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두목이 된 원숭이

by 겨울나무

머나먼 남쪽 나라의 바닷가 절벽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원숭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철썩, 쏴아 —— 철썩, 쏴아-.”


언제나 쪽빛으로 곱게 물든 바닷물은 사철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파도를 만들었습니다. 파도는 밀려왔다가 부서지곤 하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바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시원스러운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습니다.

바닷가에는 마치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아슬아슬하고도 어마어마하게 높은 바위 절벽이 있었습니다. 그 바위 절벽에는 원숭이들이 먹고 살아갈 맛좋은 양식이 얼마든지 널려 있었습니다.


부드럽고 연한 나무껍질과 잎, 밤, 귤, 복숭아, 그리고 갖가지 곤충과 벌레들이 모두 원숭이들의 훌륭한 양식이었습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놓은 듯 경치가 아름답고 양식이 풍부한 이곳 원숭이들의 생활은 그저 평화롭고 행복하여 더이상 바랄 게 없었습니다.


더운 한낮이 되면 절벽 아래 시원한 바다로 내려가 은빛 비늘로 반짝이는 맑은 물에 수영도 하고 조개를 주워 먹기도 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원숭이들을 거느리는 두목이 갑자기 사윗감을 뽑게 되었다는 소문이 떠돌게 된 것입니다.


두목 원숭이에게는 아주 예쁘고 아름답게 생긴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물이 워낙 아름답게 잘 생겨서 웬만한 원숭이들은 감히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권력이 대단한 두목의 딸이어서 더욱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딸이 출가할 나이가 되자 전국에서 갑자기 가장 멋진 사윗감을 두목이 직접 면접을 통해 뽑기로 하였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우와아~~ 드디어 두목님이 사윗감을 뽑는다는구먼!”


“뭐어? 그게 정말이야?”


“그나저나 우리처럼 별볼 일 없는 사람들에게 차례가 오겠어? 보나마나 그림의 떡이지 뭐.”


두목이 사윗감을 뽑는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총각 원숭이들은 저마다 욕심이 생겼습니다. 부질없는 욕심인 줄 잘 알면서도 공연히 맘이 설레고 들떴습니다. 그리고는 사방에서 삽시간에 시험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총각 원숭이들은 마치 이런 날이 오기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저마다 한껏 멋을 내고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너무나 많이 모여들어서 도착하는 대로 차례를 정하기 위해 번호표를 매겨 주느라 바빴습니다.

순서에 따라 맨 처음 차례가 된 총각 원숭이가 두목 앞으로 나왔습니다. 덜덜 떨리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하면서 구십 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예의를 다해 두목을 향해 꾸벅 인사를 올렸습니다.


두목 옆자리에는 아내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딸도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면접이 시작되자 두목이 연신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면서 먼저 위엄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먼 길 오느라고 고생 많았네. 그건 그렇고 만일 우리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넨 우리 딸을 어떻게 하겠나?”


“그, 그게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총각 원숭이는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채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두목 원숭이는 껄껄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허허허, 내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네. 다시 말하자면, 만일 내 딸을 자네에게 준다면 결혼 후에 자네가 밥 짓기, 빨래, 아기 보기, 그리고 집 안 청소하기 등, 우리 딸을 대신해서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아 해줄 수 있겠느냐 이 말이라네. 이제 알아들었나? 허허허…….“


”……?“


총각 원숭이는 무슨 말인지 여전히 두목의 말귀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예상하지 않았던 말도 되지 않는 엉뚱한 질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목의 딸이 탐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버무리는 듯하다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내게 되었습니다.


”아하,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만일 제게 그런 행운을 주신다면 말씀하신 그런 살림살이뿐이겠습니까? 따님을 평생 흙 한번 손에 묻히지 않게 그 누구보다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드릴 각오가 돼 있습니다.“


”허허, 그래? 그럼 됐네. 아주 믿음직스러운 젊은이로구먼. 허허허……. 자, 그다음 차례!“


두목은 매우 만족한 듯 너털 웃음을 짓고는 곧 그다음 총각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두 번째 젊은이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두목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마치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멀리까지 오느라고 고생 많았네. 그건 그렇고 만일 우리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넨 우리 딸을 어떻게 하겠나?”

“……?“


두 번째 젊은이 역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어리둥절해서 우물쭈물하다가 금방 자신이 있다는 듯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거침없이 털어놓았습니다.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에게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따님은 집 안에 그림처럼 앉혀놓고 흙 한번 손에 묻히지 않고 평생을 편안히 지낼 수 있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허허, 그래? 그거 아주 믿음직스러운 청년이로군. 허허허……. 자, 그다음 차례!“


두목이 이번에는 더욱 기분이 좋아져서 너털웃음을 웃고 나서 다음 청년을 불렀습니다.


시험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희한하였습니다.


그다음에도, 그리고 그다음에도 후보자가 바뀔 때마다 두목 원숭이는 온종일 똑같은 질문만 하고 간단히 끝내곤 하였습니다.


딸 대신 집안 살림을 모두 도맡아서 해줄 수 있느냐는 한결같은 질문을 되풀이되었던 것입니다.


‘거참 이상한 일이란 말이야. 하필이면 고작 그런 시시한 질문만 하고 말다니……!’

옆에서 시험을 지켜보고 있던 원숭이들은 아무 말없이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혹시 두목 원숭이의 머리가 이상하게 된 게 아닌가 의심을 하기고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면접을 보러 온 총각 원숭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수많은 총각들은 오직 두목의 딸이 탐이 나서 모두가 한결같이 마음에도 없는 집안일을 떠맡겠다고 얼른 대답하곤 하였습니다.


”자, 그럼 다음 순서……!“


저녁때가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마지막 순서로 헙수룩한 차림의 총각이 두목 앞에 나섰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총각이 들어서자 두목 원숭이는 이번에도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허허, 이제야 마지막이로군! 그건 그렇고 만일 우리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넨 우리 딸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


헙수룩한 차림의 총각은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다가 두목 원숭이에게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다니, 무얼 말씀입니까?“


그러자 두목 원숭이는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듯 보나마나 이번에도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허어, 이 사람 말귀가 좀 더디구먼. 만일 내 딸을 자네에게 준다면, 결혼 후에 자네가 밥 짓기, 빨래, 아기 보기, 그리고 집 안 청소하기 등, 우리 딸을 대신해서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아 해줄 수 있겠느냐 이 말일세. 이제 알아듣겠나? 허허허…….“


“……?“


두목의 물음에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총각 원숭이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두목에게 되물었습니다.


”두목님, 지금 저에게 농담을 하자는 것은 아니신지요?“


”원, 저 저러언, 내가 농담을 하다니? 이런 건방진 사람을 다 봤나. 내가 지금 할 일이 없어서 자네하고 한가하게 농담을 할 사람으로 보이나?“


두목 원숭이의 안색이 금세 불쾌한 빛으로 어두워지며 언짢아진 목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럼 조금 전에 제게 물어보신 말씀이 진담이었단 말씀이십니까?“


”아아니, 이 사람이 감히 어느 앞이라고……. 그, 그럼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자네 같은 사람과 농담을 할 리가 있나, 이 사람아!“


그러나 헙수룩한 차림의 통각 원숭이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농담이고 말고요. 그럼 제가 두목님께 한 가지만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 그래. 어서 말해 보게나.“


두목이 불쾌하다는 듯 자리를 고쳐 앉으며 대답하자 총각 원숭이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럼 두목님께서는 지금 부인을 위해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다니 뭘 말인가?“


”방금 전에 저에게 질문하신 것처럼 부인 대신 두목님께서 집안 청소는 물론 밥짓기, 빨래 등, 그리고 지금까지 공주님까지 손수 키우셨는지를 여쭙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 아니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자네 말대로 내가 지금까지 집 안 일을 모두 도맡아 했다면 이 원숭이 나라는 어떻게

누가 다스릴 수 있었겠나? 어디 입이 있으면 말을 좀 해 보게.“


그러자 총각 원숭이는 마침 그런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의기양양해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제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저야 자격도 안 되는 줄 잘 알고 있지만 제가 만일 두목님의 따님과 같이 살게 된다고 가정했을 때 제가 바깥 일을 하지 않고 집구석에만 틀어박혀 따님만 보살피게 된다면 제가 해야 할 일은 언제 어떻게 합니까? 제 말씀이 틀렸습니까, 두목님.“

”원, 저, 저런 건방진 놈을 다 봤나. 여봐라! 저 놈을 당장 잡아다가 가두도록 하여라! 허헛 참 나워언…….“


두목 원숭이는 노발대발해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습니다.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내와 딸도 덜컥 놀란 표정으로 두목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면접을 보러 왔던 총각 원숭이는 두목의 명령대로 곧 굴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총각 원숭이로서는 바른 말을 했을 뿐인데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바른 말을 했다가 갇혔던 총각 원숭이가 어느새 감옥에서 나와 두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두목이 된 총각 원숭이는 모든 원숭이들이 두루 잘 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나라를 이룩해 내고야 말았습니다. 그 어느 두목보다도 원숭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어질고 인자한 두목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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