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우리는 이웃사촌

by 겨울나무

아주 깊고 깊은 산골짜기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그 산골짜기에는 갖가지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전나무, 가문비나무, 상수리나무, 아까시나무, 떡갈나무, 수백 년씩 묵은 늙은 소나무 등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조글조글, 쪽조그르…….”


“부엉, 부엉…….”


사철을 가리지 않고 갖가지 산새들이 찾아와 저마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나무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돌돌돌……“


이리 꼬불 저리 꼬불, 산골짜기 여울마다에서는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면서 맑고 고운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여울물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토록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 그러나 그런 곳이라 해서 모두가 살기 좋고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산골짜기에는 떡갈나무 한 그루가 오래전부터 수많은 나무들 틈에 끼여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많았지만 다른 나무들에 비해 유난히 키도 작고 볼품이 없는 나무였습니다. 하지만 얼른 보기에도 아주 단단하고 튼튼하게 자란 떡갈무였습니다.

굵고도 육중하게 생긴 밑동이 위로 올라가다가 두 갈래로 벋은 떡갈무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이들이 흔히 즐겁게 가지고 노는 고무줄 새총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조글조글, 쪽조그르…….”


“부엉, 부엉…….”


오늘도 부지런한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아침이 밝아 왔습니다.


“으아~~, 참 잘 잤다. 벌써 이렇게 날이 밝았나?”


나무들은 산새들의 노랫소리에 단잠에서 깨어나면서 온몸이 늘어질 정도로 기지개를 켰습니다. 나무들의 기지개 소리에 떡갈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나무들의 비웃음과 놀림이 지겹도록 듣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나무들은 눈을 뜨기가 무섭게 이른 아침부터 떡갈나무를 바라보며 비웃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오늘 아침에도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아까시나무였습니다.


“야! 땅딸보 난쟁이야. 넌 아직도 자고 있는 거냐? 으이구, 생긴 대로 놀고 있다니까. 으하하…….”


“…….”


그러나 떡갈나무는 못 들은 척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나무도 끼어들었습니다.


“쟨 도대체 뭘 먹고 살기에 남들 자랄 때 자라질 못하고 늘 저 모양 저 이지? 깔낄낄…….”


전나무가 비웃는 소리를 듣자, 그다음에는 다른 나무들도 재미있다는 듯 덩달아 하명이 하나둘씩 앞을 다투며 끼어들었습니다.


"누가 아니라니. 난 저렇게 못생긴 나무는 보다보다 처음 본다니까. 으하하…….”


"맞아. 그렇다고 예쁜 꽃을 피우길 하나, 탐스럽고 맛 좋은 열매를 맺을 줄 아나, 으이그 바보 천치 같은 놈.“


”누가 아니래. 저렇게 살 거라면 무슨 생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 낄낄낄…….”


매일 그런 놀림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떡갈나무는 서럽고 분했습니다. 가슴속이 온통 갈기갈기 찢어질 것처럼 분하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못 들은 척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아, 난 왜 이처럼 못생기게 태어난 걸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할까!“


떡갈나무의 입에서는 절로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친구들에게 갖은 비웃음을 받을 때마다 늘 그랬듯, 아주 오래전에 엄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태어나게 마련이란다. 그러니까 여러 생각 말고 항상 정직하고 바르게 자라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큰일을 할 수 있을 때가 오게 마련이란다.“


지금까지 떡갈나무는 엄마의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한데 업신여김을 당할 때마다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아무리 괴로워도 어금니를 꼭 깨물며 참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쳇! 아무리 참고 살아봐도 늘 이렇게 괴롭기만 한데, 대체 내가 언제 무슨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떡갈나무는 자신을 낳아 준 엄마가 공연히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 모두가 원망스럽고 밉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떡갈나무가 그토록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해 여름이었습니다.


그해 여름엔 장마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마치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게다가 거센 바람까지 무섭게 몰아치며 말 그대로 물동이로 물을 퍼붓듯 여러 날을 쉬지 않고 무섭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휘리리릭~~~ 휘리리릭~~~“


나뭇가지를 두 손으로 꼭 잡고 매달린 나뭇잎들마다 거센 바람에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연신 애처로운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우지직, 딱! 딱!”


바람과 벼락에 맞서 싸우다 여기저기에서 쉴 사이 없이 육중한 나무들이 통째로 부러져 나갑니다. 나뭇가지들이 무참하게 부러지고 찢어지며 땅에 떨어져 나뒹굴기도 하였습니다.

나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오직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젖 먹던 힘을 다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산골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뭇가지를 흔드는 거센 바람 소리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고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으앗!, 어어여……!”


이번에는 떡갈나무 바로 옆에서 잔뜩 겁에 질린 듯한 다급한 신음이 들려왔습니다. 떡갈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뜨고 신음이 들리는 쪽을 향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신음 소리는 다름 아닌 바로 아까시 나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습니다. 지금까지 그처럼 늠름하고 튼튼했던 아까시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어어! 떡갈나무야! 나, 나 좀 도와줘!“


그처럼 키가 크고 기세당당하던 아까시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삽시간에 뿌리째 뽑히면서 요란한 신음 소리를 내더니 삽시간에 카러지고 있었습니다.


"으으윽, 으아아악!“


아까시나무가 쓰러지는 순간, 이번에는 떡갈나무도 덩달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다시 두 눈을 꼭 감고 말았습니다. 아까시나무가 떡갈나무를 향해 나동그라지면서 하필이면 떡갈나무를 덮쳐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었습니다. 그 육중한 기둥 줄기가 쓰러지면서 떡갈나무의 몸에 의지한 채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았으니까요.


아까시나무는 떡갈나무 덕분에 완전히 땅바닥에 쓰러지는 불행만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까시나무가 마침 고무줄 새총처럼 양쪽으로 벋은 떡갈나무의 기둥 한가운데에 육중한 몸뚱이를 의지한 채 더 이상 쓰러지지 않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송두리째 뽑혀 나갈 뻔했던 뿌리도 반 정도는 땅에 박혀 있었습니다. 떡갈나무 덕분에 목숨을 잃은 뻔했던 참변만은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떡갈나무는 여전히 두 눈을 꼭 감은 채,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을 참기 위해 연신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육중한 체구의 아까시나무가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아까시나무가 매우 쑥스럽고도 민망해진 표정으로 떡갈나무를 항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이, 이거 미안해서 정말 어쩌지? 내가 늘 너를 그토록 업신여기고 괴롭혔었는데, 그런데 네가 나의 생명의 은인이 될 줄이야…….”

“아아~~~!"


아까시나무의 입에서 나온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떡갈나무의 눈에서는 왠지 어느새 감격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감격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오래전에 엄마가 들려준 목소리가 다시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엄마의 가르침의 목소리가…….”


"아네요.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힘은 좀 들었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한걸요. 그보다도 목숨만은 건지게 되셔서 정말 다행인걸요.”


“아, 이렇게 마음씨가 고울 수가……. 그렇게 생각해 주다니 정말 고맙구나, 그동안 너를 괴롭혀 온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으흐흑…….”


아까시나무는 지금까지 떡갈나무를 업신여기고 짓궂게 괴롭혔던 지난 잘못을 크게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마치 천사처럼 곱고 고운 떡갈나무의 마음씨에 감동하여 연신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용서해 드리고말고요.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고 어서 몸이나 추스르세요. 누가 뭐래도 우린 서로 이웃사촌이잖아요.“


"정말 고맙구나. 고마워. 으흐흑…….“


아까시나무의 흐느낌 소리는 좀처럼 그칠 줄 몰랐습니다.

"조글조글 쪽조그르…….“


“부엉, 부우엉…….“

멀리에서는 그동안 잠잠했던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그처럼 거칠기만 하던 비바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면서 날씨가 차츰 화창하게 개었습니다.

산골짜기에는 다시 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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