽁 얼어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어요.
소녀의 한쪽 어깨에는 무거운 가방이 매달려 있었어요. 그 가방 속에는 라이터가 가득 들어있었어요. 꽁꽁 언 손에도 라이터를 한 묶음 들고 있었고요.
소녀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 라이터를 팔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소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냥을 팔러 다녔었어요. 누가 어린 나이에 성냥을 팔러다니고 싶겠어요. 늘 도박과 술로 절어 주정뱅이가 된 아버지가 거리로 내몰았던 것이었지요.
그런데 한동안 성냥을 팔다 보니 성냥보다는 라이터가 더 잘 팔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라이터를 팔러 다니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소녀는 운이 없었어요. 하필이면 요즈음 나라에서 부쩍 금연 정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라이터마저도 전보다 점점 덜 팔리고 있었어요.
오늘도 하루 종일 부지런히 거리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만 단 한 개의 라이터도 팔지 못하고 말았어요.
소녀는 하루 종일 굶었기에 배가 너무 고팠어요. 게다가 몸도 꽁꽁 얼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고요. 머리와 어깨에는 계속 흰 눈이 자꾸 내려 쌓이고 있었어요.
마침 금년 마지막 날 밤이어서 집집마다 음식을 만드는 냄새가 길거리까지 진동하고 있었지요. 집집마다에서는 소녀 또래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하였어요. 소녀는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너무 부럽기 짝이 없었지요.
집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게 되자 소녀는 더욱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어요.
“꼬르륵~~~ 꼬르륵~~~”
소녀의 배에서는 음식을 달라는 신호가 연신 주책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배가 너무 고프고 지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곧 주저앉을 것만 같았어요.
결국, 소녀는 가엽게도 어느 집 담 밑에 웅크리며 주저앉고 말았어요.
그러자 이번에도 다시 먼 하늘 높은 곳에서 할머니의 인자한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고 있었어요.
“아가야! 그렇게 가만히 주저앉아 있으면 큰일 난단다. 조금만 앉아 있다가 용기를 내서 다시 움직여야 한단다. 알겠지?”
할머니는 추운 날씨에 지쳐 주저앉아 있는 소녀가 몹시 걱정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몸이 더 얼어 아주 정신을 잃게 될까 봐 몹시 걱정이 되었던 것이지요.
“네, 알았어요. 할머니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일어날게요.”
소녀는 점점 얼어들어가는 발을 두 손으로 연신 문지르고 있었어요. 그래도 꽁꽁 얼어버린 발을 좀처럼 녹지를 않았어요.
바람은 점점 더 강하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돈을 한 푼도 벌어오지 못했다고 주정뱅이 아버지가 야단을 칠 것이 무서웠던 것이지요.
그리고 막상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춥기는 바깥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말이 좋아 무늬만 집이지 그건 집이 아니었거든요. 벌어진 지붕과 벽 틈으로 찬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었거든요.
소녀의 손은 그만 빨갛게 얼어붙으면서 결국 동상까지 걸리고 말았어요.
‘아아, 이럴 때 라이터 불을 켠다면 따뜻할 텐데!’
소녀는 문득 라이터 불을 켜서 손과 발을 녹이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라이터가 아까웠어요.
한동안 망설이며 고민을 하던 소녀는 결국 그 아까운 라이터를 켜고 말았어요.
“아아, 정말 따뜻하다!”
라이터불에 손과 얼굴이 조금 따뜻해지자 소녀는 살 것만 같았어요. 한 손으로 라이터 불을 가리고 있었지만 바람에 불이 자꾸만 꺼졌어요. 꺼지면 또 켜고 또 꺼지면 또 켜고를 반복했지요.
라이터불은 얼마나 따뜻하고 밝은지 몰라요. 어쩌면 작은 난롯불을 피운 것보다도 더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아아, 라이터불이 이렇게 따뜻할 줄이야!”
라이터불은 소녀의 언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있었어요. 얼마나 따뜻한지 그만하면 살 것만 같았어요.
몸이 조금 녹자 소녀가 이번에는 얼어붙은 발도 녹여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언 발을 앞으로 내밀고 라이터불을 슬그머니 갖다 대려는 순간이었어요. 갑자기 바람에 라이터불이 꺼지면서 사방은 다시 어둠으로 덮히고 말았어요.
그래서 소녀는 또 다시 라이터불을 켜게 되었어요. 사방은 다시 아까보다 더 환하고 밝게 대낮처럼 밝아졌어요.
밝은 라이터불은 소녀가 앉아 있는 집의 담벼락까지 훤히 비춰주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순식간에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그 담벼락이 갑자기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는가 했더니 어느 틈에 소녀가 그 집 따뜻한 방에 들어가서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어엉?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소녀는 꿈결 속만 같아 어리둥절해졌어요. 방 안에는 예쁜 보자기가 덮인 테이블이 있었어요, 그 위에는 맛있는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고요.
음식은 금방 차려놓은 듯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라오고 있었지요. 그중에는 소녀가 평소에 늘 먹고 싶어 하던 거위고기도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글쎄 접시 위에 얌전히 누워있던 거위가 갑자기 등에 포오크가 꽂힌 채 소녀를 향해 뒤뚱뒤뚱 걸어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소녀는 먹고 싶은 마음에 입 안에 고였던 침을 저도 모르게 꼴깍 삼키게 되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였어요. 갑자기 라이터불이 꺼지면서 소녀가 다시 조금 전에 앉아 있던 그 집 담벼락 밑에 도로 와서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어리둥절해진 소녀는 두 눈이 마치 접시처럼 둥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그러더니 사방이 다시 캄캄하고 어두워졌어요. 그래서 소녀는 얼른 라이터불을 켰지요. 그러자 라이터불이 다시 사방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어요.
그런데 소녀가 이번에는 굉장히 크고 으리으리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트리는 언제인가 크리스마스 때 어떤 집 너머로 보았던 웅장한 트리보다 더 크고 멋지고 아름다웠어요.
소녀는 너무 기쁘고 좋아서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좋아했어요.
“우와아~~~ 트리다!”
트리는 갖가지 수많은 촛불이 초록색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예쁜 빛을 뿌려주고 있었어요. 그리고 트리에는 아주 예쁘고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들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요.
소녀는 저도 모르게 트리를 향해 손을 뻗어 보았어요. 그 순간 불이 갑자기 꺼지고 말았어요. 그리고 그토록 아름답던 트리의 촛불들은 하나둘씩 하늘로 높이 올라가더니 마침내 반짝이는 별이 되고 말았어요.
그리고 조금 뒤, 그 많은 별들 중에 하나가 긴 꼬리를 날리며 사라지는 것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어요.
“앗! 별이 꼬리를 길게 뻗치며 떨어지면 한 사람의 영혼이 하느님에게로 올라가는 거라던데!”
소녀는 오래 전에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할머니가 늘 말씀해 주시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어요.
사방이 컴컴해지자 소녀는 다시 라이터에 불을 켰어요. 순간 어둡던 사방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라이터 불빛 속에 할머니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환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은 옛날의 모습처럼 여전히 밝고 인자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앗! 할머니다! 할머니이~~~!”
소녀는 반가움에 저도 모르게 할머니를 크게 소리치며 불렀어요.
“할머니! 저 좀 데려가 주세요. 할머니! 이 라이터불이 꺼지면 할머니는 또 가 버리시실 거잖아요. 그리고 그 따뜻한 난롯불, 맛있게 구워진 거위고기, 그리고 그 크고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도 모두 내 곁에서 떠나 가버리고 말 거에요!”
“…….”
소녀는 급히 또 다른 라이터에 불을 켰어요. 두 개의 라이터에 불이 켜지자 사방은 아까보다 더 환해졌어요.
소녀는 그렇게라도 해서 할머니와 같이 있고 싶었던 것이지요. 라이터불이 꺼지면 할머니가 다시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두 개의 라이터불이 환하게 밝혀지자 사방은 다시 대낮처럼 밝아졌어요.
그리고 잠깐 사라졌던 할머니가 다시 소녀의 눈에 보였어요. 할머니의 모습과 표정이 그처럼 아름답고 거룩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자, 아가야, 이리 온!”
할머니가 이번에는 손을 길게 뻗치더니 소녀를 끌어안았어요. 소녀는 너무나 반갑고 기뻤어요. 그리고는 곧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하늘로 높이높이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러자 이제는 추운 것도, 배고픈 것도, 무서운 것도 없었지요.
그런데 다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어찌된 일인지 할머니가 소녀를 힘껏 밀어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날 따라오면 안 된다! 안 돼!”
소녀는 그럴수록 할머니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할머니의 손을 힘껏 잡으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였어요.
어디선가 갑자기 119 구급대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구급대 자동차는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쓰러져 있는 소녀에게로 점점 가까이 달려오고 있었어요. 아마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신고를 한 게 틀림없었어요.
“여기에요 여기!“
구급대원들이 급히 달려오더니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를 재빨리 들것에 옮겼어요. 그리고는 자동차에 실었어요. 그제야 사이렌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우르르 몰려들었어요.
소녀가 메고 있는 가방, 그리고 손에는 라이터가 쥐어있었어요.
“어이구, 가엾어라.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어린 소녀가 라이터를 팔러 다니다니, 쯧쯧쯧…….”
“아아, 이제 보니까. 이 소녀가 라이터불로 추위를 녹이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사람들은 소녀를 보고는 불쌍한 생각에 저마다 이렇게 한마디씩 지껄이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어요.
지금 소녀의 귓가에는 어렴풋이나마 사람들이 떠들고 있는 소리가 꿈결처럼 아련히 들려오고 있었어요.
“어엉? 내가 죽었다고? 그건 아닌데……!”
소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소녀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거든요.
“난 할머니 말씀처럼 기어이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어날 거야. 앞으로는 그리고 그 누구보다고 꿋꿋하게 살아갈 거야!”
구급차에 실려 가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는 어느새 행복한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꿋꿋하고 굳세게 살아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온몸의 힘이 솟아나고 있었어요.
라이터팔이 소녀.
소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점점 더 환하게 번져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누구도 그토록 행복감에 젖어 있는 소녀의 표정을 눈치챈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