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구, 지겨워 죽겠네. 무슨 놈의 숙제를 이렇게 많이 내주고 번번이 골탕을 먹인담!”
한동안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던 수미는 금방 짜증스러운 표정이 되어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은 남산만큼이나 크게 쑤욱 나오고 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미네 선생님은 늘 금요일 종례 때만 되면 으레 숙제를 많이 내주기로 유명합니다. 그러면서 늘 판에 박은 듯한 똑같은 말을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해주곤 합니다.
“여러분들은 뭐니뭐니해도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놀기만 좋아하면 절대로 홀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좀 고생스럽기는 하겠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잔소리가 너무 지겨워서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하게 되면 당장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에 함부로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그냥 잠자코 듣고 있어야지 별도리가 없습니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온 수미는 저녁 늦게까지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숙제는 해도 해도 끝이 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서 또 은근히 짜증이 난 것입니다 .
"에이, 지겹고 짜증이 나서 못 살겠네. 이런 꼴을 보지 않으려면 얼른 자라서 어른이 돼야 한다니까.“
짜증이 난 수미는 다시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리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비단 오늘뿐만이 아닙니다. 수미가 숙제를 하기 싫을 때마다 늘 품고 있었던 단 한가지 소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엄마나 아빠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수미가 숙제 때문에 쩔쩔매는 꼴을 볼 때마다 조금이라도 도와줄 생각을 하기는커녕 한 수 더 떠서 늘 딴소리만 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럴 때마다 수미는 아빠나 엄마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습니다.
“히야! 우리 수미가 이제야 선생님을 바로 만났구나, 아암, 숙제를 많이 내주어야 하고말고.”
그뿐만이 아닙니다.
수미가 어쩌다 숙제를 빨리 끝내고 잠시 놀고 있는 기색만 보이면 그때마다 이제 그만 놀고 빨리 책상 앞에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를 하라고 성화를 부리기도 합니다.
수미는 그래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시간 외에는 늘 그 지겨운 공부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학교에 가도 공부, 집에 와서도 공부 오직, 공부 외에는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완전히 공부의 노예가 되고 만 셈입니다.
수미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비단 공부만 하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현재 하고 있는 그 밖의 일들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생각할수록 참 이상합니다. 왜 그런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아이들이 좋아서 하는 일은 하나같이 못하게 말리기가 일쑤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그 일을 하게 되면 그때마다 공연히 야단을 치기도 하고 혼을 내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두 못 하게 하면서도 오직 단 한 가지 악착같이 하라고 하는 것은 공부뿐이었던 것입니다.
수미가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어른들의 간섭이 심해서 자유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 지겹고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우선 그 지겨운 숙제와 공부, 그리고 시험에서 해방이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참견을 하지 않고 돈도 마음대로 쓰면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어서 신이 날 것이 틀림없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른이 되면 예쁜 옷을 마음대로 사 입고 또한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아름답게 꾸미고, 또 고급 화장품으로 마음껏 멋지게 화장을 할 수 있어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좋은 일은 그 밖에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말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도록 신이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야 겨우 숙제를 마친 수미는 밤 열두 시가 거의 다 되었을 무렵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언니가 자고 있는 옆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 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따라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얼른 어른이 될 수 있는 무슨 뾰족한 수는 없을까?‘
수미는 늦게까지 숙제를 하느라 몹시 피곤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따라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그 이튿날 새벽입니다.
’난,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단 말이야. 지금 현재 하루하루 보내기가 너무 고통스럽고 지겨워서 싫단 말이야!‘
수미는 저도 모르게 정신없이 소리소리 지르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심한 잠꼬대를 하다가 깬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불을 덮고 길게 뻗은 발이 갑자기 서늘해지면서 발이 시렸습니다. 다리를 곧 오므렸지만 이상하게도 발은 여전히 이불 밖으로 나가서 발이 시려웠던 것입니다.
“그거 참 희한한 일도 다 보겠군!”
수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엊저녁에 이불을 덮을 때는 분명히 이불이 넓고 넉넉해서 발이 나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밤사이에 갑자기 이렇게 이불이 짧아지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이상하다고 생각한 수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위와 아래로 훑어보던 수미는 그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이불이 작아진 줄로만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은경이의 키가 밤사이에 어른처럼 커진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리고 언니는 또 어디로 간 거지?“
수미는 두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엊저녁에 분명히 옆에서 잠을 자던 언니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엄마아! 아빠아!“
그제야 더럭 겁이 난 은경이는 엄마 아빠를 소리처 부르면서 안방으로 달러갔습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
분명히 안방에서 주무시고 있어야 할 엄마와 아빠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텅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겁에 질린 수미는 다시 제 방으로 급히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몸이 커져서 찢어질 것처럼 작아진 잠옷을 벗어 버리고 옷장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옷장 안에는 언니의 예쁘고 멋진 옷들이 즐비하게 걸린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미모가 남달리 곱고 예쁘게 생겨서 한창 멋을 부리고 다니는 것이 취미였기 때문에 옷가지들도 꽤 많은 편이었습니다.
한동안 언니의 옷가지를 이것저것 뒤적거리던 수미는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하나 골랐습니다. 그리고 언니의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옷 매무새를 고치며 한껏 멋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밤 사이에 내가 이렇게 몰라볼 정도로 멋진 아가씨로 크게 자랐다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수미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거울에 비친 은경이의 모습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은경이가 바라고 바라던 어른, 아니 멋쟁이 아가씨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바람이 난 수미가 이번에는 화장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을 마친 은경이의 얼굴 모습은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아가씨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아! 이제 이만하면 더 바랄 게 없어. 난 이제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의젓한 아가씨가 되었단 말이야. 호호호…….”
마음껏 멋을 낸 수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설레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곧 외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랄라라~~~ 랄라라~~~!!”
아침 일찍 거리로 뛰쳐나온 수미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신나게 쏘다니고 있었습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수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마다 발걸음을 멈춘 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첫눈에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수미의 기분은 마치 하늘을 날 것처럼 붕 떠올라갈 것처럼 그렇게 신바람이 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멋쟁이 처녀로 변한 수미는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마음대로였습니다. 그것은 수미가 오래전부터 바라고 바라던 소원이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꿈을 이룬 것입니다.
이제 집에 들어가나 밖에 나와서도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자유롭고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지겹고 짜증스럽던 숙제나 공부, 그리고 시험을 볼 필요도 없어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일이라고는 유행에 따라 멋있고 예쁜 옷을 자주 사서 갈아입고 고급 화장품으로 얼굴 치장을 하고 마음껏 멋만 부리면 더이상 할 일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아! 똑같은 세상이지만, 이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수미가 이렇게 마냥 행복에 젖어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동안 어느새 한 달이 가고 1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또 눈 깜짝할 사이에 몇 해가 훌쩍 흘러갔습니다.
그러자 수미도 어느새 나이가 들어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자 수미 역시 다른 여자들처럼 살림을 하며 예쁜 아기도 낳게 되었습니다. 여느 여자들처럼 매일 끼니때마다 밥을 짓고 반찬거리를 만드는 일로 바빴습니다. 집 안 청소는 물론 아기를 기르면서 빨래를 해야만 하는 고된 나날의 연속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바쁜 그런 생활들 모두가 그런대로 재미도 있고 행복하기도 하였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수미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활에 조금씩 싫증을 느끼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구, 허리야! 어이구, 다리야! 어른 노릇하기가 이렇게 힘이 들 줄은 까맣게 몰랐었네.“
그동안 쌓였던 빨래를 끝낸 수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허리가 아파 더 이상 못 참겠디겠다는 듯 연신 허리를 두드리며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일, 그리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가장 힘이 드는 것은 아기를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달래고 얼러주어 보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늘 말썽만 부리거나 모두가 제멋대로여서 진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아껴 써도 늘 생활비가 부족하여 돈 걱정을 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수미는 그토록 바라고 소망하던 어른이 되기는 했지만, 그처럼 바라고 원하던 어른들의 생활이 차츰 지겹고 짜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자유도 많고 멋도 마음대로 부리고 다닐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돈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느 게 어른들인 줄 알았는데 이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들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 못한 게 어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도 마음대로 못 쓰고 학교 숙제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드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른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집 안에서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곧잘 놀고 있던 아기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정신없이 집 안 청소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던 수미는 곧 청소기를 내던져버리고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아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가야! 아기야! 우리 아가 어디로 갔니?”
집 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아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겁에 질린 수미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이번에는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아기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앗! 우리 아기가!”
수미는 순간 발걸음을 멈춘 채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아기가 신호등을 무시한 재 횡단보도를 아장아장 건너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빵, 빠아앙! 빵빠아앙~~~!”
전속력을 내며 쌩쌩 달리고 있던 자동차들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급정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사방에서 클랙션 소리도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아차 하면 차에 치일 뻔한 아슬아슬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겁도 없이 여전히 아무런 겁도 없이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안돼, 아가야! 안 돼!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서 있어!“
수미는 그 자리에서 선 채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위험한 줄도 모르고 자꾸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난데없이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아니, 웹 잠꼬대가 그렇게 심하니? 어이구, 쯧쯧……. 어이구,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 좀 봐.”
엄마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수미가 저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수미는 지금 길거리에 서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잠꼬대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틈에 달려왔는지 수미의 잠꼬대 소리에 놀란 엄마가 달려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미의 이마를 닦아 주고 있었습니다. 수미는 그제야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어이구, 엊저녁에 늦게까지 숙제를 하느라고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이구나?”
엄마의 말에 수미는 조금은 민망한 듯 대답 대신 빙그레 웃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수미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엄마! 어른들은 그렇게 고생이 많은데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어. 호호호…….”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무슨 재미로 살기는……. 너처럼 귀여운 자식들을 키우는 재미로 사는 거지.”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몹시 귀여워 못 배기겠다는 듯 수미의 이마에 뽀뽀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엄마, 정말 고마워요!”
수미도 이렇게 대꾸하고는 조금은 쑥스러운 듯 엄마의 품속을 와락 파고들었습니다.
수미는 지금 다시 아이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엄마의 품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