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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Dec 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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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랄랄라, 오예에……!”
민수는 지금 신바람이 나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어디론가 급히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습니다.
노래뿐만이 아닙니다. 휘파람도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신바람이 날 수가 없습니다.
어느새 서쪽 하늘에 걸린 해님은 지금 한창 서산 너머로 급히 넘어갈 준비를 서두느라 분주합니다. 너무나 바쁘게 서둘러서 그런지 가뜩이나 하루종일 뜨겁게 달구어졌던 해님의 얼굴이 더욱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민수의 이마에서는 어느새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 줄줄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한여름 못지않게 후덥지근한 날씨가 여러 날 되풀이 되고 있는 걸 보면, 올해는 다른 해보다 여름이 훨씬 더 빨리 오고 있나 봅니다.
“후유, 정말 너무 덥다. 더워!”
이마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땀방울을 연신 닦아내고 있는 민수의 걸음걸이가 점점 더 빨라집니다. 몸도 마음도 몹시 급하기만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민수는 더위도 잊은 채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마 엄마가 깜짝 놀라겠지? 그리고 엄청 좋아할 거야. 푸후훗…….‘
민수는 그동안 오늘이 오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내일 엄마가 깜짝 놀라며 몹시 기뻐할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토록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틈에 시장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옷 가게 앞에 다다른 민수는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이 없이 옷 가게 문을 열더니 선뜻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어서 와요!”
예쁘고 상냥한 얼굴에 늘씬하게 생긴 점원 아가씨가 이상하다는 듯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민수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옷 가게는 주로 멋쟁이 아가씨들이나 젊은 아줌마들의 옷들만을 파는 가게였기 때문입니다.
아가씨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여긴 여성복을 파는 가게이거든요…….‘
"그건 저도 알아요. 근데 우리 엄마 옷을 사러 왔거든요.”
“……?”
민수는 이렇게 서슴없이 대답하고는 잠깐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원피스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는 진열대 앞으로 성큼 다가갔습니다.
옷걸이에는 갖가지 화려한 색깔의 무늬가 박힌 고급스럽고 예쁜 원피스들이 그득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그제야 겨우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 나서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아하, 그랬군요. 그럼 엄마 생신 선물로 원피스를 사드리려고 온 거군요?”
"네, 우리 엄마가 얼마나 원피스를 입고 싶어 했는지 몰라요.”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망설이다가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물었습니다.
“아하, 그랬군요! 그런데 어쩌면 좋죠? 여기 걸린 이 옷들은 좀 비싼 편이거든요. 혹시 엄마가 옷을 사 오라고 돈을 주신 건가요?”
"엄마가 돈을 주신 건 아니지만, 에이,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1년 동안 용돈을 아껴 가면서 얼마나 열심히 저금을 했는지 아세요? 그러니까 이런 거 하나쯤 사는 건 문제도 아니라니까요.”
아가씨는 그제야 안심이 된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며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우와! 그랬구나! 히야아, 이런 효자 아드님을 두신 엄마는 얼마나 좋으실까. 엄마가 정말 좋아하시겠어요. 그런데 엄마의 옷 치수는 알고 왔겠죠?”
"아뇨, 그런 건 잘 몰라요.”
그러자 보석처럼 반짝이던 아가씨의 두 눈동자가 실망했다는 듯 금세 어두운 빛으로 변하면서 난감한 표정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걸 정확히 모르면 옷이 몸에 맞지 않을 텐데……. 그럼 엄마가 큰 편인가요, 작은 편인가요?“
아가씨의 물음에 민수는 서슴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엄마의 키는요. 크지도 작지도 않고 아주 적당한 편이거든요.”
"오호! 그래요? 그럼 엄마의 몸매가 좀 뚱뚱하신 편이신가요, 아니면 날씬하신가요?”
그러자 민수는 자랑이라도 하듯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자신 있게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엄마는요. 웬만한 미스코리아보다 더 예뻐요. 그리고 탤런트보다 더 멋지고 아름답거든요. 아마 누나도 우리 엄말 직접 보면 한눈에 반하고 기절하고 말 걸요. 푸후후훗…….”
“어머! 그래요? 엄마가 대단한 미인이신가 봐요. 부러워요. 그런 멋진 엄마를 두어서 참 행복하고 좋겠어요.”
아가씨의 칭찬 소리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민수는 활짝 환해진 얼굴로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멋쟁이 아줌마들이 즐겨 입는 최신 상품의 원피스 하나를 골랐습니다. 흰색 바탕에 파란 물방울 모양 무늬가 찍힌 예쁜 원피스였습니다.
"이거 어때요? 바느질도 꼼꼼하고 옷이 아주 잘 빠졌죠? 이 옷은 최근에 나온 신상품인데 요즘 한창 유행하는 스타일이에요. 디자인도 세련되어서 가장 잘 나가는 옷이거든요.“
”……!”
그러나 민수는 어쩐 일인지 아가씨가 권하는 옷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더니 어딘가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민수의 머리에 문득 다시 작년 여름 어느 날의 기억이 번개처럼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민수는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들른 엄마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문득 가던 걸음을 멈춘 엄마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우와아~~ 저 아줌마가 입은 옷 정말 너무 곱고 멋진걸!“
”……!”
민수는 무슨 일인가 하고 엄마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렸습니다.
한껏 멋을 낸 어느 젊은 아주머니 하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멋지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고 시원스런 체크 무늬의 원피스 차림, 거기에 양산을 받쳐 든 아줌마의 모습, 그것은 민수가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답고 예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곱고 예쁠 수가 있니? 민수야, 엄마도 저 옷을 입고 다니면 저 아줌마처럼 예쁘게 보일까? 히야, 정말 예쁘기도 해라!”
그러자 민수가 서슴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아암, 당근이지. 엄마는 그걸 말이라고 해? 아마 엄마가 저 렇게 옷을 입고 다닌다면 아마 저 아줌마보다 몇 배나 더 예쁘고 멋질걸!”
"호호호……. 정말 그럴까? 호호호…….”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두 팔로 민수를 와락 껴안은 채 한동안 소리 내어 웃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 채 망설거리고 있던 민수가 이번에는 옷걸이에 걸린 체크무늬 원피스를 가리키며 그제야 입을 열었습니다. 언젠가 멋쟁이 아주머니가 입고 있던 옷과 거의 비슷해 보이는 원피스였습니다.
“누나!”
“응? 어서 말해 봐.”
“난 누나가 골라준 이 옷도 좋긴 하지만 저렇게 체크무늬가 박힌 옷을 사고 싶거든요. 우리 엄마는 체크 무늬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어머, 그랬군요? 그렇다면 예쁜 체크무늬로 골라야 하겠네요.”
민수는 결국, 아가씨가 권해주는 마음에 드는 원피스 하나를 골랐습니다.
작년에 그 멋쟁이 아주머니가 입고 있던 원피스와 거의 비슷한 체크 무늬 원피스였습니다. 바탕 색깔이나 무늬도 그 아줌마가 입었던 것과 거의 똑같은 색깔의 원피스였습니다.
아가씨는 예쁜 포장지로 정성껏 포장한 다음 고급스런 종이 가방에 넣어 주었습니다.
“누나, 감사합니다.”
옷값을 치른 민수는 인사를 하자마자 신바람이 나서 급히 가게 문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다음 날 오후였습니다. 아가씨가 은근히 걱정했던 대로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던 대로 결국 민수가 어제 산 원피스를 들고 다시 오 가게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민수가 이번에는 조금 미안해진 표정으로 엄마의 옷 치수가 정확하게 적힌 쪽지를 아가씨 앞에 내밀었습니다.
'어머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깜짝 놀란 아가씨의 눈이 갑자기 접시만큼이나 커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민수가 내민 쪽지에는 여성들의 옷으로는 보기 드문 가장 큰 사이즈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가씨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가면서 민수에게 물었습니다.
“푸후훗…….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뭐가요?”
"어제 분명히 그랬잖아요. 엄마는 미스코리아나 탤런트보다 날씬하다고요.”
그러자 민수는 무슨 소릴 하고 있느냐는 듯 다시 서슴지 않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정말이라니까요. 진짜예요. 아마 누나도 우리 엄말 직접 만나 보면 기절을 할 걸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호호호…….“
아가씨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다시 치수에 맞는 옷을 골라 민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민수가 돌아간 다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아가씨가 갑자기 무릎을 치며 소리쳤습니다.
“아하, 바로 그런 거였구나!”
순간, 아가씨는 민수를 통해 새삼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따뜻하고 고운 마음으로, 그리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 그 모두가 곱고 아름다우며 거룩하게 보이기도 한다는 값진 진리를…….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미움의 눈으로 바라보면 눈에 띄는 모든 것들마다 한없이 못마땅하고 불만스럽게 보인다는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참된 진리를…….
“바로 그런 거로구나! 그걸 왜 내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지?”
아가씨가 이번에는 갑자기 신바람이 나서 힘껏 손뼉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곧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 을 꺼냈습니다. 오래 전부터 사귀어 오고 있던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동안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아 연락조차 뜸해졌던 남자 친구, 그의 단점이 갑자기 그 모두가 장점으로 황홀하게 느껴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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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의 브런치입니다. *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선정 심사. 1종교과서 집필 * 지은책 : 창작동화집 '생각하는 떡갈나무' 외 2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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