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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Nov 18. 2021

노래에 얽힌 슬픈 사연(1)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나이가 지긋한 분이라면 가수 문주란이 구성지고도 애닲은 특유의 목소리로 부른 ‘동숙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이 한번쯤은 불러보았을 것으로 믿는다. 그만큼 이 노래가 히트를 했고 오랫동안 대중들게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래가 그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슬픈 실화를 노래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믿는다. 나 역시 아무 생각없이 그 노래를 불러보곤 했지만, 근래에 와서야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6.25 동란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가 극도로 가난했던 1960년 초     


‘동숙의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 동숙은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국민학교(초등학교)를 그만 중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너무나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죄로 공부보다는 우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에는 어느 가정이라 식구 하나라도 덜면 그만큼 양식이 절약된다는 생각에 도시로 식모살이를 보내거나 공장으로 보내는 가정이 많았다.      


동숙은 그나마 운이 좋아 식모살이 대신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가발 공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워낙에 알뜰한 성격의 동숙은 월급을 받을 때마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월급의 대부분을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 모두 내려보내곤 하는 효녀였다. 동생들의 학비와 살림살이에 보탬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피곤하고 힘든 생활을 보낸 지 어느덧 10여 년, 그처럼 가난했던 시골 집은 동숙의 노력으로 인해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어 알뜰하게 시골로 보낸 지 10여 년이란 세월이 훨씬 자나자 동숙의 나이도 어느덧 30이 가까운 노처녀가 되고 말았다(옛날에는 처녀 나이 30이 지나면 노처녀란 낙인이 찍히곤 하였음)     


그야말로 앞만 바라보며 살아오던 동숙은 문득 뒤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버린 지나간 세월이 너무도 아쉽고 허탈하고 허무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린 동숙은 그때부터 자신을 위해 투자하기로 결심한 끝에 그는 검정고시 준비를 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열심히 한 뒤 글을 쓰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곧 종로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고 밤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하여 마침내 중학교 졸업 자격고시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던 동숙에게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자신이 다니는 학원의 총각 선생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음씨 곱고 순진하며 착한 동숙은 결국 총각 선생님의 생활하고 있는 자취방까지 찾아가 밥도 해주고 옷을 빨아 주며 행복감을 느낀다. 순수한 사랑이 싹을 틔우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무지개빛 장래를 약속하고는 몸과 마음을 그리고 낮에 가발 공장에서 번 돈까지도 그에게 모두 아낌없이 그에게 바치게 된다.     

 

그런데 동숙이 다니던 가발공장은 차츰 전자산업에 밀려서 감원과 그리고 부도로 급기야는 직장까지 잃게 되었다. 그러자 학원비 때문에 학원도 나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생각 끝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시골에 내려와서 공부를 꼭 하고 싶다고 애걸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완강했다. 여자가 뒤늦게 공부는 무슨 공부 타령이냐며 조용히 입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고 다그치고 말았다.      


10여 년 동안 오직 가족만을 위해 희생했던 동숙에겐 부모님의 그런 태도가 너무나 서운하고 야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부모님을 원망하며 울면서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온 동숙에게 결국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입을 통해 동숙이 사랑하던 박선생 그는 약혼자도 있으며 얼마 뒤에 결혼한다는 동국에게는 그야말로 동숙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날벼락이었다.      

 

그리고 그 선생은 그동안 동숙을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척하고 등을 처먹었다는 것이었다.


동숙은 눈 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굳게 믿었고 그를 만나서 진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학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총각 선생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몹시 싸늘했다.


"착각하지 말라. 너와 난 학생과 제자야. 내가 어떻게 제자를 사랑할 수가 있니? 지금까지 네가 좋아서 나를 따라다닌 거 아니니? 그러니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서 검정고시나 잘 보라고.“     


”…….“     


동숙은 너무나 기가 막혀 차마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긴 이야기가 필요 없었다. 이미 이용만 당한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복수를 결심하고 만다.     

 

세상에 태어나서 동생들과 부모님에게 희생만 당하고 그렇게 살아 온 동숙은 심한 비관을 하게 된다. 세상은 모두 나를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에 그의 발걸음은 어느덧 동대문 시장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동대문 시장에서 비수를 하나 사서 가슴에 품고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수업시간이었다. 선생이 칠판에 필기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원한이 가득맺힌 동숙은 선생님 가슴에 결국 복수의 비수를 힘껏 꽂아버리고 만다. 


"야! 이 죽일 놈아! 너도 한번 내 손에 죽어 봐라!”     


결국, 강의실은 비명소리가 가득한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그리고 곧 동숙은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만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동숙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제가 눈이 뒤집혔나 봐요, 형사님! 제발 선생님만은 살려 주세요."   

  

그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동숙은 뒤늦게야 선생님 안부를 묻고 있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그는 결국 살인

미수죄로 형무소로 들어가게 된다.      


가난 때문에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그녀가 뒤늦게 얻은 사랑에 속아 살인미수자라는 비극으로 마무리한 "사랑의 생활 수기"가 여성 주간지에 실려서 그때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모델로 하여 '영화'는 물론이고  '동숙의 노래'도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동숙의 노래’는 1966년도에 신인가수 문주란이 불러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때 문주란의 나이 10대를 벗어나지 못한 앳된 소녀였다. 문주란은 그 뒤로도 ‘낙조’, ‘타인들’, ‘돌지않는 풍차’등의 힛트곡을 내기도 하였다.


          동숙의 노래     


    1.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마음

       원한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흐느끼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때는 늦으리     


    2.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그대 따라 못 가는 서러운 마음

       저주받은 운명에 끝나는 순간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뜨거운 눈물     


오늘따라 왠지 문주란의 애달프고도 구성진 목소리로 부른 ‘동숙의 노래’ 자꾸만 귀에 맴을 돌곤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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