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눈썰매

by 겨울나무

밤사이에 목화송이보다 더 굵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몰래 내렸습니다. 눈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자 산도 들도, 그리고 모든 나무들도 온통 무거운 눈을 뒤집어쓴 채, 삽시간에 새하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펑펑 내리던 눈은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그쳤습니다.


눈이 그치자 찬바람이 불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눈이 계속 쌓이는 대로 꽁꽁 얼어서 사람이 다니는 길바닥들도 온통 미끄러운 얼음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동찻길도, 그리고 골목길도 반질반질하게 윤이 날 정도로 미끄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바람에 그 누구보다도 신바람이 나고 즐거운 건 동네 아이들이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매서운 칼바람마저 살을 에일 듯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추위를 모르는 모양입니다. 골목길 언덕길마다 벌써부터 아이들이 떼로 모여 시끄럽게 떠들며 신나게 눈썰매를 타기에 시간이 가는 줄을 모릅니다.


언제 어디서 구했는지 용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비닐 푸대나 라면 상자를 하나씩 깔고 앉아 신나게 소리소리 지르며 미끄럼을 타기에 바쁩니다.


일단 골목길 언덕 위에서 눈썰매를 올라탔다 하면 어찌나 속력이 빠른지 모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골목길 저 아래까지 무서운 속력으로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정말 아슬아슬하면서도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눈썰매를 타고 있는 아이들의 기분은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속력이 빠른 스키도 부럽지 않고 고속도로를 쏜살같이 달리는 자동차도 부럽지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제트기도 부럽지 않습니다.


가끔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어른들은 미끄러져 넘어질까 겁이 나서 엉금엉금 오리걸음을 걷습니다. 어떤 어른들은 미끄럼을 타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지레 겁을 먹고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야 이녀석들아! 너희들 그렇게 미끄러지다가 뒹굴면 죽는단 말이야, 죽어요!”


“이런 망할 녀석들 같으니라구. 가뜩이나 미끄러운 길을 이렇게 빙판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다니느냔 말이야. 어서들 그만두지 못해!”


하지만 지금 아이들의 귀에는 어른들이 야단치는 그런 소리들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떠들어 봤자, 쇠귀에 경 읽기요, 잔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미끄럼을 타다가 서로 부딪쳐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구르는 아이,

언덕 저 아래까지 미끄러졌다가 다시 올라오다가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고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는 아이,

눈썰매를 타고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가며 저리 비키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아이 등,


골목길은 온통 아이들의 떠드는 시끌벅적한 소리로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야, 주성아, 너 내 것과 바꾸어서 타 보지 않을래? 이것도 아주 잘 나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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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신나게 미끄럼을 타고 놀던 민수가 어느 틈에 주성이한데로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민수와 주성이는 같은 반입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사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학교도 같이 다니고 숙제도 같이 하며, 그림자처럼 같이 붙어 다니며 사이좋게 지내는 단짝 친구입니다.


“싫어! 아무리 잘 나가면 무얼 하니? 네 것은 너무 많이 타서 눈썰매 바닥이 펑크가 많이 났잖아? 그걸로 타다가는 똥구멍에도 펑크가 나겠다. 임마.”


그렇습니다. 주성이의 말이 맞는 말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민수가 타고 놀던 썰매는 라면 상자를 펴서 만든 종이 판지 썰매였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험하게 많이 탔는지 여기저기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고 구멍도 뚫려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주성이의 썰매는 두꺼운 비닐 푸대여서 아직 멀쩡합니다.


"뭐어? 똥구멍이 어떻게 된다구? 야 임마, 그러지 말고 딱 한 번만 바꾸어 타 보잔 말이야. 이래 봬도 아주 끝내주게 잘 나간다니까.“


”그래? 그럼 딱 한 번 만이다. 그 대신 그걸 타다가 만일 내가 다치거나 잘못 되면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돼, 알겠지?“


"그래. 알았어. 그까짓 비닐푸대 하나 가지고 더럽게 똥폼을 잡고 으스대고 있네.”


주성이는 자신이 타고 있던 비료푸대로 된 썰매를 들고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서로 썰매를 바꾸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다시 신나게 미끄럼을 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야! 이 녀석들아. 비켜! 어서들 썩 물러가지 못하겠니?”


갑자기 아저씨 한 분이 큼직한 들통에 연탄재를 잔뜩 들고 다가오며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반질반질하게 길이 든 길바닥을 향해 연탄재를 한 개씩 힘껏 팽개치며 동댕이질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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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풀썩!”


연탄재는 마치 무서운 폭탄이 떨어질 때 나오는 연기처림 뽀얀 먼지를 일으키면서 길바닥에 박살이 나곤 하였습니다. 그러자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던 언덕길은 삽시간에 엉망진창이 되어 더 이상 썰매를 탈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모두가 금방 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아저씨를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민수가 먼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아저씨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아저씨! 이제 제발 그만 좀 뿌리세요! 미끄럼을 탈 수 없잖아요?”


“뭐라고? 뭘 그만 둬 이 녀석아, 너희 집에 돈 많으니?”


“돈이요? 그건 왜요?”


“그러다가 사람이 다치면 병원 치료비는 낼 수 있느냐 이 말이야?”


“……!”


아저씨는 이렇게 대꾸하고는 미처 부서지지 않은 연탄재 덩어리를 이리저리 걷어차면서 발로 밟아 뭉개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그렇게 미끄러웠던 언덕길은 연탄재로 덮히고 말았습니다. 그런 아저씨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원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허어, 이제야 좀 안심을 하고 다닐 수 있겠군!“


아저씨는 매우 흡족한 듯 입가에 연신 웃음까지 흘리면서 빈 통을 들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풀이 죽은 아이들은 하나둘씩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연탄재로 엉망이 된 언덕길에는 이제 민수와 주성이 둘만 남았습니다. 눈썰매를 못 타게 된 아쉬움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에이, 저 놀부 같은 아저씨 때문에 이제 미끄럼을 타기는 다 틀렸다. 그치? 우리도 이제 그만 돌아가자, 응?”

주성이가 몹시 아쉬운 듯, 그리고 매우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민수의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그러자 민수가 궁금한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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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니? 가긴 어디로 가?”


“어딘 어디니? 집으로 가는 거지.”


“아니야. 연탄재가 덜 뿌려진 길 가장자리에서는 아직도 얼마든지 탈 수 있난 말이야. 자, 내가 타는 걸 한번 볼래?”


민수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비닐 푸대에 올라앉아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눈썰매가 연탄재에 걸려 미끄러지다가 멈추곤 했지만, 그런대로 탈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에구머니나! 이 녀석이 생사람 잡네!”


민수가 탄 썰매가 그때 마침 골목길에서 큰길로 나서던 어느 아주머니와 부딪치는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비명을 지르면서 길바닥에 짐짝처럼 쿵 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썰매를 타고 있던 민수도 그만 방향을 잃고 쓰러지면서 데굴데굴 굴러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 괘, 괜찮으세요?”


민수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급히 아주머니에게로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어이구우, 이 녀석아, 네가 보기엔 이게 괜찮아 보이니? 어이구, 나 죽는다. 나 죽어!”


아주머니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채 여전히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민수야, 아무래도 크게 다치셨나 봐, 이 일을 어쩌면 좋지?”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주성이도 어느 틈에 달려와서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민수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민수는 잠시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다가 벌떡 일어서며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주성아, 아무도 모르니까 우리 얼른 도망치자, 응?“


민수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주성이의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저 혼자 급히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야, 임마, 사람이 다쳤는데 그냥 도망가면 어떻게 하냐구?“


주성이도 덩달아 민수의 뒤를 따라 달려가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수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아까보다 더욱 속력을 내며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정신없이 뛰고 있던 민수가 마침내 시장 골목에 다다르자 걸음을 멈추고는 가쁜 숨을 헐떡이면서 겁에 질린 얼굴로 주성이에게 물었습니다.


“이, 이렇게 도망치지 않으면 그럼 나더러 어떡하라구?”


주성이 역시 가쁜 숨을 혈떡이며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하기는? 어쨌든 우선 신고부터 하고 병원으로 모셔야 될 거 아니니?”


"그건 안 돼, 우리 엄마가 알면 그땐 정말 끝장이란 말이야.“


“그렇다고 그냥 도망을 치면 어쩔려구?”


“……!?”


민수가 얼른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아니 너희들 집에 가지 않고 여기서 뭘 하고 있니?”


그때 마침 시장에서 돌아오던 민수 엄마가 민수과 주성이를 발견하고는 이상하다는 듯 두 아이에게 다가오며 물었습니다.


“…….”


“…….”


민수와 주성이는 더럭 겁이 난 얼굴로 서로 눈치만 슬금슬금 살피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민수 엄마가 다시 한번 다그쳐 물었습니다.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니? 너희들 왜 여기 있느냐고 묻고 있잖아?“


“저어, 저…….”


민수가 마침내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저어……. 저어기 언덕길에서 미끄럼을 타다가 그만…….”


"그, 그래서?“


“골목에서 나오는 어떤 아줌마와 부딪쳐서 아줌마가 다, 다쳤어요.”


그거자 민수 엄마의 눈이 금세 커다랗게 되었습니다.


“그, 그래서?”


“그래서 그 아줌마가 넘어져서 많이 다치신 것 같아요.”


“아니, 뭐라고? 너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얼른 병원으로 모셔야 할 게 아니니? 그럼 병원으로 모셨니?”


“아, 아니요.”


민수가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민수 엄마는 더욱 겁에 질린 눈으로 다시 소리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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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라고? 그럼 그 아줌마를 그냥 두고 도망쳤단 말이니? 이 녀석들 큰일 낼 녀석들이네. 지금 그 아줌마가 계신 곳이 어디니?”


“저어기, 공터 옆 언덕길 있잖아요? 바로 거기예요.”


“안 되겠다. 지금이라도 빨리 가 보자꾸나.”


순간, 민수 엄마는 민수가 가리키는 곳을 항해 황급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뒤를 따라 민수와 주성이도 겁에 질린 표정이 되어 급히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은근히 겁에 질렸던 민수의 마음이 이상하게도 금방 가볍고 홀가분해지고 있었습니다.


'맞아. 그때 마침 엄마를 만나게 된 건 하느님이 나를 도와주신 거야!‘


그런 민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주성이의 입가에도 그제야 조금은 안심이 된다는 듯 어느 새 밝은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함박눈은 여전히 소리없이 펑평 내리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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