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창작동화 – 북에서 넘어온 젊은이- ④]
영구 아빠는 눈물이 글썽해서 젊은이, 아니 난생 처음 기적적으로 만나게 된 어린 조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나저나 아버지는 어쩌다가 반동으로 몰리게 되었느냐?”
"남한 출신 성분이기 때문이디요. 남한 출신은 언제나 감시를 심하게 받으며 살아가다가 조금만 눈에 거슬리면 무슨 구실을 붙여서라도 눈깜짝할 사이에 마치 벌레를 죽이는 것처럼 죽이거나, 탄광으로 보내 강제 노동을 시키곤 하디요. 그 아이새끼들은 늘 그렇티요.”
“그럼 그 나머지 식구들은?”
“저 하나 뿐입네다. 거기서는 남자가 결혼을 하려면 서른한 살이 넘어야 할 수 있습네다. 그동안은 일을 열심히 하라는 거디요. 그래서 서른다섯 살에 결혼을 하게 된 아바이는 저 하나만을 낳으셨습네다.”
“그럼 넌 올해 몇 살이지?”
“열일곱 입네다. 그리고 남자들은 열여 섯 살만 되면 바로 인민군에 입대해야 합네다.”
“그럼 군대에 있다가 탈출을 한 모양이구나?”
“예, 어찌나 훈련이 고된지 견딜 수가 있어야디요.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군사 훈련을 받는 곳이 바로 그 곳이라요.”
“죽을 때까지 훈련을 받는다고?”
“그렇디요. 학교도 말이 학교디 학교 생활이 온통 전쟁 준비를 위한 훈련뿐입네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군대에 입대해야 하고 또 제대를 해도 고된 훈련을 받는 건 마찬가지디요.”
“차아, 저런 죽일 놈들을 봤나. 6. 25때 전쟁을 일으켜 그만큼 나라를 망해 놓았으면 그만이지, 뭐가 또 모자라서 그 모양들이람!”
영구 아버지는 다시 한 번 치가 떨리는지 무서운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힘껏 깨물었습니다.
“차암, 그리고 느이 어머니는 5년 전에 끌려가셔서 아직도 소식을 모른다고 하였지?”
"예, 탄광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쓰러졌거나 어쩌면 벌써 놈들이 죽여 버렸을 지도 모을 일입네다.”
“그럼 네가 남한으로 넘어온 것을 그놈들이 알면 살아 계셨다 하여도 결국 무사하실 수가 없겠구나?”
"그렇디요. 하디만 이름만 오마니이지 별로 정이 든 것도 없습네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영구 아버지는 둥그래진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습니다.
“그 모두가 탁아소 때문이디요. 거기서는 아이를 낳은 지 3년만 지나면 반드시 탁아소에 보내야만 합네다. 말이 탁아소이지 실제로는 짐승 우리만도 못하디요. 그러니끼니 오마니는 겨우 한 달에 한 번씩 밖에 볼 수가 없었디요. 그리고 탁아소나 학교에서는 맨날 김일성 동무만 찾고 있으니, 부모와 자식 사이에 무슨 놈의 정이 있갓시오.”
젊은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영구 아빠는 그만 너무나 한심한 생각에 연거푸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이번에 탈출을 하게 된 것은 너무나 북한 생활이 너무 힘들고 고되기 때문이었다 이 말이지?”
“그렇디요. 거기서는 몸만 고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는 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합네다. 모두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산 송장과 다름없디요.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본다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디요. 모두가 공산당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꼭두각시 놀음에 불과합네다. 그러니끼니 탁아소와 학교, 그리고 군대나 직장은 마치 착실한 공산당원을 길러내는 공장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네다.”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밖에서는 여전히 찬바람이 몰아치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 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조카의 하소연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몇 해 전, 서울에서 88올림픽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너무나 배가 아파 치를 떨었디요. 그리고는 어떻게 해서라도 올림픽을 방해해 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보았다만, 남조선의 철통같은 방어 때문에 그 뜻을 결국 실패하고 말았디요. 또한 88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남조선이 정치, 경제, 문화면에 있어서 급속히 세계에 널리 알려지자, 놈들은 마치 초상| 집처럼 변하고 말았디요. 그래서 지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공연히 죄 없는 주민들만 못 살게 들볶고 있는 실정입네다.”
“주민을 들볶다니? 그러면 뭐가 어떻게 된다고 그러지?”
“그러니끼니 나쁜 놈들이 아닙네까? 이제 그놈들은 어디 의지할 곳조차 없고, 하소연할 곳도 없는 신세가 되어 그저 생트집을 잡을 거리가 없으면 여전히 전쟁 준비에만 눈이 벌개져서 있으니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디요. 그저 불쌍한 건 그 밑에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시달리고 있는 주민들 뿐입네다.”
"그럼 언젠가는 다시 한 번 전쟁을 또 일으킬지도 모르겠구나?”
"지금도 여전히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디요. 하디만 남조선의 막강한 국방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겁이 나서 함부로 쳐들어오지를 못하는 거디요.“
"으음, 괘씸한 놈들 같으니라구. 그런데 참, 왜 자수를 하지 않고 어쩔 생각으로 이렇게 보름 동안이나 숨어다니고 있었느냐?”
“…….”
영구 아버지의 물음에 지금까지 안정을 찾고 있던 젊은이의 표정이 다시 무섭게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영구 아빠를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며 되물었습니다.
"작은 아바디! 자수를 하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네까? 저를 죽이실 작정이십네까?”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자수를 하면 광명을 찾는다는 소리는 저도 많이 들었습네다. 그렇다만 자수를 하는 사람마다 살려 두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무참하게 사살한다는 것을 저는 벌써부터 잘 알고 있습네다.”
“아니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
“북에서 공산당놈들한테 귀가 아프도록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네다. 자수해서 광명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디요.”
“아니다. 그건 그놈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란다. 우리 대한 민국에서는 절대로 거짓말을 안 한단다. 지금까지 자수한 사람들은 훌륭한 집과 직장도 주고, 특별히 보호를 받으며 잘 살고 있단다.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고. 더구나 너는 간첩도 아니고, 현역 군인으로 있다가 넘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틀림없이 훌륭한 대우를 받을 것으로 믿고 있단다.”
“작은 아바디! 지금 하신 말씀이 정말입네까?”
젊은이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면서 되물었습니다.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느냐? 공산당놈들은 거짓말을 밥먹듯 한다더니, 너까지 이제 작은아버지의 말도 믿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구나. 제발 내 말을 믿고 어서 자수를 해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더 의심을 받게 되고, 또 그렇게 되면 너뿐만 아니라, 나나 우리 식구들도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될는지 모르니까 말이다.”
“……?”
젊은이의 얼굴 표정이 매우 착잡해지면서 한동안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왜 자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네까? 북에서 넘어온 사람은 무조건 죽여 버린다는 공산당들의 말을 곧이 들었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디요. 저도 사실은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하고 싶었던 공부도 마음껏 하고 싶고, 이제부터라도 사람답게 살아 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이렇게 목숨까지 걸고 넘어온 것이 아닙네까? 작은 아바디! 저를 좀 도와 주실 수는 없으십네까? 작은 아바디! 정말 살고 싶습네다. 제발 부탁입네다.”
젊은이는 소년은 영구 아버지의 무릎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애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잘 생각했다. 아암, 그래야 하고말고, 이제 너는 아무 근심 걱정없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된단다. 경찰이나 국군 부대에 내가 미리 신고해 놓았으니까 아무 염려 말고 있어라.”
“아니, 그럼?”
순간, 젊은이는 깜짝 놀란 듯 엎드려 있던 고개를 번쩍 쳐들고는 몹시 불안한 얼굴로 영구 아버지의 얼굴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무 걱정 말고 나를 믿으라고 하였지 않았느냐? 밖에는 이미 경찰과 국군들이 벌써부터 잠복하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 엿듣고 있었단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집안 식구들은 물론이고 온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이 추운 날씨에도 밤을 새워가며 늘 고생을 하고 있단다.”
“그럼, 지금까지 저와 작은 아바디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경찰관과 군인들이 모두 다 듣고 있었다는 말씀입네까?”
“아암, 그렇고말고. 네 얘기를 다 듣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경찰이나 군인들에게 네가 북한에서 넘어온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될 줄 안다. 정말 고맙구나. 잘했다.”
“작은 아바디, 정말 고맙습네다.”
젊은이는 다시 영구 아버지의 무릎에 엎드리더니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흘려 보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어느새 새벽이 되었는지, 새벽닭이 요란스럽게 홰를 치며 우는 소리가 온 마을에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부신 찬란한 아침 햇살이 도감골 마을을 서서히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 )
< 4회 중 4회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