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자유를 찾아서(1)

[중편창작동화 -북에서 넘어온 젊은이- ①]

by 겨울나무

1. 한밤중에 걸려 온 전화

겨울의 밤이 점점 깊어만 갑니다.

“쌩, 쌔애앵…….”


“덜그럭, 덜커덩 그…….”


찬바람에 창문이 가끔 흔들립니다. 세찬 바람과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리지 않는다면 두려움을 느낄 만큼 괴괴하고 조용한 밤입니다.


오늘 밤에도 영구네 식구들은 전화통으로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음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안심을 하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어김은 없었습니다.


갑자기 요란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밤의 고요를 산산이 부서놓고야 말았습니다.


"……?“


"……?“


이제 막 겨우 잠이 들려다가 전화 소리에 깬 영구 엄마가 소스라쳐 놀란 얼굴로 아빠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여보! 전화가 또 왔어요! 아마 그 사람인가 봐요.”


"……?“


영구 아빠는 몹시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린 채, 엄마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얼굴은 한결같이 잔뜩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매일 밤 자정만 되면 이 모양이니, 도대체 누가 이러는 거죠?”


영구 엄마가 더럭 겁이 난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누가 할 일이 없어서 매일 이렇게 장난을 칠 리도 없고, 아무튼 예삿일은 아닌 것 같소.”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 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여전히 소란스럽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어휴--- 밤마다 짜증나게 이게 무슨 난리람. 엄마! 전화 왔어요, 전화!”


건넌방에서 잠을 자다가 요란스러운 벨 소리에 잠이 깬 영숙이가 안방을 향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여보, 이번에는 당신이 받아 보구려.”


영구 아빠는 여전히 겁먹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받아보라고 다그쳤습니다.


“그, 그럴까요?”


엄마가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고 입을 열었습니다.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


”전화를 걸었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벌써 몇 번째입니까?”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상대편에서는 여전히 아무 대꾸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땅이 꺼질 정도로 긴 한숨만 이따금 내쉬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아무 대답이 없소?”


아빠는 여전히 겁이 난 표정으로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습니다. 엄마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귀에 대고 있던 수화기를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당신이 좀 받아 보시겠어요?”

아빠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키지 않는듯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 수화기를 받아 쥐고 나무라듯 입을 열었습니다.


“여, 여보세요? 도대체 당신 누구요? 그리고 우리 집에 뭘 요구하는 겁니까?”


"후유우…….“


”여, 여보세요? 내 말이 안 들려요?“


그러나 상대편에서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여전히 긴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그의 한숨 속에는 극심한 걱정과 괴로움이 짙게 번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에 몹시 시달리고 지친 듯 한숨 소리조차 가냘프고 약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거야 원 어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있나. 당신 정말 정 이대로 나간다면 파출소나 군인 부대에 신고하고 말겠소. 내 말 들려요?”


아빠의 말에 상대방은 뜻밖이라는 듯 흠칫 놀라는 기색이 엿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몹시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닙네다. 절대로 신고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네다. 정말 죄송하기 짝이 없습네다. 거기 김정수 씨 댁이 분명하디요?”


아빠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전화를 걸고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내 이름까지……? 네, 맞아요. 내가 바로 김정수라고요. 그러니 어서 용건이나 말해 보라니까요.”


“저어--- 저는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닙네다. 이건 정말 안심하시고 믿어 주셔도 됩네다.”


“그럼 한밤중만 되면 이렇게 전화를 걸어 식구들을 번번이 놀라게 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란 말이오? 여러 소리 말고 어서 용건만 간단히 말해 봐요.”


"아, 알갓습네다. 그럼 부탁 한 가지가 있습네다. 이 부탁만큼은 꼭 들어주셔야 말씀을 드릴 수가 있갓시오.“

“알겠소. 무슨 부탁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할 테니 제발 나를 믿고 어서 말해 봐요.”


"그럼 이제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 누구에게라도 비밀로 해 주실 수만 있다면…….“


”알겠소. 그렇게 할 테니 제발 나를 믿고 어서 말해 봐요.“


“그게 정말입네까? 정말 고맙습네다. 그럼 지금부터 말씀을 드리디요.”


걺은이는 일단 이야기를 끊더니 다시 긴 한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여전히 망설이며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


젊은이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입이 좀 떨어진 모양이죠? 뭐라고 그럽디까?”


영구 엄마가 속삭이듯 귓속말로 소곤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으음, 가만히 있어 봐요. 나한테 뭔가 꼭 부탁하고 싶은 얘기가 있긴 있는 모양이오.“


이번에는 아버지의 표정을 살피며 영숙이가 끼어들었습니다.


“아빠, 몇 살이나 된 사람 같아요?”


“글쎄다. 사투리를 써서 잘 알 수는 없지만 중학교가 아니면 고등학교쯤 다니는 학생의 목소리처럼 앳되게 들리더구나.”


“그럼 전화를 건 사람이 도대체 남자인가요, 아니면 여자인가요?”


어느 틈에 잠이 깨어 안방으로 달려온 영구도 묻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주 앳된 남자란다. 아마 네 또래쯤이나 된 것 같더구나.”

“……?“


“……?“


방 안에는 또 다시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소년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 혹시 약 보름 전의 사건을 아직도 기기억하고 계십네까?”


“약 보름 전이라고?”


“예, 북에서 탈출한 것으로 보이는 수상한 괴한들을 잡기 위해 남조선의 경찰과 국방군들이 한때 무서운 수색 작전을 벌인 적이 있디 않습네까?”


“아, 알고 있어요. 그럼 당신이 바로……?”


“예, 그렇습네다. 제가 바로…….”


아빠는 순간 얼굴색이 하얗게 질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 ♣ ♣


약 보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밤도 날씨는 몹시 추웠습니다.

살을 에일 듯한 찬바람은 쉬지 않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마다 부러뜨릴 것처럼 사납게 흔들고 있었습니다.


‘허어, 무슨 놈의 바람이 이렇게나 심하게 불고 있담!'


영구 아버지는 무서운 바람 소리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의 일이었습니다.


“탕! 타탕! 탕……!“


멀리 임진강 쪽에서 난데없는 요란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호르륵~~~! 호르륵~~~!“


총소리에 섞여 숨이 가쁘게 부는 호루라기 소리도 연거푸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이거 분명히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라도 벌어진 모양인걸?’


잠을 자려다가 놀라 깬 영구 아빠가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밖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총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는 아까보다 더욱 소란스럽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영구 엄마도 그제야 덩달아 일어나 앉으며 아빠를 향해 물었습니다.


“글쎄 말이야. 도둑 때문에 저렇게 야단스러울 리는 없을 테고……. 아마 간첩이라도 넘어온 게 아닐까?”


“혹시 전쟁이 또 일어난 건 아닐까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소? 우리나라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북한 공산당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시끄럽게 들리던 총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는 한 시간이나 넘게 계속 들려오다가 어느새 잠잠해지고 있었습니다.

영구 아빠는 문득 생각이 난듯 급히 라디오 스위치를 켰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지금 한창 긴급사태로 인한 보도를 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방금 들어온 긴급 뉴스 특보입니다. 오늘 밤 0시를 기해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으로 보이는 수상한 젊은이 한 명을 우리 군이 발견하였습니다. 이 괴한은 임진강 하류에서 깨진 얼음덩이 속에 교묘하게 숨어 있다가 때마침 강한 북풍을 타고 강을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데, 초소 근무 중이던 국군에 의해 발견됐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임진강 부근 전역에는 긴급 비상사태로 국군과 경찰의 합동 수색 작전으로 수상한 젊은이를 추적하고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파주 문산 방향으로 도주한 젊은이를 아직도 잡지 못한 채, 추적중이라고 합니다. 이에 당국은 주민들이 총소리에 놀라거나 동요하지 말 것과 수상한 소년을 보는 대로 즉시 신고해 줄 것을 특별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죽일 놈들이 있나!”


영구 아빠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긴급 뉴스를 듣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니, 어떻게 얼음장을 타고 강을 건너올 수가 있었을까요?”


영구 엄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겁이 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그렇지 않아도 강물이 꽁꽁 얼면 얼음 위로 몰래 건너오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에 그 뒤로는 얼음이 어는 대로 깨뜨려 놓곤 한다는데 이번에는 깨진 얼음장 속으로 들어가 있다가 그것을 타고 건너왔다니 정말 기가 막힌 놈들이라니까.”


“정말 그렇겠네요. 얼음장 속에 숨어 있으면 들킬 염려도 없을 테니까 말이예요. 그런데 어렵케 발견한 그 녀석을 왜 못 잡을까요? 총소리가 그렇게 많이 나던데 우리 국군이나 경찰들 중에 총을 잘 쏘는 사람이 그렇게도 없었을까요? 그까짓 한 명을 잡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추운 밤에 고생만 하고 있으니 말이예요.”

“총을 잘 쏘는 사람이 왜 없겠소? 백발백중의 명사수들이 얼마든지 많긴 하지만 모르긴 해도 사살하지 않고 사로잡으려고 엄호 사격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시간을 끌게 되는 것이겠지. 두고 보구려. 내일 안으로 반드시 잡히고 말 테니까. 이제 그 녀석은 독 안에 든 쥐란 말이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거 어디 불안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나 곧 잡힐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그 젊은이는 그다음 날도, 그리고 다시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잡지를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기에 국군과 경찰, 그리고 예비군과 민방위대원들도 이 괴한을 잡기에 바짝 긴장을 한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임진강 부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여전히 밤낮으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 어느 때 그 괴한이 불쑥 나타나서 나쁜 짓을 저지를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상태로 여러 날을 보내던 중 하필이면 영구네 집에 사흘 전부터 한밤중만 되면 정체불명의 이상한 전화가 걸려 오곤 하였던 것입니다.

♣ ♣ ♣

영구 아빠는 한동안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어, 어서 용건부터 말해 봐요.”

“너무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습네다. 이상한 짓을 할 생각으로 전화를 드린 것은 절대로 아닙네다.”


“그, 그러니까 어서 말을 해 보라는 게 아닌가?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당장 신고하고 말겠소.”


“아아, 제발 그것만은 안 됩네다. 만일 그러신다면 호상간의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될 수가 있습네다. 저는 간첩의 임무를 띠고 넘어 온 사람이 아니라요. 오늘은 꼭 제 용건을 말씀 드리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습네다. 전구(온 식구)가 모두 다 모여 계신 것 같아서라요.”


“뭐, 뭐라구요?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겠단 말이오?"


“죄송하지만 내일 저녁 이 시간에 다시 통화를 하겠습네다. 좀 어려운 부탁이 되겠습네다만 가족들한테는 비밀로 해 주시고, 내일 밤에는 혼자 받아 주셔야만 하갔시오. 그럼 오늘은 이만…….”


“여, 여보시오! 여보시오!”


영구 아빠는 수화기에 대고 몇 번이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이미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였습니다.


“이런 망할 녀석 같으니라구, 도대체 나한테 뭘 요구하려고 이 모양이야?“


아빠는 ‘덜그럭' 소리가 나도록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여전히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여보! 당장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영구 엄마도 낯빛이 하얗게 되어 아빠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습니다.


“엄마 말대로 그러는 게 좋겠어요, 아버지. 이대로 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아빠! 그렇게 하세요.”


영구와 영숙이도 둥그런 눈이 되이 불안한 얼굴이 되어 끼어들었습니다.


아빠는 착잡한 표정이 된채 한동안 아무 대꾸도 없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거참, 아무리 생각해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북에서 넘어온 녀석이라면 혹시 우리 형님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쌔앵, 쌔애앵---”


“덜그럭, 덜그럭---”


추운 겨울의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영구네 식구들은 아무리 잠을 청하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좀처럼 잠이 올 리가 없었습니다. 걱정과 불안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 * )


- 4회 중 1회분 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