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자유를 찾아서(3)

[중편창작동화 –북에서 넘어온 젊은이- ③]

by 겨울나무

3. 도감골 유격대


지금으로부터 약 38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임진강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도감골이라는 아담한 농촌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시골 마을이 다 그랬듯 50여 채가 넘는 초가집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 역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그런대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인심이 넉넉하여 이웃이 서로 오순도순 한 가족처럼 사이좋게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이 마을에도 청천벽력 같은 비극이 밀려왔습니다. 뜻밖에도 6·25란 전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 세월 정이 든 고향을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너도나도 앞을 다투며 난생처음 피란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피란을 일찍 서두른 사람들 중에는 그나마 죽기를 무릅쓰고 기차의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타고 모진 고생을 하며 멀리 피란을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가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면서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계속 걸으며 고통스러운 피란길에 올라야만 하였습니다.


그것도 빈 몸으로 걷는 게 아니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아가야 할 양식과 이불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진 채 기약없는 나날을 무작정 걸어가야만 하였습니다.


등에는 배가 고파 울고 보채는 아기까지 업고, 머리에는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니는 아주머니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그렇게 북한 공산군과 우리 국군이 서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쟁이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르며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쾅! 꽈다당, 쾅……!”


“탕! 탕! 탕……!”


“따콩! 따콩……!“


”피유웅— 따콩--!“


전쟁터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갖가지 시끄러운 대포와 총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살고 있던 보금자리들은 모두 잿더미로 변해버렸으며 어딜 가나 피비린내가 가득하였습니다.


국군이 공산군들한테 밀릴 때마다 피란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덩달아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피란을 다니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오랜 피란 생활 끝에 피란민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가만히 앉아서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모처럼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젊은이들은 마음놓고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인민군들이 의용군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모조리 잡아다가 전쟁터로 보내곤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녀자들도 견디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눈에 띄는 대로 여성 동맹이란 이름을 붙여 공산당들이 편리할 대로 이용하며 마구 부려먹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녀자들 중에는 심지어 방바닥을 뜯어내고 구들장 밑에 숨어 스스로 암흑같은 어둠속에 갇혀 살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도감골에 사는 젊은이들 중, 하나가 친구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마을에서 숨어 있을 게 아니라 아예 산속에 들어가서 숨어 사는 게 어떨까?”


“그래, 맞아. 그거 참 좋은 생각이야!”


그렇지 않아도 불안에 떨고 있던 친구들 모두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찬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에 남아 있던 일곱 명의 젊은이들은 그 길로 당장 인민군들의 눈을 피해 마을 뒷산 너머 골짜기로 숨어들었습니다.


산골짜기로 들어간 젊은이들은 서둘러 산기슭에 땅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굴처럼 크게 판 땅굴 방공호 속에 들어가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큰 걱정거리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가지고 올라간 양식이 다 떨어졌지만 인민군들의 감시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모두가 그들의 손에 잡혀 가거나 죽게 될 형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공호 속에 갇혀 생으로 굶고 있는 젊은이들의 고통은 차라리 죽음보다 나을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산속으로 보낸 뒤, 굶고 지내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섣불리 양식을 전할 길 없는 부모들의 안타까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식들을 지척에 두고도 소식조차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집에 있는 식구들의 심정 역시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답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정수 어머니는 몹시 심각한 얼굴로 정수를 슬그머니 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때의 정수의 나이 겨우 열 살밖에 안 된, 그 사람이 바로 지금의 영구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얘, 정수야.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어야 한다. 알겠지?”


“무슨 말인데요?”


갑자기 심상치 않은 어머니의 표정을 본 정수의 눈이 금방 둥그렇게 되었습니다.


“너한테는 단 하나밖에 없는 달수 형이 친구들과 함께 산속으로 들어간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구나.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이거 정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로구나. 그래서 이런 때 네가 좀 돕는 게 어떨까 해서 너를 부르게 되었단다.”


“돕다니요? 제가 어떻게요?”


"그래, 넌 아직 어리니까 인민군들한테 들켜도 별로 오해를 받지 않을 게다. 그러니 네가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가는 척하고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먹을 것을 나르면 어떨까 해서 그러는데, 네 생각은 어떻냐?”


“……!”


정수는 엄마의 설명을 듣고는 벌써부터 가슴이 떨려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열었습니다.


"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한번 해 보겠어요.“


“그래? 고맙구나. 그 대신 이것은 생사가 달린 일이니까 인민군들한테 들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을 하여야 한다. 알겠지?”


“네, 조심해서 열심히 해보겠어요.”


“그래. 고맙구나.”


어머니는 한편은 불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특한 마음에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다음 날, 정수는 어머니가 싸준 감자와 미숫가루를 지게에 감춰 지고 산속으로 향했습니다.


마을과 산, 그리고 어디를 가나 사방에서 인민군들이 숨어서 감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산속에 있는 방공호까지 무사히 찾아간다는 것은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 가끔 인민군이 나무 숲속에서 불쑥 나타나며 갑자기 총을 들이대며 소리치곤 하였습니다.

“뉘기요?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 거지비?”


정수는 그때마다 기절을 할 것처럼 놀라며 간이 바짝 오그라붙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음을 진정하고 태연히 대답했습니다.


“저어, 보시다시피 나무가 떨어져서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가는 중이거든요.”


“무시기라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래? 연기가 피어오르면 당장 폭격이란 말이야, 폭격!”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화덕에 조금씩 땔 삭정이를 좀 하러 가는 중이에요.”


“그래? 그럼 조심하라우, 어린 동무.”


“네, 조심할게요.”


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고는 용케도 방공호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방공호로 들어가는 입구는 흙과 나뭇가지로 어찌나 잘 가렸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형! 달수 형! 형……!“


정수가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이듯 형을 연이어 불렀습니다.


그러자 조금 뒤에 교묘하게 생긴 방공호 문이 열리더니 정수의 형과 그의 친구들이 입구 쪽으로 몰려나와 정수를 방공호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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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갖가지 총과 대검(총 끝에 꽂는 칼)등,무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습니다.


“아니 네가 위험한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형이 먼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정수에게 물었습니다.


“엄마가 먹을것을 전해 주라고 해서…….”


“아니 그러다가 놈들한테 들키면 어쩔려구? 그래, 엄마랑 동네 사람들은 모두 무사하시니?”


“응,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오히려 여기 있는 형들 때문에 매일 걱정을 하고 있어.”


정수가 날감자와 미싯가루 보따리를 풀어 놓자, 일곱 명의 청년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그것들을 쫓기듯 숨 쉴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먹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두컴컴한 방공호 속이지만 정수는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방공호 속 한쪽 구석에는 놀랍게도 수많은 총과 무기, 그리고 실탄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형, 저런 것들은 다 어디서 구한 거야?”


“으음, 그건 모두 밤이면 몰래 나가서 국군과 미군, 그리고 인민군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고 버리고 간 것들을 주워 모은 거란다.”


“응, 그렇구나! 그런데 저 무기들을 어디에 쓰려고?”


“그건 너도 나중에 차차 알게 될 거야.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 모두가 전쟁터에 나가 피를 흘려가며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단다. 그런데 우리들이라고 해서 이대로 굴속에 숨어서 가만히 지낼 수만은 없잖니?”


달수 형의 목소리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떤 무서운 각오가 짙게 깔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군 소대장이 부하의 보고를 받고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무시기? 마을 뒷산을 감시하던 초병이 또 행방불명이라고? 이런 머저리 같은 새끼들 같으니. 그거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이가. 벌써 다섯 명째가 아인가, 다섯 명! 어서 군소리 말고 날래날래 잡으라우! 알갔슴메?”


순찰을 나갔던 부하들이 계속 자취도 없이 사라지곤 하자, 인민군들은 눈이 벌개져서 감시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포악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자기네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불러다 패거나 죽이는 일을 밥 먹듯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큰일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탕! 탕! 탕……!”


“따콩! 따콩! 따콩……!”


“우르르 쾅!”


갑자기 마을 뒷산 너머에서 각종 총 소리와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허어, 이거 산속에 숨어 있는 아이들한테 무슨 변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여가며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할뿐 감히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 뒤에는 젊은이들이 다리와 팔에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그들의 뒤를 따라 추격하고 있는 인민군들과 대항하며 마을을 향해 도망쳐오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모두 마을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달수는 부엌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어느 틈에 달수네 집으로 들이닥친 인민군들 중의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이 종간나우 반동 새끼! 날래 손들고 나오지 않으면 사살하갓어. 하낫! 두울! 세엣!”


그때, 정수 어머니가 인민군 앞을 막아서며 애원을 하였습니다.


“도대체 우리 아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러십니까?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네?”


“이 반동 에미나이가 귀찮게시리 무슨 개수작이지비? 저리 비키지 않캈어?”


인민군은 삽시간에 총개머리로 정수 어머니의 가슴을 힘껏 쳐서 자빠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정수 어머니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가슴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으아악!!”


정수 어머니는 비명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두고 말았습습니다.


그 광경을 부엌에 숨어 몰래 엿보던 달수가 마지막 남은 수류탄 한 개를 모여섰던 인민군들을 향해 던지며 소리쳤습니다.


“이 부모도 모르는 개만도 못한 놈들! 이 수류탄 맛이나 보아라!”


“쾅!!”


순간 수류탄 터지는 요란한 소리와 동시에 행랑채가 무너지면서 인민군들 모두가 그 밑에 깔려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수류탄 터지는 소리를 듣고 다른 곳에 있던 인민군들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달수는 그 자리에서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종간나우 새끼, 동무가 두목이었디?”


달수를 땅바닥에 꿇어앉혀 놓고 인민군이 성이 나서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달수 역시지지 않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인민군들을 노려보며 마주 소리쳤습니다.

“그래, 내가 두목이다. 어떻게 할 테냐? 그러니까 여러 소리 말고 어서 죽여달란 말이야!”


“아니, 이 겁도 없는 종간나우 새끼가 그래도 아직도 입은 살아 있구만.”


인민군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서 달수를 향해 매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머리통과 몸을 총개머리와 발로 사정없이 마구 때리자, 달수는 금방 피투성이가 된 채 그 자리에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곧 피투성이가 되어 축 늘어져 있는 달수를 마치 죽은 개를 다루듯 질질 끌고는 마을 앞 정자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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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이미 인민군들에게 쫓기며 끝까지 싸우다가 잡힌 네 명의 친구들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도 모두 피투성이가 된 채,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자 달수가 먼저 간신히 입을 열고 물었습니다.


“나머지 두 명은 어떻게 되었지?”


“아마 이놈들의 총에 맞아 벌써 죽은 것같아.”


“죽일 놈의 새끼들 같으니라구.”


달수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친구들 중에 한 사람이 매우 고통스러운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여기저기 피멍이 들어 흉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들은 놈들을 다섯 명을 해치웠고, 우리는 두 명이 희생되었으니까, 손해는 안 본 셈이지? 으흐흐…….”


그러자 달수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놈들을 적어도 수백 명은 죽이고 우리들이 잡혔어야 하는 건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란 말이야.”

달수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어금니를 갈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국군과 유우엔군이 함께 용감히 반격을 하며 북진을 하는 바람에 인민군들은 후퇴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도감골에 주둔했던 인민군들도 별 수 없이 덩달아 쫓기게 되었습니다.


“군관 동무! 이 종간나우 새끼들은 어드렇게 하디요?”


“뭘 어드렇게 해! 귀찮긴 하지만 당장 철사줄로 놈들의 손모가지를 꽁꽁 묶어서 끌고 가도록 하라우요!”

“옛! 알갓시오, 군관 동무!”


그들은 곧 어디서 구했는지 굵은 철사줄 다섯 개를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달수 일행에게 명령했습니다.

“동무들! 두 손바닥을 쭉 펴고 손바닥이 서로 마주 닿도록 포개 놓으라우!”


그리고는 곧 달려들어 철사 도막을 손등에 대고 무자비하게 찔러 박았습니다.


"으으윽---!“

“으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다섯 명의 손은 두 손을 마주 댄 채 철사줄이 박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손에서는 피가 사정없이 흘러내리며 다섯 명의 표정은 곧 정신을 잃고 까무러칠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자, 그다음에는 이것으로 시래기를 엮듯 묶는 거다. 알았지비? 흐흐흐…….“


그들은 다시 손에 박힌 철사와 함께 군용 전선줄로 꽁꽁 묶고는 그 나머지 줄을 다섯 명 모두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연결하여 묶었습니다.


그리고 줄 끝을 한 놈이 앞에서 잡아끌면 다섯 명이 한꺼번에 힘을 들이지 않고도 끌려다닐 수 있도록 연결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걸어가다가 한 사람이 쓰러지면 다섯 명이 함께 비명을 지르며 덩달아 같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이 쓰러지지 않으면 줄이 당겨져서 삽시간에 철사로 박힌 손바닥이 찢어질 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쓰러질 때마다 놈들한테 사정없이 매를 맞곤 하였습니다.


국군과 유엔군들은 반갑게도 계속 맹공격을 하며 북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달수들 일행도 별 수 없이 놈들이 이끄는 대로 북쪽으로 북쪽으로 기약없이 끌려가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낮이면 비행기의 폭격이 무서워 숲속에 숨어서 종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밤만 되면 지겹도록 걷고 또 걸으며 죽음보다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뒤,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6·25 때 북으로 끌려간 달수 일행들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당시에 공산군들이 남겨 놓은 만행과 상처는 마음 속 깊이 아로새겨진 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상처는 아물어가기는커녕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뼈저린 아픔으로 응어리가 되어 온몸으로 점점 더 아프게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 * )


< 4회 중 3회분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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